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84)
이세계 편돌이-283화(284/331)
283.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7)
* * *
새 깃털도 용도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고, 그만큼 명칭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첫째 날개깃. ‘깃털’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생김새의 그 깃털 얘기다.
이 첫째 날개깃은 비행할 때의 추진력을 담당한다. 날개 안쪽에 위치한 둘째 날개깃의 역할은 첫째 날개깃을 보호하는 것, 더 안쪽에 위치한 셋째 날개깃은 난기류의 영향을 덜 받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솜털의 주역할이 둥지의 알을 덮거나, 체온을 유지하는 것인데….
“불사조한테도 솜털이 있어요? 점장님?”
“있지. 불사조도 새잖아. 근데 왜?”
“아까 만나보니까, 그 녀석이 툭하면 지 날개에 불 지피더라고요. 그런 녀석이 체온 보호할 필요가 있나?”
솜털을 체온 유지 외의 다른 용도로 쓰는 새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오리. 오리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게 오리발을 잘 내밀어서가 아니다. 기름기 머금은 솜털 덕분이지.
헌데 이 이유가 불사조에게 똑같이 통용되지는 않을 터다. 얘네가 물 위를 떠다닐 이유가 없잖아. 짐작이 전혀 안 됐던 탓에 아무 말이나 내뱉었는데, 이 아무 말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기름기 때문에 비싼 거 맞아. 활용하는 방식은 정반대지만.”
“어… 아. 자기 보호 용도로?”
“그렇지. 날개에 불붙이고 다니면 누가 잡아먹겠어.”
물에 잘 떠서가 아니라 불이 잘 붙어서 비싼 거였고, 그것도 보통 잘 타는 수준이 아니라 한 올로 비행기를 며칠은 띄울 수 있을 정도로 힘세고 오래가는 대체연료라고 한다.
동시에 화염이나 폭발을 목적으로 한 마법들의 위력도 수십 배를 늘려주는 터라, 광산을 비롯한 군용기기 제작 회사에서는 없어서 못 쓰는 재료라나, 뭐라나….
난 이게 수명연장 용도로 쓰여서 비싼 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안 죽는 새 깃털이니까. 외에도 뭘 더 알아야 할지를 잠깐 고민하다, 이유 없이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근데 점장님, 불사조 솜털 용도는 어쩌다가 알게 되신 겁니까?”
“어쩌다가 알게 됐지. 옛날에 상태 좋은 깃털 구하려구 직접 불사조 찾아다니고 그랬거든. 그러다 머리에 불 맞고 파마머리 되고 그랬는데….”
인터넷이고 택배고 없어 연구용 마법 재료를 구하는 것조차 일이었던 시절의 추억이라고. 나름 신기한지 깃털을 내려다보다, 내 머리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근데 찬이 머리는 말짱하네. 그 불사조가 불 쏘고 그러지는 않았어?”
“그냥 대화로 해결했죠. 이거 그 녀석이 멍멍이한테 투자한답시고 준 거예요.”
우선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듣고는 고개를 반대로 갸웃하며 묻는 점장.
“투자를? 불사조가?”
“예. 불사조가요.”
“불사조가 투자를 어떻게 해?”
“사육사 명의로 계좌 만들었다던데요?”
대답한 뒤, 아예 있었던 일을 전부 풀어냈다. 불사조 녀석이 머리 크기는 새대가리여도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경제 철학이 확고한 녀석이다.
더해서 동물원을 합법적으로 인수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고, 깃털로 투자나 재테크를 하는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멍멍이한테 투자한 건 사회적인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고….
“멍멍이 녀석 꿈이 그거잖습니까. 영물들 답답한 걸 대변해주겠다는 거. 그걸 그대로 얘기해줬는데, 다 듣고 대답하는 투가 무진장 재수 없게 들리더라고요. 저도 열받아서 몇 마디 거들고, 그다음에는 뭐….”
서로 흥분 가라앉힌 뒤엔 다시 투자 얘기 하고, 어찌어찌 잘 풀려서 새한테 투자받았다. 도중에는 내가 뭔 헛소리를 하고 있나 싶어 급하게 맺었는데, 때문에 빠진 부분이 한 군데 있었다.
“…동물원은 왜 인수하려는 거래?”
“그건… 그, 동물원이 원래는 자기 모시던 사당이 있던 곳이래요. 그래서.”
“아하. 그래서.”
“예. 그래서고, 점장님. 이게 정확히 어느 정도로 어이없는 상황이에요? 점장님 관점에서.”
이 동네에서 아직 두 달밖에 안 살아봐서인가, 직장 지하에 게이트가 열리는 것과 불사조가 투자를 하는 것 중 어떤 걸 더 어이없어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XX년 차인 점장은 후자에 무게를 실었다.
“어이없는 거야 불사조 쪽이 훨씬 더 어이없지.”
“역시 그렇죠?”
“나쁜 뜻으로 어이없다는 건 아니야. 자기 깃털로 자기가 투자한다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구 하겠어. 근데… 생각한 거랑은 많이 다르네.”
마법에 관련된 부분이라면 모를까, 불사조의 생태에 관한 건 상식적으로 아는 게 다라고 한다. 불사조가 깃털을 가꾸는 이유도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고.
“저도 그거 동물원 안내판에서 보긴 했습니다.”
“나도 사실 거기서 봤어. 그 이유가 실제로는 딴판이었던 게 어이없구, 또… 찬이가 얘기를 해주는 것도 솔직히 어이없어.”
“저는 왜요?”
느닷없이 타겟이 나로 바뀌었다. 억울한 마음에 점장을 바라보니, 점장도 날 똑같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장난기와 억울함이 반씩 섞인 얼굴이다.
“찬이가 내 입장 되어봐. 지금 이 얘기 해주는 것도, 잠깐 불사조 구경하고 올게요― 하고 2시간 갔다 온 게 다잖아. 그래놓고는 하는 말들 하나하나가 죄다 조류학자분들 뒷목 잡을 이야기들뿐이구!”
“허어.”
“그러고는 막 이래. 태평하게. 점장님, 제가 다른 세상 출신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어이없는 상황이 맞죠?”
강조하려는 의도인지 아예 목소리까지 깔아가며 내 흉내를 내고는, 원하는 반응이 있기라도 한 건지 날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반응해줬다.
“그럼 다음부터는 저 혼자 어이없어하고 말랍니다.”
대답하자, 큼직하게 고개를 젓고는 얼굴의 억울함을 쏙 빼버렸다. 하여 장난기만 남았다.
“절대 안 되지. 나 이제, 찬이가 그런 얘기 안 해주면 살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어. 재밌거든.”
“그런 몸이 되셨으면 병원을 가보셔야 되지 않나….”
“이거 불치병이라 못 고치구, 찬이도 내 입장 되어봐. 아마 나랑 똑같은 소리 할걸?”
라고 산전수전 다 겪었을 왕년의 대마법사가 말하고 있는데,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하다. 이 동네 사람들 태반이 평생 못 해볼 경험들을 난 왜 취직 두 달도 채 안 돼서 다 하고 있는 것 같냐?
이번에 멍멍이 녀석 건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지난달에도 내가 사망률 메가버닝 이벤트를 한 번 겪었잖은가. 게이트인지 뭔지가 내 직장을 한 번 박살 냈고, 겸사겸사 나도 박살 날 뻔했다.
“점장님께서는 그런 일 자주 겪어보셨어요?”
“나도 내 매장 물에 잠긴 경험은 그게 처음이긴 해.”
“제 말이. 여튼, 그런 예상 못 할 일들이 저한테는 유독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단 말이죠….”
물론 겪은 일들 중 태반은 내가 문제였던 거긴 하다. 애초에 지인들 도와줄 생각을 안 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들이었으니….
사람 사귀며 살겠다는 게 죄는 아닐텐데 말이다. 이유가 대체 뭐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했는데, 점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 이유 말인데, 전에 내가 얘기한 거 기억나?”
“어… 저희 이 주제로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했었지. 찬이가 유명한 동화 속 용사랑 특징을 한 가지 공유한다는 거.”
“아이, 그거 이 얘기 아니었잖습니까.”
경찰청에 상패 받으러 갔을 때, 점장이 한 동화 속 용사에 관한 얘기를 꺼내기는 했었다. 옛날옛날에, 사람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문제도 해결해주는 용사 a.k.a 심부름꾼이 있었는데―
“기억해?”
“어느 정도는요. 그 용사가 저랑 체질도 비슷하고, 마법을 잘 쓰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었고….”
“다 기억하구 있네. 근데 그때, 찬이 심란해할까 봐 말을 아꼈던 게 하나 있거든?”
그런 이유면 지금도 똑같이 말 아껴주면 안 되냐. 농담조로라도 말려보려 했으나, 점장이 말을 하던 도중에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내가 말리든 말든 이 말만은 꼭 하고 말겠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들어봤는데, 크게 공감이 가는 주장은 아니었다.
“그 용사도, 하는 일들 태반이 예상대로 풀리지는 않았었어. 찬이처럼.”
“그런 양반이 용사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포기 안 하고, 어떻게든 해냈으니까 용사가 됐지! 찬이처럼.”
“전 아직 아무것도 해낸 게 없는데요?”
“그치만, 포기하지도 않을 거잖아.”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뤄질 수밖에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동화 속 용사와 공유하는 특징이 한 가지 더 늘었다는 게 점장 의견이었다. 나도 내 의견을 말했다.
“저희 근무교대나 하죠. 점장님.”
“찬이, 또 흘려들으려구 그러지.”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해볼 텐데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지금 몇 신 줄 아세요?”
“몇 시인데? 나 눈 감고 있어서 몰라.”
무려 10시 5분이다. 대답을 듣자마자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고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는 점장. 아직 버스는 안 왔다.
하여 인수인계 및 근무교대까지 끝낸 뒤, 아까 하다 말았던 이야기를 짧게 마무리 지었다. 이 3,000만 원어치 불사조 솜털을 대체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이거 경매 붙일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비싸게 팔아치우고 싶은데.”
“매매는 둘째 치구, 돈 어디에 쓸지는 생각해뒀어?”
택시 타고 오면서 잠깐 생각해봤고, 이걸로는 한참 모자란다는 결론이 나왔다. 3,000만 원이 개인에게야 큰돈이지….
“사무실 값만 해도 수천은 깨지지 않아요?”
“전에 사거리 쪽은 그런데, 이 근처에선 싸게 구할 수 있을걸? 대학생 애들 중에 창업 과정 수료하구 사무실 차리려는 애들 있을 거잖아. 그런 애들이랑 잘 얘기하면….”
“저희 목적 듣고도 도와줄 대학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거 미친 짓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우리가 아는 대학생이래 봐야 유리 한 명뿐이고, 그 녀석은 도와줄 것 같긴 하다. 재미있어 보일 거 아냐. 이게 창업이 아니라 단체 설립이라는 게 문제지….
돈 나올 구석이 전혀 없는데 창업지원 정책에 어떻게 편승을 하냐고. 하여 기각했는데, 기각하고 나니 전혀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없으면… 다른 것부터 해야겠다. 그치.”
“예. 단체 만드는 게 먼저가 아니라, 3,000만 원으로 뭔 활동을 할지부터 고민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나 살던 세상의 얘기긴 하지만, 지역구 시의원 선거 활동 비용이 대충 4천만 원 안쪽으로 든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뭔 짓을 하게 될진 몰라도 의원 선거 활동 비용보단 이게 훨씬 싸게 먹히지 않을까?
“근데 뭐 하게?”
“일단 인터넷 뒤져봐야죠. 배터리 열심히 태우면 뭐라도 나올― 버스 왔습니다, 점장님.”
“어머.”
말하는 내내 버스정류장 쪽을 계속 확인했는데, 지금 딱 버스가 왔다. 똑같이 고개 돌려 밖을 확인하고는 곧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 점장.
뒤이어 계산대 위의 깃털을 죄다 집어 들고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워 내게 들어 보인다.
“이거 파는 건 나중에 팔기로 하구, 보관은 내가 해줄게. 불붙으면 큰일 나니까.”
“얼마나 큰일 나는데요?”
“매장에 든 보험이란 보험은 발휘될 정도로 큰일 나지. 떼먹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
“걱정 안 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점장님. 고생하셨어요.”
“응. 찬이도 근무 잘 하, 안 돼! 버스 간다!”
평소엔 느긋하게 출발하던 버스가 오늘따라 수 초 만에 출발하려 들고 있다. 부리나케 뛰쳐나간 점장이 버스 문을 손바닥으로 두들겨 겨우 버스에 탑승했고, 혼자 남았다.
곧바로 담배와 현금을 맞추고 계산대를 잠깐 내려다봤는데, 계산대 위에 깃털 잔부스러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이 잔부스러기만 해도 내 시급 3시간어치는 되겠지….
이 생각에 컵에 곱게 담아놨고, 잠깐 쉴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 폰을 켜봤다. 아까 몇십 분을 걸어 다녀서인지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저리다.
10분쯤 검색해보고 매장 청소를 할 생각이었는데, 느닷없이 톡 알림이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발신자가….
[ 찬이 씨 ] [ 안녕하세요 ] [ 저기 ]엘레나 양이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하려던 찰나, 톡이 한 개 더 떠오르고는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지워져버렸다. 세 글자였던 것 같은데, 내가 마지막 글자를 못 봤다.
“데이?”
톡 어플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미 삭제된 메시지라고 떠 있다. 약간 궁금해서 물었다.
[ 방금 뭐예요? ] [ 죄송해요자동검색어가 자기멋대로입력돼서 ] [ 대체 뭐가 입력됐길래 그래요 ] [ 저도몰라요 ]자기가 뭘 입력했는질 모르는 건 또 뭔 경우야. 황당함에 쳐다만 보고 있자니, 거의 속사포에 가깝게 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혹시내일낮에시간있으세요? ] [ 저내일부터휴가여서 ] [ 저 내일부터 휴가여서요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말을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