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83)
이세계 편돌이-282화(283/331)
282.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6)
* * *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어도, 이 녀석이 이 질문을 했었다는 건 머릿속에 잘 남아 있다. 근무 시작하고 2주쯤 지났을 때였고, 대화 내용이 아마….
“사장님께 어떻게 해야 먹고살 수 있을지를 상담하러 갔었소. 그때 사장님께서는 이것저것 직업을 추천해 주셨고, 본견은 전부 싫다고만 했었고….”
“네가 얘기해 주니까 기억이 좀 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잘 먹고살고 있냐?”
“굶지는 않고 있소. 부끄럽지만, 행인분들 대다수께서 본견에게 오해를 하고 계셔서 말이오….”
오해로 먹고살고 있다는 게 대충 이런 식이었다. 잠들어 있거나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머, 얘 귀엽다―’ 하면서 슬금슬금 다가온다고 한다.
그러다 손, 발라당 등등의 저난도 동작을 요구하거든 몸소 시연해주고, 그러거든 ‘어머, 얘 다른 사람이 키우다 버린 애인가 봐…’ 하면서 자기가 들고 다니던 음식들을 조금씩 떼어준다는 것이다.
“전에처럼 또 사람이나 할 짓 하는 건 아니지?”
“그런 걸 요구받거든 이젠 고개만 젓고 말고 있소. 헌데 본견은 버려진 게 아니라, 스스로 뛰쳐나온 건데 말이오. 본견이 직접 말할 수도 없고.”
오해를 풀 수가 없어 음식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받아먹는 음식 열량이 일일 평균 5햄버거 정도라고. 여기까지 말하고는 내게 의견을 묻는 멍멍이.
“다들 열심히 일한 돈으로 사신 음식들일 텐데, 본견이 이렇게 무급으로 넙죽넙죽 받아만 먹는 게 맞는가 싶소.”
“받아먹어. 그러는 것들 대부분은 다 자기들 기분 좋으려고 하는 거거든.”
“이득이란 말이오? 그분들이?”
“그렇지 않냐? 3,000원짜리 간식 조금 떼주고 네가 애교부리는 거 받고. 돌아가면서는 ‘와, 저 포메라니안 엄청 귀엽다.’ 이러면서 하루 기분 좋게 지낼 텐데, 그럼 그 사람들이 더 이득이잖아.”
“으음….”
“서로한테 윈윈인 거래라는 거지. 삼천 원으로 그날 하루, 내지는 한나절을 뿌듯하게 보내는 거라고.”
안 받아주면 멍멍이보다는 그 사람들이 훨씬 더 아쉬워할 거다. 물론 정말로 불쌍해서 먹던 걸 떼주는 사람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결국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다. 진짜로 불쌍해 보이면 자기들 집에 데려가서 키워야지, 왜 먹던 것만 조금 떼주고 끝내나 몰라?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멍멍이 녀석 발걸음이 좀 느려졌다. 괜히 생각할 거리만 하나 더 늘려준 것 같다. 적당히 말을 돌렸다.
“내 생각은 이런데, 솔직히 그냥 너 마음 편하라고 해본 말이긴 하다. 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어.”
“어… 그렇긴 하오.”
“나도 몰라서 이러는 거고. 어차피 알 수도 없는 거, 마음 편한 쪽으로 생각해서 스트레스 덜 받는 게 맞지. 근데, 아까 예전 얘기는 왜 꺼냈던 거냐?”
“어… 아, 그것 말이오.”
묻자, 털을 쭈뼛하고는 쪼르르 달려와 날 올려다보며 묻는 멍멍이.
“마법 같은 것들을 없애는 힘 말이오, 사장님. 그건 언제 익혔던 것이오?”
“익힌 건 아니고,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추측이지만.”
“그럼 본견이 ‘특별한 힘이 있다면 어떻게 쓰시겠냐―’고 여쭈었을 때, 그때도 사장님께는 그 힘이 있었겠구려.”
들은 후엔 아차 싶었다. 그때도 내 체질이 괴상했던 건 맞았지만, 당장 해줄 대답이 없어서 아예 말 자체를 안 꺼냈기 때문이다. 그게 졸지에 숨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일부러 말 안 한 건 아니다. 변명하려 했는데, 멍멍이가 서두르듯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본견이 다른 뜻이 있어 말을 꺼낸 건 아니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말이외다. 사장님께서는 지금 그 답을 찾으셨소?”
“이 재주를 어떻게 써먹을 거냐― 이거?”
“그렇소. 사장님께서는 늘 본견을 재주가 좋다며 치켜세워 주시잖소. 헌데 본견 소견으로 봤을 때, 사장님 재주가 못해도 본견의 2,000배는 되어 보이오.”
“그건 너무 갔다, 야.”
“그럼 1,999배 정도… 잠시 말을 아끼겠소, 사장님.”
그새 정문 앞에 도착했다. 멍멍이가 정문 철창 틈새로 몸을 비집고 스리슬쩍 빠져나가는 사이, 경비실 창문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곧바로 창문이 덜컥 열리고는 코뿔소가 창밖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왔다.
“작업 끝났어요?”
“끝났고, 저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맡긴 것들 좀 부탁드릴게요.”
“여기요. 근데 구름길은 뭐가 문제길래 구름이 안 생기고 있던 겁니까?”
수첩, 부직포 가방을 건네받으며 최대한 잘 아는 것처럼 설명해줬다. 엔진 마력에 문제가 있어 고쳐놨고, 작동 테스트는 내일 직접 해보셔야 할 거다. 기계 관리하시는 분께 전달 부탁드리겠다.
“제가요? 직접 전달 안 하시고?”
“내일 아침에도 일정이 있어서요. 오후 늦게나 연락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럼 안 되지. 제가 미리 전달할게요.”
내일까지 주말이니 관람객이 많을 테고, 구역 중 하나가 오후 내내 망가져 있으면 관람에 차질이 있을 거다. 이 생각에 둘러댄 게 잘 먹힌 것 같다.
고개 끄덕이고는 안쪽의 정문 개폐 버튼을 띡 누른 뒤, 날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하는 코뿔소. 정확히는 내 손을 보고 있었다. 미리 안내판 밑에서 챙겨나온 동물원 팜플렛이다.
“동물원 팜플렛 들고 계시네.”
“어… 네. 조만간 놀러 오려고요.”
이건 불사조 녀석 깃털을 숨기려고 챙겨뒀다. 합의하에 받아낸 거긴 하지만, 동물원 관계자들이 그런 걸 감안해 줄 것 같진 않아서였다. 불사조 녀석이 증언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머니에 꾸겨 넣기도 찝찝해서 팜플렛의 책갈피 대용으로 썼다. 1,500만 원어치 깃털을 팜플렛 책갈피로 쓸 거란 생각은 못 하겠는지 피식하고는 말을 맺는다.
“언제든 놀러 오세요. 연중무휴니까.”
“옙.”
이렇게 어떻게든 빠져나왔고, 벗어난 뒤엔 멍멍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부직포 가방을 열어젖혔다. 들어오면서는 날 보며 혀를 내밀고 웃는 멍멍이.
“임기응변은 본견의 4,000배쯤 되고 말이오.”
“됐고, 일단 택시부터 잡자.”
다행히도 택시는 금방 찾았다. 이쪽은 동물원, 맞은편은 먹거리 골목이 위치한 곳이어서인지 택시가 고개 돌리는 족족 눈에 밟히고 있다. 그만큼 기다리는 손님도 많고.
네 대를 보내고 난 뒤에야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타자마자 시간부터 확인했다. 오후 9시 30분이었다. 지각은 겨우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한 뒤, 그대로 출발. 기사가 라디오를 꺼놓은 탓에 전화하는 척을 하기도 애매해서, 매장까지 가는 동안에는 아예 한마디도 못 나눴다. 그렇게 20분 뒤에 도착.
시간이 다 된 탓에 길게 얘기도 못 하겠다. 멍멍이와 헤어지기 직전, 매장 앞 도로의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물었다.
“너 많이 걸었으니까, 아예 매장에서 쉬면서 마저 얘기하든가. 어쩔래.”
“괜찮소이다. 아까 손님이 많을 때도 매장에 있긴 했다만, 대사장님께 워낙 눈치가 보여서 말이오.”
“부담스러우면 말고. 그럼… 아까 그 재주를 어떻게 써먹겠냐는 거, 내가 대답을 해 줬나?”
“아직 안 해 주셨소이다.”
“그러냐. 그거 말인데, 모르겠다. 나도.”
“역시, 사장님께서도 계속 고민 중이시구려.”
고민이야 예전부터 꾸준히 해왔다. 새벽 3시에 카운터 의자에 앉아 있는 편돌이가 할 수 있는 거래 봐야 폰 들여다보기, 아니면 사색하는 게 전부니까. 그래도 요새는 깊게 고민하진 않는다.
“깊게 고민을 안 하신다면, 이미 답을 내셨다는 것이오?”
“그것보다는 내가, 그… 어떻게 살고 싶다― 이런 걸 머릿속에 자주 그리는 편이거든? 한번 그려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내치고, 마음에 들면 챙겨가고.”
그리고 챙긴 것보단 내친 게 더 많다. 그중 하나가 아무튼 돈을 많이 버는 것.
내쳤다. 여러 번 고민을 해봐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재주에 의지해 사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매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그리고 부귀영화. 이것도 내쳤다. 난 떠받들어지길 바라거나 뻗대는 것 둘 다 싫고, 내가 싫어하는 짓을 똑같이 하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돈도 쳐내고, 명예도 쳐내고. 가장 중요할 법한 두 가지를 쳐내고 나니, 생각이 자연스레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다. 그럼 너한텐 뭐가 중요한데?
“거울을 보면 나밖에 안 보이잖아. 근데, 거울에 비치는 내 쌍판은 늘 죽상이야. 너도 알겠지만 내가 매사 긍정적인 놈은 아니잖냐?”
“그래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시지 않소?”
“긍정적이어야 할 때는 긍정적이어야지. 안 그러면 사람이 미친다고. 여하튼 내 쌍판이 늘 죽상인데, 죽상인 얼굴 보는 것도 지겨워. 나는, 그… 좀 웃으면서 살고 싶다.”
집안 빚을 갚아보겠답시고 8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결국 다 갚기는 했지만.
어머니께서도 이미 돌아가셨고, 난 편모 가정 외동아들이었다. 친척도 없고. 처음에 날 안타까워하던 친구 놈들도 몇 년 뒤에는 결국 소원해졌다. 일한답시고 연락 다 끊은 놈을 어느 누가 기억해 주겠어.
돈을 모아서 삶의 질이 개선되면 그땐 웃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좌를 봐도 웃음이 안 나와. 직장 상사가 승진 얘기를 했을 때도 코웃음부터 나왔다. 아니면 이것도 분류상으로는 웃음인가?
이런 놈이 대체 뭘 목표로 살아야 웃으면서 살 수 있을까. 실마리조차 못 잡았던 문제가 이 세상에 오고 나서야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과거 얘기를 뺀 결론만 말해 줬다.
“딴 사람들 웃는 얼굴 보잖아. 그러면 나도 웃음이 나와. 내가 말야.”
“본견도 그러하오.”
“그치? 근데 내가 누굴 웃기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니잖냐. 그래서 웃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처럼 죽상은 안 지어 줬으면 싶거든. 이 몸뚱어리가 그럴 때 꽤 도움이 돼.”
그래서 아주 적극적으로 써먹고 있다. 제약회사 일도 돕고, 유치원 애가 친구 사귀는 것도 돕고, 헌터 일도 돕고, 경찰 일도 돕고, 옛 전우들 만나는 일도 돕고.
“아무튼 벌린 일이 무진장 많아졌는데, 다 말해주면 날 샐 게 뻔해서 오늘은 말 못 해주겠고….”
“언제가 됐든 천천히 말해주시오.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소.”
“때 되면. 여튼 결론은, 난 계속 이러고 살 거 같다. 당분간은.”
이게 내 대답이다. 많은 건 안 바라고, 그냥 지인들 일 도우면서 죽상이나 안 짓게 사는 거. 다 내뱉은 뒤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출근까지 1분 남았다.
슬슬 일어나야겠다. 가방을 내려놓고 팜플렛의 깃털을 확인하는 사이, 가방에서 빠져나와서는 몸을 푸드득 터는 멍멍이.
“사장님 속마음을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소.”
“그러냐. 전에는 너한테 솔직하게 말을 안 해 줬었으니까, 이번에는 가능한 만큼 솔직하게 얘기해 본 거야. 이젠 만족해?”
“만족하오.”
“그럼 다행이고. 이거 딴 사람들한텐 아직 말한 적 없으니까, 너도 윤하 누나나 점장님께 이런 얘기 했다고 하지 마라. 알았지.”
“그야 당연히… 아니. 대사장님께도 말씀을 안 하셨단 말이오?”
뒷일이 빤히 보여서 말 안 했다. 점장은 ‘아, 찬이한테 그런 기특한 꿈이 있었어?’라며 하루 종일 웃어 보일 사람이고, 누나는 그냥 웃겨서 웃을 사람이다. 니가 초등학생이냐? 이러면서.
그 뒤에는 진지하게 물어볼 것이다. 옛날에 안 좋은 일 있었냐고. 난 이 주제로는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평생.
“안 했고 앞으로도 할 생각 없으니까 너도 말하지 말라고, 인마. 알았어?”
“아, 알겠소.”
“그럼 이거 얘기만 하고 끝내자. 멍멍이 너, 이 깃털 어떻게 하고 싶냐.”
내 속마음을 말하기 전에 이걸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나는 1,500만 원 상당의 현물을 손에 쥐고 있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 어떻게 하냐?
묻자, 내 타들어 가는 속과는 별개로 시원스레 말해오는 멍멍이.
“사장님께서 맡아주시구려. 본견을 사장님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신뢰―”
“야, 너 믿는 척하면서 나한테 덤터기 씌우는 거지.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들켰구려.”
멍멍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1,500만 원 상당의 현물을 입에 물어본 경험이 없는 놈이다. 취급하기가 어려워서 내게 일임하려는 건 맞지만, 날 믿는 건 거짓말이 아니란다.
“이건 본견의 속마음이자 진심이오. 본견이 사장님 아니면 누굴 믿겠소?”
“그야… 에이 씨, 그래. 일단 내가 맡고 있는다.”
이 녀석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잘 알아보고 팔아치우든 보관하든 해야겠다. 부직포 가방 안에 팜플렛을 담은 뒤, 멍멍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배는 안 고프냐?”
“괜찮다오. 아까 대사장님께서 햄버거를 입에 잔뜩 욱여넣어 주셨거든.”
“다행이네. 이거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내 집이든 매장이든 느긋하게 와라. 알았지.”
“그리하겠소. 근무 조심히 하시오, 사장님.”
“너도 차 조심하고.”
이렇게 멍멍이와 헤어진 뒤엔 매장으로 들어갔고, 카운터에 턱을 괴고 있던 점장이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고개를 살짝 갸웃한 뒤, 뜬금없이 코를 두어 번 킁킁거렸다.
“오! 찬이 왔… 어라?”
“왜 갑자기 냄새를 맡으신답니까?”
“찬이 가방에서, 엄청… 마법스러운 냄새가 나는데?”
“그게 냄새가 맡아져요?”
“그야 심하면, 사실 냄새는 농담이구.”
그냥 감각이 예민해진단다. 카운터라 가까이 가자, 보란 듯이 자기 팔을 들어 내게 보이는 점장.
“봐봐, 찬아. 닭살 돋은 거. 거기서 뭐 가져온 거야?”
가져왔고, 점장에게는 숨길 생각도 없었다. 팜플렛을 펼쳐 깃털 다섯 가닥을 카운터에 늘어놓자, 전혀 예상을 못 했던 건지 눈이 휘둥그레지는 점장.
“오오….”
“짧게 요약하면, 닭털 몇 가닥 뽑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야 놀랄 수밖에 없지. 이거….”
말을 늘이며 깃털 한 가닥을 집어 들고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해온다.
“솜털이잖아. 불사조 솜털.”
“그거참 놀랍네요.”
“가격은 개당 600만 원 정도 하구.”
“…그건 진짜 놀라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