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0)
이세계 편돌이-299화(300/331)
299. 그냥 아는 사람 얘기 (8)
* * *
편의점 화장실을 깔끔히 청소하는 게 매장 매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느냐 묻는다면, 그딴 거 없다. 애초에 손님들이 편의점 화장실을 쓸 일 자체가 거의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왜냐? 편돌이가 문을 안 열어주니까.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한 예시를 하나 든다면, 편의점은 취객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다. 예시 끝.
“하지만, 진짜 급한 손님이 찾아오실 수도 있잖아요.”
“그게 토악질이 급해서인지 볼일만 급해서인지를 어떻게 알아? 너처럼 일일이 미래 들여다보고 사는 것도 아닌데.”
“하긴.”
“그리고 진짜 볼일만 급해 보이는 손님들도 어지간해선 화장실 안내해 주지 마라. 그 손님들 대부분이, 그… 이미 늦은 경우가 많아.”
허나 나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편돌이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때도 좋은 대안이 있다. 매장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공용화장실 지리를 미리 숙지해 두는 것이다.
이 매장 경우에는 코앞에 지하철역 출입구가 있는 덕에, 나도 손님들이 화장실을 찾거든 늘 그곳을 안내해 주고 있다. 말 한마디를 덧붙이며 말이다.
‘저희도 화장실 따로 없어서 거기로 가요.’
이러면 어지간해선 뭐라 안한다. 매장에 화장실도 없냐며 따질 시간에 몇걸음 더 걷는 게 훨씬 미래지향적이거든. 여기에 오오― 하며 감탄하다, 갑자기 의문이 생겼는지 고개를 기울이는 유리.
“그럼 오빠는 여기 청소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요. 손님들 쓰시는 것도 아닌―”
“우리 쓰는 곳이니까 열심히 청소하지, 왜 하겠냐고. 너는 냄새나는 화장실 쓰고 싶어?”
“이해했어요.”
“알았으면 헛소리 그만하고 세면대 테두리나 닦아, 나 씨. 여기 칫솔로 쓸어보면 물때 장난 아니게 나오거든.”
“와, 진짜네.”
이렇게 잡담 섞어 가며 청소하고 돌아오니 오전 7시. 해가 주변 상가들 옥상 언저리에 걸릴 시간이 됐고, 매장에도 조금이나마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와 눈을 마주친 점장이 뭔가를 말하려 했으나, 입에서 말이 아닌 하품이 튀어나왔다. 아예 눈물까지 글썽이는 게 아까 하던 말들 대부분이 허세였던 듯하다.
“어제 제대로 주무신 거 맞아요?”
“…하암. 유리 안 도와줬지? 그거 벌 준 거니까.”
“지가 알아서 잘 하던데요, 뭐. 그나저나 어제 제대로 주무신 거 맞냐니까요.”
“잘 잤다니깐 그러네… 아. 맞다, 참.”
나 살던 곳 갈 준비한다고 밤 샜던 거 아니냐. 물어보려 했는데, 점장이 불쑥 카운터 밑으로 몸을 숙이고는 내 의문을 다 날려버리는 물건을 꺼내 내밀었다. 유리 녀석 폰이었다.
“아까 전화 왔었어, 유리야. 내가 받았구.”
“발신자는― 점장님께서요?”
“응. 지금은 유리 바쁘니까, 딱 4분 있다가 다시 걸라구 했어. 다른 얘기 한 건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특히나 강조해서 말해온다. 폰을 건네받은 유리는 잠깐동안 말이 없었고, 난 나대로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4분.
“유리야. 너 어젯밤에 톡했었잖냐. 정확히 4분 지각할 거라고.”
“네. 1분 일찍 왔지만요.”
“그거, 전화 걸어도 될 시간을 딱딱 정해두고 받는 구조냐?”
“제가 정한 건 아니에요.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미래의 이 녀석은 현재의 이 녀석이 겪을 일들을 미리 다 겪어봤을 테고, 주변에 통화를 엿들을 사람이 없을 시간대가 언제인지도 다 꿰고 있을 터다. 굳이 직접 정할 필요가 없긴 하겠다.
“어제 전화도 미리 정해둔 시간대에 걸려 온 거고요. 제가 그 자리에 없었을 뿐이지.”
“그게 1분 일찍 와서 그런 거고?”
“그런 거 같아요.”
유리가 지갑을 찾겠다며 뛰쳐나간 것과 전화가 걸려 왔던 텀이 1분이 채 안 된다. 만약 정해둔 대로 출근했었으면 전화도 밖으로 나가기 전에 왔을 거고.
그랬으면 이 녀석도 정상적으로 전화를 받았을 테니, 내가 미래의 이 녀석에게 ‘그러게 정확히 4분 늦게 나가라니까―’ 라며 푸념하는 걸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리는 유리.
“생각해 보니 희한하네요. 일 시작한 뒤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
― 우웅….
고민할 시간조차 안주고 전화가 걸려왔다. 점장이 자기 손목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는 걸 보니, 유리 전화를 받고 끊었던 게 딱 4분 전이었나 보다.
우리 눈치를 슬쩍 본 유리가 전화를 받고는, 십수 초간 알았어. 이해했어. 등등의 말로만 대답 해댔다. 기다리는 사이 옆에서 슬쩍 말을 거는 점장.
“혹시, 찬이 얘기두 슬쩍 해볼 수 있어? 지나가듯이.”
“저는 갑자기 왜요?”
“그런 게 있어.”
“어… 괜찮으신가요. 오빠.”
고민하다, 잘은 몰라도 시키는 대로 해보라고 했다. 점장이 장난기가 쏙 빠진 대마법사다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다. 뭐라도 이유가 있겠지.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에 대한 걸 입에 담았고, 잠시 후 끊고는 폰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밤길 조심하라고 하는데요.”
“걔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밤길을 조심하래냐. 화장실 안 열어준 복수라도 당한대?”
“일부러 걷지만 않으면 별일 없을 테니 안심하래요. 그런데 이건 왜….”
“덕분에 궁금한 게 좀 풀렸어. 고마워, 유리야.”
“그러니까 그 궁금한 게 뭐냐니까요.”
이걸 유리와 동시에 물었으나, 대답하는 대신 바깥을 바라보며 말을 돌리기만 했다. 나 졸리니까 집에 갈래. 바래다주라, 찬아.
나랑 단둘이서만 얘기하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유리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점장이 입을 열었는데, 거의 반쯤 확신하는 어조였다.
“저거 성장통 맞네. 초기 단계구.”
“…지금 이거 마법 얘기죠?”
“응. 저 마법이 태어난 순간부터 있었구, 시전자 의지를 따지지 않고 써지는 구조잖아. 저런 마법들 구조에 관해 거의 정론으로 통하는 이론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야 매―직 백혈구 이론. 외부의 환경 변화에 마법이 적응해 마법 구조나 작동방식이 스스로 변하는 경우가 몇몇 있다고 한다.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에 저항하듯 말이다.
“백혈구한테 우리가 직접 명령을 하는 건 아니잖아. 꿀물 먹구 체온유지 잘 하구,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게 전부지.”
“일단 그러시다니 그런 줄 알겠습니다. 그렇다 치고, 지금 제가 그 바이러스인 거에요?”
“우리한테 들켰다는 지금 상황 자체가 바이러스지. 그리구, 유리가 감기에 제대로 걸린 게 이번이 처음이잖아. 아마 미래 유리들 고민 엄청 하구 있을 걸?”
지금까지 저 녀석은 누군가에게 들킨 적이 없고, 때문에 누군가에게 들켰을 경우의 미래 모두가 가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부로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게 됐다.
때문에 앞으로 발휘되는 모든 미래예지 마법이 ‘기원점의 마법이 들킨 이후’ 가 기점이 되어버렸고, 이게 어떤 식으로든 마법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것. 듣던 도중 답답해서 물었다.
“제가 딴 마음 먹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해도요?”
“나도 지금은 그래. 하지만 기회가 1억 번이 있으면, 그 중 한 번은 변심해서 유리 얘기를 다른 데에 할 수도 있잖아. 나도 1억 번 넘도록 마음 변치않을 자신까진 없고 말야. 찬이는?”
“저는, 아니 솔직히 이거 가불기잖아요. 말이 1억이지….”
“하지만 저 마법은 그 1억 번 중 한 번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구. 안 그러면 자기들도 큰일나니까.”
마법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는 점장도 예상이 안된다고 한다. 점장이나 내 더 큰 비밀을 알아내려 들 수도 있고, 아예 반마법이나 점장 마법을 뛰어넘으려 들 수도 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실현 가능성은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낮댄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점장 설명은 여기까지가 끝이었고, 다음엔 느닷없이 드리프트를 꺾어버렸다.
“근데, 난 저 변화를 엄청 긍정적으로 봐.”
“그건 왜요?”
“지금까진 못했던 걸 해낼 수도 있다는 거잖아. 잘 풀리면, 찬이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어째서 찬이인지도 유리가 대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이야 있겠지. 언젠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나만 여기 올 수 있는지를 알게 될 날이 올테고, 그 때도 난 저 녀석 붙들고 있을 거다. 저 녀석 나가면 오전 매장은 누가 봐?
하지만 그 미래의 내가 그걸 유리에게 말해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 이유가 좋은 이유인지 나쁜 이유인지조차 짐작이 가는 게 전혀 없으니….
“그 때면, 나도 그거 듣고 싶어서라도 붙잡고 있을거구.”
“허어….”
“그렇게 안 되더라도, 성장하는 마법사 보는 건 늘 즐거웠으니까… 이번에도 즐겁겠지.”
사실 이게 가장 큰 본심일지도 모르겠다. 왕년의 대마법사가 햇병아리 마법사 커가는 것 좀 보겠다는 거. 그 성장이 왜 하필이면 나 일하는 매장에서 일어나는 건지는 쥐뿔도 모르겠다만….
“이상, 버스 왔으니까 끝. 듣느라 고생했어, 찬아.”
“아뇨. 뭘요.”
버스가 코앞 신호등 앞에 멈춘 게 보였고, 그 탓에 푸념도 못했다. 핸드백을 뒤적거리던 점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중, 아직 듣지 못한 얘기가 하나 있단 걸 깨달았다.
“근데 점장님, 나오기 직전에 제 미래 물어보셨잖습니까. 그거 정확히 왜 그러신 거에요?”
“아, 그거. 미래에 유리가 바뀌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도망치고 싶어하는지 확인해보려구 했어.”
“아하… 예?”
“지금은 찬이를 제일 신경쓰고 있을 테니까, 찬이에 대한 거 대답 안해주거든 일을 관둬서 그런 거라구 생각했었지. 듣고 나서는 많이 안심했어.”
듣고 보니 합리적으로 들리긴 하는데, 정작 난 이게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단 말이다. 대답하고는 가방을 마저 뒤적거리다, 아차 싶었는지 말을 마저 잇는 점장.
“방금은 말이 엄청 많이 생략됐다. 미안해, 찬아.”
“아뇨. 그거 중요하죠. 고용주시니까.”
“유리 대답에 대한 건, 글쎄. 밤길을 조심한다고 하면….”
“저기요, 손님! 타실 거에요, 마실 거에요?”
하필이면 묻는 타이밍도 안 좋아서, 점장도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말 그대로 조심하면 별 일 없지 않을까?”
* * *
그래서 일찍 일어나 출근했고, 무척 조심했다. 골목길? 외진 곳? 일부러 다 피해가면서 출근했다. 화장실을 안내받지 못했던 손님들이 언제 어디서 몽둥이를 들고 나타날지 몰라.
성의를 다해 사리자는 심정으로 횡단보도의 흰 부분조차 일부러 피해서 건넜고, 그 덕에 매장 정문까지도 일말의 불상사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찬이, 안녕.”
“어? 이찬 너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
오랜만에 윤하 누나도 만났고 말이다. 오늘은 평소답지 않게 옷이 깔끔한 반면 이마에 땀이 맨들맨들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물류라도 나르고 왔거니― 생각하고 말았었다.
“오늘 늦을까봐 불안해서 좀 일찍 나왔어.”
“뭐가 불안해. 너 평소에도 지각 거의 안 하지 않아?”
“거의가 아니라 아예 안했지. 나 무사고 50일임.”
“50일? 너 한 반년 일한 거 같은데, 아직 두 달도 채 안 됐냐?”
“사실 50일인지도 잘 몰라. 대충 찍었어. 여튼, 목마르면 마실 거라도 줘?”
이걸 물을 때에만 해도 10일어치 밤길 조심은 오늘 다 했다는 확신이 있었고, 때문에 물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었다. 여기에 괜찮다며 손을 젓고는, 카운터에 기대고 있던 몸을 움직이는 누나.
“언니가 아까 마실 거 줬어. 그나저나, 찬아.”
“뭐야. 불안하게 왜 갑자기 분위기를 잡―”
“드디어 때가 됐다.”
이걸 들은 직후에는 내 정성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자켓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는 내게 불쑥 내밀어오는 누나.
“이거, 사무실에서 정식으로 발주한 게이트 공략 계약서거든?”
“…….”
“일단 사인부터 하고, 뒷일은 나중에 얘기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