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12)
이세계 편돌이-311화(312/331)
311화. 뭐라도 하겠지, 회산데 (3)
옛날, 한 지식감정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이 제보된 적이 있다.
‘횡단보도 표지판 속 사람은 거인이다.’
표지판을 보면, 표지판 안에 그려진 사람이 횡단보도 3칸 가량을 단 한 번의 보폭으로 걷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횡단보도의 칸 하나당 간격은 약 50cm.
말인즉 한 걸음당 150cm를 내딛고 있다는 뜻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키가 최소 4m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거인.
이런 얘기를 느닷없이 왜 하느냐. 이 내용을 예능에 제보한 게 10살이 채 안 되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애가 8살이었던가, 9살이었던가?
“직원 분들여. 이종족 분들 중애 드라이… 드라이?”
“드라이어드.”
“맞따! 드라이아드. 그 드라이아드 분이 창가에 흙있는 대서 햇빛 째구 계셨는대여. 엄청 편안해 보이셔가지구, 가서 일은 안하시냐구 여쭈어밧엇거든여?”
“어. 그 분이 뭐라셨어?”
“그것두 일이라구 하셧서여. 이렇게 햇빛을 쬐어야 머리도 잘 돌아가구, 일두 잘하게 된다구. 전에 계셨던 곳에서는 햇빛도 못 쬐구, 꼐속 일만 하셨대여!”
“그래서 좋으시대?”
“내! 그래서 저두 같이 햇빛 쬤는대여. 중간에 졸려갖구, 잣어여.”
이 이야기를 한마디로 요약해 공책에 적었다.
‘종족간 특징과 자유를 철저히 보장할 것.’
아이들 관찰력이 어른들보다 뒤처지는 게 아니다. 관찰한 걸 응용하거나, 해석할 인생경험이 모자랄 뿐이지.
하나에게 회사 일에 대해 물어본 것도 이 발상에서였다. 겉으로만 보면 유치한 의견이라 해도, 어른 관점으로 재해석해 얼마든지 쓸모있는 의견으로 만들 수 있다.
“에… 그리구.”
“그리고?”
“정수기애서여, 쪼꼬우유가 나오면 어떨까여?”
시행착오를 몇 번 겪긴 했지만 말야. 처음엔 초코우유가 먹고 싶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전에여. 저어가, 직원 분께 쪼꼬우유를 받았거든여.”
“맛있었겠네.”
“내. 근대여. 안 주셔도 갠찮타구 했는데, 그 분이 ‘나는 편이점가서 사오면 대, 3분바께 안걸려’ 라구 하셧어여. 일하느라 바쁘실텐대… 그쳐.”
“그치. 바쁘겠지.”
“그치만여. 정수기에서 쪼꼬우유가 나오며는, 언제든지 쪼꼬우유 먹을 수 있으니깐. 직원 분들이 조아하시지 않을까여?”
그런 회사가 있으면 나도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 생각하며 노트에 ‘탕비실 물품 완비’ 문구를 한 줄 적는 사이, 찰리가 하나가 꺼낸 안건을 단칼에 기각해버렸다.
“회사 사무실이 없는데 정수기를 어디에 들여놓으라는 거야, 희멀건 녀석아.”
“으음… 우유 아주머니를 부르며는?”
“그 우유 아지매가 들어올 사무실이 없다고 하잖아, 사무실이. 그리고 젠장할, 들여놓더라도 맥주를 들여놓지 초코우유는 뭔 놈의 초코우유야?”
“맥쭈는 안 대는대. 몸에 안 조아여!”
“시끄러워. 망할 정수기 옆에 빌어먹을 땅콩이랑 육포도 좀 걸어놓고, 또 뭐를… 염병, 갑자기 사무실 마렵네.”
“쪼꼬렛!”
“이 꼬맹이가, 맥주는 몸에 안 좋다면서 초콜렛은 왜 걸어놓으라는 거야?”
“맛잇으니깐!”
저 양반은 방금까지만 해도 애가 질색이라 하더니 잘만 놀아주고 있다. 그나저나, 회사에 사무실이 없다는 건 뭔 소리야?
“회사 사무실은 왜 없는데요. 창업 첫날에 저당잡히기라도 한 거에요?”
“저당은 염병, 지금 빚쟁이 되라고 고사 지내냐?”
“그건 아니고, 신기하니까 그렇죠. 역시 IT라서 그런가?”
하기야, 한 달 일과 중 90%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테니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이 가능하긴 하겠다. ‘탕비실 물품 완비’ 메모에 줄을 찍 긋는 사이,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마법 빌리면 돼. 존나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 마법을요? IT인데?”
“소통을 하긴 해야 되니까, 편돌이 자식아. 기획 놈들 기획산출물에 말도 안 되는 거 적혀있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족쳐야 되는데, 기획 놈들이 한둘이냐고. 그놈들 일일이 찾아가서 족쳐? 어?”
이걸 묻기 이전에 기획산출물이 뭔지부터 설명해줘야 되는 거 아냐? 그게 대체 뭔데?
허나 찰리가 이걸 설명해 주진 않았고, 대신 업계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IT 개발 부서의 업무 순위 중 1순위가 개발이고, 2순위가 기획 부서 놈들을 조지는 것이다.
왜냐?
현실적 요건을 전혀 고려 안 한 채, ‘이러면 고객들이 좋아하겠지?’ 하며 기획을 빙자한 탁상공론을 주절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란다. 가령, 1달은 걸릴 업무량을 1주일 스케줄에 포함시켜버린다던가….
개발자로써는 당연히 업무 조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메일이나 톡으로 백날 떠들어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한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왜요?”
“왜요는, 야. 전화로 종교 믿으십니까― 이러는 놈이랑, 못박은 야구빠따 쥐고 눈앞에서 종교 믿으십니까― 이러는 놈 있다고 쳐. 둘 중 어떤 놈 종교 믿을래.”
“그건… 그러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 의견이 잘 수용된다는 소리세요?”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게 IT업계 얘기가 맞긴한 건지 모르겠다. 물으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으나, 찰리는 이제야 대화가 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왔다. 참나.
“그 소리 맞고, 그걸 화상 회의 마법 임대해서 때울 거라고. 빌어먹게 비싼 건 똑같아도 빌딩 사무실 임대료보단 덜 빌어먹으니까.”
쉽게 말해 출근을 해야만 가능한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을 마법으로 대체한다는 얘기인 듯한데, 솔직히 절반도 이해가 안 됐다. IT 종사자면 다들 배운 사람들이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란 이유로 서로 말을 안 들어 먹는다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일 망치면 다 같이 망할 운명인데도?
무슨 조별과제도 아니고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으나, 업계 종사자가 이렇게까지 강조하는데 뭔 변론을 더 하겠는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하여 IT쪽에 관해 더 캐묻진 않았고, 대신 재택근무에 대한 생각을 슬쩍 말해봤다.
“재택근무 말인데, 눈 뜨면 출근할 일이 없잖습니까. 주변에 일하면서 눈치 줄 사람도 없고요. 그럼 그… 나태해지지 않아요? 싫어도?”
이건 나도 간접적으로 봐온 게 있다. 코로나와 동시에 재택근무가 대유행을 타던 시절, 인터넷에 재택근무에 대한 소감문이 그렇게도 많이 올라오더란다. 자꾸 늦잠을 자게 된다나, 뭐라나?
외에도 시키는 대로만 해왔던 일을 집에서 자율적으로 하려니 어색하고 힘들다, 책상에 앉아 일하려니 여기가 집인지 회사인지 모르겠다, 어쩌고 저쩌고.
“배가 쳐 부른 소리들만 하고 있네. 진짜로 그런 말 하는 놈들이 있다고?”
“있으니까 이렇게 말을 하죠. 손님이 이상하게 책임감 높으신 분이란 건 아는데, 채용될 직원들이 다 손님처럼 책임감이 있지는 않을 거잖습니까?”
집에서 감시 없이 일 시켜도 일을 잘할 직원들을 뽑는 게 우선 같다. 구인 공고에 ‘Only 재택근무’ 라고 적어두면 한 번은 걸러지겠지만, 큰 효과는 없을 테고….
찰리도 내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여기서 말문이 한 번 막혀버렸고, 나도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야. 하나네 회사에 말야, 그.”
“내.”
“그… 이걸 뭐라고 해야돼. 직원분들 일 하는 거 어떠시냐. 일 열심히 하셔?”
“열씨미?”
재택근무 하시는 분들 소감이 어떻대냐, 물어보려다 삼켰다. 집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소감을 얘가 어떻게 아냐고. 괜한 질문을 했다고 덧붙이기 직전, 하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일은 다들 열씨미 하시는대여? 막 컴쀼터만 들여다보시구, 전화두 어엄청 하시구.”
“그러냐. 하긴, 대기업이니까.”
“그래서여. 고생이 많으새여― 하구 인사 드렸는대, 직원 분이 웃으면서 그러셧서여. 엄마야가 잘해주셔서 엄마야가 좋아갖구, 그래서 열씨미 하신대여.”
듣고 나서는 자연스레 하나 엄마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리네, 동양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에, 머리의 나뭇가지 같은 뿔이 인상적인 드래곤이었다.
그 여자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찾아와서는 내게 명함을 줬었고, 떠나기 직전엔 진열된 애들 장난감을 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 쓸모없는 물건이로군. 안 그런가? ]고풍스러운 말투는 둘째치고, 일곱 살배기 애들 장난감에 가치 따지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봤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면, 가치가 있는 물건은 그만큼 소중히 대할 거란 말뜻도 된다.
나도 그 이유에서 명함 받았고 말야. 회사 직원들의 가치를 잘 쳐주고 챙겨주면, 자연스레 직원들도 사장에게 애정을 가지고 일하게 될 수밖에… 아.
이건 충분히 벤치마킹 할만하다. 곧바로 찰리에게 찔러봤다.
“손님, 전에 같이 회사 그만두신 분들은 지금 뭐하신답니까?”
“알아서 자기들 먹고 살 길 찾아갔겠지. 왜.”
“그 직원 분들 부르면 좋잖아요. 그 분들 손님이 좋으면 좋았지, 싫어하시는 것 같진 않던데요?”
회사 차리라는 말 한 마디 듣고 때려친 이 양반이 제일 미치긴 했지만, 그 직원들도 솔직히 정상은 아니다. 의지하던 사람 관뒀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 관두는 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만큼, 찰리가 이전 회사에서 심적으로 무척 의지가 되는 양반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최소한 입사권유를 바로 내치진 않을테고, 의지했던 만큼 미안해서라도 열성적으로 일하지 않을까….
“이 편돌이 자식이. 걔네들이 미쳤다고 스타트업을 들어오겠냐?”
“그거야 그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죠. 왜요, 월급 못 챙겨줄까봐 걱정돼서 그래요?”
“…….”
“그럼 그런 것까지 전부 말해보시고, 올 거면 오고 아닐 거면 말아라― 하면서 찔러라도 보십쇼. 손님께서도 아는 사이끼리 일하는 게 편하실 거잖습니까.”
일부러라도 연락을 안했을 거라 생각했다. 업종조차 제대로 못 정한 회사에 부르기 미안하다고 생각했겠지. 이 양반이 쓸데없이 정이 많은 탓에 피곤하게 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제 3자의 도움이 필요한 거지. 마침 찰리 폰이 테이블에 뒹굴거리고 있길래, 냉큼 집어들어 연락을 시도해봤다.
시도하자마자 실패했다. 지문인식 락이 걸려있어서였는데, 치와와가 쓰는 폰이여서인지 지문도 발자국 모양으로 찍으란다. 나 살던 곳 개한테는 지문이 없었는데 말이지….
“…잠깐 발바닥좀 내밀어주십쇼. 손님.”
“내놔. 내가 할 테니까.”
결심이 섰는지, 폰을 홱 낚아채서는 발바닥을 꾹 누르는 찰리. 뒤이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데, 통화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어, 찰 과장. 이른 시간에 웬일이야?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중후한 동시에, 묘하게 찍찍대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날 회사를 같이 때려 쳤던 직원 중에 중년 날다람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직원인 듯하다.
“내가 왜 과장이야, 날다람쥐 놈아. 회사 때려친 지가 언젠데.”
[ 아니, 그래. 찰리야. 너는 내가 15살이 더 연상인데 말이 한결같이…. ]“꼬우면 날다람쥐 너도 반말하던가. 여튼….”
그 날다람쥐가 맞나보다. 찰리 대꾸에 아연실색했는지 날다람쥐는 말이 없어졌고, 내 알바냐는 듯 찰리가 짤막하게 용건을 늘어놓았다.
“나 창업했는데, 일할 놈이 없어.”
[ …어. ]“들어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말아. 월급 잘 챙겨줄 테니까.”
이러고는 뚝 끊어버렸다. 내게 이런 전화가 걸려왔거든 냅다 스팸으로 등록하고 봤을 거다. 허나,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끼린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다고 했던가?
곧바로 전화 대신 톡 알림이 두 번 울렸다. 확인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찰리의 헤드헌팅 어휘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문장들이었다.
[ 지금 아들내미들 딸랑이 흔들어 주는 중이니까 ] [ 계약서 보내놔라, 점심까지 사인해서 보내마 ]확인하고는 무덤덤하게 폰을 내려놓는 찰리. 이러고는 한참 동안 폰 뒷면만 내려다보다, 살짝 잠긴 어조로 중얼거린다.
“거기서 개같이 구른 보람이… 없진 않네.”
“그 날 같이 퇴사하신 분들 몇 분인데요, 손님.”
“23명.”
“그럼 23번 전화하셔야겠네.”
“…야.”
“왜요.”
“나 전화하고 올 테니까, 테이블에 있는 거 니네들이 알아서 다 먹어라.”
“그러시던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