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19)
이세계 편돌이-318화(319/331)
318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6)
내 부탁에 바로 대답하는 대신 밖을 돌아보는 경관.
이젠 거리가 자동차 한 대조차 지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저 정도 인파면 상황 통제를 위해서라도 경찰 인력이 동원될 게 분명하다. 인파 사이를 멈칫대며 나아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건조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 경우,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제 쪽에서 먼저 드리는 게 맞긴 합니다. 전문가 협조가 필요한 안건이니까요.”
“그건… 그럼 제가 부탁받은 셈 치죠, 뭐.”
“그 전에 신고 내용을 재확인하겠습니다. 바깥 집회에 참여한 일반인들 대다수가 세뇌 마법에 걸려 있는 걸로 추측되고, 물증은 아직 없는 상황. 맞습니까.”
맞다. 이것도 물증 취급하긴 애매하지만, 지금 행인들에게 일그러진 게 보이진 않고 있다.
떠오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세뇌 마법에 마력을 감추는 기능이 들어있어서던가, 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행인들에게 마법이 강하게 걸린 게 아니어서던가.
내가 하나처럼 멋들어진 뿔이 달린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점장과 토의한 내용대로라면, 종교를 전파하고 있는 놈에게만은 필시 뭔가가 보일 것이다. 슈퍼 전파자니까.
“이해했습니다. 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게요?”
“아까 통화 내용으로는, 점장님께서는 이찬 님께서 엮이시는 걸 반기지 않는단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그건… 예. 나중에 점장님께 혼날 것 같기는 한데….”
점장이 마법과 관해 직설적으로 개입하지 말라는 말을 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난 점장과 늘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그러니 개입은 안 하겠다. 안 하되, 슈퍼 전파자 놈 얼굴만 한 번 보고 올 생각이다. 바깥에 수천 명이 그놈 얼굴 보려고 모인 건데 나 하나 더해진다고 별일이야 나겠어?
얼굴 보고 뭔가가 일그러져 보이거든, ‘저놈 맞네요―’ 말만 하고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겸사겸사 개인적인 호기심도 해결하고 말야.
“저 오후 10시 근무니까, 가능한 빨리 다녀오면 좋을 거 같고요. 경관님 지금 근무 중이시면―”
“아뇨. 이번 주 제 업무 중, 이 건이 가장 우선도가 높습니다. 죄질이 무거우니까요.”
“요새 어떤 일 하시는데요?”
“수사할 사건에 대한 사건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그다음에는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 작성한 뒤에는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렇게 작성한 보고서가 근 3일간 20건이 넘는다는데, 경위를 단 지금도 사내 괴롭힘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모양이다. 거 능력도 좋은 사람인데 좋은 일이나 좀 시키지….
정작 본인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무덤덤했지만 말야. 그래도 마지막에는 게슴츠레하던 눈빛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형사로써의 외근은 처음입니다. 협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지인들 모두가 그렇듯, 자기 일에만큼은 한없이 진심인 사람이니까. 순서가 다소 뒤섞이긴 했지만, 이렇게 현장 검증하는 일을 따라나서게 됐다.
“그럼 지금 바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밖에 사람 더 모이면 걸어 다니지도 못할 거 같아서요.”
“짧게 업무 보고만 마치고 오겠습니다. 잠시….”
말하고는 ATM이 있는 구석으로 가 폰을 꺼내 드는 경관. 보고도 이젠 무전기가 아닌 폰으로 하나보다. 허리춤에 무전기 달고 다니면 사복경찰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는 꼴이니까.
보고하는 동안 나도 준비물을 좀 챙겨야겠다. 우선은 가방.
딱 물건 하나만 집어넣을 거니, 매장에서 파는 것 중 적당히 작은 거 하나를 사면 될 것 같다. 셀프로 계산한 뒤엔 카운터 밑에서 물건을 챙기려 했는데, 없었다.
“유리야, 너 혹시 가면 못 봤냐? 분명 이 밑에 던져놨었는데―”
“이 여우가면 얘기죠. 오빠.”
“어, 맞어. 여우가면… 뭐야. 그걸 니가 왜 들고 있어?”
아직 챙기겠다고 말도 안 했건만, 유리가 그새 내 가면을 챙겨서는 손끝으로 쥐고 있다. 황당함에 바라만 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가면을 내밀며 입을 연다.
“다시 말하지만, 망설이지 마요. 분명 이해해 줄 테니까.”
“그거 아까 끝난 거 아니냐? 아까 진상 손목 붙잡을 때―”
“저는 ‘오후’에 망설이지 말라고 했었어요. 오빠.”
듣고 나서 돌이켜보니, 확실히 오후라는 시간을 먼저 언급한 것 같긴 하다. 방금까지 POS기가 가리키는 시각이 오전 11시 59분.
수 초 뒤, 오후가 됐다. 마찬가지로 POS기를 바라보던 유리가, 계산대 위에 가면을 올려놓고는 말을 맺었다.
“잘 써요, 오빠.”
“……오냐. 고맙다.”
“그나저나 이 가면 예쁘네요. 저도 써봐도 되나요.”
* * *
안 된다. 대답한 뒤, 시무룩해진 유리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29살 먹은 놈 수염 닿았던 걸 여대생이 뭣하러 쓰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인파에 끼어들자마자 매장 음악소리에 묻혔던 말소리들이 무척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말하는 내용이며 반응이며 각자 천차만별이었다.
“사티, 이번에 행사하는 거 상품 챙겨왔어?”
“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백화점 갔는데, 텅텅 비어있었어… 무키 너는?”
“사탕 두 봉지 챙겼지! 용사 그림만 그려져 있으면 최소 5천 원 준다는데, 사탕에도 그림 그려져 있거든. 이거 포장 뜯으면 사탕 한 알에 5천 원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글… 쎄.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일 같은데….”
“그렇기는 하지만, 낱개로 구매했다고 하면 뭐라고 못하지 않을까?”
우리 바로 옆에 붙어있던 두 서큐버스 학생들의 대화였고, 듣고 나서는 참 크게 될 서큐버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반응이 강도로 치면 극소노 정도.
“이게 뭐라고 길까지 틀어막냐고.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겠네….”
“그 말뜻은 무슨 의미지? 자네 지금 우리가 모시는 마왕님을 음해하려 드는 겐가?”
“할아버지는 누구신, 그보다 길 막고 있는데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길을 막는 게 아니라, 자네들이 우리 신성한 의도를 방해하고 있는 게야! 그렇지 않소, 신도 여러분!”
“옳소! 옳소!”
“아니….”
이건 앞으로 사람 세 명분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대화였는데, 마왕교에서 신성한 의도란 단어를 써버리면 이율배반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이게 중노 정도의 반응.
빠아앙― 빠앙, 빠앙―!!
“아, 경적 엄청 시끄럽네! 저기요, 운전자 아저씨! 경적 좀―”
“입 닥쳐! 똥 마려워 죽겠는데 지금 20분째 10m도 못 갔으니까!”
“…그, 그럼 그냥 세워놓고 화장실 가면 되지….”
“그럼 문 옆에서 다 꺼지고 비키던가. 지금 차 문을 어떻게 열어, 이 새끼야! 차 문을 어떻게 여냐고!!”
어떻게든 인파를 뚫어내던 와중, 건너편 도로 쪽에서 우리 매장 단골 중 한 명을 연상시킬 정도의 거한 욕바가지가 쏟아졌다. 근데 이렇게 급하면 창문으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이었다가, 인파 사이로 슬쩍 보인 차를 본 뒤엔 상황을 이해했다. 오크 한 명이 열린 창문 밖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창문 밖으로 어깨조차 빼내기 힘들 정도로 몸집이 거대했다.
저래서 내가 헬스를 안 하는 거다. 이런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게 되니까.
이 반응이 극대노였고, 대노는 아직 발견 못 했다. 이러면 마지막으로 소노가 남는데….
“…뭔 씨, 당최 지나가질 못하겠네요. 경관님.”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나였다. 신앙이나 돈에 눈먼 사람이 뭐가 이렇게도 많은지, 한 발자국 걷는 데에 온힘을 다해야 할 정도다. 공중부양 마법이 절실하다.
“공중부양 마법은 하피, 조인족, 기타 비행이 가능한 이종족들의 도주 우려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됩니다. 송구하군요.”
“정말 송구하신 거 맞아요?”
“아뇨. 농담이었습니다.”
“그러실 거 같더라. 그럼… 사람들 몸 슬쩍슬쩍 건드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연한 신체접촉이 위법인 건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난 순수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강도가 천차만별이긴 해도 마법이 걸려있다면, 내가 손을 대는 걸로 마법이 풀릴 거다. 건드리는 만큼 귀가자 수도 늘릴 수 있겠지.
물론 문제가 훨씬 더 크긴 하다. 이래 버리면 몇 분, 내지는 수십 분간의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 단기기억상실 환자가 속출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코 앞, 혹은 주변에서.
바로 옆에서 ‘어?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며 혼란해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든, 사람들이 혼란해할 게 분명하다. 그 이유에서라도 마법은 못 푼다. 일일이 다 풀어줄 자신도 없고.
근데 지금은 그렇게 해서라도 길을 뚫고 싶다. 호기롭게 정문 밖으로 나선 게 5분이 넘었는데, 아직도 편의점 간판이 대문짝만하게 보인다.
경관도 답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발뒤꿈치를 들어 건너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예 집회가 끝난 뒤에 움직이는 게 최선일 듯합니다.”
최선이라기보단, 그것 말고는 방법도 시간도 없어 보인다. 밖에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이 거리가 집회 장소가 된 게 내 직장 풍수지리가 안 좋아서만은 아니였다.
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학원지구 출입로 정문 바로 위에 어제만 해도 없었던 스피커나 카메라같은 게 정문 바로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저곳을 단상 삼을 모양이다. 나 살던 곳이었으면 초중고 주변 지역에서 집회 여는 건 꿈도 못 꿀 짓이지만, 여긴 종교에 관한 헌법이 제대로 되질 않은 곳이니….
경관이 별말 없는 것도 이 이유에서일 테고. 생각하는 사이, 스피커에서 소음이 한 번 울렸다 잦아들었다. 곧 시작할 것 같다.
“…헌데, 이찬 님.”
“네?”
“그 가방은 어떤 목적으로 챙겨오신 겁니까.”
경관이 내 배 쪽을 바라보며 묻는다. 혹시라도 인파에 짓눌려 깨질까 봐, 일부러 앞으로 메고 손으로 받쳐 보호하고 있었다. 내용물은 가면 하나만 넣어놨다.
개인적으로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걸 설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잡음만 들리던 스피커에서 마침내 언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아, 아. 잘 들리는지요, 참여자 여러분….
더럽게 잘 들린다. 이러면 설명하지 않고 넘길 수 있을 거 같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저것부터.”
“…알겠습니다.”
눈짓하자 따라서 고개 끄덕이고는 앞을 바라봤고, 나도 까치발 들었다.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뒤이어, 연륜 가득한 말소리가 울려 퍼진다.
― 집회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마왕님의 축복이 있기를. 참여자분들 모두, 마왕님께서 대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로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허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모든 분께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때에 대해 짧은 옛날 이야기를 잠시 꺼내려 합니다.
방학식 직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듣는 느낌이다. 주변 극소노들의 탄식이 튀어나오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할 말을 늘어놓는 발표자.
― 옛날, 용사라는 이름의 간악한 자. 그리고 한 마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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