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2)
이세계 편돌이-301화(302/331)
301. 걸어서 게이트 나들이 (2)
* * *
내가 헌터라는 직종의 일과나 생태를 모두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더럽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 직접 굴러봐서 특히 잘 안다.
그리고 위험군 직업들만큼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곳도 없으니, 누나가 ‘곰탱이가~’, ‘그 곰탱이~’ 이러며 자기 상사를 잘근잘근 씹어대던 것도 사석에서의 일탈일 뿐 밖에서는 깍듯하게 굴 줄로만 알았다.
근데 아니네?
“아, 또 그 놈의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가 아냐. 실제로 해이해졌다는 게 눈에 보이니까. 10여년 전만 해도-”
“병아리 시절 얘기까지 꺼내려 드는 게 잔소리가 아니면 뭐가 잔소리에요?”
유교 문화권에서 29년을 살아온 나로써는 듣도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부하직원이 짜증을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이 대놓고 투덜거리는데, 직장상사는 저걸 표정변화 하나없이 다 들어주고 있다.
그것도 보통 직장상사가 아닌 불곰을 상대로 말이다. 평생 막말을 해선 안 될 대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필시 3순위 안에 직장상사와 불곰이 둘 다 포함될 것이다. 부동의 1위야 당연히 부모님이고…
생각하며 둘을 마저 지켜보았다. 귀로만 들으면 위태롭기 짝이 없는데,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때 서 부소장 직급이 병아리였나?”
“알껍질 박차고 막 튀어나온 병아리였죠. 졸업하자마자 지금 사무소에 머리 박았으니까.”
“세월 참 무상하군. 그때만큼은 눈이 초롱초롱했는데 말이야.”
“뭐래, 자기가 싸움닭으로 키워놓고는…”
누나나 불곰이나 서로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익숙한 듯 했다. 불곰이 턱을 발톱으로 긁적이며 능청을 떨자, 코웃음을 치고는 마저 말을 잇는 누나.
“아무튼 뭔 생각 하고 온 건지 아는데,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실내낚시터 가서 송사리나 잡고 계세요.”
“내가 널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저도 절 못 믿어서 부소장 안 하려 했다고요, 누가 시키지만 않았어도.”
이 물음에 불곰 소장 왈, 억울하면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어야지.
여기에 누나 대꾸가 또 가관이었다.
그거 말 나온 김에 말인데, 저 2년째 가위바위보 지고만 있잖아요. 이거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거 아니에요?
대화가 진전이 될 만하면 잡담이 시작되고 있다. 이후로도 말을 더 주고받는 게 대화가 끝날 기미가 없어서, 아예 짜투리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내 할 일이나 하련다.
우선은 인사부터. 출입금지 테이프를 쥔 소녀에게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보고는 크게 귀를 꾸벅인다. 내가 아는 얼굴이 맞았다.
“야밤에 일하느라 고생한다. 엘린.”
“아뇨! 뭘요. 심사관님께서도 고생 많, 아니지. 사장님께서도 고생 많으시네요!”
몇 주 전에 매장 도둑놈들을 잡는 일로 우연히 엮였고, 지금은 내가 연줄을 대어 헌터 사무소에서 열심히 막내 생활 하고 있는 엘프 녀석이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건 어이없긴 해도 카드게임 이벤트 매치 무대였고, 텐트로 돌아가는 걸 뒷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이 녀석이 동나잇대 애들에 비해 머리가 무척 좋은 녀석이란 것도 그때 확실히 체감했다.
“그날 운영측에선 뭐라든. 전년도 우승자가 뉴비한테 지냐면서 눈치 주고 그러진 않았어?”
“전혀요. 사장님께서 중고뉴비이신 거라고, 그래서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위로 엄청 해주셨고… 아! 저랑 사장님께서 원하면 자리를 한 번 더 만들어 드릴 수도 있다고 하셨-”
“난 그 똥망겜 다신 할 생각 없으니까, 너도 꿈 깨라.”
“히잉.”
내 대답을 듣자마자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본인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난 트라우마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카드를 다시 만질 생각이 없다.
아니, 어떻게 무작위 40데미지가 죄다 내 명치에 들어오냐고….
서로 각자의 이유로 울적해하던 도중, 엘린이 늘어진 테이프를 돌돌 말아 올리고는 누나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은 반마법사 자격으로 오신 건가요? 부소장님이랑 같이?”
“어. 아까까지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글쎄다.”
옛날에 사무소에 빚을 진 게 있고, 그 빚을 날로 먹어보려 했는데 저 불곰 소장님이 여기 계실 줄은 몰랐다. 적당히 둘러대려다, 그냥 솔직하게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쟤한테 외주를 넣는 것도 마음에 안들기는 한데, 이건 그렇다고 칠 수 있어요. 저지른 일이랑 액면가가 안 맞는 일을 시키려 드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지!”
둘러대기도 전에 누나가 목청 높여 전부 실토해 버렸기 때문이다. 누나는 불곰 의도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난 된다. 중소기업 운영이란 게 다 뻔하다.
“엘린. 너 혹시 사무소에서 서류정리도 해봤어?”
“네! 방금까지도 하다 왔거든요. 액셀이랑 문서도 다뤄보고, 또…”
“그럼 물어봐도 되겠네. 내가 헌터 쪽 일 외주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런데, 보통 반마법사 페이 얼마쯤 되는지 아냐? 대충이라도.”
묻자마자 잠깐의 텀조차 없이 대답을 늘어놓는다. 이번처럼 D급 규모는 30만 언저리고, C급은 D급의 평균 1.5배. B급 이상부터는 위험수당이 추가로 붙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댄다.
자세한 금액은 말 못해도 최소한 자기 2주일분 봉급은 될 거라는데, 막내 기준 2주일치 봉급을 많게 봐야 할지 적게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내가 막내 때 돈다운 돈을 받아봤어야 알지.
“그러면, 음. 제가 이번 달에 받을 봉급 액수라도?”
“아무튼 직원 인건비 쪼개야 될 정도는 된다는 거잖아. 그거면 됐어. 됐고, 너랑 저 소장님 말인데… 대체 여긴 왜 온 거냐?”
“소장님이랑 저요. 저는 부르셔서 온 건데, 소장님께서는… 잘 모르겠어요. 게이트 쪽에 온다고만 하셨었거든요.”
들은 뒤 다시 한번 둘을 바라보았다.
엘린 이 녀석이야 야근할 사람 손 들어보라는 말에 막내답게 손 들며 따라왔을 텐데, 저 소장은 여기 있는 이유가 당최 짐작이 안 된다.
“아, 소장 일이 그렇게 빡세면 똑같이 가위바위보로 정하던가요! 합리적이잖아요.”
“합리적이지 않아. 난 신체구조상 가위를 낼 수가 없으니까.”
“또 선량한 불곰인 척하시네. 짜장면 먹을 때 젓가락질은 겁나게 잘하면서…”
누나가 몰래 외주계약서 들고 나온 걸 문제 삼으려고 온 거면, 그냥 감봉처리 하고 나나 누나를 내쫓으면 거기서 끝날 일이다. 왜 안 그러고 저렇게 태평하게 대화나 하고 있는 건데?
아직까지도 끝날 기미가 없긴 매한가지여서, 그냥 내버려 두고 아까 하다 말았던 일들을 마저 처리했다. 엘린을 도와 골목 앞뒤 출입구에 출입금지 테이프 붙이고, 야광 꼬깔콘 두 개 세우고.
이걸로 게이트로부터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이게 맞냐는 생각에 두른 테이프만 손가락으로 튕기던 중, 드디어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요약하면, 아무튼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으시다?”
“네가 내 지시를 따른다면, 없다. 따를텐가? 서 부소장?”
“암요. 이찬 저 녀석 잔머리는 잘 돌아가니까요. 알아서 잘 하겠지.”
내가 알아서 뭘 잘해?
이걸 미처 묻기도 전에 누나는 전자담배를 물어 입을 다물어버렸고, 소장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불곰이 가로등을 등지고 서있으니 무섭기는 겁나게 무섭다.
“테이프는 꼼꼼하게 잘 쳤나?”
“네! 꼼꼼하게 잘 쳤고, 혹시라도 근처에서 서성이는 분들 계시거든 불안해하시지 않을 선에서 설명드리고 다른 길로 안내할게요.”
“아무것도 안 알려줘도 하나를 깨우치는구나. 병아리.”
엘린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 짓고는 곰 발바닥으로 머릴 슥슥 쓰다듬었고, 이젠 내 차례였다. 미소까지는 나도 전혀 안 바라니, 최소한 눈가에 그늘진 것만이라도 어떻게 해주면 안 되나?
“벨 소장이다. 이름은 기억하나?”
“옙.”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마. 너는 게이트 공략을 앞둔 헌터들 치고는, 태평하고 긴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어쩜 이렇게 사람 속내를 잘 아시나 모르겠다. 순간 또 대화가 길어지겠다고 지레짐작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불곰 소장이 내 바로 왼쪽의 담벼락 중 한 곳을 발톱으로 슥슥 그었다. 가위표 모양 흠집이 난 담벼락을 둘러보다, 앞발을 작게 젖혀 잽을 치듯 때린다.
이 잽 한 번으로 담벼락이 산산조각났다. 후두둑 무너져내린 담벼락 너머로 일상적인 것 몇 개와 그렇지 않은 것 하나가 보였다. 불꺼진 주택의 창문, 수풀, 야외 빨래건조대. 그리고…
“나도 대기 중엔 간단한 잡담 정도는 허용하는 편이다.”
“…이 게이트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단 얘기시죠.”
“그래. 출입구가 유의미한 크기만큼 확장되는 추정 시각이 오후 10시 20분.”
현재 시각 오후 10시 21분. 내 인생 두 번째로 빌어먹을 게이트를 마주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놈은 전에 마주했던 그 빌어 처먹을 것보다는 감탄사를 훨씬 덜 유발했다는 점이었다. 입구가 어린애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까이 서있음에도 작은 미풍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한없이 새카만 것만은 전에 본 것과 똑같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출입금지 테이프 밖에만 서있더라도 빨려들어가는 건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하던 와중에 등 뒤에 뭔가가 쿵 떨어지거나 헉헉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각 1m 남짓한 크기의 은색 슈트케이스, 그리고 그걸 나르느라 죽을 표정이 된 엘린이 낸 소리였다.
“안전복, 장갑 및 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반마법 장비들을 담아놨다. 모두 마법청 규격을 준수하는 것들이야.”
“감사합니다. 근데 안전복까지는 제가…”
“안전복은 외주를 받는 모든 반마법사들에게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보험 문제로 일이 복잡해지니까.”
“…어우. 그럼 입어야죠.”
안 입으면 문제 생겼을 때 보험처리 못 해주니 귀찮게 굴지 말고 입으란다. 허리숙여 슈트케이스 잠금쇠를 딸칵이던 도중에 소장이 마저 말을 이었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마지막으로, 이 게이트는 네가 먼저 진입해라.”
“예? 지금 당장요?”
“오후에 이 게이트 내부 공간의 대략적인 지도를 요청했을 때, 이 게이트에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번 게이트는 너머까지 탐지 마법이 발휘되지 않는다더군.”
쉽게 말해, 이 게이트 출입구 자체에도 마법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내가 이런 일 해결하러 온 반마법사니 이 문제도 나보고 해결하라는 소리고.
아까 누나가 알아서 잘 하겠다느니 뭐니 했던 말이 이걸 의미하는 거였나보다. 황당함에 불곰 얼굴만 올려다보고 있자니, 자기 낚시조끼에서 폰을 꺼내 켜고는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재시각 오후 10시 23분. 게이트에 진입할 때, 우리 사무소는 진입 과정에 10분 정도를 소요한다. 외주 없이 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를 얘기하는 거야.”
“아뇨. 저기.”
“네 녀석이 우리보다는 더 빠르리라 계산하고 있다. 부소장이 반마법사를 칭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한데, 저 뭐 좀 여쭤볼게요.”
“뭐지?”
“여길 제가 어떻게 들어가요?”
진짜로 몰라서 물어봤다. 뭔가 어플을 키려는 듯 발톱을 움직이다, 내 말을 듣고는 동작을 멈추는 불곰. 내 말이 징징거리는 말로 들린 모양이다.
“왜. 못하겠나?”
“아뇨. 못하겠다는 말을 드리려는 게 아니라…”
대답에 앞서 게이트를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람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일체의 일그러진 부분조차 없다는 얘기다.
“이거 마법으로 막힌 거 아니잖아요. 그냥 벽이지.”
“…벽?”
“예. 아니면 바위든 뭐든 간에요. 건너편 게이트가 탁 트인 곳에 생긴 게 아니라, 그냥 바위나 벽 안쪽에서 생겨난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