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07)
이세계 편돌이-306화(307/331)
306. 걸어서 게이트 나들이 (7)
* * *
말하는 내내 누나는 무덤덤했다. 아무렇게나 펼친 책의 구절을 읊조리듯 평탄하고 건조한 어투였으나, 두서없었다. 말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말이 사실인 듯 했다.
“나 10살 때는 여기 말고 외곽 살았었어. 교외에 주택 많은 곳. 부모님 돌아가셨던 그 날이 휴일이었고, 날씨도 맑았었고…”
“어.”
“그래서 아빠는 차고에서 차 꺼내서 세차, 엄마는 빨래 걷어서 밖에 말리고. 나는 집안일 하라는 잔소리 듣기 싫어서 놀이터에 놀러 갔었는데-”
그네를 타고, 그러다 질리거든 정글짐 뼈대에 걸쳐 누워도 보고. 그것마저도 질려 이글루 모양 놀이기구 안에서 낮잠을 자려던 중, 집 근처 하늘에 뭔가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게이트였다. 10m 높이 허공에 느닷없이 나타난 균열이 누나의 삶 전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거품으로 뒤덮인 자동차, 옷가지, 집, 그 이상의 존재까지 전부 다.
“아마 B급이었을 거야. 규모 말야. 마을 건물 대부분이 빨려들었거든.”
“전부 빨려 들어간 게 아니라서 B급이야?”
“그랬으면 A급이었겠지. 그때, 내가 이글루 놀이기구 안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단 말야. 처음에는 어떻게든 보려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는데, 게이트가 팽창해서 놀이터 끝자락에 나무들까지 뿌리째 뽑아버리고…”
그때부터는 몸이 아예 굳어버려, 이글루 내부에 웅크린 채로 하염없이 벌벌 떨기만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직후. 이글루가 무너져 버렸단다.
파편에 등째로 가슴이 짓눌려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었지만, 반대로 살아남은 것도 그 덕분이다.
“갈비뼈가 거의 다 부서졌었대. 의사 말로는.”
“그… 참.”
“아직도 가끔 욱신거리기는 한데,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 여튼, 내가 일찍 발견되지 않았으면 정말로 죽었거나, 죽느니만 못하게 됐겠지만…”
쪼그마한 왕년의 대마법사가 파편을 걷어냈고, 마법으로 자기 의식도 되찾게 해줬다고. 여기까지 말하고는 접시 위의 닭가슴살을 포크로 찝으며 말을 맺었다.
“언니랑은 그렇게 알게됐어. 내가 죽을 뻔한 사람, 언니는 죽을 뻔한 사람 살려준 사람. 어때. 이젠 궁금한 게 좀 풀렸냐.”
궁금한 것 하나는 이제 풀렸고, 대신 다른 의문들이 생겼다.
그중 하나, 나한테 매를 버는 천부적인 재능같은 게 있는 건가?
난 누나가 부끄럽다느니 뭐니 말해오길래, 둘 인연도 별거 아닌 일로 시작된 줄로만 알았다. 다니던 초등학교에 점장이 일일 마법교사로 찾아왔고, 누나가 ‘다 집어치우고 남자친구 얘기나 해줘요.’ 뭐 이런 얘기를 했다거나…
적어도 이런 이야기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늘 털털하고 밝은 모습만 보였을 뿐, 이런 일을 겪었다는 티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때는 언니가 진짜 멋진 사람이었는데. 그만큼 무섭기도 했지만.”
여전히 덤덤한 어투에, 옅은 미소만 섞어 말을 이어나간다.
이걸 마저 들어줘야 하나, 이제라도 주제를 돌려야 하나…
한창 고민하다, 무의식적으로 말을 받았다. 점장이 뭐 어쨌다고?
“말 그대로의 얘긴데? 언니, 옛날에는 진짜 엄청 무서웠거든. 아니면 삭막했다고 해야하나?”
파편에 깔려있던 누나를 구할 당시, 전신이 파편에 깔린 채 울고 있던 자길 바라보며 점장이 건넨 첫마디.
[ 잘 놀았니? ]그것도 건조하기 그지없는 무표정에, 비웃듯이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로 말이다. 나로써는 전혀 실감이 안 나는 이야기였으나, 누나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놀이터 놀이기구에 안에 깔려있었으니까 잘 놀았냐는 거지. 근데, 내가 거기서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기는 한데…”
“그 직후엔 기절했고, 눈 떠보니 병원이었고… 병실에 옴싹달싹 못하고 누워있던 도중에 언니가 병문안을 왔었는데, 나랑 눈 마주치자마자 언니가 말하더라고. 자기도 나 별로 안 좋아하니까 걱정 말라고.”
점장이 눈치가 무척 빠른 사람이다. 내 얼굴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부분 알아 맞출 정도니까. 옛날에도 눈치가 똑같이 빨랐나 보구만…
…이 점장이 내가 아는 점장이 맞다는 전제 하의 얘기지만 말이다.
그 순해빠진 점장이?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점장이 무표정으로 누군가를 비웃거나, ‘나 너 안 좋아해-’ 따위의 말을 당사자 앞에서 직설적으로 꺼냈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무슨 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니고…
“다가와서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고는 ‘이제 너는 집도 부모님도 없어. 후견인이 필요한 애가 되어버렸고, 그게 애석하게도 나야.’ 그랬었고… 그 이후로는 뭐, 어찌어찌 잘 지내고 있네. 20년 가까이.”
덧붙여서, 점장이 자기 후견인을 자청해온 이유만은 누나도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한다. 옛날에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던 만큼, 모종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
동시에, 이젠 알고 싶은 마음조차 없단다. 이젠 다 지난 일이고, 지금 점장은 자신에겐 어머니나 다름없는 존재다. 운을 떼고는 마저 말을 잇는 누나.
“언니가 늘 말을 무섭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엄청 잘해줬어. 학교도 가고 싶다는 곳 다 보내주고, 내가 마법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마법도 다 알려줬고-”
“그건 좋았겠네. 왕년의 대마법사한테 직접 마법 배운 거 아냐?”
“그래서 실기는 매년 1등 먹었지! 이론적인 거야… 뭐, 언니 답답해서 몇 번 뛰쳐나가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머리로 반타작이라도 한 게 어디냐 한다. 반타작이면 설마 100점 만점에 50점을 맞기라도 한 거냐고 물어봤더니, 말없이 맥주잔만 내밀었다. 괜한 걸 물었구만.
누나의 맥주잔은 거의 다 빈 반면, 나는 이야기 듣느라 아까 마시고 남은 절반에 손도 안 대고 있었다. 절반을 따라주고 서로 동시에 들이켰다.
들이킨 뒤엔 살짝 알딸딸해졌는지, 맥주잔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주절대온다.
“…여튼 그랬다고. 그리고, 이찬 너 오고 나서부터는 언니가 예전보다도 훨씬 더 밝아졌어.”
“아, 뜬금없이 또 뭔 헛소리야.”
“진짜라니까? 언니가 최근까지도 늘 말을 하다말거나 얼굴에 그늘이 지거나 그랬는데, 너 오고 나서부터 달라졌다고. 이제야 인생이 재미있어졌다던데?”
이 얘기는 나도 점장에게 자주 들었다. 이세계에서 날아온 놈 볼 기회가 흔한 줄 아느냐. 요새는 나랑 시시콜콜한 잡담 하고, 내가 매일 사고 치는 걸 구경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뭐… 듣는 입장에서 마냥 뿌듯하진 않지만 말이다. 누나가 주절거리는 걸 계속 들어보니, 누나에게는 표현을 일부 생략한 듯 하다. 내 출신성분만 딱 빼놓고 말야.
“애가 싹싹하고, 농담도 잘 하고. 대기업 들어가도 모자랄 애가 자기 밑에서 일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나, 뭐라나…”
“내가 대기업은 뭔 놈의 대기업이야. 기껏해야 정수기 생수통이나 몇 년 갈겠지…”
“이 짜식은 칭찬을 해줘도 늘 이게 문제야. 너야말로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맥주나- 뭐야. 우리 잔 왜 비었냐?”
왜 비었겠냐고. 냉큼 벨 눌러서 생맥주 두 잔 더 주문하고, 한 번 더 건배한 뒤에 들이켰다. 이번 잔을 기울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건데, 누나가 주량이 쎈 편이 아니었다.
“…근데 이찬 너 말야. 건배할 때 내 잔 밑쪽 부딪치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야?”
“난 그게 연장자랑 술 마실 때 예의라고 배웠어. 직장상사한테. 누난 몰랐어?”
“알았으면 내가 왜 물어보겠냐고. 짜식, 그래도 누나라고, 연장자. 연장자 대우를 해주네?”
오히려 평균보다도 더 약한 편 같다. 1,000cc도 채 안 마셨음에도 벌써부터 혀가 꼬부라졌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잔을 다시 들려 하길래, 고개 슥슥 젓고 말 걸었다.
“오늘 밤 기니까 천천히 마셔, 천천히. 나 누나 질질 끌고 다닐 생각 없으니까.”
“뭐래, 약골이. 나 질질 끌고 다닐 수는 있냐…”
“그래서 생각 없다고 한 거니까 얌전히 치킨 먹고, 얌전히 얘기 계속하자고. 누나, 그… 점장님께 마법은 왜 알려달라고 했었어?”
내 얘길 더 해봐야 낯간지러운 말만 듣게 될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아까 누나가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언니가 마법을 알려줬었다-’ 같은 말을 꺼냈었다.
헌데, 누나 과거사를 다 들은 뒤여서인지 자연스레 의문이 생기더라.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직접 헌터라는 직종을 택하기는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누나가 옛날에는 다른 꿈이 있지 않았을까. 그 꿈 얘기에 뒤이어 옛날 얘기를 유도해 보려 했으나, 시원하게 망해버렸다.
“헌터, 헌터 하려고 했었어. 엿같아서.”
“…뭐가 엿같았는데. 게이트가?”
“헌터가. 빌어먹을 헌터들. 아빠랑 엄마, 지금은 언니가 내 엄마나 다름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부모님 일을 다 잊은 게 아니란 말이야. 웃는 얼굴이…”
게이트로 빨려들어가 사망한 일반인의 경우, 시체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설령 찾아낸다 한들, 변질된 마력에 수 일간 방치되어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게 대부분.
하여 엄마와 아빠를 포함한 고향 사람들의 합동 장례식도 시체 한 구 없이 치뤄졌다.
“웃는 얼굴 사진 두 장만 달랑 올려놓고, 여기에 명복을 빌래. 이게 내 부모님이라면서.”
“……”
“개소리 하지 말라면서 매달려도 안색조차 안 변해. 익숙했겠지. 여자애 한 명 천애고아 되는 거. 나도 지금은 익숙한 일인 거 아는데, 그땐 몰랐어. 그 놈들도 속으로는 울화통 터졌을 건 이제는 아는데, 어렸을 때는 그 쌍판이 매정하고 무능력하게만 보여서…”
헌터란 족속들은 일이 다 끝난 뒤에 찾아와 고개 숙일 줄밖에 모르는 놈들이다. 이 놈들만 믿다가는 나와 똑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더 생길 거고, 더 사라질 거다.
못 믿는다.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내가. 그래서 시작했어. 정작 그런 나도 피해자 분들 장례식장을 다니게 됐지만 말이지…”
“…젠장할. 잔 들어, 누나.”
“야, 이찬. 니가 처, 천천히 마셔놓자 해놓고 왜 갑자기 말을 바꿔. 취했냐?”
* * *
이후로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오늘 내 타율이 지나치게 안 좋다는 게 체감이 돼서였다. 뭔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죄다 병살타가 되어버릴 게 분명해.
하여 누나 이야기와 맥주를 2:8 비율로 섞어 시간을 지새웠고, 날짜가 넘어갈 즈음에는 누나가 반쯤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언니가 내 엄마. 곰탱이는… 그냥 곰탱이. 아, 알아들어?”
“아까는 그냥 곰탱이가 아니라 의지할 만한 곰탱이라며…”
“나, 나는 그런 말 안 했어. 그래도 곰탱이 만큼은 아니지만 말야. 사무소 녀석들, 다, 다 짐승마냥 말을 안 들어처먹기는 해도, 신세가 비슷해서인지 다들 의지가 되거든.”
“그 말도 한 10번쯤 했어, 누나.”
“이 짜식이 말을 자꾸 지어내네. 아, 걔네들도 말야. 내가 너, 이찬 너 알고 지내는 거 알아. 한 번 소개시켜줄까?”
소개를 받을 땐 받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옆 테이블 손님들 종족이 벌써 세 번이 바뀌기도 했거니와, 누나 목소리가 매장이 울릴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친절하게 맥주 가져다주던 양 코볼트가 지금은 불안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 눈치를 살피기만 하고 있다. 이젠 미안해서라도 더 못 있겠다.
“누나. 여기 마감 시간이래. 슬슬 일어나자.”
“벌써? 지금 몇 시인데?”
“밤 12시. 5분 전이야.”
“12시. 12시면… 닫을 때 됐네! 어.”
원래 영업시간은 새벽 2시까지다. 어깨를 잡아 일으키자 누나가 벌떡 일어나기는 했으나, 내 어깨에 손을 짚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다.
치킨 한 마리에 맥주 500cc 9잔. 도합 4만 원 언저리 어치를 계산해 밖으로 나왔다. 슬슬 막차가 끊길 시간대여서인가, 아까보다는 길의 행인이 훨씬 줄어들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내 어깨에 턱을 기대며 중얼거리는 누나.
“야, 이찬. 돈 얼마 나왔냐…?”
“나중에 어련히 뜯어낼 거니까 걱정 말고, 이제 누나 어쩔 거야. 집에 갈 거임?”
“너네 집 가야지. 술 사들고 가려면 너네 집이 더 가깝잖아.”
“아, 쇼를 하네 진짜…”
“뭐! 친한 동생이랑 2차 하는 게 뭐가 어때서. 누나가 부끄럽냐?! 부끄러워?!”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게, 내가 술자리 버릇을 잘못 들였다. 먼저 만취해버리면 다른 사람 뒤치닥거리를 할 필요도 없는데, 누군가는 뒤치닥거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술을 덜 마시게 된다.
그 결과가 이거다. 집에 좀 들어가라고 계속 핀잔을 줘도 생떼만 부릴 뿐, 자기 집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 아니, 어딘지를 알아야 바래다주든 말든 할 거 아냐…
한참동안 실랑이를 하다, 결국 절반의 타협을 봤다. 내 집에 눕혀는 줄테니 술은 그만 먹어라. 우리집에서 쓰레기 버리려면 한참 걸어가야 한다. 그러자 누나 왈.
“헤헤.”
좋댄다. 비틀거리는 누나를 부축하며 골목을 벗어날 즈음, 누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오, 이찬. 빨리 저거 봐봐.”
“뭔데. 또 야광공룡이야?”
“넌 낭만이란 게 없냐? 하늘 올려다보라고, 하늘. 별 많잖아.”
누나 말을 듣고 올려다보니 확실히 별이 많긴 했다. 이것도 이 세계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게, 번화한 도심지임에도 별이 무척 많다.
나 살던 곳 하늘이었으면 인공위성 한두 개, 혹은 그마저도 안 보이는 게 보통이었는데 말이다.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을 뿐인데, 누나 귀에는 이 내용이 유독 밟힌 듯했다.
“너 시골 산다며. 그런데 하늘에 별도 없었냐?”
“시골도 시골 나름이잖어. 그리고 별이 없는 게 아니라, 공기가 탁해서 안 보이는-”
“정확히 어느 지역 시골이었는데?”
그건. 잠깐 멈춘 사이, 내 코앞에 얼굴을 빼꼼 내밀며 재차 묻는 누나.
“이거, 사실 늘 궁금했었어. 너가 어디서 어떻게 살다 왔나- 하는 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