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5)
이세계 편돌이-304화(305/331)
304. 걸어서 게이트 나들이 (5)
* * *
동굴에서 일을 다 보는 데에 누나 말대로 딱 30분이 걸렸고,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길 안내 한 번 하고, 마지막에 막타만 쏙 빼먹는 정도?
길 안내조차도 순수 내 능력으로 한 건 아니었다. 동굴 입구의 두 갈래길 중 어느 쪽으로 갈지를 잠깐 토의했었는데, 한쪽은 사방에 녹색 점액질이 찐득하게 엉긴 고난의 길이었다.
반면 다른 한쪽은 새카만 암흑 속에 반딧불이 같은 게 둥둥 떠 있을 뿐, 외관상으로는 평범했다. 점액질 쪽 길에 돌멩이를 툭 던진 뒤, 돌멩이가 점액질에 녹아내리는 걸 지켜보며 넌지시 말해봤다.
“누나. 이 찐득한 길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함.”
“쉬워 보이는 길일수록 오히려 함정이 있을 거다- 같은 거면, 그런 영화적 장치 없으니까 마음 편히 먹어. 여긴 사시사철 한결같이 개떡같아.”
“개떡같은 곳이라는 건 나도 아는데….”
어제 아침에 유리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밤길 조심해라.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골목이란 골목은 다 피해 다녔음에도 이렇다 할 이득을 못 봤었다.
아까까지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으니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시커먼 길을 계속 보고 있자니 그 녀석이 뒤이어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일부러 걷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래요.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내부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반딧불이가 하늘의 별. 어두운 걸 밤하늘이라고 치고, 여길 들어가면 그때야말로 밤길을 ‘일부러’ 걷는 게 되지 않나…
물론 확실하진 않다. 그래서 승부도 안 걸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오른쪽을 골랐고, 사방에 널린 점액질은 체질로 대충 해결했다. 원체 찐득해서인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사라지더라.
이후, 회색으로 굳은 동굴 내벽을 짚어가며 동굴을 통과했다. 유리 녀석 말대로 동굴길을 걷는 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으나, 넓은 동공에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마수가 동공 한가운데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이다. 동공 바로 앞 모퉁이에 기댄 누나가 내부를 슬쩍 확인하고는 해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오오. 야, 이찬. 저거 봐봐. 빨리.”
“뭘 빨리 보라는… 아니 저건 또 뭐 하는 놈이야.”
“야광공룡이야.”
들은 직후엔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가지고 놀던 야광공룡 스티커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비중으로 따지면 야광이 1, 공룡이 99쯤 되는 공룡.
그것도 보통 공룡이 아닌 추정 몸길이 10m가량의 야광 티라노에, 심지어 이빨마저 네온색 야광인 무지막지한 놈이었다. 어쩐지 동굴 중간부터 유난히 내부가 밝다 했다.
더해서 안광마저도 일관적으로 야광이었으나, 다행히도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저놈이 우리 쪽을 등진 채, 동공 내부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덕분에 잠깐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D급. D급이라…
“누나. 늦게 물어보는 감이 있긴 한데, D급의 D가 정확히 뭐의 약자야. 뒈진다는 뜻인가?”
“뒈지기는 무슨. 너 쫄았냐?”
“그럼 안 쫄고 배겨? 저놈 위장이 내 집 평수보다 넓어 보이는데?”
“그만큼 둔해 보이잖아. 저런 놈 나오는 것도 다 감안해서 등급 매기는 거야. 잘 보고 피하면 쉽거든.”
나도 난이도 좀 낮추고, 리트를 800번쯤 시켜준다면 그땐 잘 보고 잘 피할 수 있다. 대꾸하려던 찰나, 해맑던 표정을 싹 바꾸고는 공룡 뒷편을 주시하며 중얼거리는 누나.
“일반적인 게이트에 한해서이기는 한데, 핵 근처에는 거의 항상 핵을 지키는 마수가 돌아다녀. 그 마수가 게이트 내에서 가장 강한 놈이고.”
게이트핵이 마력이 응집된 덩어리인 만큼 주변의 마력의 순도가 높고, 마력에 이끌려 모인 마수들의 영역다툼도 그만큼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해서 D급으로 책정된 규모를 감안했을 때, 이 게이트에서 저 야광공룡보다 강한 마수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설명을 마친 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치는 누나.
“잠깐 다리라도 풀고 있어. 갔다 온다.”
다음에는 뚜벅뚜벅 야광공룡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한눈을 팔고 있는 공룡의 등 뒤에 서서는 잠깐 골똘히 생각하는 듯싶더니…
“야.”
불렀다. 공룡이 육중한 몸을 돌려 부름에 응답했고, 꼬리로 바위벽을 후려갈겼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에, 벽에 깊은 자상을 남길 정도의 위력이었다.
보자마자 확신했다. 난 리트 800번 해도 저거 절대 못 피한다. 쩍 벌려지는 주둥이에서 침이 주륵 흘러내리고, 몸을 서서히 낮추며 달려들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누나 반응은 소탈하기 그지없었다.
“덤벼.”
읊조림과 동시에 공룡이 달려들었다. 단 세 걸음에 어금니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나, 누나가 더 빨랐다. 미리 위쪽으로 무언가를 던져놨다.
미리 벗어둔 자켓이었다. 뭉쳐있던 자켓이 허공으로 붕 치솟아서는 활짝 펼쳐졌고, 그 밑으로 머리를 들이민 티라노가 아가리를 쩍 벌리는 게 보였다.
그 순간, 펼쳐졌던 자켓이 공룡의 머리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자켓이 두개골을 짓누르며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안광을 내뿜던 눈이 순식간에 까뒤집히며 턱이 바닥에 처박혔으나, 몸은 멈추지 않았다.
관성 가득 실린 몸뚱아리가 머리보다도 훨씬 더 앞서나감과 동시에, 대나무가 부러지는 듯한 파열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런 뒤엔 고요해졌다. 티라노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다, 발로 콧등을 툭툭 건드린 뒤에야 날 돌아보는 누나.
“끝났으니까 나와, 이찬. 얘 목 부러졌다.”
“…어우, 씨.”
나 같은 심약자가 관람하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누나한테 다가가는 동안 일부러 천장만 올려다봤는데, 누나가 바로 눈치챈 듯했다.
곧바로 날 놀릴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번에는 위로로 들리는 말을 건네왔다.
“그래도 이찬 너 정도면 충분히 강심장이야.”
“내가?”
“헌터 일 처음 하는 반마법사들 대부분은 온갖 핑계 대서라도 안 오려고 하거든. 마수 알러지가 있다든가, 솔직하게 무섭다든가-”
“그, 알았으니까 빨리 끝내고 나가자. 지금 없던 알러지도 생길 거 같어.”
“그러든가. 핵 찾는 거 도와줘?”
안 도와줘도 된다고 했다. 공룡이 납작 엎드려 버린 덕에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동공 내부가 전부 보이게 됐다. 방금까지 공룡이 바라보고 있던 방향, 동공 안쪽.
그 안쪽에 눈에 익은 일그러짐이 보였고, 다가가면서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빨리 끝내고, 편의점 돌아가서 청심환이나 하나 사 먹자.
* * *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 제일 먼저 엘린 녀석이 슈트케이스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있는 게 보였다. 바로 옆에 세워진 생수병에는 잔량이 몇 방울밖에 남아있지 않다.
행인들 돌려보낸답시고 목이 타들어 가도록 말을 해댄 모양이다. 뒤에서 따라 나온 누나가 대뜸 장난기가 도졌는지, 엘린 등 뒤로 살금살금 걸어가서는 허리를 숙여 말을 걸었다.
“신참이… 농땡이?”
“으앗, 죄송해요! 제발 감봉만은!”
“병아리가 벌써부터- 뭐?”
“고향에 어머니께서 제가 성공하기만을 바라고 계세요, 그러니까 제발 해고만은!!”
동급생들 괴롭힘에서 벗어난 뒤로 성격이 밝아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밝아진 수준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애가 농담까지 할 줄 알게 됐다.
“장난, 장난이었어. 얘도 참,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사실 농담이었어요.”
“……농담?”
“소장님께서요. 선배분들 일 끝나고 긴장 풀어드리는 것도 막내 역할이라고, 아야야야!”
눈에 띄게 당황하던 누나가 엘린 말을 마저 듣고는, 한쪽 귀 끝을 붙잡아 잡아당겼다. 원체 귀가 뾰족한 종족이라서 그런가, 다른 종족들보다 배는 더 아파하는 것 같다.
“곰탱이가 시켰구나. 나 놀리라고.”
“아야얏, 네? 노, 놀리다니요? 소장님께서는-”
“상식적으로 사무소 부소장 골려 먹는 막내가 어디 있냐고. 엘린 너, 이거 귀 잡힌 채로 보고 들어. 벌이야.”
“잠깐만요! 노트랑 펜만 꺼내게… 아야야야!!”
띠동갑 연배 여자들끼리 잘들 노는구만. 누나가 보고 사항을 전달하는 사이, 난 조용히 내 할 일 했다. 우선 이 빌어먹을 화생방 보호의부터 벗은 다음….
엘린 녀석이 넣기 쉽도록 일부러 차곡차곡 포개어놨고, 다음엔 점장에게 바로 톡 보냈다. 지금 막 일 끝난 참이니 샤워만 하고 출근하겠다.
게이트핵을 없애는 동안 식은땀을 좀 흘려서였다. 전과는 달리 손바닥만 한 크기이긴 했지만, 파충류 같은 눈동자로 날 노려보는 것만은 판박이더라.
두 번은 안 당해준다는 심정으로 검지손가락으로 푹 찔러버렸다. 점장 톡이 늦어서 잡설을 좀 더 보냈는데, 이 부분에서 점장 대답이 돌아왔다.
[ 톡 내용 보면 별일 없었나 보네. 다행이다 ] [ 예. 다친 곳도 없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금방 갈게요 ]톡도 다 보냈으니, 이젠 누나한테 말만 해두면 된다. 바로 실행하려던 찰나, 켜진 폰 화면에 톡 한 줄이 더 올라왔다.
[ 오늘은 아예 출근하지 말구,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어때? ]안 된다. 내가 하루 쉬어버리면 그 하루치 일급은 누가 채워주냐고. 하늘에서 떨어지나?
[ 아예 유급휴가로 해줄게. 찬이 어제도 16시간 연달아 근무했으니까 ]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점장님도 피곤하실 거잖아요 ] [ 찬이도 알잖아. 나 찬이 오기 전까지는 혼자서 몇 달씩 근무했던 거 ]가슴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됐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던 사항이었다. 점장이 편의점을 시작한 추정 시기가 크게는 작년, 작게는 올해 초.
내가 알바로 들어온 게 5월 초였으니, 점장이 아무리 못해도 720시간 이상을 연속으로 근무해본 경험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졸린 거야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했겠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은… 글쎄….
이 이유 때문에서라도 휴가를 쓰기가 싫다. 예전이야 먹고 사는 게 목적의 전부였다지만, 이젠 점장이랑 노닥거리는 게 내 취미생활 중 하나가 되어버렸거든.
난 가능하면 잠 잘 자고 개운한 점장이랑 노닥거리고 싶다. 어떻게든 출근할 핑계거리를 찾으려 했으나, 점장은 늘 나보다 한 수 더 앞선 사람이었다.
[ 아직 윤하랑 안 헤어졌지? ] [ 윤하가 이찬 이 녀석이랑은 언제 밥 먹어 보나- 이러면서 노래를 불러, 맨날 ] [ 사실 맨날은 아니구, 이틀에 한 곡조 꼴이기는 한데 ] [ 더 듣다간 지겨워서 울어버릴지도 몰라 ]톡이 올라오는 속도로 짐작건대, 아까 매장을 나올 때부터 이렇게 하려고 정해뒀던 모양이다. 이후에는 점주로서의 직권을 남용하는 톡 두 줄.
[ 나 진짜 울어버릴 거라니까? 무섭지? ] [ 그러니까 무서운 꼴 보기 싫으면 윤하랑 맛있는 거 먹어 ]마지막으로는 ‘점장님’ 님께서 100,000원을 송금했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점장이 복지에 신경 쓰는 사람인 만큼, 이것도 유일한 정직원과 물류 기사를 챙겨주는 차원에서 보낸 거겠지만….
이것만은 차마 못 받겠어서 입금취소 누르고, 알아서 사먹겠다고 톡 보낸 뒤 폰 넣었다. 이즈음 엘린과 누나 대화도 슬슬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게, 게이트핵을 아무 장비 없애셨다고요? 톡 건드리는 것만으로?”
“저놈이 적당히 특이해야지. 여튼 이 부분은 그냥 보고하면 무조건 진위 조사 들어올 테니까, 창고에 적당한 중장비 하나 꺼내서 썼다고 적어둬. 혹시 모르니까 사용 흔적도 남겨놓고.”
“사용 흔적이라 하시면….”
“창고에서 망치 꺼내다가 한 대 후려치면 돼. 일단 보고사항은 이걸로 끝.”
애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친다. 저래도 되나 싶어 지켜보고 있었더니, 누나가 기지개를 크게 한 번 켜고는 입에 전자담배 파이프를 물며 물었다.
“이찬 너 이제 출근해야 되지 않냐?”
“안 해도 돼. 근데 누나 저녁 먹었음?”
“저녁? 안 먹었는데?”
파이프를 빨려다 말고 입을 떼며 재차 묻는 누나. 대화를 다 설명하기보단, 일단 아무 곳에라도 자리를 잡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물었다. 나도 슬슬 다리가 아프다.
“그럼 같이 치맥이나 먹자. 집 근처에 늘 사람 미어터지는 호프집 봐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