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9)
이세계 편돌이-28화(29/331)
28화. 맥주 파는 편돌이
이 치와와 진짜 미친놈인가?
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치와와는 이 편의점에 오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미치지 않은 채로 온 적이 없었다. 그러니 미친놈 맞겠지.
그래서 얼른 우산꽂이 꺼내 가져다주고, 레드카펫 깔듯 깔개도 가져와 깔아줬다. 카펫을 보고 나서야 정문 밖에 우산을 대고, 빗물을 정성스레 털어내는 치와와.
치와와의 복장을 슬쩍 훑어봤더니, 양복을 입고 목에 사원증을 걸친 전 복장 그대로였다. 근데 지금 시각이 토요일 오후 10시란 말이다.
“손님, 혹시 일하다 오신 겁니까?”
“어.”
“주말에요?”
“특근이야, 씨발.”
거참 힘들게 산다.
나도 전에 다니던 회사서 툭하면 했던 게 특근이라 이 고충 잘 안다. 사내 정치질을 잘하면 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이 치와와는 정치질이랑은 영 인연이 없을 것 같고.
근데 떡대 치와와마저 특근을 하게 만드는 직종이 대체 뭘까… 흠….
“무슨 일 하시길래 특근까지 하십니까?”
“그걸 왜 궁금해하는데?”
“그냥 궁금해서요.”
“니도 나한테 뭔 일 하는지 얘기 안 했는데, 내가 왜 말해줘야 돼?”
이걸 듣고 잠깐 어이가 없었다가, 내가 입고 있는 유니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했다.
“편의점 유니폼 입고 바코드 찍는 놈 직업이 뭐겠습니까?”
“이 새끼, 싸가지 없는 거 보소?”
싸가지 없게 느껴지면 앞으로 딴 편의점 좀 가주면 안 되냐?
슬슬 여기서 근무하는 것도 익숙해졌겠다, 편의점에 오는 미친놈 숫자를 좀 줄이고 싶어서 일부러 말을 까칠하게 해본 건데, 치와와는 싸가지 없다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는 해도 나갈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사실 느낌이 어째, 이제야 대화가 통해서 좋다는 투야. 오히려 역으로 내게 물어왔다.
“니는 근데 편돌이는 왜 하고 있냐?”
“편돌이 하는 데에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그럼 나도 먹고사는 일 하는 걸로 쳐.”
알았으니까 물건 사서 빨리 나가라.
깔개도 깔아주고 우산꽂이도 갖다 줬겠다, 알아서 물건 가져오겠거니 하며 계산대로 들어갔더니, 치와와가 계산대까지 따라왔다. 또 뭔데?
“야.”
“네.”
“맥주 맛있는 거 추천 좀 해줘 봐.”
그걸 알면 내가 감별사를 하지, 편돌이를 하고 있겠냐?
“그…냥 아무거나 사다가 드시면 안 됩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아니, 편돌이라 해서 편의점 물건에 대해 다 아는 게 아니라니까요? 전에 치약 사실 때도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아, 그 치약 마음에 들더라. 니는 잘 쓰고 있냐?”
“그거 뚜껑 열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드려요?”
“너나 써, 씨발.”
계속 대화하다간 나도 이놈 따라 미쳐버릴 거 같다. 맥주, 맥주라. 어떤 맥주 쥐여줘야 이놈이 만족해서 나가줄까….
사실 편의점 맥주 관련해선 나름 형성해 놓은 가치관이 있긴 하다. 회사생활 할 때 술 같이 먹을 놈이 없었던 탓에, 편의점에서 매일 맥주 두 캔씩 골라다 혼자 마시고 그랬으니까.
예를 들면, 흑맥주.
흑맥주 맥주 중 내부에 조그만 얼음덩어리인지 뭔지 모를 게 들어있는 종류가 있는데, 그게 먹을 때 캔 입구에 자꾸 부딪쳐서 짜증이 난다.
맥주 맛 좋게 하려고 집어넣은 거긴 할 텐데, 집어 들기만 해도 안에서 자꾸 딸칵거리니까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냔 생각밖에 안 들어. 그래서 좀 그렇다.
오렌지 껍질 향 첨가된 밀맥주, 이것도 잘 모르겠고. 회사 일 때문에 공사판 들르다 보면 쇠기둥 그라인더로 갈아버릴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이 밀맥주가 먹다 보면 딱 그 맛이 난다. 트라우마 때문에 한 캔 먹고 그 이후로는 건드려 본 적도 없다.
이렇게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니 막상 추천해보려 해도 할 게 없었다.
“어떤 맥주가 취향이신데요?”
“야.”
“네.”
“숙취해소제 효과 좋더라. 아침에 숙취 없이 일어났는데,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그거참 희소식이네요.”
“그러니까, 그거랑 먹기 좋은 맥주 없냐?”
잘 모르겠어서 되물어 봤다.
“그건 또 뭔 소립니까?”
“말 그대론데?”
서너 번 생각해 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진탕 취한 채로 잠들고 난 후에 숙취 없이 깨어났을 때의 그 갭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건가?
그런 거라면 맥주가 아니라 보드카를 한 사발 퍼먹는 게 맞지 않냐는 생각이었는데, 그랬다간 맥주 말고 딴 걸 왜 추천해주냐며 욕을 해댈 것 같고. 아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맥주를 맛있는 걸 드시면 숙취해소제도 그만큼 효과가 좋지 않을까요?”
“그건 또 뭔 소리야?”
“거 솔직히 말해서 술 그냥 취하려고 먹는 거 아닙니까. 뭐가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제일 잘 팔리는 거 갖고 올 테니까, 그, 노여움을 좀 푸십쇼.”
“내가 언제 화를 냈는데, 씨발.”
“암튼 기다려 보세요.”
창고에 신상 밀맥주 한 세트 짱박혀 있던 걸 봐뒀다. 불곰 그림 그려진 거.
냉동창고 들어가서 한 캔을 꺼내 보여줬더니, 손에 집어 든 치와와가 이리저리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이거 맛있냐?”
“보통은 없어서 못 팔아요.”
이게 얼마나 없냐면, 아예 편돌이한테 예약까지 해가며 구매해갈 정도로 없다. 물량이 하도 안 풀리는 데다 풀리는 날도 랜덤이라, 오는 손님들이 술 들어오거든 자기 사갈 거니까 보관 좀 해달라고 그래.
“아니, 맛있냐고 시발.”
“어… 그럭저럭?”
근데 그 정도로 맛있냐 하면, 글쎄…?
나도 두 캔인가 먹어보긴 했고, 맛이 신기하다는 인상은 받았었다. 뒷맛에 진짜 오렌지 향이 살짝 나긴 하는데, 정말 살짝 나고 말 뿐이라 입맛 안 다셔보면 과일 향이 들어갔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그런 느낌?
단점이 있다면 이게 탄산이 좀 약해서, 강탄산이 취향이라면 먹고 실망할 수도 있다. 설명을 마치자, 치와와는 카드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한 세트 줘봐.”
“아예 세트로 사가시게요?”
“아니면 뭐, 여기서 먹어보고 결정해도 되냐?”
“그건 안 되죠. 불법이라.”
“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 시발. 돈 줄 테니까 내놔 빨리.”
그래, 가준다면 나야 환영이다.
냉장고 가서 남은 것들도 마저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고 계산을 마친 후, 치와와는 딱 4캔을 챙기고는 내게 물었다.
“손님?”
“야. 편돌이 할 만하냐?”
네가 가면 좀 할 만해질 거 같다. 입으로 튀어나올까 봐 말없이 고개를 저었더니, 치와와는 새끼… 하고는 안쓰럽다는 듯 두 캔을 내게 내밀어왔다.
“이거 먹고 힘내, 씨발. 나 간다.”
그러고는 우산 챙겨서 밖으로 나가버렸고, 계산대 위에는 밀맥주 두 캔이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주는 건 좋은데, 저놈은 나 근무하면서 처치 곤란한 것들만 자꾸 주나 모르겠다.
나중에 집에 가져가서 먹겠거니 하며 음료 창고 구석에 박아놓은 뒤, 계산대로 돌아와 앉았다.
* * *
그렇게 20분.
손님? 안 왔다.
비가 제법 많이 쏟아지고 있다. 매장 음악이 빗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그 때문인지 하늘을 날아다니던 하피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편의점 앞에서 서로 노닥거리던 켄타우로스들도 보이질 않는다.
비가 와서 편돌이한테 가장 좋은 점이 이거다. 손님이 덜 온다는 거.
이런 경우 편돌이들은 보통 자기 계발을 하거나 폰게임을 하거나 하겠지만, 난 두 개 다 영 내키질 않았다. 편하니 좋긴 한데, 아무래도 점장 얼굴이 자꾸 떠오른단 말이지….
나한테 잘해주고 잘 웃어주는 사람인데, 나도 그만큼 잘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벽에 하려 했던 일들을 미리 좀 해보기로 했다.
우선 담배 세는 것부터. 이게 대충 어떤 식으로 돌아가느냐.
포스기에 상품조회 화면 띄워놓고, 담배 중 하나를 골라 개수를 센다. 대충 6갑쯤 된다 치고, 바코드를 찍은 후 화면을 봤을 때 남은 재고의 1의 자릿수가 6이면 담배 개수가 맞는 거다.
10의 자릿수는 보루 단위라 거의 안 세고. 담배가 보루로 빵꾸 난다면 그 시간대 근무자가 심한 정서불안을 겪고 있는 것이니 얼른 병원을 보내는 게 좋다.
이렇게 100종가량 되는 담배를 다 세고, 빵꾸가 난 게 있으면 재고 파악용 수첩에 빵꾸 난 걸 적으면 된다. 이상 없으면 이상 없음 적어놓고 끝.
여기서 일한 지 5일 동안 이 수첩 내용은 내내 이상이 없었고, 점장이 빵꾸를 안 내니 나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담배만큼은 엄청 신경 써서 팔고 있다.
담배 파는 데에 뭔 신경까지 쓰냐 할 수도 있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담배 빵꾸 나는 게 진짜 불가항력이라서 그렇다.
예를 들면, 다른 담배들을 하나씩 달라 한다고 치자. 손에 두 갑 쥐고 바코드를 하나씩 찍었는데, 포스기에는 한 담배가 두 갑이 찍힐 경우가 있단 말야?
난 분명 따로따로 바코드 찍었는데 말이다. 이러면 한쪽 재고는 ―1이 되고, 다른 한쪽 재고는 +1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이건 계산할 때마다 포스기 뚫어져라 쳐다보면 예방할 수 있는 문제긴 한데, 간혹 근무하는 편돌이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조차 되지 않는 이유로 빵꾸가 날 때가 있다.
가령, 지금도… 어….
“뭐냐, 이거?”
담배가 안 맞는다. 한 종류가, 두 갑이 많다.
처음엔 내가 잘못 센 줄 알았다. 여덟 갑 아홉 갑 되면 안쪽 어두운 곳까지 담뱃갑이 늘어서게 되는데,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눈이 좀 침침하거든.
그래서 아예 꺼내서 세봤는데도 여전히 두 갑이 많았다. 내가 잘못 판 건가 생각을 해보려 해도, 담배를 한 갑도 안 팔았는데 어떻게 빵꾸를 내? 근무 교대한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아무튼 난 절대 아니니 점장이 빵꾸를 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오는데, 정작 점장이 담배를 빵꾸 내는 상황도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수첩을 펼쳐서 확인해도 고풍스러운 필체로 ‘이상 없음’이라 떡하니 적혀있고.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점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받자마자 와그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응, 찬아. ]“점장님, 퇴근 잘하셨습니까? 밖에 비 엄청 오는데.”
[ 막 씻구, 감자칩 먹구 있어. 계산대 밑에 하나 뒀으니까 찬이도 먹구. ]“잘 먹을게요. 근데 점장님, 혹시 담배 검수 몇 시에 하셨어요?”
[ 응? 찬이 오기 직전에 끝냈는데? ]내가 9시 50분에 왔고 지금이 10시 반이니 아직 1시간도 안 지났다. 그 사이에 빵꾸가 났다는 건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스기를 조작해 봐도 그 시간 사이에 담배를 판 기록 자체가 아예 없었다.
[ 왜? 담배 안 맞아? ]“두 개 많은 종류가 하나 있어서요.”
[ 적은 게 아니라 남는다구? ]“네. 혹시 짐작 가는 거 있으세요?”
[ 어… 응. 없어. ]점장이 고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 상황이 고민할 거리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긴 했다.
기껏해야 손님이 깜빡하고 두고 간 담배를 편돌이도 깜빡해서 다시 진열한다거나 실수로 담배 여러 갑 찍어서 계산하거나 하는 것들뿐인데, 점장은 드워프 시선만 보고도 무슨 담배 피우는지를 때려 맞추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런 실수를 할 리도 없고, 이런 것들도 담배를 팔아야 생길 상황이라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다.
[ 찬이는? ]“저는 아직 담배 한 갑도 못 팔았습니다. 비 와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네요.”
[ 이런 날씨엔 막걸리에 파전이 딱인데. 그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딱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점장이나 나나 분위기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손해 본 게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고가 남는 거라, 가만있다 보면 손해 본 놈이 알아서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래도 이유를 알고 싶은 건, 줄곧 이상 없다고 적혀있던 수첩에 괜히 빵꾸 났다는 내용을 적어넣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어깨에 폰 끼워놓고 담배를 다시 세고 있자니, 점장이 부드러운 어투로 말해왔다.
[ 내가 내일 출근해서 맞춰놓을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요 며칠 고생했잖아. 찬이. ]“글쎄요. 월급 받고 일하니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하….”
[ 응? ]“는데요….”
점장이 물었으나,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담배 진열대 안쪽에 뭔가가 반짝거리는 걸 본 것 같아서 그랬다.
얼굴을 들이밀어 자세히 봤더니, 딱 담뱃갑만 한 날개 한 쌍을 단 뭔가가 구석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아서는 연신 머리의 땀을 닦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날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해왔다.
“안녕! 난 담배의 요정이야! 담뱃재를 털 때는 주변에 아이가 있는지 꼭 확인해야 돼. 담배 연기가 아이들한테는 엄청 해롭고, 심지가 아이의 팔이나 얼굴에 닿아서 화상을 입을 수도 있거든!”
와! 고마워요, 담배의 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