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16)
이세계 편돌이-315화(316/331)
315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3)
유리에게 오늘자 인수인계 사항을 전달했다. 나 퇴근 안한다. 끝.
말한 뒤, 창고에서 유니폼을 다시 챙겨입고 나왔다. 유리는 날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별말이 없었다가, 카운터에 나란히 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시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오빠.”
“상황이 좋질 않으니 좋은 생각이 나올 리가 있나. 아니면 떠오르는 거라도 있냐?”
“집에 가서 자는 거요. 이불도 덮고.”
어제 봤던 광경들 때문에라도 그렇겐 못하겠다. 내가 마법 관련된 일에 엮인다는 게 그 뜻이잖은가. 매장에서 손놈들이 마법으로 진상 짓을 부릴 예정이다.
난 매장 일을 제외한 마법 연관된 일에 엮일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매장에서 산 장난감을 활활 태우고, 마왕을 치켜세운다 해도 난 아무 신경도 안 쓸 거다.
난 자유주의도, 종교의 자유도 똑같이 존중하니까.
하지만 이 매장, 내 평생직장에서 일이 터진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정신나간 작자가―
‘보라! 간악한 용사의 상징물이 닿았던 진열대가 파괴되는 광경을!’
이러며 진열대에 TNT 마법을 사용하려 든다면?
난 진열대 터졌다는 연락 듣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싶진 않다. 나름 농담이랍시고 말해봤으나, 이걸 진담으로 받아들였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 일까진 안 일어나는데요. 그러니까….”
“그럼 그 직전 일까진 일어난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유리 너, 손님들이 계산대에 물건 세 묶음씩 올려놔도 실수 안 하고 계산할 수 있냐? 손님 무진장 올 텐데?”
“…실수하고 사과는 해요.”
“거 봐. 계산 빵꾸 날 거 같아서 퇴근 안 하려는 거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의자에 앉아나 있어. 난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리 아프다.”
발로 매장 의자를 슥 밀며 말을 맺었다. 앉아서 다리가 아픈 것보단, 앉으면 꾸벅 잠들어버릴 게 더 걱정된다. 밤에 긴장을 많이해서 그런지 오늘 아침따라 유난히 피곤한 거 같어.
딱 오후 2시까지만 버텨보고, 나중 일은 그때가서 생각할란다. 눈을 비비고 있자니, 날 뚫어져라 바라보던 유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근무 같이 서줘서 고마워요. 오빠.”
“고마우면 나중에 컵라면이나 하나 사주던가.”
“그것보다는요. 오후에.”
말을 고르는 건지 자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나로썬 뜻이 짐작이 안 되는 한 마디를 툭 던져왔다.
“망설이지 않아도 돼요. 분명 이해해줄 테니까.”
“느닷없이 뭔 소리야?”
“그때 가면 알 거에요.”
* * *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손님을 받거나 내보내는 틈틈이 들은 것에 대해 에둘러 물어봤다.
뭘 망설이지 말라는 거며, 뭘 이해 해준다는 건데?
진지하게 걱정이 돼서 물어보는 건 아니고, 손님 받는 데에 자꾸 방해가 돼서 그랬다. 가령 봉투 안 주셔도 된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아닌지가 헷갈린다.
망설이다 봉투를 건네줬더니, ‘네? 저 봉투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이런다. 이렇게 카운터 서랍에 널브러진 봉투가 4개째였고, 지금으로 막 5개가 됐다.
“살펴 가세요, 손님.”
“…….”
태연한 얼굴로 내가 할 인사를 대신 건네고는, 건네받은 현금을 POS기 금고에 집어넣는 유리. 이젠 답답해서 못 참겠다.
“유리야.”
“네, 오빠.”
“나 살던 동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말야. 오이디푸스 신화라고….”
“채소에 관한 이야기겠네요. 아니면 병명일 수도.”
“오이도 아니고 디푸스도 아니야, 인마. 일단 들어봐.”
자기에게 내려진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피하려던 행동이, 오히려 예언을 실현하는 행동이 되어 인생이 풍비박산이 나버린 인물이다.
그 예언은 너는 아빠를 죽이고 엄마와 동침할 것이다― 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땐 이 생각밖에 안 들었었다.
아니, 말을 해줄 거면 좀 확실하게 해주면 안 돼? 사람 놀려?
‘사실 왕이 니 아빠고 왕비가 니 엄마인데, 실수로 죽이거나 동침하면 안 돼. 분명 경고했다?’ 이렇게 설명만 잘 해줬어도 아무일 안 일어났을 거잖아. 그 말 몇 마디 하는 게 어렵나?
“여튼 나 살던 곳에 이런 신화가 있었는데, 어떠냐. 뭐 느껴지는 거 없어?”
“애매모호한 미래 예지는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시죠, 오빠.”
“…….”
“좋은 교훈이네요. 재밌기도 하고요.”
듣고 나서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을 뻔했다.
몇 번을 물어봐도 이런 식으로 계속 딴청을 부릴 뿐,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정확한 내용에 대해 입도 빵끗하질 않더라. 이럴 거면 아예 말을 하질 말던가….
“근무 같이 서준다고 하셨잖아요. 뭐라도 말해야 보답이 되지.”
“말하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니잖아. 말 해주는 건 고마운데, 좀 확실하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확실하게 말해버리면 그 일이 안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그 일이 대체 뭔 일이냐니까?”
“한 번은 반드시 망설이고, 오빠가 이해를 바라게 될 일이요.”
복채라도 주면 그땐 제대로 얘기를 해줄 거냐, 말하려다 관뒀다. 내가 막막해하는 게 예상 이상이었는지 서둘러 말을 덧붙이는 유리.
“하나 확실한 건요. 전 오빠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무책임한 말은 안 해요.”
“아. 그러셔….”
“네. 전 오빠 편이니까요.”
하여간, 사람 할말 없어지게 하는 데엔 도가 튼 녀석이다. 앞이나 보라고 핀잔을 주려다, 못 먹는 감 찔러는 보자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안 좋은 일이냐?”
이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한테 말할 때 표정이 밝진 않았대요.”
“…그래, 고맙다. 손님이나 받자.”
“네.”
이젠 더 물어볼 수도 없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5분. 아까까지만 해도 적당히 번잡하던 거리가 행인들로 점점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 행인들 대다수가 손에 팜플렛을 쥐고 있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손에 구긴 채로 쥐거나 접은 걸 펼치거나 하는 동작도 일체 보이진 않았다.
마왕교 로고, 아니면 존안이라도 새겨놓은 거겠지. 저 팜플렛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집회에 관심이 있다고 보는 게 맞아보인다.
관심의 정도는 각양각색이었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내심 안심하면서도 의아했던 게, 난 팜플렛을 든 행인들 모두가 진상, 내지는 손놈일 줄로만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고?
“저기요, 사장님. 여기, 어… 용사 굿즈같은 건 없나요?”
진열대를 살피던 하피가 내게 찾아와 이런 걸 물었는데, 처음엔 또 시작이겠거니 했다. 하피의 가방끈 쪽에 악세사리가 하나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동그라미에 직각선 2개를 뿔처럼 붙여놓은 형태의 악세사리. 마왕교 놈들 로고 디자인과 똑같다. 그래도 어젯밤 미리 예방접종을 맞아서인지 말이 술술 나왔다.
“용사 관련상품은 어제 다 매진돼서요, 손님. 오후쯤에나 재고 들어옵니다.”
붉은 조끼 입은 손놈들에게 이 말을 건네거든, ‘음! 우리 신도님들이 불철주야 일하고 계시군!’ 하며 만족스럽게 나가고는 했다.
눈앞의 이 손님도 똑같이 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손끝으로 쥔 팜플렛을 내려다보고는 눈에 띄게 한숨을 내쉬는 하피.
왜?
“어휴. 여기도 다 팔렸나보네요….”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런데 손님, 다른 매장에서도 관련상품 찾아보신 거에요?”
“아, 네. 용사 관련상품을 찾아오면 돈을 받거든요. 여기.”
이러고는 부탁하지도 않은 팜플렛을 거꾸로 잡아 보란듯이 내밀어보인다.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게 로고, 그 다음이 마왕교란 어떤 곳이며 어떤 진리를 믿고 있는가― 어쩌고.
그리고 맨 밑에, 용사 관련 굿즈를 가져오는 참가자에게는 현금을 차등지급한다는 문구가 보일 듯 말듯한 크기로 적혀있다. 근데 종교 집회에서 이런 짓을 해도 돼?
“그래서 값싼 것들 여러 개 사서 들고가보려고 했죠. 그른 것 같지만요….”
“아하….”
“…앗. 바쁘실텐데 말이 많았네요. 안녕히 계세요.”
이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버렸는데, 이건 이것대로 의외였다. 가방에 악세사리까지 달았으니 종교 신도인 건 분명한데, 포교를 시도조차 안 하고 나갔다.
왜 어제랑 정도가 다른 건데?
미처 결론을 내리기 전에 손님이 또 한 명 들어왔는데, 이번엔 한눈에 봐도 진짜배기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화려한 손님이 들어왔다. 머리에 몹시 앙증맞은 마왕뿔 악세사리를 얹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여기 용사 상품 있어?”
그것도 중년 엘프가 말이다. 주름 자글자글한 양반이 머리에 장난감 달고 있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엘프가 유리에게 먼저 말을 걸길래, 얼른 끼어들었다.
“유리야, 잠깐만. 죄송합니다, 손님. 용사 관련 상품은 어제 다 팔려서….”
“아닐 텐데.”
“네?”
“나도 알바 해봐서 아는데, 편의점에서 인기 상품같은 거 창고에 쟁여놓고 그러잖아. 여기도 그러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경우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지금은 진짜 없어서 못 판다. 믿기진 않아도 편의점 알바를 해봤다길래, 처음엔 말을 가려서 대답했다.
“정말 다 팔려서 없습니다, 손님. 보시다시피 요 앞에서 집회하는 것때문에―”
“나도 집회하는 거 알아. 그래도 남은 거 있을 거 아니야.”
“진짜 없고, 캐릭터 그려진 초콜릿까지 싹 다 긁어가셨어요. 뭣하면 구매하셨던 분들 영수증이라도 보여드려요?”
“영수증도 조작 가능하잖아. 그, 왜… 아무튼 되잖아.”
조작도 물론 가능은 하다. 구매하자마자 환불하고, 환불한 영수증 버리면 실물 구매기록만 남길 수는 있으니까. 그럴 이유가 거의 없다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조작은 저희가 안 하고요, 보통 해드리지도 않아요.”
“아 글쎄, 어떤 거든 간에 한 개만 주면 된다고. 한 개만. 말귀 못 알아들어?”
그 한 개가 남아있었으면 내가 진즉에 팔아줬겠지, 이 귀쟁이 놈아.
이놈은 알바도 해봤다면서 손님이랑 입씨름하는 게 알바가 제일 싫어하는 짓이란 걸 모르나?
아니지. 알바를 떠나 사회생활을 해본 놈이 이따위로 막무가내로 굴 리도 없다. 만일 여기서 똑같은 말을 한마디라도 더 꺼내거든, 그 즉시 신고 버튼을 누를 작정이었다.
헌데, 이놈이 그럴 틈조차도 주지 않았다. 나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판단한 건지 유리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는 엘프.
뒤이어 유리에게 삿대질을 하려고 들었, 야. 나는 상관 없는데 애한테는 그딴 짓 하지 마라.
“저기요.”
곧바로 손 뻗어 팔목을 붙잡았다. 안 망설였다.
갓 알바 시작한 애한테 삿대질 당하는 경험만은 안 겪게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붙잡은 팔목을 밑으로 꾹 누른 뒤,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 대 후려맞더라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땐 나도 한 대 갈기면 그만이다. 어쩔지는 눈빛을 보고 판단하려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다.
눈빛이 흐리멍텅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고가 정지된 것 같은―
“오빠.”
당황스러움에 눈만 껌벅이다, 유니폼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에 정신을 차렸다. 유리 녀석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서 바라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 서있다.
“겨, 경관님?”
“…안녕하시냐고 먼저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이루엘 경관이었다. 만나서 반갑긴 한데, 나 아직 신고 버튼에 손도 안 댔다. 이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대?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수갑을 빼내어 다가오끼 시작한다.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얼른 끌고 가달라며 졸라댔겠지만, 지금은 못 그러겠다.
뭔가가 좀 많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얼른 팔목에서 손을 뗀 뒤, 경관 쪽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내 손짓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가, 손놈 엘프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경관.
잠시 후, 엘프의 얼굴에 손을 뻗고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다.
“제가 손가락을 몇 개 피고 있습니까.”
“…내가.”
족히 십 수초가 넘도록 꾹 닫혀있던 엘프의 입에서, 전혀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내가 여기엔 왜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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