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71)
이세계 편돌이-270화(271/331)
270. 찰리의 사직서 공장 (6)
* * *
찰리 질문에 어르신께서 곰곰이 생각하시다, 딱 두 마디로 대답하셨다. 건장한 흰 털 늑대이며, 등에 큰 흉터가 있다.
“이런 썅, 건장한 흰 털 늑대를 찾을 거면 동물원을 가야지 저 안은 왜 뒤진다는 거야. 다른 건 없어?”
“그 외에는… 모호한 것들 뿐입니다. 아무래도 세월이 많이 흘렀다 보니….”
“모호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거니까 말을 하라고, 시팔. 뭘 알아야 범위를 좁히든 말든 할 거 아니야. 이름이라던가 뭐….”
“성함은 모릅니다. 다른 거라면, 흠….”
“시팔, 이름도 모르는 양반은 또 왜 찾는다는 거야.”
황당해하는 찰리 물음에도 조용히 중절모를 매만지시기만 했는데, 어르신께서 말을 아끼시는 것도 참작이 되기는 한다. 이게 나라에서 기밀로 다뤘던 군부대의 부대원을 찾는 일이잖은가.
자세한 걸 얘기했다간 기밀유출이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범위를 좁힐 수가 없다. 침음하던 어르신께서 잠시 뒤, 막 떠올랐다는 듯 찰리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늘 위압감을 풍기는 분이셨습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요.”
“아주 존나게 확실한 단서네. 그래서 한눈에 보려고 직접 찾으려고 한 거야? 할배?”
“…예. 그렇습니다.”
“염병, 스무고개 하는 기분이구만.”
내 귀에도 비슷하게 들리긴 했다. 이 양반 성격상 이쯤에서 때려치우겠단 말을 꺼낼 줄 알았으나, 한숨을 푹 내쉬기만 할 뿐 앞발 움직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노트북과 무선 마우스의 전원을 켜고는 인터넷 창을 더블클릭. 슬슬 참기가 힘들어서 물어봤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막 보안 카메라 해킹하고 그러시는 건가?”
“뭔 지랄맞은, 그놈이 어디 CCTV에 찍혀있을 줄 알고 카메라를 털어.”
“손님 보안 회사 다니셨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건 줄 알았지….”
“보안 회사 다니는 놈이 보안을 다 다루면, 야. 니 집 도어락 비밀번호도 보안이니까 털고, 니네 매장 금고도 보안이니까 시발, 다 털어? 내가 만능열쇠야?”
이 와중에도 못 턴다는 얘긴 안 하는 게 또 의미심장하다. 쉴 새 없이 궁시렁거리며 인터넷 검색창에 ‘흰 털 늑대 종족’을 검색한 뒤, 그중 증명사진으로 보이는 것들 몇 장을 이미지로 저장한다.
뒤이어 창을 밑으로 내리고는 프로그램을 하나 실행시킨 뒤, 어르신 쪽의 의자를 손으로 잡아당겨 앉기 쉽게 만든다. 다소곳이 어르신이 앉자, 앞발톱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어르신께 묻는 찰리.
“딱 한 가지만 더 묻는다. 이 지인 할배보다 나이 많아? 시발, 이것도 모른다고 하면 이 씹새한테 노트북 집어던진다.”
“난 갑자기 왜요?”
“예. 많으십니다.”
“당장 은퇴해도 안 이상할 만큼 나이 잡쉈다 치고, 뭐라도 일을 하긴 하고 있을 거잖아. 일 아니면 게이트볼 경기장도 바둑 기원도 없는 곳을 뭐 하러 기어들어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드나들 이유가 일 외엔 없는 곳이고, 직장생활을 하는 이상 이력서든 뭐든 간에 전산화된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게 찰리 의견이었다. 개인정보 얘기다.
“학원지구 중앙청 저 새끼들 대놓고 말만 안 하지, 그것들 싹 다 모아서 개뼈다귀마냥 지들 데이터베이스에 심어둔단 말야. 애들 많은 곳이랍시고 개인정보 보안을 어쩌고….”
“허어. 찰리 청년, 그런 건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도중에 어르신께서 감탄스럽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신 반면, 대답하는 찰리 어조가 한없이 무덤덤했다.
“직접 털어봤으니까.”
정확히는 보안을 구축해놓은 뒤 ‘우리 보안 한 번 뚫어봐라―’ 라는 식으로 몇몇 회사에 테스트를 의뢰한 적이 있었고, 자기 회사가 그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걸 일을 3분 만에 해치워버린 뒤엔 일처리가 형편없는 게 하도 답답했던 탓에, 아예 자기가 직접 보완까지 하고 데이터베이스 쪽에도 직접 관여를 했었다는데….
“3분이요?”
“컵라면에 물 붓고 시작해서 다 익기 전에 끝냈으니까 3분 맞겠지, 씹새야. 아니면 뭐, 내가 2분 58초인지 3분 2초인지까지도 말해줘야 돼?”
“면발 굵은 건 다 익는 데에 4분 30초 걸리잖아요. 여튼.”
여기까지 듣고 나니 뭘 어쩌려는지도 얼추 짐작이 됐다. 쉽게 말해, 전산화된 이력서를 털겠다는 얘기잖아? 증명사진도 그래서 저장한 거고.
“이 씹새는 느닷없이 또 개소리야. 깜빵가서 개밥 먹을 일 있냐?”
“아니, 방금까지 한 말이 그 말이잖―”
“내가 털겠다는 말을 언제 했는데. 그리고 시발, 개인정보 털어서 본다고 뭘 알아?”
애초에 이름조차 모르는데 개인정보를 들여다본들 뭐가 달라지겠냐는 거다. 이 양반은 왜 멀쩡할 때보다 술에 취했을 때가 훨씬 더 논리적인 거지?
“그럼 뭐 어쩌실 건데요.”
“소거법. 나이 지긋한 놈들 할 일이 많지는 않잖아.”
지금부터 학원지구 내의 시설들. 그중에서도 홈페이지가 개설된 시설들의 공개된 인적사항을 모조리 뒤질 거란다. 범위는 흰 털을 가진 늑대 코볼트 종족에, 경비나 청소부 등의 한직으로 재직하고 있을 연로하신 분들.
사진은 이미지 대조용 샘플로 쓸 거라고 하는데, 드디어 이 양반을 비웃어줄 기회가 찾아왔다. 검색창에 학원지구 네 글자만 쳐도 관련 홈페이지가 5천 개가 넘게 뜨는데 그걸 일일이 뒤지시겠다?
“허 참, 그걸 언제 다 뒤지시려고.”
“야, 씹새야.”
“왜요.”
“니네 매장 와이파이 뭐 쓰냐? 존나 빠르네.”
뭐 쓰는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튼 빠른 걸 쓴다고 점장이 말해줬던 건 기억난다. 적당히 대답하자, 다시 마우스를 딸칵여 화면 밑에서 프로그램 창 하나를 건져 올리는 찰리.
프로그램 창 안에는 홈페이지와 연결된 인터넷 링크가 주륵 늘어서 있었다. 이건 또 뭐야.
“80세 이상 흰털 늑대 코볼트들 재직 중인 시설이 16곳이고.”
“예?”
“이거 긁어서 보낼 테니까, 나머진 니랑 할배랑 알아서 찾아.”
뒤이어 컴퓨터 톡에 링크를 긁어 붙여넣고는, 볼일 다 봤다는 듯이 노트북을 탁 덮어 배낭에 집어넣는다. 바로 폰 화면을 켜서 톡을 확인해보려 했는데, 현재 시각이 딱 눈에 들어왔다.
대화 시작한 뒤로 딱 8분이 지난 채다. 이 양반 이건 또 어떻게 한 거래….
“중앙청 DB 잠깐 썼지, 뭘 어떻게 해.”
“TV? 갑자기 TV가 왜 나와요?”
“티비는 또 뭔… 야이 씹새야. 이게 마우스고 이게 클릭이라는 건데.”
내 헛소리가 어지간히도 답답한지 배낭에 집어넣으려던 마우스를 꺼내 보란 듯이 딸칵거리는 찰리. DB가 뭔지는 문과 출신인 나도 알고 있다.
일이 훅 풀린 게 어이가 없어서 잘못 들었을 뿐이다. 톡 어플을 여는 사이, 어르신께서 내 옆으로 다가와 폰을 내려다보며 물으셨다.
“찾아낸 겁니까? 찰리 청년 말대로?”
“잠시만요. 확인 먼저 해보고….”
링크도 추가 조작이 필요 없도록 누르자마자 직원소개로 이어지도록 되어있다. 누르자마자 화면에 흰털 늑대 코볼트의 사진이 떠올랐고, 바로 어르신께 보여드렸다.
“혹시 이분이세요?”
“…이분은 아닙니다만, 찰리 청년 말대로라면 이런 게 앞으로 17개 더 있다는 거지요?”
“네. 링크 보내드릴 테니까, 같이 한번 찾아보실래요?”
“그러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들고 있던 모자를 내려놓고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드는 어르신. 찰리한테 수고비를 주시려는 것 같은데, 방금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찰리가 그새 생필품 코너 쪽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번엔 뭔 짓을 하려나 싶어 계속 바라봤다. 웬 염색약 하나를 집어다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친 뒤, 돌아와서는 어르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한심하다는 어조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가리 새하얀 거 염색 좀 해, 할배. 꼴이 그게 뭐야?”
“머리 말씀이신지요, 찰리 청년. 이건 제 원래 색입니다만….”
“염병, 내 고향 할매랑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을 하네.”
헛소릴 하는 걸 보니 먹었던 술이 거의 다 깼나 보다. 들고 있던 염색약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는 배낭을 어깨에 메며 한마디.
“나 갈 테니까 잘 해보쇼.”
“이야, 이제야 집 들어가시는 걸 보겠네….”
“집? 집을 내가 왜 들어가?”
“예?”
거의 다 깬 게 아니라 아예 다 깼나 보다. 밤새 술 퍼먹었으면 집이나 들어갈 것이지,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회사 만들러 간다.”
“?”
“나중에 보자, 씹새야.”
이러고는 미처 더 묻기도 전에 정문을 팔꿈치로 밀며 나가버렸고, 나와 어르신. 그리고 카운터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유리, 이렇게 셋이 남았다. 유리에게 물었다.
“넌 POS기에 돈 안 넣고 왜 바라만 보고 있어?”
“거스름돈을 안 가져가셨어요.”
“저 양반 원래 저러니까 너 마음대로 써. 라면 사 먹던가, 음료수 사 먹던가.”
“네.”
그걸 또 거스름돈을 안 받고 냅다 나갔나 보다. 찰리 저 양반은 회사를 차리더라도 경리 담당은 무조건 한 명 고용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다 퍼주다 회사 망할 테니까….
“…참, 근래에 보기 드문 청년이로군요.”
멋쩍은 듯 지갑을 집어넣으시며 찰리에 대한 감평을 남기는 어르신. 다음 링크를 눌러 보여드리려다, 아까 잠깐 하고 말았던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바로 여쭤봤다.
“어르신. 저 양반 말하는 거 들으셔도 별생각 없으세요?”
“말투나 호칭을 문제 삼을 거냐 물으시는 거라면, 아뇨. 악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듣고 나서는 이해해주는 수준을 넘어 악감정이 아예 없는 게 가능한가 싶더라. 이것도 마저 물어보려 했는데, 어르신께서 먼저 대답을 해주셨다.
“부대원분들 중 한 분과 느낌이 흡사해서 말이지요. 찰리 청년 얘깁니다.”
“그분도 치와와세요?”
“아뇨. 고블린분이셨습니다. 서로 인연은 전혀 없을 테고요.”
기계식 마법 장비 조작이 전문인 부대원이 한 명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내내 툴툴거리는 게 딱 그 고블린과 똑같다고.
옆에서 대화를 듣는 동안 이 막말들을 어떻게 참으시는 건가 싶었는데, 이미 내성이 생기셔서 그런 거였다. 말을 마친 뒤에는 또 그때 추억을 떠올리신 건지 모자를 매만지시는 어르신.
“…아. 어디까지 했었죠? 사장님?”
“이제 두 번째에요, 어르신.”
1분 정도 걸렸다. 다시 폰 화면을 켜서 두 번째 링크를 눌러 어르신께 보여드렸고, 여기에는 고개를 저으셨다.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여기서 어르신 눈이 가늘어졌다.
“…….”
무척 진지한 얼굴이다. 아예 직원소개란의 사진을 화면에 꽉 차도록 조작한 뒤, 나도 나대로 사진을 분석해봤다. 흰 털을 가진 건장한 신체의 늑대 코볼트.
일단 흰 털이라는 조건부터가 탈락이다. 사진 속 늑대는 털색이 검정색이다. 나이가 들어서 털색이 희게 바래는 거면 몰라, 왜 반대냐고. 이것도 상식 이슈인가?
헌데, 이 얼굴이 분명 낯이 익단 말이다. 손님으로 만난 건 아니고,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것도 아니다. 분명, 최근에 카드게임을 하러 갔을 때….
“…보스?”
짤막하게 중얼거리시는 어르신. 털색이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께서는 시선을 떼질 못하고 계셨다.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뭐라도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 말씀드렸다.
“어르신. 혹시 그분이 그, 명예를 중요시한다거나 그러십니까? 평소에도 훈장을 달고 계신다던가?”
“예. 그렇습니다. 군인은 늘 군인으로서의… 이 얘기를 전에 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아뇨, 없었어요. 그분 혹시 술도 좋아하시나요? 낯에도 드실 만큼?”
선물로 소주를 선택하신 시점에서 이미 기정사실이긴 하다. 어르신께서 고개를 끄덕이신 걸 확인한 뒤, 사진을 다시 축소해 스크롤을 밑으로 주륵 내렸다.
소개란의 항목에 딱 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경비담당.
“저 이분 뵌 적 있습니다, 어르신. 걸어서 40분 거리에, 고등학교 경비분이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