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66)
이세계 편돌이-265화(266/331)
265. 찰리의 사직서 공장 (1)
* * *
우선은 가만히 바라만 봤다. 내 무반응을 자기 말을 못 알아들은 거라 여겼는지, 정문 밖을 삿대질하며 재차 외치기 시작했다.
“정말이에요, 미친 비글 사장이 저흴 해고시키려 하고 있다니까요, 가만히 계시지만 마시고!”
내가 말을 못 믿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다. 아니, 그 문제면 노동고용부에 민원을 넣어야지 왜 편의점엘 와서 도와 달래?
더해서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고, 다 떠나서 상황 자체가 하도 뜬금이 없어 머리가 안 돌아간다. 일단 떠오르는 대로 말해봤다.
“뭐… 경찰이라도 불러드려요?”
“아니요. 경찰까지는 아니, 아닌가? 맞나?”
“야 이 자식아, 그렇게 말하면 소방관도 안 도와주겠다!”
도중에 초식동물들 사이에서 또 말소리가 들려왔는데, 초식동물 셋 중 입을 움직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건 또 뭔가 싶어 바라보는 사이, 사슴 코볼트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찰 과장이 하는 말 듣고 온 거야. 여기 서비스가 그렇게 좋다면서?”
양복 입은 날다람쥐였다. 이 동네에서 봐온 언어 구사자들 중 신장이 제일 작다. 날렵하게 사슴의 옷을 타고 내 눈높이까지 올라와서는 다시 입을 여는 날다람쥐.
“잭 대리가 말을 이상하게 하긴 했는데, 그만큼 큰일 난 게 맞아서 그래.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면―”
이 말에 뒤이어 묻지도 않은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자기네 회사가 오늘 학원지구에서 워크숍을 했단다. 1박 2일에 오늘 일정 마무리가 오후 7시.
“끝나고 같이 술이나 먹으려 했는데, 사장 그 미친놈이 뭔 바람이 들었는지 찾아와서는 글쎄.”
‘늬들이 잘하는 집을 안 가봐서 그래’라며 자기 아들까지 데리고 난입을 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원들 모두 똥 씹은 표정이 되어버린 건 덤이다.
초식동물 계통 코볼트가 9할인 구성원들을 데리고 고깃집을 가는 것부터 시작해 아무도 바라지 않았던 건배사, 장기자랑.
그 와중에 사장은 테이블 구석구석에 끼어들어 일이랑 상관도 없는 얘길 주절대질 않나―
“거기서 찰 과장이 그런 거야. 사장 니 골프 기록 갱신한 거 쥐뿔도 관심 없으니까, 염병 그만 떨고 고기나 처먹으라고.”
“저 그때 반반이었습니다. 찰 과장님 저러다 큰일 나시는 거 아냐? 하다가도 하고 싶은 말 다 해주시니까 속 엄청 시원했거든요.”
문제는 분위기도 덩달아 시원해졌다는 것. 치와와 지적에 곧바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비글 왈, 지금 니가 기어오르는 거냐. 내가 니 사정을 얼마나 봐줬는질 아느냐….
이 매장 얘기도 그때 나왔단다. 니 법인카드 사용기록에 이 역 앞 편의점 사용 내역 찍혀있는 거 다 봤어, 거긴 왜 갔어? 학원지구 쪽 IT 회사에서 이직 권유 받고 간 거 아니야? 너 회사 버려?
“아니라고는 하셨는데, 과장님 그렇게 당황하신 건 처음 봤어요.”
“맞아. 맞아. 말문 막히신 것도….”
“아이, 급한 상황이라며요. 얘기나 마저 해주십쇼. 그래서 둘이 싸웠어요?”
“싸우지는 않았고.”
사장이 소주병을 거꾸로 집어 들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웬만한 초식동물들이라면 쫄고도 남았을 거라 하는데, 찰리 그 양반도 미친 수준으로는 누구한테 뒤질 양반이 아니잖은가?
회사 프로젝트 깨부수듯 내 머리통도 똑같이 부숴 봐라, 도발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간 쌓였던 것들을 일동 대표로 발표했다고 한다. 고래고래 고함까지 쳐가면서 말이다.
“그래서요.”
“중간에 사장이 늬들 다 한통속 같으니 죄다 해고당할 각오 하라고 했어. 그러긴 싫어서 빠져나왔지.”
이게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며, 지금도 사장이 소주병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족을 덧붙인 날다람쥐가 설명을 마무리 지은 후 곧바로 물어봤다.
“뭐… 경찰이라도 불러드려요?”
“아까랑 말이 똑같잖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니, 이게 애초에 제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또, 내 의문도 전혀 해결이 안 됐다. 그 비글 사장이 모자란 운동량을 채운다고 거리 쏘다니는 건 그렇다고 쳐. 그럼 경찰서를 가야지 왜 편의점에 와서 이러는데?
이걸 미처 묻기도 전에 다섯 번째 인물이 등장했다. 몸을 숙이며 들어온 게 키가 3m가 좀 안 되어보이는 기린 코볼트. 목 길이만 1.5m는 되어 보인다.
“어….”
“뭐야. 망 안 보고 왜 들어왔어?”
“사장님… 오고 계세요….”
망루 대용으로 밖에 세워놓은 듯한데, 말에 자신이 없는 게 사내 직급이 꽤 낮은 양반 같다. 이 말에 너 나 할 것 없이 털을 쭈뼛 곤두세우는 초식동물들. 이런 젠장할….
“…저기요. 손님분들.”
“네?”
“도와줄 거야?”
“저는 모르는 일 칠 거고, 저기 거울 달린 문 들어가서 음료 창고 문 여시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있거든요? 거기 앉아계시든 하십쇼.”
경찰서가 아니면 동물보호센터라도 찾아가라, 말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근데 이미 코앞까지 왔다는 걸 어떻게 해?
잠깐 이루엘 경관 발 오피셜을 되새겨 봤다. 학원지구 근방 경찰서들이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고, 불금마다 술 먹고 사고 치는 민짜 놈들도 수도 없이 많다고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와중에 경찰이 신속히 출동해줄 것 같진 않다. 못해도 10분은 걸릴 텐데, 비글 사장이 여기 들어왔다가 이 코볼트들이랑 눈이라도 마주쳤단 봐. 생난리를 피우지 않겠어?
그 10분간의 생난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잠깐 모습만 숨겨두고 사장이 여길 지나치게 만드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그 뒤에 파악하든 하고….
“혹시라도 음료 창고에서 뭐 꺼내 드시지도 마시고요, 계단 끝까지 내려가지도 마시고요. 안 보이는 거 던져놨는데 걸려 넘어질―”
“얘들아, 안에 숨으란다! 달려, 빨리!”
어느새 사슴뿔에 매달려있던 날다람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고, 일제히 사무실로 달려 들어가서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찰칵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린 직후.
“어서 오세요, 손ㄴ”
“찰리 이 개새끼야,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 * *
비글에 대해 이런 오해가 하나 있다. 지능이 매우 낮은 데에 더해, 견종 자체의 타고난 성격도 악랄하다는 점이 시너지를 일으켜 탑티어 지랄견이 되었다는 점.
허나, 이건 비글의 속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비글이 원래는 사냥개로 길러진 견종이다. 지능이 낮으면 명령도 못 알아들을 텐데, 그런 견종을 어떻게 사냥 용도로 쓰겠어?
원래 성격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고. 땅파기를 좋아하는 습성에 더해 활동량이 많고 자기주장이 확고할 뿐, 뛰어놀 마당과 파헤칠 땅만 있다면 그 어떤 개보다도 선량한 견종이다.
“나오라니까!! 셋 세기 전에 당장 튀어나와!!”
헌데 하필이면 우리 매장에 마당이 없다. 이 점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소주병을 붕붕 휘두르며 매장이 떠나가라고 소릴 질러대는 비글.
“야, 너! 찰리 이 새끼 어디 있어.”
“찰리요? 저기, 죄송한데―”
“어디 있냐고!!”
“―죄송한데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내가 지금 곱게 말로 하니까!! 나를 지금 바보로 아는 거야!!”
뭐 말 한마디를 못 하겠다. 날 겨누던 소주병으로 테이블을 세 번 세게 후려치는데, 힘껏 내려침에도 소주병이 멀쩡한 게 테이블을 한두 번 폭행해본 솜씨가 아니다.
뒤이어서는 테이블 앞 의자를 뻥 걷어차 버렸고, 의자 다리가 휘어 3만 원가량의 재산 손괴가 발생했다. 저건 나중에 폰으로 고치든지 하고.
“…저, 손님.”
“손님이라고 부르지도 말어!!”
라길래 고개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느닷없이 유리 얼굴이 떠올라 우울해졌다. 젠장, 유리야. 오늘 벼락 맞을 일 없을 거라며. 그럼 저건 뭔데?
“후욱, 후욱… 후우.”
테이블을 폭행한 후에야 진정이 됐는지 라마즈 호흡을 시작한 비글. 이제 눈 정도는 마주쳐도 괜찮을 것 같아 비글을 슬쩍 바라보았다.
외견상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으로 보인다. 나도 이젠 이 동네 짬을 먹을 만큼 먹은지라 코볼트 나이 정도는 구분이 된다. 술 냄새야 당연히 풀풀 풍기고 있고….
“뭘 봐, 시팔.”
낯선 비글에게서 익숙한 치와와의 향기가 난다. 욕을 입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고 쫄아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손님, 이제 좀 진정이 되셨습니까?”
“뭐?”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찰리 어디 갔냐― 라고. 혹시 사람 찾으러 오신 거예요?”
묻자, 서서히 펴져 가던 얼굴 주름이 순식간에 자글자글해졌다. 재차 소주병을 내게 겨누며 버럭대는 비글.
“야, 인간 놈의 새끼야. 그 새끼 여기 들락날락하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이건 아까 날다람쥐에게 들었다. 찰리 양반 법인카드 내역을 이 비글이 봤고, 이곳에 자주 다녀갔다는 것도 그걸로 알았다고. 허나, 거짓말은 뭐다?
“자주 들락날락하는 분들이 한두 분이어야죠. 여기 역 앞이잖습니까. 혹시라도 제가 아는 분일 수 있으니까, 손님 생김새라도 좀 말씀을 해주시면….”
한쪽 뇌에는 사실을, 한쪽 뇌에는 영혼을 담고 치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시치미를 떼자, 단계가 확신에서 의심 단계로 떨어진 건지 사장 어조가 조금은 조곤조곤해졌다.
“야. 내가 소주병 이거 들고, 어? 이러는 건 미안한데 말야. 내가 그 새끼랑 잠깐 대화만 하려고 이러는 거야. 그 새끼 이쪽으로 오는 거 내가 봤다고.”
“예. 그런데 제가 진짜 그 찰리란 분이 누군질 몰라서 그래요. 종족도 그렇고….”
“이쪽으로 오는 걸 내가 봤다니까! 그리고 그 치와와 새끼 여기 말곤 올 곳도 없어, 내가 그 새끼를 몇 년을 보고 살았는지 알아?!”
그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아냐고. 그래도 아까부터 이 부분이 살짝 의문이긴 했다. 그 양반이 대체 뭘 어쨌길래 초식동물들이고 비글이고 죄다 여길 와서 그 양반을 찾는 건지.
나름대로 생각하는 사이 비글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 막 나가는 놈이 여기에 대한 얘기만 꺼냈다 하면 말을 흐린다.
“말을요?”
“입버릇이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인 새끼가 여기 얘기만 했다 하면 귀를 쫑긋거린다고. 여기 찾아와서 개판 치겠다는 말에는 거기 나랑 관련 없는 곳이니까 지랄맞은 소리 좀 그만해라, 그랬다니까?”
다른 일엔 귀 한쪽 꿈쩍 안 하다가도 이 매장을 언급할 때만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뭐 이런 얘기인 듯한데….
“그 새끼가 여길 자주 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 안 된다고. 그 새끼 여기 온 게 분명하다고, 그래도 시치미 계속 뗄 거야?”
상대가 모르는 사실을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면 그게 억지지 증거냐, 따지려다 말았다. 만취한 진상 상대로 논리적으로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나저나, 다른 일엔 무감한 양반이 이곳 얘기에만은 반응을 한다. 흐음….
“…치와와라고 하셨으니, 치와와 코볼트시겠네요.”
“뭐?”
“저 근무 중에는 치와와분들 중에 오신 분 안 계십니다. 진짜예요.”
거짓말은 안 했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말해줄 생각 없다.
찰리 그 양반이 잘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씹새란 말 듣고 산 게 서러워서라도 작업 도중에 컴퓨터 전원이나 한 번 나가길 바라는 쪽이다. 나만 당하고 사냐고.
그렇다고 소주병에 머리를 얻어맞길 바라느냐, 그건 또 아니다. 전후 사정이 어쨌든 간에, 이곳에서 개판을 치겠다는 말에 그러지 말라고 커버를 쳤다잖은가?
그럼 나도 받은 만큼 돌려줄 수밖에. 시치미 뚝 떼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장 숨어있는 게 초식동물 코볼트들이지 찰리 그 양반이 아니었으니까.
“장난해, 지금? 그 새끼 냄새가 풀풀 나는데?”
“진짜 안 오신 걸 어떻게 합니까. 차라리 ‘이렇게 생긴 손님 오면 연락 줘라.’ 연락처라도 남겨주시면 그때나―”
내가 뭐라도 도와줄 수 있다. 말하던 도중 정문 벨이 울렸, 아니.
“어서 오세… 이런 망할, 왜 하필 지금 와요?”
“뭐. 씹새야.”
찰리였다. 사거리를 등진 채 우두커니 서서는 사장을 바라보며 한마디.
“사장 이 시팔, 니 여기서 뭐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