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78)
이세계 편돌이-277화(278/331)
277.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1)
* * *
멍멍이 녀석이 최근들어 자기 꿈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자신 외에도 영물들이 잔뜩 있을 것이며, 자신은 그 영물들의 하소연을 듣거나 도와주고 싶다고.
비록 첫 작업은 의욕만 앞선 탓에 망해버렸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어디 연구소에 쳐들어가 뭔가를 납치해왔다며 자랑이라도 했단 봐라. 바로 펫숍 달려가서 목줄 두 개 사 오고 만다.
허나 마저 대화를 해보니, 목줄을 채울 상황까지는 아닌 듯했다.
“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너희 이번에도 사고 쳤냐?”
“먀아아옹….”
“니 우는 거에 억울함이 풀풀 묻어나오는구나, 아주. 그럼 사고는 아직 안 쳤다고 치고, 사고 칠 예정이야?”
“먀아옹! 먀앙, 냐하앙! 먀악!”
이 질문에는 억울함이 두 배가 되었는지, 고양이 방언이 터짐과 동시에 목 부근의 리본이 바닥에 찰싹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정황상 본인이 내팽개친 걸로 보인다.
“먀아아앙! 먕? 먀앙?”
“아니 씨, 야! 그럼 제대로 설명을 해 주든가. 멍멍이 꼬리털이랑 명함만 달랑 가져다주고 주구장창 냥냥거리기만 하면 날 보고 뭘 어쩌라고. 내가 탐정이냐?”
“우애옹―”
“그리고 올 거면 같이 오든가 하지, 멍멍이 녀석은 어디 떨구고 너 혼자만 왔… 근데 진짜 왜 너 혼자만 왔어?”
잠기운이 얼추 달아나서인지 슬슬 머리가 돌아가려 한다. 그냥 멍멍이한테 물어보면 다 해결되는 걸 난 왜 말도 안 통하는 놈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당장 있는 거래봐야 꼬리털 몇 가닥이랑 이름도 처음 듣는 인권운동가 명함 두 개뿐인데, 이것만 갖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멍멍이 위치를 묻는 질문에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툭 내뱉는 털뭉치.
“나갈래옹.”
뒤이어 현관 쪽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나가자는 얘기 같은데, 나도 바라던 바지만 지금 당장은 안 된다. 출근까지 2시간 남았는데 가긴 어딜….
“…야. 멍멍이 녀석 매장에 있어? 지금?”
털뭉치가 멍멍이 녀석이랑 줄곧 같이 다녔을 거고, 지금은 여기에 혼자 있다. 헤어졌다 해도 최소한 이 근처까지는 와서 헤어졌을 텐데 그놈이 혼자 갈 곳이 거기 말고 더 있어?
추측을 그대로 입에 담자, 이제야 뜻이 맞았는지 리본을 열정적으로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바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8시 10분.
다음엔 싱크대 밑 서랍장을 열어 검은 비닐 봉투를 꺼내 가져왔다. 리본 앞에 앉아 입구를 펼쳐 열어 보이자, 리본이 인상을 찌푸리듯 구겨져 버렸다. 리본 한번 알차게도 써먹는다.
“니가 나간다고 했으니 데려갈 건데, 난 걸으면서 너 걷어차고 싶은 마음 없다. 불평 말고 들어와. 착석 잘 하고….”
“우에앵….”
“아 글쎄, 시속 4km로 운행한다고. 아무 걱정 말라니까?”
* * *
차마 봉투에 포장되기는 싫었던 털뭉치가 이불까지 휘날려가며 완강하게 저항했고, 고양이 우유 두 팩으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헌데 막상 들어간 후에는 지가 더 좋아하더라.
“그르릉, 그르릉.”
“야. 너 그냥 우유 사 달라고 꼬장부린 거지.”
“냥?”
모르는 척 대꾸하고는 밖이 안 보이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손톱으로 구멍을 뚫어버렸고, 골골송이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게 낫다는 심정으로 얼른 씻고,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서는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걸 무시해 가며 매장 앞에 도착했는데, 점장이 막 현금 계산을 마친 것인지 POS기 금고를 손으로 밀어 넣는 게 보였다.
들어서자, 내 쪽을 보고는 반색하며 작게 손뼉까지 치는 점장.
“오. 찬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왔네!”
“안녕하십… 생각보다 빨리요?”
오늘따라 인사말이 묘하다. 내 물음에 의기양양한 얼굴로 몸을 숙이고는 품에 연갈색 털 덩어리를 한 아름 안아 들어 올리는 점장.
“짜잔.”
“알!”
멍멍이였다. 아직 매장에 손님이 몇 있어서인지 이 녀석이 사람 말은 안 하고 개 짖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건 이것대로 걱정된다. 가능한 한 문제가 안 생길 질문을 골라 물었다.
“이거 업무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라, 멍멍아. 지금 손님들 계시는데 얘 이렇게 보여주셔도 되는 거예요?”
“응. 낮에 한가할 때 샤워시켰거든. 샴푸 반 통 썼어.”
“그건 다행이네요. 다행이긴 한데….”
개벼룩 이슈가 아니라, 손님들이 매장에 강아지가 있는 걸 좋아하겠냐는 의도로 물어본 거였는데 말이다. 지금도 대화하는 사이에 손님이 물건을 가져왔다.
목에 덥수룩한 갈기가 달린 사자 코볼트였다. 한 손에는 철로 된 빗, 다른 손에는 소형견용 개껌이 들려있다. 점장이 멍멍이를 내려놓고 계산하는 사이, 바닥의 멍멍이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사자.
“알!”
눈을 마주친 멍멍이가 힘차게 울음소리를 내자, 사자가 아예 쭈그려 앉아서는 손톱으로 멍멍이의 등을 긁어주기 시작했다. 사자의 과가 뭐였더라. 갯과인가? 아니면 고양잇과?
“8,400원이에요, 손님.”
“…….”
“담아드릴까요?”
“…아.”
점장 질문에도 처음엔 대답이 없다가, 재차 묻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일으키는 사자. 계산대에 놓여진 카드와 빗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는 개껌을 손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개껌은 강아지 줘요.”
“네. 안녕히 가세요, 손님.”
점장 인사에 고개를 꾸벅이고는 퇴장. 짤랑이는 정문벨을 보고 나서야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사자는 고양잇과다. 앙숙 관계일 고양잇과 코볼트한테도 귀여움을 받는다면야, 뭐….
“보다시피, 손님들께서도 싫어하지는 않으시더라구.”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도 얘랑 대화를… 길게는 못 하신 거죠?”
“응. 애가 6시쯤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손님이 쭉 계셨거든.”
내게 볼일이 있다는 것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볼일이 있어 찾아왔는지는 아직 못 들었다고. 한 번 더 매장을 확인한 뒤 멍멍이에게 말했다.
“멍멍아. 이제 매장에 손님 없다.”
“알려주셔서 감사하오,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
“난 잘 지냈고, 언제 손님 올지 모르니까 본론부터 얼른 얘기해 보자고. 너 어디 인권사무소 같은 데에 견학이라도 갔다 온 거야?”
“엥? 인권사무소?”
의아해하는 점장에게 아까 받은 명함을 내밀었고, 겸사겸사 비닐 봉투도 계산대 옆 빈 공간에 올려두었다. 봉투 입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무척 흐뭇해진 점장.
“골골골….”
“와, 얘 엄청 골골거리네.”
“그 털뭉치가 명함 가져왔더라고요. 굳이 챙겨왔으니 뭐라도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저도 가져왔고. 그래서 연관이 있냐, 없냐? 멍멍아.”
“있소.”
따로 사무소를 찾아갔던 건 아니고, 길에 버려져 있던 명함을 주웠을 뿐이다―
라며 운을 떼고는 역으로 내게 묻는 멍멍이. 대사장님과 사장님 두 분께서는 본견이 이런 운동가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계획이 뭐니? 멍멍아?”
“계획은 있냐? 멍멍아?”
듣자마자 떠오른 걸 입에 담았는데, 점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아니, 포메라니안 놈이 다짜고짜 운동가가 되겠다고 하면 우리가 뭐라고 대답을 하냐고. 당연히 때려치우라고 하지….
딱 봐도 고생길이 훤히 열린 노선 같아서였다.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점장도 말을 돌리고 나도 돌린 건데, 이 녀석이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소만, 우선은 이 지역의 유지와 약속을 잡아놨소이다.”
“그럼― 아니, 지역 유지는 또 뭐야. 그새 또 약속을 잡았고?”
“사장님께서 예전에 말씀해주셨던 걸 떠올렸었다오. 동물원에 대한 것인데….”
지역 유지가 뭘 얘기하나 했더니 이 얘기였나보다. 이 매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놓고 영물을 관람할 수 있는 동물원이 한 곳 있다. 불사조.
불사조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은가. 신비롭고 영험하다. 이미지로는 동일 분류 영물들 중 원톱이니, 그 녀석을 지역 유지라 친다면 칠 수야 있겠지….
“그 불사조랑 얘기를 먼저 해보겠다는 거구나. 멍멍아.”
“그렇소, 대사장님. 영물로 지내오신 세월이 본견보다 훨씬 더 긴 만큼, 본견보다도 이 주제로 하실 말이 더 많으리라는 생각에서….”
지난주에 마음만 앞서 사고를 친 전적 때문인가, 말해오는 게 그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다. 이걸 점장도 똑같이 느꼈는지 회의적이었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고민 많이 한 티가 나네. 약속은 언제루 잡았어?”
“동물원이 영업을 종료한 시간대 중, 언제라도 상관없다고 하시더구려.”
대충 저녁 6시에 문 닫는다 치면, 저녁 6시부터 아침 9시 사이에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 같다. 영업 끝나고 찾아오라는 거야 뭐, 대화를 해야 하는데 주변에 관람객이 있으면 안 될 테니까 그럴 테고.
“하여, 의견을 여쭤보려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외다.”
“그냥 기다린 거 아니잖어. 아까 털뭉치 녀석이 나 깨운다고 엄청 쫑알거리더만….”
“털뭉치 공이 그러셨단 말이오?”
“어? 네가 빨리 깨우라고 한 거 아냐?”
“본견은 그런 사실이 없소. 밤새워 근무하셨을 걸 빤히 아는데.”
빨리 동물원 같이 가자고 멍멍이 놈이 부탁한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털뭉치가 털뭉치 한 건가 보다. 왜 털뭉치 행동을 했는지는 나중에 따로 물어보든 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10분이다. 다음엔 거리.
“점장님. 여기서 동물원까지 얼마나 걸려요?”
“20분 정도? 근데 버스 직행은 없구, 중간에 한 번 환승해야 돼.”
“그럼 아예 택시 타는 게 낫겠네요.”
털뭉치야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녀석이니 봉투에 계속 담아두고, 멍멍이 녀석 담아갈 것만 챙기면 될 것 같다. 생필품 코너에서 부직포 가방을 챙겨오자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입을 여는 멍멍이.
“같이 가주시는 것이오?”
“그럼 가야지, 안 가냐? 불사조인데?”
이건 이 녀석 부탁과는 별개로, 나도 가보고픈 의향이 있다. 무려 불사조라잖은가.
불사. 말인즉, 오븐에 들어가도 치킨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불사인지를 확인하는 건 못하더라도, 최소한 깃털을 뽑아서 재생되는지 아닌지 정도는 부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더해서 점장 왈, 그 불사조가 툭하면 자기 둥지를 벗어나는 녀석이라고 했었다.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그 녀석을 확실히 만날 수 있다― 이거다. 마침 일찍 일어난 김에 동물원이나 다녀올란다.
“그리고, 나 같이 안 간다고 하면 니 혼자서라도 갈 거 아냐. 너 교통카드 쓸 줄 알아?”
“모른다오. 애초에 본견, 카드를 발급받을 만큼 신용점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거봐, 인마. 걸어서 몇 시간 갈 바에 그냥 내가 택시 타고 같이 가는 게 낫지… 아, 저 9시 50분까진 돌아올게요. 점장님.”
“올 때 아이스크림.”
“네.”
메론 맛으로 두 개 사서 나눠 먹기로 합의를 마쳤고, 부직포 가방에 멍멍이를 담아 밖으로 나왔다. 마침 건너편에 신호에 걸려 멈춘 택시가 한 대 서 있다. 바로 가서 창문 두드리고 물어봤다.
“기사님, 지금 택시 타도 되나요?”
“어디 가시는데요?”
“동물원이요.”
“동물원 쪽 지금 차 막힐 텐데. 요금 더 나와도 괜찮아요?”
괜찮다 대답하자 안쪽에서 차 잠금쇠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뒷좌석 벨트를 매고 부직포 가방과 비닐 봉투를 끌어안은 뒤, 폰을 꺼내 버튼 입력하는 시늉을 했다.
대화를 위한 선행작업이다. 속으로 수 초 정도를 센 뒤, 폰에 대고 중얼거려봤다.
“이제 말해도 된다. 멍멍아.”
내 말에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내 눈을 힐끗 쳐다봤으나, 별 관심은 없더라. 전화통화 하는 척이 잘 먹혔나 보다. 잠시 후 부직포 가방 안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굳이 지금 얘기하진 않아도 되는데. 사장님께서 곤란하시잖소이까.”
“전화통화 하는 건데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그리고 멍멍이 너, 아까 안에서 할 말 있지 않았냐?”
“할 말 말이외까?”
“어. 할 말.”
멍멍이 목소리가 크지는 않다. 딱 라디오 소리에 묻힐 정도다. 내 물음에 잠깐 말이 없다가, 부직포 가방을 부스럭거리며 묻는 멍멍이.
“인권운동가 말이오.”
“어.”
“사장님께서는 이게 잘 풀릴 일 같소?”
“아니? 시원하게 망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