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61)
이세계 편돌이-260화(261/331)
260. 아름다운 게임 했잖아, 한잔해 (1)
* * *
자기 몸집보다도 거대한 검을 바로잡는 토끼 소녀. 겉모습이며 동작이며 2코 2/3 다운 엉성함 그 자체였으나, 당사묘는 더없이 진중한 표정이었다.
― 나는 쓸모없는 토끼가 아니라고! 하아압!
부웅 검을 휘두르고는 검 무게를 못 이겼는지 앞으로 고꾸라져버린다. 허공을 가른 검에서 7색의 스파크가 튀어, 그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 챔피언에게 49 데미지, 현재 체력 ―9. ] [ 도전자의 승리입니다. ]이제 승리 시 대사, 모션만 남았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뒤, 자기가 휘두른 검과 챔피언이 있는 부스를 연달아 바라보는 토끼 소녀.
그러다 반 바퀴 몸을 돌려 날 올려다보고는, 두 앞발을 번쩍 들며 소리친다.
― 제가 해냈어요!
짱돌겜 공식 홈페이지의 토끼 소녀 카드 설명이 이러하다. 호기심 강하고 예의 바른 토끼 여자아이. 당근밭 대지주인 부모님께 칭찬받고 싶어한다.
딸이 통상공격이 방어무시에 7회인 토끼 공주가 됐으니 당연히 좋아하실 것이다. 슬롯에 놓아둔 카드를 다시 집어들자, 씨익 웃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 고마워요!
대사를 마치고는 여느 홀로그램들이 그랬듯 흩어져 사라졌고, 이에 맞춰 유리 부스도 느릿느릿 하강을 시작했다. 뒤이어 흥분한 듯한 해설자 목소리.
[ 이게… 이 콤보가 진짜 되는군요! 놀랍습니다, 저도 히어로즈 스톤을 2년째 플레이하는 유저로써― ]방음 기능이 꺼진 건지 바깥 소리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는데, 해설자가 떠들어대는 감탄사가 관중들 목소리를 죄다 삼키고 있다. 이런 덱은 태어나서 난생처음 봐요, 이렇게 화려해도 되는 건가요―
[ …이런 이유로, 도전자 분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실의 검 자체는 그렇다 쳐도, 어째서 키 마수로 토끼 소녀를 채용하신 건가요? ]그러다 부스 밖으로 나온 나와 눈이 마주쳤고, 순식간에 날아와서는 입가에 마이크를 불쑥 들이밀었다. 관중 양반들도 따라서 조용해진 걸 보면 똑같이 궁금해하는 것 같고….
“어… 쓸 수 있는 마수가 토끼 소녀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마수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보이질 않아서….”
말 안 하면 큰일 날 분위기라 최대한 짧게 설명했다. 진실의 검 카드의 장비 조건 중 가장 난해한 조건. 효과가 없는 마수에게만 장착 가능하다.
‘진실된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함.’ 어쩌고 하는 유래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이건 난 잘 모르겠고, 지금 이 게임 인플레이션이 진행될 대로 진행된 상황이다.
거의 모든 마수가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소리다. 서너 시즌을 역행해야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머릿수가 10마리가 채 안 된다.
더해서 꺼내기 위한 조건 중 두 가지, 7장 사용. 속성 마나석 7개. 7개로 7장을 써야 하니 고비용 카드는 못 쓰고, 진실의 검 자체도 종류 불문 마나석 7개를 요구한다. 도합 14개.
때문에 무조건 비용을 줄인 저코스트 카드들만 사용 가능하고, 강화할 키 마수도 효과가 없어야 한다. 공격력과 체력을 맞추기 위한 강화카드들도 7에 정확히 맞추고―
“지금까지 출시된 카드들을 죄다 뒤져봤는데, 원래 비용이랑 실질 비용이랑 전부 만족하려면… 진짜로 이거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일일이 다 말했다간 운영 텐트 의무실 침대가 열사병 환자로 꽉 차버릴 것이다. 해설자도 내 의도를 알았는지, 아쉽다는 투로 짧게 물었다.
[ 덱 공유 가능하신가요? ]“대회 끝나고 올릴게요. 저도 예선 참여중이라서.”
[ 아하! 매일 커뮤니티 새로고침 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이벤트 매치 상금은― ]운영팀 천막에서 전달될 예정이다, 바로 진행할 흐름이라 슬쩍 말을 끊어봤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아쉬운 부탁이 한 개 있다.
“죄송한데, 그 전에 엘….”
[ 네? ]“…챔피언 분께 따로 인사를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그건, 잠시만요. 챔피언 분께 따로― ]말을 늘이며 챔피언 쪽을 바라본다. 따라서 바라보니, 막 유리 부스에서 나온 챔피언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참이었다. 곧바로 귓속말로 의견을 묻는 해설자.
동의를 구했는지,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는 내게도 똑같이 귓속말을 해온다.
“…괜찮다고 하시네요. 따로 자리를 만들어드릴까요?”
“아뇨, 짧게 얘기할 거라서.”
길게는 얘기 안 한다. 하나 데리러 가야 된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해설자가 다시 진행을 이어나갔고, 내가 앞장서서 사설무대 뒤로 향했다.
인적도 없고 그늘진 게 딱 적당하다. 도착해서 챔피언을 돌아보니, 답답하다는 듯이 뒤집어쓴 여우가면을 벗으려 하고 있다. 바라보며 물었다.
“야, 너 어쩌다가 여기서 이러고 있게 된 거야?”
“심사관님. 그게요, 잠시만….”
말을 우물대며 가면 머리띠를 하염없이 메만지다, 마침내 벗고는 긴 머리를 찰랑이는 엘린.
“와! 이제야 풀렸네요!”
* * *
어제 아침, 윤하 누나가 매장에서 지나가듯 얘기한 게 있다. 최근 헌터 사무소에 싹싹한 신참 한 명이 입사했고, 이번에 대회장에 끌고 나와서 일 시켰다.
― 애가 싹싹해서 괜찮겠더라고. 이게 위험한 일도 아니고 말야. 왜, 너도 아는―
이 직후에 매장에 하나가 찾아와 대화가 끊겼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 헌터 사무소에 신참으로 들어갈 싹싹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직접 추천까지 해줬었다.
“오랜만에 봬서 반가워요, 심사관님!”
“나도 반갑다. 반가운데, 나 이제 심사관 아니잖냐.”
“어… 앗.”
정정해주자, 머쓱해졌는지 여우가면으로 자기 귀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사장님.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고, 어쩌다 게임 하고 있게 된 거냐니까. 너 취직한 거 아니야?”
“취직한 거예요. 했는데, 이게 오늘 제 업무라서….”
“그건 또 뭔, 딱지 치는 게 업무라고?”
이거 완전 화이트기업 아니냐? 게임만 해도 돈을 줘?
“저요. 직장생활에 관해서 이런저런 책을 읽어봤었는데요.”
“그런데.”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자기 능력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었는데, 며칠 시간을 거슬러 설명한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엘린 이 녀석이 초급 마법사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날.
내가 추천해준 대로 누나가 소속한 헌터 사무소에 찾아갔고, 그 자리에서 채용됐단다. 인턴으로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정직원으로 승격시켜준다는 파격적인 조건.
“인턴 기간동안 연봉도 정직원 수준으로 준다고 하셨어요. 제가 미성년자라서 규정상―”
“그건 됐고. 연봉 얘기는 나 말고 부모님께만 하는 거야.”
“네? …앗, 네.”
“직장생활 해보니까 그게 좋더라고. 여튼, 잘 됐다니까 다행이네.”
“네! 윤하 부사장님이 그러셨거든요. 헌터 업계에서 치유 마법 전문인력이 드물다고….”
치유 마법계 인력들은 죄다 대학병원으로 빠진다, 헌터 직종상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엘린 네가 왔네? 혹시 소고기 좋아하니?
면접 과정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며 열심히 설명을 해줬고, 대화가 삼천포로 새는 걸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처음 듣는 내용이 나와서였다.
“너가 치유 마법 전문이었어?”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 네… 연습도 많이 해봤구요.”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으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치유 마법을 연습하려면 다친 사람이 있어야 하잖은가.
이 녀석이 3년 가까이 학교에서 맞고 살았다. 발길질 당하는 건 직접 보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상처투성이로 지냈을 터인데, 한 번도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의문이었다.
그 의문 일부가 지금 해소됐다. 의문삼을 상처가 없어서 그런 거였구나. 자기가 직접 치료했으니까….
“치유 마법 전문인 거, 제가 말씀 안 드렸었나요?”
“말… 안 했었던 거 같다. 여튼, 그래서?”
“네. 그렇게 취직했고요, 간단한 서류 업무를 보면서 지내다가….”
어제 아침. 카드 대회 진행팀에서 안전요원 외주 계약을 맺으러 왔고, 적합한 인원을 발령하기 위해 소속 헌터들에게 사장이 물었다. ‘이 게임에 대해 잘 아는 인원 있나?’
여기에 이때다 싶어 이 녀석이 외쳤단다. ‘네! 작년에 대회 우승 했었어요!’
“저 1학년 때는 또래 애들 중에 저밖에 안 했었는데요, 올해는 또래 애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격세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친구 한 명 없던 이 녀석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취미생활이 짱돌겜이었고, 작년에는 아예 작정하고 대회에 나가 우승을 따냈다는 것이다. 생계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작년 우승 상금은 500만원이었지만요….”
“학비로 다 쓴 거고?”
“90% 정도요. 나머지는 생활비.”
여하튼 이 우승 경험 덕에 신참 인턴으로써 중요 업무를 배정받아, 부사장인 윤하 누나 따라 대회장에 왔고….
대회장 운영팀에서 ‘업무 도중에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제안한 게 이번 이벤트였단 얘기다. 전년도 챔피언이 참가한 연승전. 다 들은 뒤 물었다.
“윤하 누나한테 어필은 잘됐냐?”
“게임 얘기 잠깐 했었는데, 부사장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이런 건 머리 좋은 사람 아니면 못 하겠다.”
누나도 일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다. 단단한 면모만 유독 부각돼서 그렇지.
“그리고, 아는 동생이 이런 걸 잘하겠다고도 하셨어요.”
“허어….”
“저도 절실히 느꼈고요. 사장님께서도 이 게임, 그것도 오래 하고 계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무대에서 만났을 때는 깜짝 놀랐지 뭐예요!”
나도 마찬가지다. 낸들 일일 제자였던 녀석을 게임 대회장, 그것도 챔피언이랑 도전자로 입장 바꿔서 만나게 될 줄 알았겠냐고.
오전에 게임했던 하피 애한테 ‘고딩들도 이 게임 좋아한다―’ 란 언질을 들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여우 가면 보고도 짐작조차 못 했을 거다.
“저 그래서요, 이번에는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사장님께 꼭 이기고 싶어서. 그런데, 역시 연륜이란 게―”
“연륜은 뭔 놈의 연륜, 나 이 게임 뉴빈데?”
“…네?”
“오늘 아침에 시작했거든. 대전 로그 보면 알어.”
바로 보여달라고 떼를 쓰길래 알아서 찾아보라고 했다. 나도 이제 내 볼일 보러 가봐야 한다.
“저 천막에 폰 두고 나왔단 말예요. 잠깐만 보여주시면 안 돼요?”
“아니, 나 일행 있어서 가봐야 한다니까?”
걱정 반에 반가움 반이었는데, 하는 짓을 보니 더 걱정할 일은 없어 보여 다행이다. 예전이라면 떼를 쓰기는커녕, 이렇게 밝게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기억을 잘 이겨내고 있는 모양이다. 발을 두어 번 구르며 꿋꿋이 떼를 쓰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대화 방향을 바꿨다.
“그럼 매장에 뭐 사러 가도 돼요?”
“그거야 니 마음이지. 이제 됐냐?”
“네.”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주섬주섬 가면을 뒤집어쓰는 엘린. 오늘 내내 쓰고 있어야 하나 보다. 경험이 떠올라 말해봤다.
“그 가면 머리띠에 후크 있잖냐. 그거 먼저 채우고, 그 다음에 줄 늘려서 뒤집어써 봐.”
“어… 오! 와!”
“근데 너는 많고 많은 가면 중에 왜 하필 그걸 뒤집어썼어?”
가면이 얼굴에 새겨진 무늬부터 눈동자 모양까지 내가 전에 썼던 것과 똑같다. 음성 변조 기능도 있는 거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하긴 한데….
“그야, 제가 평생 못 잊을 가면이니까 그렇죠.”
일말의 주저 없이 대꾸해왔다. 가면값이 29,800원, 학교 기숙사를 나온 직후 계좌에 남은 여윳돈이 정확히 30,000원. 그 돈으로 가면부터 샀댄다.
뒤집어쓴 가면을 양손으로 매만진 뒤, 머리띠 줄을 손으로 당겼다 탁 놓고는 말을 맺는다.
“사장님께는 늘 배워만 가네요.”
“그래. 나중에 심심하면 연락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