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93)
이세계 편돌이-292화(293/331)
292. 그냥 아는 사람 얘기 (1)
* * *
편의점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상 최소 한 번은 반드시, 무조건 겪게 되는 사고가 하나 있다. 내 근무는 분명 다 끝났는데, 교대자가 안 와.
이 사고들의 대부분은 능동적인 대처도, 예방도 불가능하다. 이는 편의점이라는 장소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사람들이 길게 근무하질 않는다. 길어봐야 3개월, 짧으면 하루 이틀.
‘저 오늘부터 안 나가려고요. 수고하세요.’ 이러고 당일 퇴직 통보를 날리는 철없는 놈들도 간혹 있으니까. 편의점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곳이다. 여튼….
근무자들끼리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라는 인식이 강하고, 일일이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근데 안 오네? 심지어 전화번호조차 모르네?
때문에 매장 점주를 통해 연락할 수밖에 없는데, 만일 그 점주 폰이 꺼져있다? 이때부터는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가빠지는 거다. 능동적인 대처가 불가능하단 건 이 이유에서다.
예방이 불가능한 거야 뭐, 지각하는 이유가 별거 없다. 근무시간을 착각했어요, 버스가 오늘따라 늦었네요, 갑자기 다리가 부러졌어요, 등등.
핑계인 게 빤히 보여도 뭐라고 말 못 한다. 직급이 높거나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알바끼리 예방은 개뿔. 점주한테 ‘쟤 다리 부러진 게 이번이 6번째예요’ 하고 일러바치는 게 고작이지….
[ 점장님께도 말씀드릴게요 ] [ 저 늦는 거요 ] [ 죄송해요 ]생각하는 도중에 유리가 톡을 몇 줄 더 보내왔고, 확인한 후엔 헛웃음만 나왔다. 늘 멍하다가도, 이런 부분에서는 참 쓸데없이 고지식하다.
[ 점장님한테는 왜 말하려는 건데? ] [ 4분 늦을 테니까 돈도 4분어치 덜 받아야죠 ] [ 월급을 점장님께서 주시니까 ] [ 그럼 나 아이스크림이나 사줘, 따로 말씀드리지는 말고 ]바로 대안을 말해주자, 잠깐 공백 뒤에 답장이 왔다.
[ 오호 ] [ 똑똑하시네요 ]근무자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경우에나 일러바치는 거지, 서로 연락이 될 경우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까지 소통이 잘 되는 곳은 나도 처음이라 어색하긴 하지만….
[ 아이스크림 사 달라는 건 농담이고 ] [ 다음에도 늦을 일 생기거든 이번처럼 미리 말해줘라 ] [ 이러이러해서 언제까지 늦는다― 이러면 어지간해선 그런가보다 해. 말없이 늦는 게 사람 미치게 하는 거지 ] [ 명심할게요. 근데 오빠, 아이스크림은 뭐 사 갈까요 ] [ 그거 농담이라니까? ] [ 수박맛 어때요. 여름이니까 ]소통이 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사 줘도 안 먹을 거라고 답장 보낸 뒤, 뒤이어 궁금한 게 떠올라 바로 물어봤다.
[ 근데 유리야 ] [ 네 ] [ 늦는 건 그렇다 치는데, 왜 애매하게 딱 4분만 늦는다는 거냐? ]* * *
이 질문에는 유리가 교대 시간에 직접 찾아와 대답해 줬다.
“지갑 찾느라 늦었어요.”
듣자마자 눈 비비며 POS기에 적힌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5분이었다. 미리 얘기한 시간보다 1분 더 늦게 오긴 했지만 이건 그렇다 치고, 어제 서로 톡한 게 저녁 10시 전후였다.
“야, 유리야. 너 어제 톡했을 때부터 밤새도록 지갑만 찾은 거야?”
“아뇨. 밤에도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서요.”
“허어….”
“그래서 자고 일어나서, 맑고 상쾌해진 정신으로.”
내 질문을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듯, 계산대에 폰을 내려놓고는 술술 대답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던 물건이 다음 날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지는 경험은 나도 몇 번 해봤다.
그래서 이해는 한다. 하는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납득이 안 된다. 지갑을 찾느라고 딱 4분 정도를 늦을 거란 걸 대체 어떻게 알고 미리 말한 거냐고. 자취방이 조막만 한 건지, 뭔지….
“늦어서 죄송해요.”
잠깐 생각하는 사이, 그새 유니폼을 갈아입고 와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슥 꾸벅인다. 늘 그렇듯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짐작이 안 되는 표정이다.
미안한 것만은 진심이라는 점. 딱 이것만 알겠다. 그래서 생각하는 걸 관뒀다.
“…너 늘 10분 일찍 출근하잖냐. 5분 늦은 게 뭐 대수라고.”
“그래도요.”
“야, 너 계속 미안하다고 하면 손님이 컵라면 엎질러놔도 안 치워놓는다. 국물 눌러붙으면 치우느라 죽을 맛일걸?”
“누가 컵라면 엎질렀나 보네요.”
“어. 치우느라 죽을 맛이었어.”
새벽 5시 즈음, 입시학원 가방 메고 있던 염소 코볼트 한 명이 테이블에서 야채라면 먹다가 엎질렀다. 발굽에 젓가락을 끼워 라면을 먹는데, 고개가 자꾸 앞으로 꾸벅거리더란다.
그러다 기어이 컵라면 용기에 뿔을 푹 박아버렸고, 동시에 벌떡 고개 들면서 컵라면 내용물들이 온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러고는 카운터로 찾아와서 손걸레 있냐고 묻더라.
얼굴이 울상인 게 보는 내가 안쓰러워서, 결국 내 돈으로 물티슈 사서 뿔이랑 얼굴 닦아 내보냈다. 그 뒤에는 라면 면발 일일이 다 손으로 주워담고, 중간에는 나도 울상 한 번 짓고….
“면발 몇 가닥은 저―기, 몇 미터 떨어진 ATM 모니터까지 날아갔다고. 인생….”
“참 잘했어요 도장 정도는 찍어드릴 수 있어요. 오빠.”
“알아서 자화자찬할 테니까 일단 인수인계나 받어. 방금 말한 야채라면 빼고 특이한 점은 따로 없었고….”
현금시제 맞고, 담배 재고도 빵꾸 난 건 따로 없다. 인수인계를 하거든 늘 이런 식이다. 가끔 손님이나 진상이 사고 친 걸 수습한 걸 제외하면 대체로는 문제없음.
늘 하던 인수인계를 마치거든, 이 녀석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게 하는 질문이 있다.
“퇴근은 안 하시나요.”
“해야지. 그 전에, 테이블 쪽만 잠깐 살펴보고….”
언제 퇴근하는지를 묻는 것. 난 그때그때 다르게 대답한다. 눈 뜨고 있는 것도 귀찮을 때면 냉큼 집에 들어가고, 사람 만나는 약속이 있으면 그 약속 얘기 하고 퇴근하고.
이 녀석에게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때는 딴짓을 먼저 하며 시동을 거는 편이다. 내가 하려는 게 순수하게 매장 일인 줄 알았는지 카운터 밖으로 빠져나와 내게 다가오는 유리.
“테이블은 왜요.”
“아까 라면 쏟아진 게 테이블 다리에 고였었단 말야. 아까 테이블 들어가면서 다 닦기는 했는데, 매장에서 계속 라면 냄새 나는 거 같지 않냐?”
“음… 네. 매콤하네요.”
“너도 냄새나지. 안 닦은 곳 있나 잠깐 확인하려는 거니까, 넌 네 볼일 봐. 금방 끝나니까.”
얌전히 폰이나 보고 있어라. 권한 뒤 몸을 숙여 테이블 밑을 내려다보는데, 이 녀석이 자연스럽게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똑같이 테이블 밑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마디.
“저쪽 끝에. 귀퉁이가 주황색이에요.”
“저기는 인마, 타일에 햇빛 반사돼서 그런 거고….”
“그 옆에는 타일 배열이 살짝 어긋났고요.”
“너 자꾸 이상한 소리― 뭐야. 저기 전에도 저랬냐?”
“아뇨. 그냥 타일에 햇빛 반사돼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야, 너 그냥 가서 담배나 세고 있어.”
“메롱.”
도와주려는 줄 알았더니, 그냥 심심해서 이런 건가 보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바코드기를 벌벌 떨며 찍던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후로도 먼지가 돌아다닌다는 둥, 테이블에 머리가 부딪칠 것 같다는 둥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말을 내뱉어댔고, 때문에 혼자 했으면 금방 끝났을 일이 3배는 더 넘게 걸렸다.
“휴. 열심히 했다.”
확인을 마친 뒤엔 기지개를 쭉 펴며 미소를 짓는다. 열심히 했다는 게 일인지 날 놀리는 건지를 물으려다, 질문을 바꿨다. 그냥 얼른 할 얘기 하고 퇴근할란다.
“아, 맞다. 유리야, 너 아는 사람한테 고맙다고 좀 말해 줘라.”
“네?”
“동물원 가 보라는 거. 덕분에 가서 잘 놀았거든. 그리고 말인데.”
“네.”
“어제 나한테 말해줄 때 말야. 말을 그, 왜 그리 열정적으로 했냐?”
‘그거 데이트 아니에요?’부터 시작해, 이 녀석이 어제따라 유독 말이 많았다. 자기는 사랑을 이렇게 생각한다, 엘레나가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같이 나가자고 말도 안 했을 거다―
더해서 목소리 톤도 높은 게, 평소와는 전혀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그렇게 열을 낼 일이었나― 싶어 물어본 건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했다.
“잘 기억 안 나는데.”
“야, 오랜만에 말 같은 말 잔뜩 해놓고 니가 그걸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해? 아깝게.”
“몰라요. 기억 안 나요.”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이러는 걸로 보인다. 바라보는 족족 시선을 좌우로 피하는 게 특히 그렇다. 이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혹시 어제 화났었냐? 나 답답해서?”
“몰라. 얼른 퇴근해요, 오빠. 피곤하시잖아요.”
“그게 아까 나 놀리면서 퇴근 늦어지게 한 녀석이 할 말이야?”
“모른다니깐요. 아이스크림이나 드세요.”
현물로 내 입을 틀어막을 생각인지 대뜸 자기 주머니를 뒤적대기 시작하는 유리. 허나, 바지 주머니에서 곧장 지갑을 꺼내지는 않았다.
잠깐 옆주머니를 뒤적이고, 뒤이어 뒷주머니.
다음엔 유니폼 안에 손을 넣어 가슴팍의 주머니까지 뒤적대다, 손을 꺼내고는 날 바라본다.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하얘졌다.
“…오빠, 저. 그게.”
“지갑 카운터에 둔 거 아냐? 아까 폰 내려놓을 때?”
“같이 꺼낸 기억이 없어요.”
“그럼 집에서 안 가지고 나온 거든가… 그 안에 중요한 거라도 들어있어?”
“현찰 80만 원요. 신분증이랑, 카드랑….”
이 녀석은 무슨, 지갑에 80만 원은 왜 넣어두고 다녀….
미처 묻기도 전에 유니폼을 입은 채로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고, 정문 벨 짤랑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쇼윈도 너머로 버스정류장 근처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유리야! 찾는 거 도와줘?!”
“저 혼자 찾을게요, 잠깐 카운터만 봐주세요!”
라고는 하는데, 수십만 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린 심정이 어떨지 나는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다. 하여 카운터를 따로 보는 대신, 나도 나름대로 저 녀석 지갑이 어디 있을지를 찾아봤다.
우선 카운터 안쪽. 우리 매장에는 여닫을 만한 서랍이 없고, 노출된 곳을 찾아봐도 지갑은 없다. 다음은 저 녀석이 오늘 매장에서 돌아다녔던 곳들.
유니폼을 걸어두는 라면 창고. 여기에도 없다. 그럼 다음은….
― 우우우웅―
테이블 밑을 살펴보려던 찰나, 카운터에서 전화 진동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른 폰만 챙기고 다시 지갑을 찾으려 했는데, 내 폰 진동벨이 아니었다.
유리 녀석 폰이었다. 계산대 위에 놓아둔 폰 화면에 발신자 전화번호가 보란 듯이 떠 있다. 010, 8472에….
“……뭐야.”
아는 전화번호였다. 내가 어지간한 전화번호는 다 기억해두는 타입이다. 어젯밤에도 이 전화번호로 톡을 주고받았었고, 그래서 이 번호는 특히 더 잘 알고 있다.
근데 말이다. ‘똑같은 폰에 똑같은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라는 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야?
― 우우우웅―
가만두면 되나? 직접 끊을까?
아니면 유리 녀석한테 가져다 주면, 가져다 준 다음에 이걸 봤냐고 물어보면 그땐 뭐라고 대답해. 이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이상, 여태 한 것처럼 모른 체할 수는….
― 우웅― 뚝.
―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메시지 기능으로 자동연결됩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설정의….
출력되던 메시지가 멈추고, 폰 화면에 숫자 카운터가 떠올랐다. 00:00으로 시작한 카운터의 초가 넘어감과 동시에, 전파음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지갑은 두 번째 계산대 맨 밑의 틈새에 있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방금까지도 이 목소리의 주인과 대화했고, 그 주인은 지금 밖에서 자기 지갑을 열심히 찾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소리는 쉴 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 오빠랑 테이블 밑에서 장난칠 때 옆주머니에서 흘러나왔고, 너도 모르는 새 발뒤꿈치로 건드리면서 들어가 버린 거야.
― 잃어버릴 일 없을 테니까, 지갑은 이따가 찾고 마저 들어. 매직프레셔를 오후 3시에 전량 매도하고 2일 동안은 아무 주식도 매입하지 마. 타이밍 잡기가 힘들 거야.
― 오빠나 점장님에 관한 건 나도 모르니까 제발 그만 좀 물어보고. 아무리 내가 72시간 뒤의 너라고 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너도 알잖아, 그 둘이 특이하다는 거.
― 그러니까 그만 물어보고, 마저 얘기할게. 오늘 퇴근 시간에는 도로가 살짝 막힐 텐데, 사상자 없는 추돌사고 때문이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