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
이세계 편돌이-2화(3/331)
2화. 적응하는 편돌이 (2)
마법 어쩌고 하는 소릴 듣고 떠오른 깨달은 건, 점장이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던 이유가 매지컬 파워 덕분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깨달음에 대한 감탄은 2초 만에 사라졌고, 울화통만 터졌다. 편의점인 줄 알고 일하러 왔더니, 편의점이 아니라 프레디의 피자가게였네. 이걸 어쩌면 좋냐?
우선 대화의 핀트부터 맞춰보기로 했다.
“점장님, 마법 얘기하셨잖아요.”
[ 응. ]“죄송하지만, 전 마법을 본 적이 없거든요?”
[ …뭐? ]“뱀파이어나 고블린을 본 적도 없구요. 점장님께서는 제가 그런 그… 이종족에 익숙하다 생각하셨던 듯한데, 전 그냥 민간인이라고요.”
트럭에 치였던 적도 없고, 똥겜을 파고들어 엔딩 직전까지 간 적도 없거니와, 소설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장문의 쪽지를 보내본 적도 없다. 점장이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걸 보니, 핵심을 제대로 짚은 듯했다.
[ 그…럼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뭘 어떻게 와요, 보이길래 들어왔지.”
[ 그게 말이 돼? ]편의점 알바 구인 공고 보고 들어오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다면,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 편의점이 쌩판 처음 보는 것들만 찾아오는 할로윈 파티장만 아니었다면 말야. 이게 대체 뭐냐?
점장은 이 상황이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듯 끙끙대며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손님 몇 명이 더 들어왔다.
사고 과정을 생략하고 설명하자면, 배달 어플 조끼를 입은 켄타우로스였다.
이런 세상에, 사람 얼굴 달린 고라니들이 라이더 조끼를 걸친 채로 웃으면서 걸어 들어오고 있다. 걸을 때마다 다그닥거리는 울림은 덤이다.
“사장님, 세븐 하나 주세요.”
그래도 달라면 주긴 줘야지.
“팩으로 드릴까요, 갑으로 드릴까요.”
“갑이요. 아, 라이터도 하나 주세요.”
“라이터는 이쪽에 있슴다.”
말하며 카운터 왼쪽 밑의 매대를 가리켰다. 그사이에도 뒤에서는 다른 켄타우로스들끼리 떠들어 댔다.
“막내야, 바나나 우유 가져와라. 사줄게.”
“넵. 사장님, 바나나 우유 어디 있어요?”
“유제품 코너 위에서 두 번째 줄이요.”
그나저나 이놈들 히히힝거릴 줄 알았는데, 목소리는 정상적인 사람 목소리였… 아니, 내가 퍼킹 레이시스트인 게 아니라 진짜 말사람인지 사람말일지 모를 것들이 떠들고 있다니까?
“야, 편의점에서도 편자 파냐?”
“여기선 팔더라. 일회용 말고 제대로 된 거.”
“그래? 저기 사장님, 편자 어디 있어요?”
여기가 마구간이냐고. 근데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여기서 팔고 있는 물건이 맞는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고민하고 있는 듯한 점장에게 물었다.
“점장님, 편자 어디 있어요?”
[ …어, 세 번째 코너 맨 밑에 좌측에. ]“저쪽 코너 맨 밑에 한번 살펴보시겠어요?”
가리키면서도 반신반의했으나, 가버린 켄타우로스는 잠시 뒤 정말로 편자를 세 개를 들고 와서 카운터에 짤그랑 내려놓았다. 편의점에서 말 편자를 도대체 왜 파는 건데?
게다가 바코드도 제대로 달려 있고. 찍어보니 개당 10,950원이란다. 그리고 투 플러스 원.
“21,900원입니다.”
“세 개에?”
“두 개요. 하나는 투 플러스 원이라서.”
“어, 개꿀. 잠만요. 여기 22,000원… 100원짜리 안 주셔도 돼요. 안 그래도 지금 잔돈 잔뜩 있어갖고.”
“네.”
그러고는 바나나 우유도 팔고, 담배도 마저 팔아서 보냈다. 끙끙대던 점장은 이제야 할 말을 찾은 듯했다.
[ 일단 여긴… 다른 세상 사람은 못 와. ]“그건 제 세상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 그래? 음… 혹시 찬이 넌 아는 거 없어? ]“제가 아는 건 천장 시멘에 구멍 뚫을 때 드릴 잡는 요령, 뭐 이런 것밖에 없는데요.”
[ 어떻게 잡는데? ]“개머리판 부분을 어깨에 받치고, 밀어 올리듯이 뚫으면 돼요. 드릴 모터가 마모되긴 하는데, 그 짓거릴 해야 겨우 뚫리는 걸 어떻게 해.”
근데 이 소릴 내가 왜 하고 있냐?
점장은 ‘오오….’ 하며 작게 감탄하는 듯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편의점은 이 세계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하고 있단다.
그에 따라 편의점 위치도 이동하는데, 때로는 학원가 앞, 때로는 도심지 사거리, 드물게는 마왕성 앞에서도 장사를 한다나 뭐라나.
마왕성에서 장사를 하면 세계평화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용사 놈이 우리 편의점에서 판 소주병에 맞아 머리가 깨지든 말든 내가 알 게 뭐야.
당장 궁금한 건 하나뿐이었다. 다른 세상 사람인 내가 대체 왜, 어떻게 여기 올 수 있게 된 것인가.
[ 당장은… 나도 잘 모르겠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갖구…. ]그렇다고 하니, 방향을 살짝 틀어서 다시 물어봤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
[ …굳이 찬이가 아닐 이유도 없지. ]“이유가 없긴 왜 없습니까, 전 말 대가리 가면 쓴 사람은 봤어도, 사람 대가리 가면 쓴 말은 진짜 쌩판 처음 본다니까요? 게다가 그게 가면조차 아니고, 사람 말을 하고….”
[ 찬이 네 세상에는 켄타우로스가 없었나 보네…. ]“점장님 세상에는 29세 개백수가 없었나 봅니다, 저 같은 놈이 평범한 게 아니라는 걸 보면요.”
대화하며 점점 목소리가 까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편의점 알바를 하러 온 거지, 환상특급을 타러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장이 일부러 날 이 편의점에 처박았단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날 후려친 주먹이 모르고 휘두른 주먹이라 해서 아프지 않을 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도 없는 거다.
점장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했다.
[ 알겠어. 그럼… 계약서는 파기할게. ]“네?”
[ 이건 사고 같은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계약서, 파기. 맥아리 없이 허공을 맴돌던 내 정신머리가 이 두 단어를 듣는 순간 퍼뜩 되돌아왔다.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일단 여긴 돈만큼은 확실히 쳐준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12만 원, 주말도 근무하니까 단순 계산으로는 30일 360만 원. 그걸 내가 버틸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금액적인 부분은 일단 합격이다.
그리고 교통편. 이것도 알바 구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버스 타고 다니기 시작하면 일일 교통비만 3천 원 가까이 빠지는데, 한 달이면 9만 원이 날아가잖아. 최저시급으로 따지면 하루치 알바비가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허나 여긴 걸어서 3분 거리라 그 점은 문제가 없다. 편의점이 날 처박은 채로 이세계로 날아가 버린다는 게 문제지만, 일단 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니 이것도 합격.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저 이종족들한테 내가 죽을까, 안 죽을까? 이게 제일 중요한데.
“점장님. 제가 뱀파이어한테 3,000mL 정도 채혈당하거나, 고블린 무리한테 몽둥이로 두들겨 맞거나, 사람 대가리 말들한테 발굽으로 짓밟힐 일은 없을까요?”
[ 그럴 일은 없지! 옛날이라면 모를까. ]“옛날에는 어땠길래.”
[ 채혈하다 만 피나 몽둥이, 발굽 편자들이 온 사방에 날아다녔지. 지금은 법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럴 일 없어. ]여하튼 지금은 괜찮다고 하니 일단 넘기고.
여길 때려치우면 난 어떻게 되는가?
직장 구하느라 한 달, 알바 구하느라 2주를 공쳤다. 도합 한 달 반을 쉰 셈인데, 여기 알바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거다. 최소한 두 달 안엔 절대 안 끝났겠지.
그 짓을 계속할 바엔 그냥 시급 많이 주고, 교통편 좋은 이 알바가 낫지 않을까?
미친 생각인 건 나도 알지만, 현실적으로 이만한 알바를 또 구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돈과는 별개로 상사 성격이 쌍놈이었다면 때려쳤겠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성격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고….
한참 고민하다 겨우 결론을 내렸다.
“…점장님, 계약서 파기하지 마시구요.”
[ 어… 하게? ]“해보게요.”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람이 쉬운 일만 하고 살아.
[ 정말 괜찮겠어? ]“안 해봐서 모르겠으니까 해보겠다 말씀드린 거죠. 아니면 제가 지금 겁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서 당장 그만둬야 되는 게 맞아요? 보호 마법 걸려있어도?”
[ …아니. 보호 마법은 확실히 걸려있으니까, 위험하진 않을 거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당장 일하면서 위험까진 못 느꼈다.
금발 트윈테일 뱀파이어는 액면가가 어렸을 뿐이고, 고블린은 싸가지가 없었을 뿐이고, 켄타우로스들은 다그닥 소리가 시끄러웠을 뿐 꼬장을 부리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29년 인생 살면서 깨달은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의 돈 벌어먹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고, 둘째는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단 것이다. 그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수십 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돈 버는 데에 쏟아부으며 살 리가 없잖아?
내 목숨이 시급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를 저울질해봐도, 이만큼 알바비 주는 곳은 절대 못 찾을 것 같다. 이게 아니면, 사자 이빨 닦으러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도 전화는 끊지 말아주세요. 피곤하시단 건 알지만….”
[ 괜찮아, 나 안 피곤해. 오랜만에 쉬니까 엄청 좋은데, 뭐. ]“얼마 만에 쉬시는 거길래.”
[ 음… 몇 달 됐나…? ]몇 달간 24시간 풀근무를 뛰었다고? 이것도 매지컬 파워인가?
아직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도 물어보려 했는데, 그러진 못했다. 때마침 손님 하나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손님도 결코 양반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람인데, 머리는 삽살개였다.
털로 덥수룩해서 아예 얼굴이 보이질 않았고, 카드를 내미는 손엔 육구가 또렷이 보였다. 왜 다짜고짜 카드부터 내미는가 싶었는데, 말을 듣고는 바로 이해가 됐다.
“티―마니 잔액 확인 좀 해주어.”
“…아.”
암, 그럼요. 물론 해드려얍죠.
삽살개 목소리가 아주 노인 목소리라 조금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포스기를 조작해 잔액조회를 해줬더니, 1,880원이 남아있더라. 딱 버스 한 번 탈 돈이네.
“1,880원 남아있네요, 손님.”
“그랴.”
그러고선 뒤돌아서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날 돌아보면서는 물었다.
“그러니까, 1,880원 남아있다는 거쟈?”
“네.”
“이 교통카드에?”
“네, 그 교통카드에요.”
“그럼 이 교통카드에 1,880원이 남아있다는 거고?”
“어… 기계엔 그렇게 나오는데요.”
“왜?”
왜 1,880원이 남아있는지를 도대체 왜 나한테 묻는데?
적당한 대답이 도저히 떠오르질 않아서 아예 아무 말도 안 했다. 결론이 나오든 말든 제발 가줬으면 해서였다. 허나 삽살개가 아무리 기다려도 떠나려 하질 않았기 때문에, 내가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그… 80원 남은 건, 봉툿값 때문 아닐까요. 봉툿값이 20원이니까.”
“난 지금 봉투 안 샀잖여.”
“예전에요, 예전에.”
“근데, 왜 이 교통카드에 1,880원이 남아있는 걸까?”
“저야 모르죠. 전에 얼마를 충전하셨는지, 사용 내역이 어떤지는 손님 기록인데.”
“젊은 청년은 뭐, 아는 거 읎어?”
방금 저야 모르겠다고 말했잖아요?
삽살개 노견이 이렇게 나한테 되물어본 게 꼬박 5분이다. 딴 손님 오면 일해야 한다고 보내기라도 할 텐데 이럴 때만은 꼭 손님이 더럽게 안 와.
“이상하네, 왜 1,880원이 남아 있을까….”
이후 몇 분을 더 고민하던 삽살개가 마침내 밖으로 나가고, 곧바로 점장에게 말했다.
“방금은 삽살개 머리를 한 개사람 한 분이 오셨는데요.”
[ 코볼트네. ]“좀… 기억력이 안 좋으세요? 코볼트분들?”
[ 종마다 달라. 리트리버 머리 하신 분들은 좀 낫고, 치와와 머리 하신 분들은 좀… 예민하지. ]마침 치와와 대가리 손님 한 분이 왔다.
“어서 오세요, 손ㄴ”
“씨발, 칫솔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