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88)
이세계 편돌이-287화(288/331)
287. 그럼 이게 맥주라고 치고 (4)
* * *
관계자 전용 출입구가 따로 있기는 했지만, 일부러 입장료 내고 들어갔다. 성인 2인 입장료 12,000원. 내가 두 번이나 돈을 안 내고 들어갈 정도로 염치없는 놈은 아니다.
엘레나 양과 함께 창구를 통과해 동물원 안으로 들어섰는데, 관계자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물범이 바로 다가와서는 친근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반마법사님은 직함이 어디쯤 되십니까. 부장? 아니면 실무 보시니까―”
“개인사업자여서 직함은 따로 없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이찬입니다.”
“아, 이찬 씨. 외자. 그리고 실례지만, 혹시 나이가 어떻게…?”
아까는 ‘그쪽에서요?’ 하며 경계하더니만, 자격증을 보여준 직후부터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이도 마저 말해주자, 아예 물개손뼉까지 쳐가며 감탄하는 물범.
“스물아홉. 이야, 그 나이에 자격증 따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외에도 마법기기를 수리하는 업무 특성상 반마법사분들께 외주를 맡길 일이 많다. 그분들 대부분이 30대 중반에서 많게는 100세가 넘어가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렇게 젊은 분은 처음 뵌다, 뭐….
넉살도 많고 말도 참 많은 양반이다. 한창 늘어놓는 말을 들어주고 있는데, 대뜸 바람막이 뒷자락이 살짝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엘레나 양이 눈치 보며 잡아당긴 거였다.
“저…기, 찬이 씨?”
“어제 이곳 기계 점검할 일이 있었는데, 지금 그 일 마저 하는 거예요. 금방 끝나니까 염려 마세요.”
자세히 설명했다간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간단히 끝냈다. 엘레나 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놓음과 동시에, 물범이 우리 둘을 번갈아 보고는 물었다.
“오늘 일하러 나오신 건 아니죠? 두 분 복장이 일하러 나오신 복장은 아닌데.”
“어… 네. 주말이라 쉴 계획이긴 했는데, 점검한 게 걱정되긴 해서.”
“역시. 서큐버스분이 같은 회사 직원 같아 보이진 않더라고요. 연인 관계이신가 보네.”
방금까지는 머리가 잘 돌아갔는데, 이 질문에는 아예 뇌가 멈춰버렸다. 방금 개인사업자라고 둘러댔으니 회사 직원이라는 말은 못 하고, 둘러댈 다른 말이 뭐가 있지?
한창 생각하던 와중, 엘레나 양이 먼저 대답했다.
“네.”
“?”
곧바로 돌아보니, 엘레나 양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짧은 모자챙 밑으로 보이는 뺨이 눈에 띄게 붉어져 있다. 아니, 이렇게 민망해할 거면 긍정은 왜 한 거야….
반면 물범은 자기 말이 연달아 맞아떨어진 게 기분 좋기만 한지, 수염을 씰룩거리며 한 번 더 입을 열려 했다. 나도 민망해질 것 같은데 그만 좀 하면 안 되냐?
“풋풋하시네요. 하긴, 저도 여자친구랑 첫 연애가 이곳이었는데, 그때는―”
“죄송한데, 기계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많이 걱정돼서.”
아예 말을 끊어버리자, 물범이 그제서야 씰룩거리던 걸 멈추고는 본론을 얘기해줬다. 기계에 문제는 없고, 문제가 없는 게 문제란다.
“내부에 마법진 훼손된 부품만 교체하면 끝인 작업이긴 한데, 그러려면 새어 나온 마력부터 제거해야 하거든요? 가만두면 다른 부품에 엉겨 붙으니까.”
“네. 그래서요?”
“그 제거 작업이 한, 3, 4일? 걸려요. 반마법사분께 외주 부탁드리면 반나절이면 끝나는 작업이긴 한데… 그분 인건비 드리고 나면 남는 게 없단 말이죠.”
하여 동물원 측에 3, 4일 즈음 걸린다고 언질하고 작업을 시작한 게 오늘로 둘째 날인데, 아침에 확인해보니 오염된 마력이 물로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나?
작업을 날로 먹었다며 좋아했던 것도 잠깐. 마력이 사라진 원인을 모르니 다 고쳤다고 전달할 수도 없고, 전달을 안 하면 이대로 이틀을 더 이곳에 붙들려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죄송한데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이번에 작업하신 거 경위가 어떻게 되시죠? 동물원 분들이랑 사전에 협의가 되어있었나요?”
“…아뇨. 협의는 따로 없었어요.”
협의고 자시고 원래는 할 생각조차 없었던 작업이었다. 경비원이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어떻게든 지나가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핑계가 그 작업이었을 뿐이지.
허나 이걸 솔직하게 말했다간 거길 왜 들어가려 했는지까지 고백하게 될 텐데, 그럴 바엔 차라리 이 대답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협의 안 하고 제 마음대로 고치고 나왔는데요?’
이 물범이 세세한 걸 따지려는 게 아닌 듯 보여서다. 대답하자, 그거면 됐다는 듯 곧장 말꼬리를 무는 물범.
“그럼 죄송한데, 저희가 외주 넣었던 것처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
“반마법사분께 부탁했다고 전달하면 동물원에서도 납득할 거고, 이 시간에 다른 일 하면 저희도 이득이니까요. 물론 공짜로 부탁드리는 건 아니고, 비용이―”
아까까지는 말이 많은 양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 길었던 게 다 이걸 부탁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어쩐지 날 지나치게 띄워준다 했지….
싫다는 건 아니다.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비용을 언급하고는 자기 주머니를 뒤적여 폰을 꺼냈는데, 고개 저으며 대답해줬다.
“돈 안 주셔도 되니까, 볼일 보셔도 돼요.”
“예? 정말요?”
“네. 대신 그, 외주견적서에 제 사명이나 이름 같은 거 적으시는 건가요?”
“그건… 원래는 적는 게 맞고, 물론 안 적으려면 안 적을 수도 있긴 한데요.”
“그거면 됐어요.”
애초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저지른 일도 아니고, 돈을 떠나서 더 이상 문제가 될 건덕지를 만들기 싫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회사에 출처가 불분명한 이체 내역을 남긴다든가….
다 떠나서, 개인적인 일로 엘레나 양을 너무 오래 세워뒀다. 말한 뒤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물범이 애매하게 고갤 끄덕인 뒤 날 가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복 받으실 겁니다, 이찬 씨.”
또다시 수염을 씰룩이며 합장하듯 손뼉을 마주쳐온다. 복은 됐고, 뭐 하나만 더 물어보고 끝내련다.
“이제 부품만 교체하시면 끝나는 거죠. 얼마나 걸려요?”
“부품 교체야 금방 하죠. 나사 몇 개 풀고 갈아끼우면 끝인데. 구름길 쪽 가는 시간 빼면, 한… 5분쯤?”
그다음엔 안전 테스트 해보고, 문제없다 싶거든 동물원 측에 연락한 뒤 마무리 지을 거란다. 다 들은 뒤, 어제 읽었던 팜플렛의 문구 중 하나를 잠깐 되새겨 봤다.
[ 구름길 코스는 여성 손님분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많아요! 연인들, 새와 함께 하늘을 걷는 경험을 원하신다면? 적극 추천! ]“…엘레나 양. 이제 대화 다 끝났거든요?”
“아, 네.”
돌아보자, 다리가 저린지 엘레나 양이 종아리 부근을 매만지는 참이었다. 보자마자 미안한 마음이 두 배가 되더라고. 얼른 사과부터 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진심이고, 그래도… 이제 구름길 쪽 가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어떠세요?”
하늘도 걸을 수 있고, 새도 많고, 동물원에서도 적극 추천하는 곳이다. 다 말한 뒤엔 무안해서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는데, 엘레나 양이 웃음기 섞인 얼굴로 대답해왔다.
“다 고쳐지고 나서 올라가는 거면, 저희가 오늘 첫 손님인 거겠네요?”
“그건, 어… 그렇겠네요.”
“그럼 전 좋아요. 보람 있으시겠어요, 찬이 씨.”
그러게 말이다. 인기 코스 첫손님이 됐으니, 확실히 보람이 있네….
* * *
기기 수리업체 직원이 총 5명이었다. 물범을 대장으로 한 나머지 구성원이 각각 고블린, 미노타우로스, 해마 수인에, 모자를 푹 눌러쓴 인간스럽게 생긴 사람 한 명.
마지막 사람은 진짜 인간처럼 생겨서 종족을 모르겠다. 이 사람이 막내인지 부품 교체를 포함한 몸 쓰는 일을 죄다 도맡아 했고, 계단을 오르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기계 켰어요?! 켰으면 올라갈게요!”
“켰어!!”
“오케이!”
실물 계단 앞에서 외친 뒤, 대답을 듣고는 곧장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막내. 어젯밤 들렀을 때도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내심 궁금하긴 했었다.
보이지도 않는 계단을 대체 어떻게 올라간다는 건지. 호기심 반 안전걱정 반으로 밑에서 가만 지켜봤는데, 딱 상상한 그대로의 광경이 펼쳐졌다.
계단 마지막 칸까지 걸어 올라가서는 한 발을 더 내딛는다. 허공으로 뻗어진 발이 무언가를 디뎠고, 뒤이어 반대쪽 발이 그 위의 허공을 더 내디뎠다.
몸이 좀 더 위로 올라갔고, 두 다리가 완전히 허공에 떴다. 허공에 뜬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여 상승하다, 4층가량 높이에서 멈춰 서서는 밑을 내려다보며 뭔가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
“뭐라고?! 잘 안 들려!!”
“$!#!….”
“바람 소리 때문에 안 들린다고!!”
물범이 몇 마디를 더 외치자, 고개를 다시 쳐들고는 오르던 계단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 있는 쪽 방향이다.
그렇게 몇 걸음을 더 딛다가,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 어, 어?
“저거, 저거 떨어지는 거 아녜요?”
등골에 오싹함이 확 밀려온다. 바로 물범에게 물었으나, 물범은 한숨만 한 번 내쉴 뿐이었다.
“네. 떨어지네요… 저 녀석은 저러지 좀 말라고 해도 기어이 저러네.”
난 저러지 말라고 안 해도 안 저런다. 앞으로 고꾸라진 몸이 아예 뒤집혀 추락할 때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는데, 당연하게도 내가 생각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4층 높이를 떨어지던 막내가 중간에 날개 같은 걸 활짝 펼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뿐히 땅에 착지했다.
뒤이어 큼직한 날개로 무릎을 툭툭 털고는 입을 삐죽 내민 채 볼멘소리를 중얼거린다.
“잘 되는 것 같다고 외친 거였어요.”
떨어지는 사이에 눌러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져 버렸는데, 머리에 흰 깃털 두 가닥이 더듬이처럼 돋아있다. 종족이 뭔가 했더니,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새였구만….
“너는 걸어 내려와서 말하면 될 것이지 왜 뛰어내리는데. 오리 대가리라고 자랑하는 거야, 지금? 다른 새 애들이 따라 하면 어쩌려고?”
흰색 깃털 가진 새 중 뭐가 있나 생각했는데, 오리였나보다. 이런 거에 몸이 일일이 반응하는 걸 보면 나도 이 세상 사람이 됐다기엔 아직도 한참 먼 것 같다.
“이런 작업 할 때조차 안 쓰면, 날개는 뒀다 뭐 해요.”
“이 자식이 말을, 그럼 다리는 뒀다 뭐 하는데. 국 끓여 먹으려고?”
반항하는 오리 조인족을 거의 수십 초 가까이 혼내다, 포기했는지 폰을 꺼내들고는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물범. 잠시 후 폰을 다시 집어넣고는 한숨을 한 번 더 내쉰 뒤, 날 바라보며 말했다.
“동물원에서도 영업 개시하겠다고 하네요. 올라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찬 씨.”
“예…….”
“연인분이랑 좋은 시간 보내시고, 그. 배려 많이 해주셨는데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네….”
“여기 쓸 수 있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뭘. 고생하셨어요”
“…아까 개인사업자라고 하셨잖아요. 혹시 사업장, 아니면 개인적으로라도 고칠 기계 있으면 연락주세요. 싸게 해드릴게요.”
그럴 일이 있겠나 싶긴 했지만, 일단 기억은 해두겠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합장을 하고는, 반항하는 오리의 등 옷깃을 붙잡아 질질 끌고 가 버렸고….
이렇게 나와 엘레나 양, 그리고 영업을 개시한 하늘길 계단을 바라보는 손님들 다수가 남았다. 이 시점에서의 시간이 9시 22분.
바깥에 손님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으니, 여기도 잠시 후면 손님들로 가득 미어터질 것이다. 그 전에라도 이 위를 잠깐 올라가보긴 해야 할텐데….
“…엘레나 양, 올라가기 전에 잠깐 물 한잔하실래요?”
말하며 옆을 바라봤는데, 방금까지도 옆에 서있던 엘레나 양이 쏜살같이 어딘가로 가버린 뒤였다.
둘러보니 하늘길 계단 앞에 서있더라. 흰 캔버스화로 계단을 툭툭 딛고는 나한테 손을 휘적거리는데, 표정이 장난감을 선물받은 어린애같다.
“찬이 씨! 빨리 와요!”
“어… 좀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안 돼요! 좀 있으면 손님들 엄청 오신다고요. 늦으면 제대로 구경도 못 해요, 빨리요!”
내가 진짜 목이 말라서 그렇다. 방금 위에서 뛰어내리는 걸 보고 쫄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목이 말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