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95)
이세계 편돌이-294화(295/331)
294. 그냥 아는 사람 얘기 (3)
* * *
여기서 일한 지 반올림으로 두 달이 다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내가 딴 세상에서 넘어온 놈이라는 걸 들키는 순간 내 인생도 끝장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떤 흐름으로 끝장날지는 구체적으로 생각 안 해봤지만, 아마 대국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2개면 관광지도 2배잖은가. 석유를 비롯한 매장자원도 2배, 땅덩어리도 2배.
국가에 전례 없는 호황기를 가져다줄 기회를 매―직 높으신 분들이 놓칠 리가 없다는 생각이고, 난 이름 없는 빌딩 지하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원래 살던 세상의 국방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설명하고픈 마음이 쥐뿔도 없었다.
그래서 닥치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찬이는 전쟁 같은 게 날 거라구 생각해?”
“그냥 망상이긴 해요. 서로 한 대씩 쳐보고 ‘어, 얘네 좀 단단한데?’ 하며 협정을 맺을 수도 있겠죠. 근데… 어느 쪽이든 간에 햄버거 패티 신세 되는 건 못 면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은 마, 찬아. 그땐 나도 양상추가 될 테니까. 그 사람들 죄다 우리 매장 통해서 드나들 거잖아.”
“그 얘기 들으니까 더 말하기 싫네요. 여튼, 유리 이 녀석도 상황이 비슷하지 않아요? 아니면 이 정도까진 아닌가?”
왕년의 대마법사인 점장 왈, 편돌이 해보겠다고 딴 세상에서 건너온 놈은 살다 살다 내가 처음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예언자는 아니다. 먼 옛날에 잠깐이나마 존재하긴 했었다잖아.
그러니 취급도 나보다는 좀 더 곱게 해 줄 거고, 나보다는 사정이 좀 더 낫지 않나. 이 생각에 물었으나, 이 세상 토박이인 점장의 관점은 아예 반대였다.
“나는 말야. 찬이 사례가 단기적으로 아주 크게 심각한 거구, 장기적으로는 이게 더 심각하다구 생각해. 세상은 두 개뿐이지만 미래는 무한하잖아.”
세상은 두 개뿐이고, 더럽게 넓기는 해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내가 아는 걸 전부 말하고 나면 언젠가는 묶인 걸 풀어줄 거다.
하지만 미래는 무한하고, 때문에 예언해야 할 것들도 무한하다. 일이 영원히 안 끝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도중에 힘들다며 쉴 수 있느냐? 못 쉰다.
“예언자가 잠깐 힘든 거 참고 몇 마디 더 하면 도로에서 사람 다치는 걸 예방할 수 있어. 잠 아껴가며 키보드 몇 분 더 두드리기만 해도 자연재해를 몇 개는 예방할 수 있구.”
“예….”
“그런 능력을 가지구 며칠 밤새워서 힘들다, 졸립다는 이유로 쉰다구 하면, 시키는 사람들이 그걸 이해해 줄까? 안 해 줘. 힘든 거 아는데 네가 몇 마디 더 하면 그만큼 사람 더 살릴 수 있어, 그 사고 나는 사람들이 네 가족이라고 생각해 봐, 이러면 모를까….”
오랜만에 점장 언성이 높아졌다. 말을 마치고는 작게 숨을 몰아쉬는데, 입술을 삐죽 내민 게 분을 삭이는 듯한 표정이다. 내가 봐온 점장은 추측만으로 이렇게 열을 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혹시 그거 경험담입니까?”
“나는 아니구, 내 지인 경험담.”
“아, 어쩐지.”
“며칠만 도와 달라길래 갔었는데, 하루 만에 양해 구한 다음 그만뒀어. 나랑은 전혀 안 맞는 일이란 거 바로 알았거든.”
일이 원체 바쁜 게 사유 2순위, 감정적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는 게 1순위.
머릿속으로는 잘 알아서였단다. 자신이 잠깐 쉬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사고는 일어나고 있고, 자기가 쉬지 않고 일하면 그걸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번외로 0순위. 모든 예언자들은 미래를 본다. 스스로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 그, 지인분도 그렇게 될 거 알고 시작하셨단 게 되지 않아요?”
“알고 시작했대. 직접 물어봤었어.”
“아니….”
“그래서 다는 아니어도, 미래를 본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역인 일인지만은 잘 알아. 시작하면 끝을 보든가, 아니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수밖에.”
이 설명을 끝으로 점장이 더 말을 잇지는 않았고, 잠깐 생각하는 시간이 됐다. 점장이 말하는 걸 쭉 들어보니, 점장은 유리 녀석에게 이 일로 부담을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데….
솔직히 나는 자신 없었다. 나도 살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수도 없이 겪어 봤다. 미리 알았다면 피할 수 있었을 거라며 후회해 본 적도 마찬가지로 많다.
허나 유리 녀석 마법이 있으면 그럴 일이 없다. 어렵지도 않다. 음료수 건네주며 몰래 말만 몇 마디 해달라고 하면 끝이다. 더는 엿같은 일 겪지 않아도 되고, 더는 후회하지 않아도 돼.
그만큼 잘 먹고 잘사는 삶이 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다. 그래도….
“…유리 그 녀석 말입니다, 점장님.”
“응.”
“걔는 자기 마법 몇 년 동안 달고 있는 거예요?”
“유리가 몇 살이지?”
“20살요. 대학교 1학년이니까.”
“그럼 20년. 그 정도 정확도면, 아예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거라구 봐야 돼.”
이게 마음에 걸린다. 그 녀석이 어떤 의미로는 내 선배나 다름없다.
나는 이제 겨우 두 달 됐다. 다른 세상 지식을 달고 날아와 영문도 모를 체질을 달고 산 지가 겨우 두 달인데, 그 녀석은 입 다물고 산 게 자그마치 20년이다.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입에 머금은 채로 20년을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난 딱 한 문장 정도밖에 짐작이 되질 않는다. 유리 그 녀석, 불안하긴 겁나게 불안했겠구나. 이게 전부다.
그게 들켰을 때의 심정이 어떨지는 아예 모르고. 난 아직 들킨 적이 없으니까.
생각하며 POS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오후 2시 13분이었다. 초과근무 시간조차 훌쩍 지나버렸는데, 집에 들어갈 마음이 조금도 들질 않는다.
멍하니 점장 배 언저리만 바라보고 있자니, 배가 있던 자리로 불쑥 점장 머리가 내려왔다.
“찬아.”
점장이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있자, 계산대 끝을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내게 마저 물었다.
“지금 어떤 생각 하고 있어?”
“두 가지 생각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점장이 들으면 속은 좀 상하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대놓고 폭탄이고 유리 저 녀석도 알고 보니 폭탄인 셈이 됐는데, 여기가 폭탄 처리장도 아니고 뭐 이런 놈들만 꼬이냐?
“내 매장 예전에는 안 이랬어. 찬이 오고 나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예. 제 죄가 크네요.”
“이젠 익숙하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말구. 다른 한 가지는?”
“내일… 뭐 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나 혼자 생각할 게 아니라, 점장 의견을 좀 물어봐야겠다.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 한 번 더 올 게 왔다는 듯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여는 점장.
“진짜 괜찮겠어?”
“안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은데, 제가 그래도 걔보다 어른이잖습니까. 나잇값 해야죠.”
“글쎄. 찬이 입장 되면, 연세 지긋한 엘프분도 찝찝해할 거 같은데….”
“다 떠나서, 받은 만큼 안 돌려주면 제가 직성이 안 풀려요.”
이게 잘하는 짓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것만은 점장도 모를 테고, 아마 유리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일 자기가 뭘 보게 될지를 알게 되거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게 분명하다.
아니면 의외로 별거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만은 내 월급을 걸고 자신할 수 있다. 신선하기는 더럽게 신선한 경험이 될 거라는 것.
그 녀석도 이 미래만큼은 전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폰 2개 중, 원래 살던 곳에서 폰을 들어 보이며 마저 말했다.
“그리고 언제 한번 가긴 가야 됐어요. 아직 원래 살던 집 보증금 못 받았거든요.”
“아하. 보증금은 어떻게 받게? 직접 가서?”
“글쎄요. 시간 꽤 됐으니까, 계좌이체로 이미 보내지 않았을까요?”
* * *
퇴근하기 직전, 상의하에 근무시간을 살짝 조정했다. 점장이 오늘만 한 시간 더 근무하고,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나.
시간을 조정한 뒤에도 잠깐 대화를 하긴 했는데, 중간부터 꾸벅꾸벅 조느라 잘 기억이 안 난다. 밤 11시 교대시간에 맞춰 찾아가자, 점장이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유리 오겠지?”
이걸 듣고 나서야 서서히 대화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장이 우리가 준비를 한다고 한들 유리가 찾아올 보장은 없다고 했었다. 그땐 내가 이렇게 대답했었다.
“걔 지각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오겠지, 뭐.”
그냥 대답만 하지도 않았었고, 일부러 유리 녀석 폰을 집어 보여줬었다. 똑같이 하자, 이제서야 점장이 씩 웃고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러고는 퇴근.
하여 텅 빈 매장에 홀로 남게 되었고, 카운터를 지키는 동안 점장과 나눴던 대화들을 하나하나 복기해 봤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 나 혼자서는 못한다.
스위치를 점장이 만져줘야 했고, 때문에 점장도 내일은 아침에 잠깐 얼굴을 비출 예정이다. 여기까지가 계획이고, 다음에는 유리 녀석에 대해 잠깐 얘기했었다.
점장이 말했다. 유리도 사실 속으로는 우리한테 알려주고 싶었던 거 아닐까? 안 그랬으면 찬이한테 데이트 얘기 하지도 않았을 거구, 여기서 계속 일하려 들지도 않았을 거구―
내가 대답했다. 내일 얘기해 보면 알겠죠. 퇴근하겠습니다, 점장님.
그 녀석한테 미안해서 일부러 얼버무렸었다. 우리한테 알려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걸 이런 식으로 들키는 걸 바랐을 것 같지도 않다.
우연히 엿듣는 것보다는 좀 더 좋은 접근방식이 있었을 테니까. 내가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줄 알고 조심스러운 놈이었다면, 그 녀석이 새벽 6시에 텅 빈 거리로 뛰쳐나갈 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밤새도록 후회할 일도 없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제대로 붙들어 매고 확실하게 물어볼 걸 그랬다. 유리야. 너 혹시 고민이라거나, 나한테 진짜로 하고 싶은 말 없냐….
속으로 뇌까린 이 질문에, 7시간 뒤의 유리가 대답했다.
“수없이 물어봤었어요. 전 한 번도 대답 안 했고요.”
오전 5시 50분. 늘 그랬듯 근무교대 10분 이전에 유리가 찾아왔고, 인사말 대신 저 말부터 대뜸 내뱉어왔다. 워낙 뜬금없어서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대략 1분 정도. 겨우 이해를 마쳤고, 직후엔 의문이 하나 솟아났다.
“유리 너, 이제는 내 미래도 잘 보이냐?”
“처음부터는 아니었고, 2주 전부터 간간이요. 데이트 얘기도 그래서 드렸던 거고.”
“아. 그러네.”
“이유는 잘 모르지만요.”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정문 경계에 걸친 채로 무덤덤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데, 몇 주를 봐온 덕인지 녀석이 어떤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구분이 된다.
가령 지금같이 바닥과 나를 번갈아 바라볼 때. 날 보는 건 내게 궁금한 게 있어서 저러는 거고, 바닥 보는 건 나 초과근무 시킨 거 미안해서 저러는 거다. 물론 사과를 받아줄 마음은 없었다.
하더라도 내가 해야지 왜 저 녀석이 사과를 해. 허나, 대화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너 지금 졸려?”
“아뇨. 그런데 오빠, 어제는 제가….”
“안 졸리면 카운터에 지갑 내려놓고, 저기. ATM 쪽에서부터 커튼 좀 쳐봐.”
“…커튼이요.”
“전에 니가 물어본 거 있었잖아. 다른 세상 어쩌고 한 거.”
ATM 쪽을 가리키며 마저 말했으나, 어리둥절하던 표정이 더 멍해지기만 했다. 아예 유니폼을 벗어젖히며 재차 말해줬다.
“나 다른 동네에서 건너온 놈 맞으니까 커튼 치라고. 아니면 뭐, 내가 지금 헛소리하는 거처럼 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