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64)
이세계 편돌이-263화(264/331)
263. 아름다운 게임 했잖아, 한잔해 (4)
* * *
상황이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인수인계 사항 부탁드릴게요, 점장님.”
“내일부터 엄청 더워진대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었구, 찬이 추우면 꺼두 돼. 끝.”
어쩐지 평소보다 춥다 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온 뒤 배너 너머의 내용을 마저 확인해 보려 했는데,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내용이 끝나질 않았다.
“에인션트 사업 영역. 에너지, 전기, 식량 생산 및 보안 등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마법들의 안정화를 위한 반마법 마법진을 연구 및 제작, 아니 이게 뭔 소리래요?”
“접근법을 다르게 가져간다는 얘기야, 찬아. 마법진을 설계하고 유지보수하는 게 결국 사람인 이상 어떤 식으로든 사고가 나기 마련이구….”
그렇다고 사고를 방지한 완벽한 마법진을 만들자니 가성비가 떨어지고. 하여 최근에 트렌드가 된 마법진 시공법이 이러하단다. 발생할 매지컬 사고를 예상해 그 사고를 막는 반마법진을 덧씌우는 것.
“트렌드가 된 게 또 최근이에요?”
“마법진 변질로 인한 사고 종류를 예상하는 게 엄청 어려웠거든. 뜬금없이 풍선이 터진다고 치구, 그 풍선의 어디가 어떻게 터지는지 알아맞히는 수준이라 보면 되는데….”
“흠….”
“혹시 찬이는 알아맞힐 수 있어?”
대뜸 질문해오는 점장. 못 맞힌다는 반응을 바라고 물은 것일 텐데, 진지하게 고민해 보니 답 자체는 금방 나왔다. 쉽지 않나?
“엥? 어떻게?”
“바늘 하나만 있으면 되잖아요.”
직접 터트리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바늘로 찔러버리면 두 원인 다 맞출 수 있다. 어디서부터? 바늘로 찌른 곳에서부터. 어떻게? 바늘로 잘 찔러서.
대답하면서는 너도 바늘로 찔리고 싶냐며 핀잔이나 들을 줄 알았는데, 점장 표정이 예상외였다. 어안 벙벙한 눈으로 날 빤히 올려다보다, 박수를 짝 치고는 마저 말해왔다.
“바로 그거야, 어떤 마법사가 정말 진지하게 그 얘기를 했어. 어차피 터질 거, 아예 한 부분을 일부러 터지도록 만들면 되는 거 아냐? 이러면서 막.”
마법진이 변질될 때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를 유도한다, 이 가설로 시작한 접근법이 발전해서는 한 번 시공에 마법진을 두 개 설치하는 단계까지 닿았단다.
“부하를 분담하는 거라 봐두 돼. 마법진은 80, 반마법진은 20. 이러면 원래 작용하는 마법진은 부하를 훨씬 덜 받구, 사고가 나더라도 반마법진이 바로 차단해버리잖아. 그치?”
“그치? 라고 하셔도 제가 뭘 알아야죠. 근데, 반마법진 설치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대체로 어렵구, 그래서 시공비도 인건비도 다 비싸. 20짜리 반마법진 만들려면 마법진 200어치 써야 되거든.”
반마법사들 수요가 많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당장 우리 매장 지하창고만 해도, 창고 물류 안전검사 하는 데에만 회당 수십만 원씩 내고 있었다― 라며 점장이 말해줬었으니까.
대화하고 있자니, 내 자격증에 가죽 케이스라도 사서 씌워줘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여하튼 단가 이슈로 인해 이 가설도 처음엔 무시받았었고, 최근에서야 대두가 되기 시작했다….
이 에인션트란 회사가 이 분야 선두주자 같다. 라며 말을 마친 점장이, 까치발을 한 채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바로 대답하는 거 보니까, 찬이가 역시 이쪽에 재능이 있어.”
“허어….”
이게 재능보다는 그거다. 무식해서 용감한 케이스. 반마법 단가가 그렇게 비싼 줄 알았으면 바늘 어쩌고 얘길 꺼내지도 않았지.
“…그 탓에 이런 일도 겪는 거겠지만 말야.”
뒤이어 감탄기가 쏙 빠진 목소리로 한탄하는 점장. 시선은 방금 꼬아 던져버린 고대 마법 사슬인지, 사슬 고대 마법인지 모를 것에 향하고 있다.
나도 다시 한번 바라봤는데, 때깔이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게 예사롭지가 않다. 무려 무광블랙이야. 두 달간 봐온 마법들 중 이 마법이 제일 비싸게 보인다.
동시에 꺼림칙해 보였고. 사슬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 점장이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실제로도 꺼림칙한 마법이 맞았다.
“마음 읽는 마법이야, 찬아.”
“마음을요? 사슬인데?”
“사슬로 대상을 옥죈 다음, 질문에 원하는 대답을 하게 만드는 거지. 이러면 자기가 원하는 마음만 딱딱 읽어낼 수 있으니까. 시전 대상은….”
나겠지. 뒤이어 점장이 몹시 할 말이 마려운 표정이 되었는데, 내가 먼저 말 꺼냈다.
“허무맹랑한 얘기가 하나 떠올랐는데,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나 시간 많으니까 걱정 안 해두 돼.”
바로 시작했다. 저 드래곤이랑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느꼈던 압박감. 그게 난 드래곤들 특유의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일을 겪고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순간에 저한테 마법을 쓴 거죠. 그걸 제가 무의식적으로 막아버렸고.”
“응.”
“압박감이 그 마법을 막은 반동으로 찾아온 부산물… 같아서요. 하나랑 용 쌍둥이분들 만날 때는 그런 거 못 느꼈거든요. 이런 경우가 있어요?”
“있지. 강한 마법을 강하게 막을 때 특히 잘 일어나.”
강한 건 난 잘 모르겠고, 자기 생각에도 마법 쓴 게 맞단다. 그럼 쓴 거라고 치고….
내 체질에 대한 건 전혀 모르고 썼을 터다. 넓은 거리에 자기 딸이랑 단둘이 있던 게 수상해서, 뭐 이런 이유로 썼겠지. 막힐 거라고도 전혀 예상 못 했을 거고.
근데 막혔다. 근데 그 막힌 마법이 하필이면 고대 마법이야.
분명 의아했을 터다. 나에 대한 것도 그래서 알아봤겠지. 저놈은 뭔데 내 마법을 막냐. 그렇게 직원 시켜 알아봤는데, 이놈이 보통 편돌이가 아니라 반마법사를 겸업하는 편돌이네?
“진짜 쉽게 말해서, 영업하러 온 거 아닙니까? 오늘 찾아온 것도 그때 자기 마법을 막은 게 우연인가 아닌가― 그거 확인하러 온 거고요.”
100% 확신하고 내린 결론은 아니다. 내 분야가 자기 회사 주축 사업이랑 일치한다고는 해도, 이게 대기업 사장이 직접 찾아올 일 같지는 않아서였다. 이것도 인사부 직원 시키면 되는 거잖아….
“직원은 못 시키지. 고대 마법을 막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그 직원두 고대 마법 쓸 줄 알아야 되는 거잖아.”
“아, 그건 그렇… 근데 점장님. 이 고대 마법이란 게 대체 뭡니까?”
“마법 연산식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부터 존재했구, 그래서 난해하구, 파훼하는 것도 힘들구, 사용하는 당사자들만 원리를 아는 마법.”
“아니, 그럼 이게 고대 마법인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난해했구, 파훼하는 것두 힘들었으니까.”
대답한 뒤엔 사슬을 내려다보고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난 했지만.”
“가끔 느끼는 건데, 점장님 은근히 자기 자랑 자주 하시는 편인 거 아세요?”
“그치만, 이럴 때 아니면 내 자랑 못 하잖아.”
“허어….”
“농담이구, 난 찬이 생각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영업당한 것 같다는 내 의견도 공감하고, 동시에 하나 어머니가 직접 찾아온 것도 충분히 공감한단다. 자기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거든 무조건 날 만나려 들려 했을 거라나, 뭐라나.
“다짜고짜 마법 쓴 걸 잘했다 얘기하려는 게 아니야. 저건 버릇이 잘못 든 거니까.”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으니 저러는 거다. 길에서 잠깐 눈 마주친 사람 상대로도 마법을 써대는데 평소에는 얼마나 심하겠냐. 그 실력은 인정해주겠지만 그뿐이다.
“무례한 분이다, 내 의견은 이걸로 끝.”
“예. 조언 감사합….”
“또 하구 싶은 말 있어?”
“…예.”
혼자 곱씹고 말려던 추측이 한 가지 있다. 말하기에 앞서 아까 묻다 말았던 얘기를 마저 물었다. 이 동네 드래곤들은 알에서 태어나냐?
“엄청 단순하게 축약하면, 응. 왜?”
“하나가 자기 꿈 얘길 해줬었습니다. 듣다가 그 꿈을 언제 어떻게 꿨는지가 궁금해서 돌려 물었었는데, 들어보니까 알에서 꿈을 꾼 것같이 들려서….”
그 꿈 내용이 많이 불길하다. 엄마가 누군가한테 강경한 어조로 ‘쓸모없다’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이 하나 뇌리에 깊게 박혀버린 것 같다.
“쓸모없다는 말이 트라우마가 됐다?”
“트라우마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근데 저분 나갈 때 장난감에 대고 말하셨잖습니까. 쓸모없다.”
“응. 그래서?”
“그러니까… 애 엄마가 장난감에 쓸모 있고 없고를 따져요? 보통?”
애가 관련된 일에조차도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보인단 얘기다. 오늘 찾아온 것도 엄밀히 말하면 날 보러 온 거잖은가. 하나가 걱정돼서가 아니고.
거스름돈을 안 가져간 것도 그래. 이 거스름돈이면 뽑기 장난감을 10개는 넘게 살 수 있다. 저 돈으로 차라리 하나 장난감을 사다 주지, 왜 이 돈을 날 주는데….
“하나가 자기한테 그랬다잖습니까. 제가 좋은 어른이니까 해코지하지 말아 달라. 고마워요. 고마운데, 결국 7살 애 의견이잖아요. 엄마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 되지.”
“제 마음 읽지도 못했잖아요. 막혔으니까. 마음도 못 읽고 잠깐 대화 나눈 걸로 ‘니가 좋은 놈 같으니 하나랑 노는 거 봐줄게’ 이러고 나갔는데, 이게 아무리 봐도….”
핑계잖은가. 내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하나한테 뭔 짓 할 놈인지는 모르지만 봐줄 거다. 좋은 놈 같아서? 그게 대화 한 번 나눠본다고 바로 파악이 돼?
그럴 리가 있나. 쓸모 있어 보이니 봐주겠단 거다.
“물론 제가 뭔 짓을 하더라도 대비책이 있겠죠. 당연히 있으니까 같이 놀아줘도 된다― 하는 거겠지. 그래도…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자기 애가 엮인 문제를 이렇게 계산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이 들어 시작한 말이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답답해지더란다.
그래서 급하게 맺고 점장 얼굴만 바라봤다. 잔뜩 생각에 잠긴 얼굴이다. 어색함에 담배 세는 척 딴청을 부리려던 찰나, 점장이 씨익 웃고는 말해왔다.
“…나도 가끔 느끼는 거지만.”
“예.”
“찬이는 찬이 스스로보다, 지인들한테 훨씬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
이렇다는데, 이건 틀린 말이다. 나보다 내 일 신경 쓰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난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1순위인 놈이고, 잘 먹는 문제는 이 세상에 와서 해소가 됐다. 점심으로 몇백 원짜리 라면을 사 먹는 게 맞나― 이런 고민 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먹는 문제는 해소가 됐으니, 이젠 잘 사는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은 거다. 웃고 사는 거.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늘 인상만 찌푸리고 살았으니 말이다. 망할 놈의 인생이 허리 펼 짬이라도 줘야 웃든 말든 하지.
하나 녀석이랑 있을 땐 자주 웃게 된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웃고 있는 얼굴만 봐도 따라서 웃게 돼. 그 애가 쓰는 그 마법만은 내 체질로도 어떻게 안 되더라.
그러니 어른스러운 고민은 어른들 시키고, 7살 애답게 웃고만 살아줬으면 하는 거다. 그래야 나도 웃을 수 있다.
물론 점장에게 말은 안 했다. 말해 봐야 29살 애가 순하다는 얘기 듣기밖에 더하겠어.
“제가 매사 부정적인 놈이니 이런 생각 하는 거죠, 뭐….”
말하며 점장 핸드백을 집어 건넸는데, 피식 웃고는 역으로 되물어온다.
“저분 또 찾아올 거 같지, 찬아.”
“그러지 않을까요? 아니면 명함도 안 주고 갔을 테고.”
“그땐 어쩔 생각이야?”
“일단은… 진짜 영업을 하더라도 귀담아듣지는 않을 겁니다.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압박면접 하는 회사를 제가 미쳤다고 들어가겠습니까.”
물론 단칼에 거절할 생각도 없다. 밑으로 들어가는 건 못 하더라도 작은 일 받는 정도라면 나도 환영이다. 할당량 채우게 해준다는데 나야 좋지, 뭐.
이것과는 별개로, 하나에 대한 건….
“그리고, 다른 부분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글쎄다. 내게 뜬금없이 무광블랙 마법을 시전해 오긴 했어도 이건 내가 쌩판 남이니까 그런 것일 테고, 하나한테까지 그러진 않을 거잖아?
하나를 아끼는 건 사실일 테니 말이다. 그 방향성이 장난감 대신 먼지 쌓인 곡물 과자를 고르는 이상한 방향이라서 그렇지. 난 저 과자 사가는 애 한 명도 못 봤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테니, 내 할 일 하다 나중에 판단해도 늦지는 않을 거다. 여기까지 대답하고 나서야 핸드백을 받아들고는 어깨에 둘러메는 점장.
카운터 밖으로 나가려는 듯하다, 의미심장한 얘길 해왔다.
“저 미리네란 분, 아무리 못해도 십수 세기는 사셨을걸?”
“허어, 십수 세기… 근데 그건 왜요?”
“찬이 눈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수두룩할 거란 얘기야. 이 세상도 저렇게까지 살아온 세월이나 환경이 유별난 분은 흔치 않거든. 요점은….”
마음 단단히 먹고 대하고, 내일 카드 게임 대회 끝나면 꼭 결과 말해줘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정문 밖으로 나갔고, 나 혼자 남았다. 고개만 돌려 POS기를 들여다보니, 10시 10분이 찍혀있었다.
“어우.”
근무 시작하고 10분이 지났는데도 담배는 세지조차 못했다. 현금 시제 파악도 마찬가지고. 얼른 담배를 헤아린 뒤, 현금다발을 세다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니, 이 양반들이 돌았나. 이걸 하란다고 진짜로 해?”
출근 직전, 오늘 이벤트 매치에서 썼던 덱의 구성을 커뮤니티에 올려뒀었다.
마이크에 대고 직접 올리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고, 올라가더라도 별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의 검 콤보가 비록 성공했을 때의 감도가 5,000배이기는 하나, 결국 성공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덱이다.
그 외에는 상대방 빡치게 하는 게 전부고. 언급은 돼도 아무도 안 쓸 거라 생각했는데, 이 토끼 소녀 덱의 주가가 몇십 분 사이에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무려 3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2위로 올라갔다. 보면서는 드는 생각.
“이거, 혹시….”
내일 내가 우승이라도 했단 봐. 그땐 진짜 메타덱 되는 거 아냐?
* * *
…그러나 토끼 소녀 덱이 메타덱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전년도 챔피언과의 사투에 모든 연승력을 쏟아낸 토끼 소녀 덱은, 다음 날 본선 1차전에서 상대방이 낸 최후의 발악용 마법 카드, ‘10년 토론’에 당해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게 어떤 카드길래?”
“필드 위 무작위 대상에게 10데미지를 반복해 주는 마법입니다. 둘 중 한 명 죽을 때까지요.”
“아하.”
“제가 4방 연달아 맞았고요….”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