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80)
이세계 편돌이-279화(280/331)
279.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3)
* * *
새카만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등장이었다. 작게 타올랐던 금색 불꽃이 순식간에 폭죽이 터지듯 거대해졌는데, 코앞에서 섬광탄이 터지면 딱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눈에 잔상만 남아서 보이는 게 없었다는 뜻이다. 질끈 감은 채로 마저 기다리자, 지글거리던 불꽃이 꺼지는 소리와 육중한 뭔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 호호우!!
뒤이어 우렁찬 새 울음소리, 연달아 날갯짓을 하는 소리. 슬슬 끝났겠다는 생각에 실눈을 떠보니, 딱 내가 생각했던 형상의 새 한 마리가 우리 안 나뭇가지를 발톱으로 움켜쥔 채 앉아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불사조인 녀석이었다. 내 몇 배는 될 몸집에 날개는 시야에 다 잡히지조차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깃털은 황금색과 주홍색이 반반 섞여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 호―우!
그러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곧바로 자기 위용을 과시하기라도 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펼치는 세레모니를 선보인다. 이 녀석도 쇼맨십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구만….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엔 우리를 한쪽 날개 끝으로 가리키며 울어댔다.
― 호우?
“어… 나 뭐?”
― 호호우, 호우!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멍멍이를 내려다보았다. 감탄과 눈부심이 반반 섞인 얼굴로 불사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슬쩍 내 쪽을 올려다보고는 얼른 대답해줬다.
“첫 마디는 박수는 치지 않느냐? 라고 말한 것이오, 사장님.”
“그다음 거는?”
“자기가 날개를 펼쳐 보이는 게 무척 드문 일이라 하시는구려. 애써 관리한 깃털들이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라 하셨고.”
쇼맨십에 더해 나르시시즘도 풍부한 녀석이다. 일부러 소리 내어 박수를 쳐주자, 이제서야 만족했다는 듯 펼쳤던 날개를 거두는 불사조.
이러고는 멍멍이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더 건네온다.
― 호호우. 호우, 호우.
“이건, ‘고양이 녀석 말대로 정말 인간 말을 하는군?’ 이라 하신 것이오.”
이 불사조가 털뭉치랑은 구면이고 멍멍이랑은 초면이었나 보다. 별거 아닌 재주라 대답하며 고개를 꾸벅이고는 나와 빨간 리본을 꼬리로 가리키며 대화를 시작한 멍멍이.
이걸 딱 1분가량 듣고 느낀 게, 옆에서 안 잡아줬다가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겠다 싶더라.
“소개드리겠소이다. 털뭉치 공은 나으리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고, 이분은 저 앞 편의점에서 사장님을 하고 계시는 이찬이라는 분이고….”
― 호우? 호호우.
“그… 내부사정은 본견도 잘 모르겠소만, 세 분으로 알고 있소.”
“내부사정? 내부사정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그게, 불사조 나으리께서 직원 수를 물으셔서 말이오.”
그사이에 세 명이라는 단어에 김이 샜는지 머리 깃을 살포시 늘어뜨리는 불사조. 정황상 사장님이란 단어에 꽂혀서 이러는 듯한데, 사회생활도 안 할 녀석이 왜 이런 데에 꽂혀서 이래?
― 호우, 호우. 호호호―우.
“그건 방문 목적이 아니긴 하오만, 그래도… 사장님.”
“왜.”
“혹시라도 매장 규모를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거든, 문서화된 투자계획서를 들고 찾아오라 하시는구려. 검토해줄 의향 정도는 있다고 하시오.”
저 짧은 호우소리로 이 말을 다 내뱉었다는 건 둘째 치고, 나도 그냥 삼천포 가고 만다. 사람 말도 못 하는 녀석이 매장 확장이나 투자계획서 따위의 개념을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다. 경제학 전공이야?
하도 의아해서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는데, 오히려 이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한쪽 날개를 힘차게 퍼덕인다.
이 날갯짓에 삐져나온 깃털 한 가닥을 자기 날개로 받쳐 올려놓고는 늘어놓는 말들을 멍멍이가 통역해 줬는데, 대략 이러했다.
― 호호우. 호우, 호우. 호우!
“그러니까… 이 깃털 한 가닥이 동일한 금 무게의 수백 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연평균 가치가 3%씩 상승해 왔다. 허나 경제침체기인 지금은 깃털의 가치보다 물가의 상승세가 훨씬 더 가파르다. 올해는 무려 4.7%.”
“허어….”
― 호우! 호호우, 호―우, 호우!!
“이 깃털로 올해 10만 원어치의 현물 상품을 살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내년이 되면 내 깃털의 가치는 103,000원이 되는 반면 구매할 수 있었던 상품의 가격은 104,700원이 된다….”
까지를 말하고는 어리둥절한 어조로 내게 묻는 멍멍이.
“사장님, 나으리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 것이오?”
“깃털 묵혀놓고 있으면 손해니까 투자를 한다는 뜻 같다. 아마도.”
깃털을 그대로 묵히면 연 이득이 3%, 반면 물가상승률은 4.7%. 올해에 깃털 한 가닥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내년에는 못 사게 된다, 난 이렇게 이해했다. 아님 말고.
― 호호우, 호우!!
“말인즉, 은행 금리에 의존했다가는 실시간으로 돈을 잃을 뿐이다!”
하여 은행에 깃털을 담보로 맡길 바에는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게 불사조의 투자 철학이었고, 꿋꿋이 다 들은 뒤에 물어봤다.
“너 계좌는 도대체 어떻게 팠냐?”
― 호호우, 호우.
“자신의 담당 사육사를 포함해 동물원 사장, 회계사 구성원 모두와 긴밀한 커넥션을 맺고 있다고 하오. 둥지와 계좌 관리, 투자 수수료로 매달 깃털 여섯 가닥을 지불하고 있다고….”
― 호우….
허나 커넥션을 맺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말이 통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불사조가 고뇌하다 떠올린 방법이, 자기 뜻을 안 들어주면 동물원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고.
외에도 철창으로 막으면 부숴버리고, 비싼 새 모이를 가져오면 그릇을 엎어버리고.
그러다 한 사육사가 ‘넌 대체 왜 이러는 거니!!’라며 울부짖는 타이밍에 맞춰 불사조가 내민 게 길에서 주운 신용카드였다고 한다.
― 호호우, 호우.
“거기서부터 소통을 시작해 지금은 이 동물원의 지분 중 상당수를 확보하기까지 했다고 말씀하시는데, 본견은 잘 모르겠소. 하나같이 다 어려운 이야기구려….”
― 호우!
“…여하튼, 이 때문에 나으리께서는 깃털 관리에 매일 무척 큰 공을 들인다고 하오. 가치를 보전해야 하니까. 먼 곳의 숲까지 가셔서 수액을 털에 바르시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주적인 만큼 사냥도 자주 나가시고.”
깃털 관리에 관한 부분은 나도 알고 있었다. 미리 읽어뒀기 때문이다. 울타리 밑에 붙은 불사조 동물 소개판은 깃털 관리에 대해 이렇게 서술해놓았다.
‘불사조는 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깃털 관리에 공을 들인답니다! 신기하죠?’
관람객들은 이 안내판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을 텐데 말이다. 깃털 관리가 고귀함이 아닌 투자가치 보존을 위한 행위라는 걸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될까. 관람객 수가 줄어드나?
최소한 한 명은 줄었다. 나도 방금까지는 이 문구를 믿었으니까. 난 환상을 구경하러 온 건데, 그 환상이 나보다도 몇 배는 더 현실적인 놈이야. 이런 망할….
― 호우. 호우.
“하여… 뭣이? 본견 말이오?”
― 호호우. 호우.
“아, 확실히… 허나 본견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또 아직 특정 소속에 매인 몸이 되고 싶지는 않소이다. 사양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구려.”
“너는 방금 뭘 사양한 거냐, 멍멍아.”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은 참을 수 있는데, 사육사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무척 스트레스라고 하셨소이다. 시간 단축을 위해 본견을 개인 통역사로 고용하고 싶으시다고 하신 것이오.”
말이 통하질 않는 탓에 투자 타이밍을 놓친 게 한두 번이 아니라나, 뭐라나. 멍멍이가 통역해주는 사이, 몸을 우리 쪽으로 바싹 기울인 불사조가 작게 울었다.
― 호호우.
“투자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것은 아니오. 털뭉치 공이 말하기로는, 나으리께서 이 지역의 유지라고 해서….”
― 호우, 호우.
“그걸 본견은 수십 년간 이 지역에서 지내오셨고, 그만큼 인간 사회에서 오래 지내오신 거라 이해했소. 하여 여쭙고 싶은 게, 혹시 이곳에서 지내며 답답한 것이 있지는 않으셨소이까?”
멍멍이가 영물권 운동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영물로서 인간 사회에서 어울려 지내며 답답한 게 있지는 않느냐, 혹시 불합리함을 느낀 적은 없느냐.
조곤조곤 질문을 늘어놓았으나, 이에는 불사조가 시큰둥하다는 듯 기울인 몸을 원위치시키며 재차 울어댔다.
― 호?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꺼낸 질문은 아니라오. 그저―”
― 호호우.
“열망? 본견 눈에서 말이외까?”
이 질문에는 불사조가 아예 대답하는 소리를 안 냈고, 멍멍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날 올려다봤다. 몸 숙여서 떠오르는 걸 말해줬다.
“네가 그런 거 물어보러 온 눈이 아니랜다. 멍멍아. 꿈이 있어 보인대.”
“사장님 눈에도 그렇게 보이시오?”
“나야 그냥 연갈색 포메라니안으로밖에 안 보이지. 저놈은 자칭 투자 고수니까 자기한테만 보이는 뭔가가 있어서 저러는 걸 테고. 아예 차 안에서 했던 얘기들 그대로 해보는 건 어떠냐?”
불사조한테서 돌려 말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라,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말에 멍멍이가 잠깐 망설임이 생겼는지 고개를 늘어뜨리기는 했으나….
“…그리하겠소. 어차피 시작하거든, 세상 모두가 알게 될 테니.”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는 우리 앞으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나를 등진 채, 불사조를 올려다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는 멍멍이.
“본견, 재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오. 뒷발만으로 무려 여덟 걸음을 걸을 수도 있고, 포메라니안치고는 나름 말을 잘하는 편이기도 하고.”
― 호우.
“더하여 운이 좋게도 본견 말을 들어주는 훌륭한 지인을 만나, 모자랄지언정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살고 있소. 하지만, 세상 모든 영물이 다 본견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란 말이오.”
― 호우?
“불행하지 않을 재주가 있음에도 불행한 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오. 본견, 그들의 입이 되어 세상에 목소리를 내보고자 하오.”
확신이 없어서인지 말이 두서없긴 했지만, 듣기 나쁘지는 않았다. 외에도, 자기처럼 똑같이 힘든 영물들이 있을 테고, 특히 자신처럼 평범하게 생긴 영물들은 한낱 미물 취급 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현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그 영물들이 겉으로는 쥐, 고양이에 불과하다 해도, 그들을 모아서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거든 그땐 우리도 불편한 걸 토로할 수 있지 않겠느냐.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으니까… 나으리?”
도중에 우뚝 말을 멈추고는 불사조를 부르는 멍멍이. 불사조가 자기 부리를 날개로 가린 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웃음을 참는 듯한 동작이었다.
― …호우.
두 가지 흐름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멍멍이의 뜻에 감격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임기응변이긴 해도 멍멍이가 말을 나쁘지 않게 잘했다.
― 호호호우―!!
“…….”
허나 멍멍이 반응으로 짐작건대, 희망사항인 듯했다. 멍멍이가 고개를 푹 떨궈버려서다.
“멍멍아. 쟤가 뭐래냐?”
짐작은 됐으나, 그래도 일부러 가까이 가서 물어봤다. 여전히 고개를 푹 떨군 채 예상했던 흐름대로 대답해오는 멍멍이.
“여태 들어본 것 중, 가장 허황된 꿈이라고 하시는구려.”
비웃는 거지. 대부분의 꿈들이 늘 당하는 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