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1)
이세계 편돌이-30화(31/331)
30화. 담배 파는 편돌이 (2)
내 반응이 어지간히도 답답했는지, 고블린은 아예 지갑을 통째로 내밀어왔다. 이놈들은 여기가 전당포인 줄 아나 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도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으나, 담보를 맡겨왔으니 환불을 못 해줄 것도 없었다. 마치고 나니, 고블린은 잠깐 기다려 보라 하고는 주류 코너로 가서 맥주 두 캔을 가져왔다.
“이거 6캔 긁어줘.”
“네?”
“아까 4캔 환불했으니까, 4캔이 빌 거 아냐. 이제 6캔 긁어달라고.”
대체 이 짓거리를 하는 의미가 뭔… 아니… 의미가 있나?
뭔가가 떠오르려고는 한다. 떠오르려고는 하는데… 그 짓을 진짜로 한다고? 진심?
“그럼 15,000원이잖아. 맞지?”
이걸 듣고 나서야 고블린이 진심이라는 것도, 뭔 짓을 하려는지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곰보 코쟁이 놈이 어떤 소릴 하려는 거냐면….
한 캔에 3,500원 하는 맥주가 있다고 치자. 이걸 2캔을 사면 7,000원이 되겠지.
하지만 이걸 한 번에 4캔을 산다면 맥줏값이 10,000원이 된다. ‘맥주 4캔 이상 구매 시 개당 2,500원으로 할인이 된다’라는 편의점 할인 정책 때문이다. 맥주를 5캔을 사면 12,500원이 되고, 6캔을 사면 15,000원이 되는 식으로.
그리고 지금 이 고블린은, 4캔을 샀던 영수증을 환불한 후 6캔을 구매하려 하고 있다. 이 경우엔 어떻게 되는가?
지금 실제로 구매하는 맥주는 2캔뿐이지만, 2캔 값이 7,000원이 아니라 5,000원이 되어버린다. 4캔, 2캔을 따로 구매한 것이 아니라 6캔을 한 번에 구매한 것이기 때문이다. 총 가격도 10,000원 + 7,000원이 아니라, 15,000원이 되고….
“그 얘기십니까?”
확인차 묻자, 고블린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대화가 통하네.”
이 기저귀 논리를 실제로 실현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이게 구조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환불한 개수만큼 재구매를 한다니 재고도 맞고, 할인 정책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구조상 문제가 없긴 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맥주 먹고 싶냐?
그리고 또. 이 짓을 온 세상 손놈들이 하고 다니게 된다면, 어느 누가 할인 노리고 맥주를 4캔 묶음으로 사 가? 죄다 환불 영수증 들고 다니면서 환불하고, 낱개로 필요한 만큼만 사 가지.
심지어 맥줏값이 죄다 같은 것도 아니다. 어떤 맥주는 2,700원 하고 어떤 맥주는 3,200원 하는데, 뭔 맥주를 사든 간에 이 방법을 쓰면 뭔 맥주든 간에 2,500원으로 구매가 가능해진다. 창조경제가 따로 없네.
“안 되는 거 아니잖아. 왜, 못 해주겠냐?”
고블린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어왔으나,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이걸 해주는 게 맞냐, 안 해주는 게 맞냐….
잘 모르겠어서 일단 해주고 봤다. 맥주 할인 정책을 고안한 마케팅 부서 놈들이 이걸 생각 못 했을 것 같진 않고, 해주지 말라고 지침이 내려온 것도 아니었고.
맥주 6캔을 긁어서 15,000원 계산하고 카드를 건네주자, 고블린은 맥주 두 캔을 바지 주머니에 욱여넣고는….
“수고.”
우산 들고 나가버렸다.
정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종이컵 위에 걸터앉아 있던 담배의 요정이 중얼거렸다.
“단기로라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못 하겠다.”
“그래, 넌 이런 거 하지 마라. 건강에 해로우니까….”
“근데 담배의 요정도 하기 싫은 건 맞아. 확실히.”
“그럼 금연패치의 요정은 어떠냐? 담배 공사 근무했던 경험 살리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거기서 일하면 무슨 장난을 칠 수 있는데?”
“그거야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반창고를 니코틴 패치라고 속여서 팔아먹든, 풍선껌을 금연껌이라고 팔아먹든….”
솔직히 그렇게 속여 팔아도 효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담배 끊는 데에 필요한 건 의지지, 부착감 좋은 니코틴 패치가 아니니까.
허나 내 제안도 썩 내키지는 않는지, 요정은 턱을 괸 채로 한참을 끙끙대다 고개를 저었다.
“주말 동안 생각 좀 해봐야겠다. 혹시 여기 위스키 팔아?”
“팔긴 파는데… 마실 수는 있냐?”
“위스키 12년산 하나 사면 17년산 될 때까지 마시지.”
자기들은 몸집이 작은 덕에 주량도 병이 아니라 방울 단위로 센다고. 참 가성비 좋은 종족이다.
12년산 위스키도 진열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찾아봤는데,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야, 지금은 12년산이 없다. 낮에 팔린 것 같은데.”
“어… 주문해서 들여오는 건 돼?”
되긴 된다. 위스키가 원체 안 팔리는 품목이라 빈 재고를 재깍재깍 채워놓질 않는 것뿐이지, 손님이 주문하고 기다리겠다고 하면 딱히 안 해줄 이유가 없으니까.
“못 해줄 건 없는데… 혹시 네 친구들 중에 편의점에서 장난칠 만한 다른 요정들 있냐?”
“음, 바람 마법 전공한 애들 중에 과자 회사 들어간 애들이 있기는 한데.”
바람 마법이랑 과자 회사는 또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 물었더니, 질소 포장 분야의 고문 자격으로 과자 회사 들어가는 요정들이 의외로 많단다. 좋은 거 배워서는 왜 그딴 데에 써먹나 몰라.
“하여튼, 그 녀석들 중에 행여라도 여기서 재고 개수로 장난치려는 놈이 있거든, 무조건 잡히니까 그러지 말라고 언질 좀 해줄 수 있냐? 낮이든 밤이든 마찬가지라고.”
점장 성격엔 ‘요정 친구들이 참 귀엽네’ 하고 웃어넘길 것 같긴 한데, 그 웃어넘길 상황 자체가 안 일어나면 점장도 나도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렇다. 진상들을 직접 찾아가 조질 수 없으니, 최소한 찾아오는 머릿수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요정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지, 뭐. 너도 29년 솔로로 살았다 하니 불쌍하기도 하고.”
“이 날파리가 뭐라는 거야, 지금.”
“아니면 요정 중에 똑같이 솔로인 애들 소개시켜 줄까? 너 신기하다고 좋아할 것 같은데.”
오만상을 구기는 것으로 화답했다. 살아 움직이는 등신대 베개와 백년가약을 맺는 한이 있더라도 요정이랑은 연애 못 한다, 요정이랑은….
“싫음 말고. 빠이.”
그러고는 편의점 정문 틈새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간 후 잠깐 멈칫하더니, 자기 몸 주변에 뿅 하고 비눗방울 같은 걸 만들어서는 빗속을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일단 보내긴 보냈고… 부탁을 했으니, 나도 부탁받은 건 들어줘야지.
위스키 한 병 주문되냐고 점장한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통화 중이었다.
10분 정도면 끝내겠지― 생각하며 기다리다 다시 걸었는데, 아직도 통화 중이었다. 뭔 놈의 통화를 이리 오래 하냐 생각하며 라면 재고를 채워 넣고 있자니 점장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 어, 찬아. 왜? ]“담배의 요정이 위스키 12년산 한 병 부탁하더라고요. 나중에 가져가겠다고.”
[ 응, 잠깐 메모 좀 할게… 12년산이라구 했지? ]“네. 근데 무슨 통화 하고 계셨던 거세요?”
[ 물류. 이따가 올 거라고 하더라구. ]누나 또 보는 건가? 그 드래곤 비늘 같은 것도 또 받아야 하는 거고?
며칠 진상들 받으면서 겨우 잊었던 경험인데, 다시 생각하려니 오른팔에 시멘트가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말을 마저 들어보니 이번엔 별문제 없을 듯싶었다.
[ 윤하 말로는 이번 물류는 별문제 없을 거래. 거래처 엄청 쪼아댔다 하더라구. ]“그럼 다행이네요.”
[ 근데… 음, 찬이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더라. ]“어… 어떤 거요?”
[ 글쎄, 그건 찬이한테 자기가 직접 얘기하겠다고 하던데? ]대체 뭔 말을 하려는 거야?
떠오르는 게 없어서, 첫날에 그 누나랑 만났을 때 어땠는지를 떠올려봤다. 내가 뭔 일을 해왔는지 궁금해하기도 했고, 내 체질에 대해 신기해하기도 하지 않았었나….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언제쯤 오냐 물었더니, 점장도 잘 모르겠다는 투였다.
라며 점장이 말을 맺음과 동시에 바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잠깐 전화 끊을게요.”
[ 왔나 보네. 응. ]이후 정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니, 보도블록에 컨테이너 박스가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위에는 빗물에 흠뻑 젖은 채 헥헥대고 있는 날개 달린 말 한 마리, 노란 우비를 입은 누군가.
우비 자체는 펑퍼짐했으나, 허리에 띠가 졸려 있어 그 부분만은 매끄러운 몸매 라인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컨테이너에서 사뿐 뛰어내린 윤하 누나가 후드를 벗고는 내게 손 인사를 건네왔다.
“하이.”
“어.”
첫날에 말도 놨겠다, 애써 어색하게 굴지는 않기로 했다. 누나는 이미 그러고 있었다.
“우리 며칠 만에 보는 거야, 이게?”
“한 4일 됐나? 그땐 자주 올 것처럼 얘기하더니만.”
“시간이 나야 오든 말든 하지. 지금도 야근하다 온 거야, 힘들어 죽겠어.”
“야근? 오늘 주말인데?”
“게이트 열리는 데에 주말 평일 구분이 어디 있어? 열리면 가는 거지.”
이렇게 말해와도 난 잘 모르겠고, 헌터 일도 바쁠 땐 더럽게 바쁜가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이후 안으로 들어온 누나는 우비를 벗어 던지고는 내게 전표를 내밀어왔는데, 여기에 바코드만 찍으면 일단 내 일은 끝….
[ 헬 홀스 (A등급) / 1EA ]우와, 이 거지 같은 건 또 뭐야?
입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려봤다. A등급 헬 홀스, 개수는 하나. 중량 부분 확인해 보니 520kg.
마저 추측하자면, 헬이 들어갔으니까 지옥에서 살았거나 살다 온 생김새일 것 같고… 홀스는 말인 것 같고.
떠오르는 건 이게 다였고, 내 일부터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표 바코드를 찍어 누나에게 보여주자, 전표를 슬쩍 바라본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컨테이너 안에서 거대한 나무상자를 꺼내 성큼성큼 사무실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3분 있다가 돌아왔다. 이젠 볼 일도 없을 테니 맘 편히 물어볼 수 있겠네.
“누나. 그, 갖고 온 저거 뭐야?”
“마수 박제. 궁금하면 꺼내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저거 엄청 힘들게 구해온 거야.”
그걸 봐서 내가 아냐고. 난 망아지랑 당나귀도 구분할 줄 모른다. 근데 누나 눈치가 은근히 자랑하고 싶다는 눈치라, 거절했다간 서운해할 것 같아서 아예 말을 돌렸다.
“점장님 말로는 누나가 거래처 닦달해서 구해온 거라던데.”
“어.”
“그럼 굳이 내가 볼 필요 있나? 그쪽이 알아서 했겠지.”
“그렇긴 해… 아니,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야, 찬아. 저거 박제하는 데에 비용이 얼마 들었는지 알아?”
“얼마 들었는데?”
“1,500. 그중에 갈기 다듬는 데에만 400이 들었는데, 진짜 돈에 미친 놈들 아니야?”
갈기 얘기하는 걸 보니 저게 정말 말 비슷한 거긴 한가 보다. 근데 뭔 말 갈기 다듬는 데 400이나 받아먹냐?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헬 홀스의 갈기가 지옥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탓에 갈기가 달린 목덜미 쪽의 발화 기관에 별도의 정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데….
그런 이유에서라면 충분히 400 받아먹을 만하지 않나? 뜨겁잖아. 불.
라고 대답하진 않았다. 푸념 들어줄 땐 다 필요 없고 ㄹㅇ ㅋㅋ만 치는 게 상책이란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는 씨익 웃으며 말해왔다.
“그래서 이찬,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말야.”
“뭔데.”
“혹시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누나가 꺼낸 건, 무슨 심장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