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6)
이세계 편돌이-305화(306/331)
305. 걸어서 게이트 나들이 (6)
* * *
그 치킨집이 실제로 맛집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출근길 중간에 유독 이종족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어 잠깐 힐끔거려 봤는데, 내부에 손님이 꽉꽉 들어찼더라고?
여기에 더해 손님들 구성조차도 특이했던 게, 보통 하피들은 치킨을 잘 안 먹는다. 직접 하피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한 건 아니고, 어쩌다가 알게 된 거긴 한데…
매장 근무를 하다 보면 하피들이 ‘치킨 샌드위치 말고 다른 건 없나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잦았고, 거기 있는 게 전부라는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무려 1+1 콜라 제공 행사 상품이었음에도 말이다.
이걸 반신반의하며 점장에게 물었었고, 깃털을 뽑는 행위가 하피들에게는 무척 민감한 사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근데, 그 치킨집에는 하피들이 잘만 앉아 있었다. 대체 왜? 민감하다며?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오늘 풀 수 있을 듯하다. 못 풀더라도 최소한 치킨은 먹을 수 있겠지.
내 제의에 두 번 눈을 깜빡이던 누나가 엘린을 내려다보고는 물었다.
“사무소에 일 아직 남았어?”
누나가 고개를 돌린 채라 내 위치에선 얼굴이 안 보인다. 누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보다, 곧 뭔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없어요! 분명요.”
“그럼 어쩔 수 없네! 일 없으면 얌전히 집에 가서 퍼질러 자려고 했는데-”
이후엔 능청스럽게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날 돌아보는데, 얼굴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철없는 동생이랑 맥주 한 잔 해줘야겠구만.”
“그렇게 안 내키면 그냥 퍼질러 주무시던가요.”
“농담이야, 짜샤. 반대쪽 테이프 내가 떼줄 테니까, 얼른 마무리 짓고 가자.”
여튼 이렇게 약속을 잡았고,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현장 정리를 잠깐 도와줬다. 엘린 녀석이 출입 금지 테이프를 한땀 한땀 떼 내는데, 떼 낼 때마다 테이프가 몸이나 얼굴에 달라붙어 대고 있다.
팔을 휘적이는 게 꽤나 처량해 보인다. 달라붙은 걸 잡아 떼주자마자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이는데, 맨입으로 도와준 건 아니었다. 묻고 싶었던 게 하나 있다.
“누나가 평소에도 테이프 직접 떼는 편이야?”
“네? 아. 다른 건 대부분 도와주시는데, 테이프는 손 안 대셔요. 막내는 테이프를 잘 쳐야 이쁨받는다면서.”
말인즉, 누나가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킨을 얼마나 먹어본 지가 얼마나 오래됐으면 저럴까. 불쌍하기도 하지…
“그게, 그래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뭐가? 나 방금 무슨 말 했어?”
“…아, 아녜요.”
아니라고는 하는데, 반응을 보니 내가 뭔 말을 하긴 한 것 같다. 시선을 피하려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는, 곁눈질로 힐끔 누나 쪽을 바라보는 엘린.
누나도 꼴이 똑같았다. 테이프 떼본 게 한참 오래전의 일인지 떼는 족족 달라붙는 테이프를 붙잡겠다고 난리를 피워대고 있다. 바라보던 중, 엘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요. 부소장님 일하신 기록을 봤거든요. 서류 정리하다가요.”
“어. 그런데?”
“이번 달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셨더라고요. 새벽에도요. 그래도 오후 2시에서 3시, 이 시간대에는 쉬시는 것 같긴 하지만…”
누나가 그즈음에 우리 매장에 물류를 나르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시간까지 빼면, 누나가 사실상 거의 잠을 안 자고 일을 해왔다는 게 된다.
고생하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이걸 다른 사람 입에서 들으니 기분이 꽤 묘하다. 뒤이어 내가 건넨 테이프를 받아 들고는 말을 맺었다.
“그래서요. 오늘은… 마음 편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걱정 말어. 나 주량 쎈 편 아니니까.”
“네. 사장님.”
이제서야 다시 표정을 핀다. 이러는 걸 보면 누가 30살이고 누가 여고생인지 모르겠네.
* * *
엘린과는 사거리 택시 정류장 쪽에서 헤어졌다.
자기 몸집만 한 슈트케이스를 트렁크에 넣겠다고 끙끙대는데, 이번엔 이 녀석이 싫다고 해서 안 도와줬다. 이것마저 못 해내면 헌터 사무소 인턴으로써의 자격이 없다나, 뭐라나…
“전처럼 네 돈 쓰지 말고, 이번엔 택시비 꼭 법카로 긁어. 알았지.”
“네!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셔요!”
붙임성 가득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택시가 출발했고, 이제 사거리에는 누나랑 나.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행인들이 남았다.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여는 누나.
“이찬. 아까도 느낀 건데, 평일 밤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냐?”
“대학생 애들 종강 시즌이라 그래. 한창 좋을 때지, 뭐.”
“아하. 하긴, 저 때가 한창… 근데 정확히 뭐 때문에 좋은 걸까?”
“낸들 알겠냐고. 이젠 민증 있으니까, 민증 없던 시절 방학보다는 할 거 많겠지…”
난 캠퍼스 대신 공사판을 택한 놈이고, 누나도 마찬가지로 강의실 대신 현장을 택한 사람이었다. 서로 아는 게 없으니 토의도 두루뭉술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저러는 거 보면 부럽더라고.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서로 아재 티 그만 내고 술이나 먹자. 누나.”
대충 마무리 지은 뒤엔 3분 정도 걸어 아까 얘기한 치킨집에 도착했는데, 50평 매장 구석자리에 2인용 테이블 딱 한 개가 남아 있었다.
냉큼 앉아 메뉴판부터 꺼내 들었다.
헌데, 메뉴가 무슨…
“그, 이거 누나가 좀 골라주라. 뭐가 맛있음?”
“너가 데려와 놓고 맛있는지를 왜 나한테 물어봐?”
“누나는 여기 있는 것 중 하나라도 먹어봤을 거 아냐. 이, 뭔 치킨이…”
맨날 지나가면서도 이 치킨집이 왜 장사가 잘 되나 했었는데, 메뉴판을 보자마자 답을 알 수 있었다. 메뉴판 두께가 무슨 만화잡지야. 흉기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더해서, 종족별로 메뉴를 구분해 놨다. 가령 오크 취향의 치킨.
먼 옛날 조상들의 식습관을 재현하기라도 한 건지, 치킨을 부위별로 조각낸 게 아니라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서 사진을 찍어놨다. 중세 배경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치킨 얘기다.
그리고 하피 취향 치킨의 경우, 아예 닭이 재료가 아니었다. 콩 또는 견과류를 가공해 콩 치킨, 아몬드 치킨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놨다.
더해서 ‘깃털이 달린 일체의 육류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문구마저 친절하게 적혀 있었는데, 치킨에 치킨을 안 넣어놓고 왜 치킨이랍시고 이름을 붙여 놓은 건질 모르겠다. 이거 고소감 아닌가?
마지막으로 뱀파이어 전용 치킨의 경우, 피로 된 스프를 따로 팔더라. 피 뚝뚝 떨어지는 생닭을 내놓을 창의력까지는 없었나보다. 아니면 위생법에 위반돼서든, 뭐든…
“여기 뱀파이어들 치킨, 이거 시키면 사이드 메뉴로 선짓국 나온다잖아. 근데 내가 살면서 치킨집 선짓국을 먹어본 적이 없거든?”
“생긴 건 멀쩡해 가지고 가리긴 엄청나게 가리네. 저기, 반반에 맥주 500cc 부탁드릴게요. 맥주 먼저.”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마침 앞치마를 두른 양 코볼트 직원이 있어 부탁하자, 허리째로 고개를 꾸벅이고는 총총 달려가 맥주를 가져와 줬다. 얼굴이 앳된 걸 보니 저 양도 대학생 알바로 보인다.
“이제 됐냐?”
“어.”
만족감에 먼저 잔 들어 내밀었고, 누나도 못 말린다는 얼굴로 건배해 줬다.
이후, 서로 가볍게 생맥 반 잔.
“…어우.”
“후우…”
이 반 잔이 오늘 쌓인 불만을 다 씻어주고 있다.
그래, 게이트핵이 뭐고 야광공룡이 대수냐고. 이게 인생이지…
거진 두 달만에 맥주를 먹어서 이런가, 고작 반 잔만에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가라앉힐 겸 강냉이를 주워 먹는 사이, 잔을 내려놓고는 중얼거리는 누나.
“…이렇게 밖에서 맥주 마셔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뭐야. 누나 소장이랑 대작 자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 곰탱이는 소주 말고는 안 먹거든. 난 맛대가리 없어서 못 먹지만 말야. 이찬 너는 소주 잘 먹냐?”
“먹을 줄은 알지. 옛날에 소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랑 친했었어.”
“누구?”
“옛날에 다녔던 직장 상사.”
소주를 좋아하는 걸 넘어, 매번 다른 소주를 사 먹을 정도로 소주 자체에 환장을 한 양반이었다. 같이 지방으로 출장을 다닐 때마다 빼먹지 않고 고깃집을 데려가서는, 주류 냉장고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라고?
그러다 그 지방에서만 파는 소주같은 게 있거든, 냉큼 집어 와서는 내게 술잔을 권하고는 했었다.
그러면서는 나 사는 곳에서도 이런 소주를 팔았으면 좋겠다 하질 않나, 여기 소주가 훨씬 자기 취향이라 하질 않나…
“언니랑 취향 비슷하네. 언니도 소주 종류별로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점장님께서? 아니, 근데 왜 과거형이야?”
“언니 지금은 소주 거의 안 먹거든. 내가 그 맛대가리 없는 걸 왜 먹냐며 징징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시무룩해져서는…”
서서히 취향을 소주에서 맥주로 바꾸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녁에 가볍게 맥주 한 캔만 비울 정도로 주량을 줄인 거랜다.
듣고 나서는 점장이 소주를 먹는 상상을 해봤으나, 전혀 상상이 안 간다. 당장 교복 입고 무단 등교해도 아무도 눈치를 못 챌 사람이 소주는 무슨… 아니지.
“누나. 나 아까부터 궁금한 거 하나 있었음.”
“어떤 거.”
“점장님이랑은 언제부터, 어쩌다 알고 지내게 된 거야?”
게이트에서 동굴에 들어가기 직전, 비슷한 주제로 누나에게 물어본 게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누나 헌터 일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냐.
여기에 누나가 이렇게 대답했었다.
부모님? 언니는 별말 없었는데?
직후엔 부모님 없이 홀로 자랐다는 얘길 들어버린 탓에 잊었었지만, 다시 떠올리고 보니 이건 이것대로 의아하단 말이다. 단순한 지인 관계라면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기 힘들지 않나?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알고 지내게 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안다. 점장이 옛날에, 아주 옛-날에 지나가듯 말해줬었다.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고.
이러면 일로 시작된 관계는 아니다. 누나도 10살 때부터 헌터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헌데, 마법사와 헌터와의 관계를 빼고 나니 접점이 도저히 짐작이 안 된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래도 이번엔 작은 안전장치를 하나 깔아뒀다.
“민감한 얘기면 하지 말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거라-”
“야, 이찬.”
“어?”
“잔 들어봐.”
들래서 얼른 잔 들었다. 들자마자 자기 잔을 짠 부딪쳐 오고는 두어 모금을 더 들이켜는 누나. 표정이 어둡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썩 밝지도 않았다.
생각, 혹은 고민에 잠긴 듯한 얼굴이다. 하고 싶은 만큼 해보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치킨이 테이블에 깔린 직후까지도 누나가 팔짱만 끼고 있을 뿐 말 한마디 하질 않았다.
“…민감한 얘기면 하지 말라니까?”
“민감한 얘기 아냐. 그냥, 남이랑 이 얘기 해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그래.”
“아예 처음이야?”
“아예는 아니고, 언니가 몇 번 먼저 말 꺼냈었지.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거든, 최대한 에둘러서 말해달라고. 언니는 부끄러워서라고는 했는데….”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생각만큼 무거운 얘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심하고 입가에 잔을 가져대려던 찰나, 누나가 입을 열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어쨌든 사람 살려냈으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아?”
“…뭐?”
“10살 때 언니가 나 죽을 뻔한 거 구해줬거든. 엄마랑 아빠는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