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97)
이세계 편돌이-296화(297/331)
296. 그냥 아는 사람 얘기 (5)
* * *
점장이 침울해진 얼굴로 이것저것을 마저 시도해 보았고, 다 시도한 후에는 아예 얼굴이 죽상이 되었다. 원인 중 하나가 사진기.
이 사진기가 촬영한 사진에 담긴 풍경을 즉석에서 인화해 미니어쳐 형태로 구현해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고, 풍경의 마나 흐름을 기기에 저장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열화상카메라처럼 말이다.
이걸로 매장 내부에서 외부 사진을 몇 장 찍어 인화해봤으나, 죄다 찍힌 것 하나 없이 새카맣기만 했다. 미니어쳐화를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블 위 사진에 점장이 손가락을 얹는데, 사진 사이즈에 딱 맞게 가로*세로*높이가 15cm 정도 되는 검은 상자가 생겨났다. 보자마자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네요. 리얼블랙이네.”
“내가 보기에도 예뻐. 예쁜데, 찬이네 세상이 리얼블랙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나, 이대로는 못 돌아가.”
다시 상자를 건드려 없애고는 날 밖으로 끌고 나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쉴 새 없이 튕기기 시작하는 점장. 허나 내 동네는 왕년의 대마법사에게조차도 자비가 없었다.
자기 머리 위와 가슴팍. 막간에는 내 눈앞에 대고 손가락을 튕기기까지 했으나, 두 종류 소음이 발생하는 게 전부였다. 손가락을 튕기는 파열음, 그리고 점장 신음 소리.
“아으. 손 아파.”
“저한테는 왜 손가락 튕기신 거예요?”
“찬이 키를 3cm 정도 키워보려고 했어.”
“그건 저 성장판 닫혀서 안 될걸요. 머리 위에 튕기신 건요?”
“하늘에 운석 몇 개 떨어트려 보려구 했지. 시전 여부 확인하는 데에는 소환마법만 한 게 없거든.”
그때면 우리 동네 미사일 요격기도 같이 소환될 것 같은데 말이다. 손가락을 식히려는 의도인지 매장 손잡이에 손가락을 얹었다가, 그대로 손잡이를 매만지기 시작하는 점장.
그러다 가로수길을 바라보고는 잔뜩 볼을 부풀린다. 왜 이러는지 짐작이 됐던지라 위로를 해주려 했는데, 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 엄청 자극하는 곳이야.”
“마법적인 측면으로요?”
“응. 나 사는 세상에서도 마법 쓰기 힘든 곳은 엄청 많아. 고산지대처럼 지면에서 마력 끌어 올리기가 힘든 곳이라든가, 반마법사가 인위적으로 환경을 비틀어버린 곳이라든가….”
계수기로 측정된 마력이 0인 곳에서조차 요령껏 마법을 써 왔건만, 이렇게까지 뭘 시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곳은 처음이란다. 난 마력 측정하는 계수기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여튼, 자존심 상한다구.”
“그럼 나중에 재도전해 보실래요?”
“기회가 있으면 해볼 텐데, 찬이 나중에 따로 찾아올 일 있어?”
“용무야 만들면 되죠. 가끔 향수병 치료하러 돌아올 수도 있을 거고….”
이렇게 먼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냥 점장이 가고 싶으니까 가자고 하면 올 것 같기도 하다. 반대로 개인적인 이유가 있냐고 하면….
…이맘때 즈음 어머니 묘소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긴 한다.
그걸 깎는 일을 빼면, 글쎄다. 이 일만은 나 혼자서 빼먹지 않고 해 왔다 보니, 다른 사람이 대신 하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그때면 점장한테 다른 핑계 대고 몰래 다녀오든 해야겠다. 생각을 정리한 뒤, 매장 내부를 바라보며 마저 말했다. 오늘은 추억팔이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전에 유리랑 상의부터 해봐야죠. 저 녀석 알바처 잠깐 날려버리는 건데.”
딴 건 몰라도 시키는 일만은 참 잘하는 녀석이다. 아무리 지켜보고 있으라 시켰어도 그렇지, 진짜로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냐? 무려 딴 세상인데?
동시에 청개구리처럼 굴고도 있다. 먼저 먹으라고 일러뒀음에도 김밥을 은박지조차 안 뜯어놨다. 날 따라 매장 내부를 확인한 점장이 쓴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온 게 아닌데, 나 하고 싶은 일만 잔뜩 해버렸네.”
“순수하게 호기심 채우려고 하신 일은 아니잖습니까. 뭐….”
이걸로 설득력은 생겼다. 매장으로 다시 들어와, 보란 듯이 유리 앞에 돗자리를 다시 한번 펼쳐봤다. 8,000원짜리 돗자리가 이제서야 제대로 돈값을 해냈다.
바깥에서는 미풍에조차 이리저리 휘날리던 돗자리가 매장 내부에서는 정확히 20cm 높이를 둥둥 뜬 채로 꼼짝하질 않고 있다. 시연 삼아 돗자리 위로 올라가자, 유리가 감상을 말해왔다.
“잘 되네요.”
“그치. 여기서는 잘 되는데, 저 바깥세상에서는 희한하게도 작동을 안해. 유리 너도 봤겠지만,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고.”
“마법도 마력도 없는 세상이라서요.”
“그건 아직 추측 단계긴 하지만, 그런 거 같다. 아니면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냐?”
정 모자란다면 너도 손잡고 같이 나가 줄 수 있다. 권하자마자 한 치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붕붕 젓고는 마저 말하는 게, 바깥에 대한 것보다도 더 궁금한 게 있단다.
“이걸 저한테 알려주신 이유가 뭔가요?”
유리 녀석 화법의 특징. 원체 감정표현이 없는 녀석이고, 그게 말투에도 다 반영이 된다.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면 말꼬리를 거의 안 높인다.
근데 지금은 그러고 있다. 이세계의 존재보다도 이 비밀을 자기한테 알려주는 이유를 더 궁금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그래도 이 부분은 솔직하게 말하려 했었다.
“일부러 들으려 했던 건 아니었어. 미안하다.”
“그 말 하려고 보여주신 거예요?”
“말하려고 보여준 거 아냐. 사과를 하려고 했어. 남이 알면 평생 쥐고 흔들 수 있을 비밀을 알아내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하고 끝내버리면. 그게 사과야?”
“…….”
“내 생각엔 아냐. 너한테 똑같이 평생 쥐고 흔들 비밀 말해주고, 이 오빠도 자기 비밀 들키기 싫을 테니 어딘가에 말은 못 하겠구나. 네가 안심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말해 준 거야.”
이것 말고는 확실한 방법이 안 떠올랐다. 내가 이런 식으로 사과받지 않으면 안심하질 못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말에는 결국 아무런 힘도 없다. 준 만큼 받아야 하고, 받은 만큼 줘야 한다.
그래서 가능한 만큼 돌려줬다. 내가 이 녀석이 가진 가장 큰 비밀을 알게 됐으니, 나도 내가 가진 가장 큰 비밀을 알려줘야 비로소 동등해질 수 있다. 이 생각에 말했다.
“지금 저 가로수길이 내 인생 가장 크게 끝장낼 비밀이야. 어느 누구를 데려다 놓든, 저걸 보는 순간 머릿속만큼은 장난 아니게 복잡해지겠지. 안 그러냐?”
“…오빠.”
“너가 이걸 다 믿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마저 말한다. 난 마법도 미래예지도 다 헛소리로 여기는 세상에서 태어났어. 여기 오기 전까지는 고블린이나 오크를 본 적도 없고, 또….”
“오빠.”
도중에 유리가 고개를 슥슥 저었다. 하던 말을 멈추자,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카운터로 가서는 금방 돌아왔다. 손에는 검은 봉투 한 장이 들려있다.
뭔가를 넣어서 온 건 아니다. 그저 텅 빈 봉투다. 봉투를 두 손으로 쥔 채 내려다보다, 안쪽이 잘 보이게 펼치고는 날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오빠가 이걸 다 믿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말해볼게요.”
“…해봐. 어지간한 건 다 믿어줄 테니까,”
“이 봉투 봐봐요. 새카맣죠.”
“어.”
“이게 오빠 미래래요.”
* * *
듣자마자 사과하고픈 마음이 싹 다 날아가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만 가득 솟아났다. 지금이 진심 사과가 아니라 진심 펀치가 필요한 순간이었던 건가?
“내가 어지간한 건 다 믿어준다고 말하긴 했는데, 그것까지 믿었다간 내가 너무 슬퍼지지 않겠냐?”
“그치만 사실인걸요.”
“야. 세상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라는 죄명이 존재하는데 말야….”
“이걸 직접 말해보는 건 저도 처음이라서요. 죄송해요.”
이러길래 참을 인 자 두 개 새기고 마저 말해보라고 했다. 뒤이어 펼쳤던 봉투를 탁 닫고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유리.
“저요. 미래의 저랑 전화통화를 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깨닫게 된 정확한 시기는 어머니로부터 전화통화 하는 방법을 배운 당일. 점장 말대로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마법이 맞나 보다.
그때부터 인생을 무척 손쉽게 살았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업 시간 내내 잠만 자도 영재 소리를 들으며 지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똑같이 탄탄대로를 달렸다나.
“중간에 딴 사람한테 들키지는 않았고?”
“안 들킬 방법을 미리 들었어요. 저도 조심했고요. 들켰을 때의 저랑도 전화통화를 했었어요. 여러 번.”
“여러 번?”
“장소가 매번 달랐거든요. 그중에 가장 기억나는 곳이, 교도소.”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더 들으면 나도 못 잊을 거 같다.”
여하튼 이렇게 탄탄대로를 달리고, 남들 다 가는 대학교도 당연하다는 듯이 합격한 후에는 미래의 자신의 조언대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냈고, 6월이 됐다.
“잠깐 다리가 아팠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쉬어 가려고만 했는데….”
“어디서?”
“여기서요. 지금 앉은 이 자리.”
아무 일 없을 테니 괜찮다. 미리 듣고는 안심하고 쉬어 가려 했는데, 매장에 들어선 직후부터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전화가 불통이 되어 버린 거다.
당황스러움에 곧바로 밖으로 나와 미래의 자신에게 이에 대해 말했고, 그 녀석 왈. ‘거기 카운터 알바생. 그 알바생이랑 엮이지 마. 절대.’
“나랑 엮이지 말래? 절대로?”
“만약에 제가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고 하잖아요. 평소에는 미래의 제가 어떻게든 대답을 해줬어요. 항상요.”
“아니, 어떻게 알고 대답을 해 줬대?”
“그거 말인데, 오빠는 제가 1분 뒤에 뭘 할지 맞출 수 있어요? 정확히.”
그걸 내가 어떻게 맞추냐고.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다.
이 녀석이 1분 뒤에 우리 매장 과자를 뜯어 먹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식을 대로 식은 김밥 은박지를 벗겨내고 있을 수도 있겠지.
물론 계속 대화를 하고 있을 게 당연하지만, 대화 내용을 정확히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장, 어절, 글자 단위로 많아질 테니까….
“그걸 전부 시도한대요. 미래의 제가요.”
“그… 허어.”
“그중에 결과가 가장 좋은 미래의 제가 전화를 거는 거고요. 저한테. 제가 물어봤을 때에는 이렇게 대답해 줬는데….”
딱 한 사람. 경우의 수고 나발이고를 넘어,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늘 똑같은 결과만 도출되는 놈이 한 놈 존재했다고 한다. 내 얘기다.
“오빠한테 말을 거는 그 순간부터 온 사방이 새카매졌대요. 말하려는 걸 포기하고 밖으로 나오면 다시 밝아지고.”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로 새카매졌는지를 물었을 때 돌아온 게, 검은 봉투 내부만큼이나 새카맣다는 비유였다는 것. 내 미래가 진짜로 새카매서 한 얘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다행이긴 한데….
“유리야.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두 돼?”
“네.”
“미래의 나한테 말을 걸었을 때 말야. 혹시 그때도 세상이 까매졌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점장이 한 발자국 다가와서는 물었다. 점장 질문에 힐끗 봉투를 쳐다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유리.
“결과는 똑같은데, 방식은 달라요.”
“어떻게 달라?”
“늘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대요. 네가 누군지 알구, 나는 네가 뭘 물어보든 난 대답 안 해줄 거야.”
그 이후로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고, 때문에 점장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잠시 후, 거울을 들여다본 점장이 흐뭇하게 미소 짓고는 중얼거렸다.
“뭐야. 미래의 나, 꽤 유능하잖아?”
“예, 유능해서 좋으시겠네요….”
“마저 말할게요. 오빠가 까맣게 보였었고, 그다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