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7)
이세계 편돌이-26화(27/331)
26화. 하얀 마음 편돌이 (2)
“학원 지구는 또 뭐냐?”
아리송해서 물어봤다. 내 물음에, 꼬마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대답해왔다.
“학교가여… 으음, 어엄청 많아여.”
“학교가 많다고?”
“엄청 크구여. 또… 큰 언니야도 많구… 작은 언니야도 많구… 어….”
두 팔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표현하기 벅찼는지 꼬리까지 크게 좌우로 파닥이기 시작했으나,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애가 7살인 탓에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래 애들도 많구… 백화점도 있구… 잔뜩 마나여.”
더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지 어영부영 말을 맺었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상상하지, 뭐.
큰 언니야도 많고, 작은 언니야도 많다. 이건 중고등학생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학교도 엄청 많다고 했으니 최소 수십 개는 몰려있는 동네가 아닐까 싶다. 또래 애들도 많다 하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있을 거고….
심지어는 백화점도 있다는데, 그걸 다 아우르려면 규모가 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지, 좁고 한적한 동네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온 나로선 도저히 짐작이 되질 않았다.
상상하자니, 자연스레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왜 학교가 그렇게 몰려있는 거냐?”
“내?”
이걸 6살 애가 알 리가 없지. 질문 방식을 좀 바꿔야겠다.
“음. 그러니까, 걔네들은 뭘 배우길래 다 뭉쳐있냐 이거지.”
내 물음에, 꼬마는 한참 동안 끙끙 생각하다 중얼거렸다.
“마법이랑… 그리구… 개물들 잡는 법…?”
“괴물을 잡아?”
“언니야들이 그랬던 것 같아여… 사실은여, 저두 잘 몰라여.”
자신이 없는 듯 덧붙여온다. 그래도 입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아예 근거 없이 하는 말은 아닐 테니 나도 그런 줄 알기로 했다.
“음….”
알아둬야 할 정보 같아서 물어보긴 했는데, 듣고 나니 아무래도 괜히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장이 근무 첫날 지나가듯 언급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편의점은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영업을 한다고 했다.
그걸 아직 체험해 본 적은 없지만, 점장이 언급했던 장소들 중에 학원 지구도 분명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점장이 빈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 나도 언젠가 거기서 손님을 받게 된다는 소린데, 마법이나 괴물들 때려잡는 법 배우는 곳이면 좀… 위험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거기서 근무하는 동안은 손님으로 유치원생 초등학생 잼민이들이나 중고등학생을 받아야 할 거고….
“으으, 어지러어여….”
감기 걸린 상태로 생각을 많이 한 탓인지, 꼬마가 얼굴이 분홍빛으로 달아올라서는 연신 코를 훌쩍여대기 시작했다. 꿀물을 마저 먹이고, 10분간 휴식.
이후 애가 좀 나아진 것 같아,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엔 애가 좀 잘 알고, 편히 말할 수 있는 걸로.
“집에서 지하철 한 시간 타고 여기까지 온 거면, 엄마가 이 근방 회사 다니시나 보다.”
“내. 자전거 타구 금방 가여.”
“어디길래?”
내 물음에 꼬마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뒤, 카운터의 창가로 가서는 두리번거리다 한 곳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가자, 아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한다.
“쬬오기여.”
가리킨 건 어림잡아 7, 80층은 족히 될 법한 빌딩.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꼭대기에는 구름마저 걸려있어, 상상력 좀 보태면 꼭대기에 용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높이였다.
“엄마가 좋은 회사 다니시네.”
“내. 어제는 저기 있다가 왓서여.”
듣자 하니 빌딩 안에 육아용 공간도 따로 있는 듯하고. 신기해서 올려다보다 시선이 느껴져 내려다봤더니, 꼬마가 이제는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꼬마가 내게 물었다.
“근대, 아조씨는 어디 사새여?”
이건 고민을 좀 해봐야 할 질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여기서 3분 거리. 가까워.”
“와. 아조씨도 이 근처 사시는 거내여?”
“뭐… 그런 셈이지.”
대답하자, 꼬마는 싱글싱글한 얼굴이 되었다.
“와아.”
“뭐가 그리 좋냐.”
“아조씨 여기 살면, 앞으로두 저이 오래오래 볼 수 있는 거잖아여.”
“글쎄다. 일 안 그만두면 그렇겠지만….”
“엣.”
“그만두면 못 보는 거고.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냐.”
편돌이 하는 건 직장 구할 때까지 잠깐.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시작한 알바다.
이세계로 출장 와서 뱀파이어한테 담배 팔거나 드래곤 꼬마랑 사탕 우물대면서 잡담하는 일이 흔치 않은 경험이긴 하다만, 이색적인 경험 해보겠다고 편의점 카운터에 죽치고 앉아있기엔 남은 내 평생이 너무 길다.
좋은 인연 이어나가고, 신기한 체험해 본다고 여유 부릴 나이가 아니란 뜻이다. 당장 몇 개월 동안은 그 각이 전혀 안 나올 것 같아서 그렇지….
대답한 뒤 애를 바라보니, 살짝 시무룩해진 기색이 보였다. 좀 더 생각하다 덧붙였다.
“이건 노파심에 하는 말이다만, 잘 모르는 어른이랑 가까이 지내려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꼬마야.”
“노파심이 머애여?”
“걱정된다는 뜻이야.”
“제가여…?”
“우리 만난 지 날짜로는 이틀 됐고, 지낸 시간은 두 시간도 안 됐잖아. 안다고 말하기도, 오래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 않냐?”
점장이 그랬다. 이 애는 이종족들의 마음을 색으로 구별하는 게 가능하다고.
그러니 모르는 어른을 따라가 큰일 날 일은 없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나도 이 녀석에게 있어 모르는 어른이란 말이다.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막말로, 해코지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이 녀석에게 해코지를 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모르는 어른 중에 착한 사람도 있다’라는 선례가 되고 싶지도 않다. 세상에 다 나처럼 할 짓 없고, 오지랖 넓은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두….”
꼬마는 영 아쉬운 듯, 자기 꼬리를 끌어안고는 얼굴을 푹 파묻었다.
파묻은 꼬리 위로 눈가 언저리만 빼꼼 내민 채였다. 말하는 게 꼬리에 막혀 잘 들리진 않았으나, 귀 기울여 듣기로 했다. 그래야 할 내용 같아서 그랬다.
“도와주셧자나여. 종이 오리는 거….”
“그거야 뭐….”
“이젠 기침도 안 나구.”
“다행이네.”
“내. 그래서, 아조씨가 좋은 어른 같아여.”
순수한 주장이었다. 순수한 애라서 그런가, 순수할 때라서 그런가.
“그리구여. 저어는, 아조씨가 조아여.”
“좋은 어른이 좋은 건 어른들도 똑같아. 꼬마야.”
“그른가여?”
“그래. 만나는 어른이 좋은 어른인지, 나쁜 어른인지 쉽게 알 수가 없어서 그렇지.”
“음… 어뜨케여?”
“쉽게 알 수가 없다고 했잖냐. 나도 잘 몰라.”
물론 이 애는 경우가 다르긴 하다.
적어도 누가 좋은 어른이고 나쁜 어른인지를 구별하는 건 이 꼬마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나중엔 색으로 구별이 가능하게 될 테니까.
허나 내게는 색이 없다. 마력이 없기에, 무채색이다.
그러니 지금 꼬마가 내게 해오는 말들은 색깔을 통한 획일적인 구별이 아닌, 오롯이 이 꼬마의 마음인 셈이다. 내가 좋단다. 내가 좋은 어른 같아서.
꼬마가 자기 마음을 말해줬으니 나도 내 마음을 말해줘야겠다 싶었다. 너는 좋은 꼬마냐, 나쁜 꼬마냐.
“꼬마야.”
“내.”
“너는 어른 될 때까지 그 폼의 반만 유지해도 죽어서 무조건 천국 갈 수 있다. 내가 보증함.”
“내…? 저 천국 가여…?”
“먼 훗날의 얘기야. 그러니까, 밥을 한 10만 그릇쯤 먹고 나면?”
“저, 밥 그렇게 많이 못 머거여….”
그럼 못 죽겠네. 오래오래 살아라.
품에 안고 있던 꼬리를 내려놓은 꼬마는 조신하게 꿀물을 두어 모금 들이켰다. 추위도, 감기 기운도 많이 가신 듯했다. 멀리 떨어진 벽걸이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30분이었다.
“이제 몸은 좀 괜찮아졌냐.”
“내. 감사해여, 아조씨.”
“날도 얼추 풀렸으니까 슬슬 집에 가. 나도 좀 이따 집 갈 거거든. 자러.”
“내.”
“아, 내일 올 때 문방구 가서 도화지 한 장 사 와라. 네가 오린 거 붙여야 되니까. 안 구겨지게 돌돌 말아서 오고. 알았지?”
우리 편의점은 B4 용지는 안 판다. 말하자, 꼬마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물었다.
“내일도 여기 잇으새여?”
“매일 이 시간엔 항상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어. 뭐 안 사도 딱히 상관없고.”
“그래두….”
이 녀석 이거,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애가 감정 기복이 참 심해.
“정 그러면 내일은 츄파춥스나 사줘. 오렌지 맛으로.”
“내.”
그제야 활짝 웃고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뒤, 정문으로 달려가서는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손을 흔들자, 꼬마는 밝은 정문 밖으로 나가서는 자전거를 타고 왼쪽으로 사라졌다.
* * *
10분가량이 지나 점장이 왔다.
“찬아, 안녕!”
늘 단정하던 머리는 살짝 흐트러진 상태였으며, 양말도 한쪽은 높게 신고 한쪽은 낮게 신은 채였다. 정문에 와서는 가쁘게 숨을 쉬는 걸 보니, 진짜 서둘러서 오신 것 같다.
“뛰어오신 거예요?”
“응. 미안, 좀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문제가 좀 생겨서.”
“그래도 뛰진 마시지. 환절기인데 감기 조심하셔야죠.”
“다음엔 그럴게.”
말하며, 핸드백에서 검정색 스마트폰을 꺼내서는 손에 쥐어 보였다. 저게 매직폰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만?
잠깐 바라보다 물었다.
“점장님.”
“응?”
“털 안 날리는 마대 자루는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점장은 아, 하고는 대답했다.
“미안, 까먹었어.”
“아이고….”
이거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금 쓰는 마대 자루는 사무실 안에 굴러다니던 낡은 것을 꺼내다 쓰는 거라 타일 바닥을 다 닦은 후에 바닥에 잔털이 남는데, 그 잔털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빗자루질을 해야 된다. 칼로리가 두 배로 소모된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이 잔털이 잘 쓸리는 것도 아냐. 말 그대로 잔털이라 빗자루질하다 보면 빗자루에 죄다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밖에 나가서 그 잔털 손으로 잡아 뜯어야 되고, 그러고 나면 또 손 씻어야 하고….
“여차하면 다음 근무 때 제가 사 와도 되고요.”
“아냐, 내일은 꼭 가져올게. 혹시 또 필요한 물건 없어?”
“몇 개 더 떠오르긴 합니다만, 당장은….”
우선 가장 필요한 것부터 말했다.
“편의점 문짝이요.”
저거 슬슬 고쳐야 된다. 처음에야 신박했지 계속 보니까 지겨워, 이제. 날 따라서 정문을 바라본 점장은 스마트폰과 정문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심하게 부서졌네.”
“이거 정말 고칠 수 있는 거예요?”
“고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아. 찬이가 직접 해볼래?”
“제가요?”
“응. 내친김에 쓰는 법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말하며 내게 스마트폰을 건네오길래 일단 받았다. 근데, 어… 이걸로 마법을 쓰라고? 지금?
“이거 뭐부터 해야 됩니까?”
뭐 주문을 왼다든가, 계약을 한다든가, 아무튼 복잡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었으나….
“우선 와이파이 연결부터 해야지.”
그래, 데이터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