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6)
이세계 편돌이-25화(26/331)
25화. 하얀 마음 편돌이 (1)
여기서 근무하며 스마트폰은 많이 봤다. 페이 결제한다고 내밀어 오는 것도 많이 받아보고, 상품권 내미는 것도 찍어보고.
근데 정작 그걸로 마법을 쓰는 건 본 적이 없단 말이지. 곧장 물어봤다.
“그게 돼요? 스마트폰으로?”
[ 밑준비가 좀 필요하긴 한데, 안 될 건 없어. 찬이 너는 어때? 스마트폰이면 괜찮아? ]“저야 좋기는 한데….”
스마트폰을 쓰면 마법진 그리는 법 배운다고 특강을 듣는다든가, 뒷주머니에 40cm 지팡이를 집어넣고 다닐 일은 없겠다 싶어서였다.
[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구, 전화는 끊을게. 준비해야 될 게 좀 많아서. ]“준비요?”
[ 음. 몇 군데 연락해야 하고, 청에 따로 신고도 해야 하고… 그래도 가능하면 아침에 좀 일찍 나갈게. 알았지? ]“그러셔요.”
새벽 3시 다 되어가는 마당에 그게 될까 싶었으나, 일단은 알았다 하고 끊었다.
* * *
이후, 해가 뜨기 전까지도 손님이 뜨문뜨문했다.
대략 시간당 2~3명꼴. 진열대 물품 정리도 하고,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확인하든지 하며 틈틈이 사거리 밖을 살폈는데, 행인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하긴, 술 먹는 것도 피곤한 일이긴 하다.
해가 뜨고 나서도 손님이 없기는 여전해서, 해장용 음료나 라면 찾는 손님이 두어 셋 올 뿐이었다. 주말이니만큼 출근한 직장인들을 받을 일도 없을 테니, 이대로 근무가 끝날 때까지도 한가하겠다 싶었다.
자연스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아, 박살 난 문짝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중 하나가, 춥다. 정말 더럽게 추웠다.
진상 손님 한창 받을 때는 몸에 열이 나서 못 느꼈다만, 확실히 4월 말이라 그런지 바람이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원래라면 바깥 날씨 신경 쓸 일이 없어야 정상인데, 문짝을 닫을 수가 있어야지….
점장은 자기가 직접 고친다고 말했지만, 도구랑 재료만 있다면 경첩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고치려 시도해 봤을 것 같다.
“엣츄.”
저런 경우를 대비한다면 마법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스마트폰 한 대로 볼드모트나 사루만이 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박살 난 문짝 바라보며 추위에 떨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 아닌가.
“엣츄.”
그래도 마음이 영 편치만은 않았다.
꿀잠 자는 포션이든 마법 스마트폰이든, 한 일에 비해 점장에게 받고 있는 게 훨씬 많지 않냐는 생각 때문이다. 그것도 3일 만에 말야. 그만큼 나도 점장한테 뭘 해줘야 될 것 같긴 한데….
“엣츄.”
누구야?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바깥을 바라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색인 꼬마 하나가 자전거 핸들을 부여잡은 채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꼬마는 코를 훌쩍이면서도 불안한 듯 편의점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안심한 듯 표정을 풀어온다. 밖으로 나가자, 꼬마가 낭랑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새여.”
내가 없을 줄 알았나 보다. 대답해 줬다.
“오랜만이다, 꼬마야.”
꼬마가 갸웃하며 내게 되물어 왔다.
“저이, 오랜만이애여?”
“…아니, 사실 오랜만은 아니긴 한데….”
하루 새에 괴랄한 일을 한두 개 겪었어야지. 종이접기 도와준 후로 딱 이틀 지났을 뿐인데, 체감상 두 달은 지난 것 같다.
“이틀 동안 일이 좀 힘들었거든.”
“에구… 갠차느새여?”
“안 괜찮았는데, 너 보니까 좀 나아진 거 같다.”
“엥?”
“그런 게 있어. 근데, 아까 기침하던 거 네가 한 거냐?”
“어… 에, 엣츄.”
대답하다 말고 연신 재채기를 해대는데, 이상한 게 섞여 나왔다. 불꽃이었다.
“엣츄. 엣츄.”
꼬마가 재채기를 하는 족족 입에서 작은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는 사라지고, 매캐한 연기와 불가루가 입 언저리에 날리고는 흩어지길 반복했다. 브레스가 참 앙증맞다.
가까이 가면 불에 델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애가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기침을 해대는 게 어째 안쓰럽게 보이더라. 몸을 수그리고 앉아 말을 건넸다.
“꼬마야, 너 감기 걸린 거 아니냐?”
“아니애… 에… 엣츄.”
“아닌 거면 기침을 하질 말든가.”
일단 안으로 데려다 놨다. 편의점 안도 쌀쌀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바깥보다는 낫겠다 싶어서였다.
계산대 안쪽 의자에 앉혀놓은 뒤, 온장고에서 꿀물을 꺼내 바코드를 찍어 건네줬다.
“일단 이거라도 좀 마시고 있어라.”
“저, 저어가 돈이… 엣츄.”
“감기 다 나으면 갚어.”
까먹어도 상관없고. 행여나 딴말을 할까 싶어 얼른 의약품 코너를 연 뒤, 어린이용 감기약도 꺼내 건네줬다.
“약도 먹고.”
“약은 싫… 에, 아조씨. 저어가 쩡말루 돈이 업서여. 안 주셔도 대여.”
이건 돈은 핑계고, 약이 쓰니까 먹기 싫다는 것 같다. 다행히도 금방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약 안 먹으면 나중엔 주사 맞아야 되는데?”
“헉.”
원만히 합의를 끝마친 뒤, 약 포장을 뜯어 알약 두 개를 건네주자 입에 물고는 한참을 우물거리다 삼켰다. 꿀물 병을 두 손을 모아 잡아 두 모금을 마시고는, 켈룩 한 번 더 기침을 한다.
그 탓에 카운터에 그을음이 생겨버렸다. 이걸 생각 못 했네.
이 녀석은 다행히도 못 봤는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내게 꾸벅 인사를 건네온다.
“감사해여, 아조씨.”
“그래.”
그을음은 이 녀석 안 볼 때 몰래 닦든지 해야겠다.
꼬마의 파우치에 감기약을 마저 넣어준 뒤, 다리를 앞뒤로 파닥이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생각했다.
전에는 이 꼬마의 어머니의 어버이날 선물을 만들다 말았었다.
만들다 만 건 싱크대 밑 선반에 넣어둔 채로 건드린 적이 없기 때문에 멀쩡한 상태고, 완성시키려면 얼마든지 완성시킬 수는 있다.
이 꼬마도 그러려고 온 것 같기는 한데, 오늘은 그건 힘들겠다 싶었다. 기침 한번 잘못했다간 선물이 죄다 타버릴 것 아닌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러면 전에 만들던 건 마저 못 만들겠다, 꼬마야.”
“내?”
“기껏 만든 것들 다 태워버릴 거 아니냐. 집중도 안 될 거고.”
“어, 그게 아니구여….”
그게 아니면 뭔데. 꼬마는 몸을 움츠린 채로 한참을 비비적거리다, 어렵사리 말을 꺼내왔다.
“편이점은… 머 사야 대는 곳이자나여.”
“그렇긴 하지.”
“근대여, 저어가 돈이 별로 업서여….”
시무룩한 표정 그대로 파우치를 뒤적거리고는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내게 내밀어온다. 확실히 편의점에서 내밀만한 돈이 아니긴 하다. 제일 싼 라면 한 개가 750원쯤 되어버린 게 현실이라.
“이래서여… 오늘은 인사만 드리구, 나중에 다시 올라구 그랫서여.”
“나중에 언제?”
“2천 원 모이면여. 매―일, 엄마야가 용돈 500원씩 주셔여.”
단순하게 계산하면, 3일 뒤에 오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그 이후엔 또 4일 뒤에 찾아올 거고….
영 마음이 불편했다.
돈 없으면 안 온다는 마음가짐이 기특하기는 한데, 지금이 4월 말이다. 어버이날이 2주 좀 안 남은 것이다.
세 번, 많아야 네 번 찾아와 1시간씩 있다 가겠다는 소린데, 그 시간 안에 만족스러운 선물은 결코 못 만든다.
나야 어차피 아침에는 한가하니, 이 꼬마 선물 만드는 것 도와주면서 시간 때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던 참이고. 어떻게 말을 해야 얘를 여기 계속 앉혀놓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다 운을 뗐다.
“꼬마야. 500원으로도 편의점에서 할 수 있는 거 많다.”
“내에?”
예시를 들자면, 사탕 싼 거 하나는 250원이다. 500원으로 무려 2개나 살 수 있는 것이다.
외에도 과일우유가 400원, 콜라병 모양 사탕이 300원. 굳이 먹을 게 아니어도 컴퓨터용 사인펜도, 2개가 동봉된 볼펜도 500원 안에서 살 수 있다.
어쨌든 물건 살 돈 있으면 손님이고, 뭘 사기만 하면 나로선 내쫓을 명분이 없다. 내가 말을 늘어놓는 데에 맞춰, 꼬마의 얼굴빛도 점차 밝아져갔다.
“오오….”
“그리고, 이 콜라병 사탕은 지금 투 플러스 원 행사 중이고.”
“투 푸라쓰…?”
“두 개 사면 하나 더 준다는 얘기야.”
두 개를 집어 들며 말해줬다. 꼬마는 500원짜리와 사탕을 번갈아 보다가, 아쉬운 듯 살짝 고개를 떨궜다.
“근대 두 개는 못 사여. 100원이 업서.”
“잘 찾아보면 100원짜리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잖어. 아니면 내가 한번 찾아봐 줄까?”
“내.”
천진난만하게 파우치를 벗어 내게 내밀어온다. 받아 들어서 파우치 안을 구석구석 더듬어 봤으나, 당연히 없는 100원짜리가 나올 리 없다. 나도 있을 거라 생각 안 했고.
그래서 파우치를 뒤지기 전, 손아귀 안에 100원짜리를 미리 숨겨놨다. 파우치 안에서 손을 꺼내며, 파우치 안에서 나온 것처럼 연기를 해봤다.
“여기 100원짜리 있는데?”
“내?”
“이거 봐, 100원.”
“에, 진짜 있내…?”
“잘 찾아보지 그랬냐.”
“죄송해여. 근대 100원이 왜 잇지?”
고개를 갸웃하고, 꼬리도 따라서 까딱거린다.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뒤에 덧붙였다.
“이상한 일은 아냐, 꼬마야. 나도 생각 없이 가방이나 지갑 뒤지다 보면 100원짜리 막 튀어나오고 그런다.”
“그래여?”
“그게 왜냐면, 100원짜리 동전들이 곰팡이가 번식해서 만들어지는 거라 그래. 잘 안 보이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헉, 진짜여?”
“진짜겠냐?”
이래서 눈치 느린 애들은 좋다니까. 놀리는 맛이 있다.
꼬마는 삐진 듯 작게 볼을 부풀렸으나, 얼른 사탕을 집어 보여주자 부풀린 볼을 쏙 집어넣고는 호박색 눈을 반짝여오기 시작했다. 그래, 어떤 맛으로 줄까.
콜라병 사탕은 두 가지 색이 있다. 오렌지색과 콜라색. 꼬마에게 이 중 세 개를 고르라 말해줬더니, 꼬마는 다른 맛 사탕을 하나씩 꺼내서는 내게 내밀어왔다. 어째 느낌이 싸했다.
“저어는, 새콤한 게 조은대여.”
“응.”
“근대 아조씨는 어떤 거를 조아하는지 모르겠어 갖구… 둘 다 드릴개여.”
내 이럴 줄 알았다.
“왜 또 날 주냐? 니 돈으로 산 건데.”
“으음, 아조씨가 몸이 더 크니깐….”
“그거 전에 써먹은 거다, 너. 다른 거 없어?”
“그리구 또… 두 개는 많구, 하나는 적구…?”
이게 비빔면이냐? 하나는 적고 두 개는 많게?
외에도 뭔 말을 할지 가만히 지켜봤으나, 우물대며 꼬리 끝을 까딱거리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질 못했다. 계속 냅뒀다간 아예 울겠다 싶어, 못 이기는 척 사탕을 받아들었다.
“고맙다. 잘 먹을게.”
“내.”
이후 꼬마의 사탕의 포장지를 뜯어 건네주고, 나도 받은 사탕을 뜯어 입에 물었다. 달달함에 더해 톡 쏘는 맛이 나름 괜찮았다.
20초 정도는 서로 말없이 사탕만 우물대다,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여기서 좀 쉬다가, 몸 좀 나아지면 엄마한테 가.”
“그래두 대여?”
“그래도 되지. 사탕 샀잖어. 근데, 너 집이 어디냐?”
자전거를 끌고 온 걸 보면 그리 먼 데서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꼬마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다, 예상외의 답변을 꺼냈다.
“집은 멀어여. 여기서 지하철 타구, 한 시간.”
“한 시간이나? 어느 역 앞이길래?”
“으음, 역 이름이… 학원… 학원 지구…?”
뭔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