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
이세계 편돌이-31화(32/331)
31화. 사색하는 편돌이
난 염통을 잘 못 먹는다.
왜냐면, 좀 그렇잖아, 그거. 닭 심장이라는데.
근데 누나가 갑자기 심장을 꺼낸 탓에 하마터면 뒤로 뒤집어질 뻔했다. 다행히도 비명을 지르는 것만은 겨우 참아냈는데, 자세히 보니 심장이라고 보기엔 좀 의아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피도 안 흐르고, 색도 보라색이며, 고동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니, 밖에 꺼낸 심장이 뛰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긴 한데, 하여튼 심장같이 생기긴 했어도 심장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수 핵인데 말야.”
“핵이고 대포동이고 그걸 갑자기 왜 꺼내는 건데?”
“대포동은 또 뭐야?”
누나가 고개를 갸웃해 왔다. 이런 이런, 너무 놀란 탓에 내 세상의 말이 튀어나와 버렸군(웃음).
아무튼 누나가 이걸 왜 꺼냈는고 하니.
“싫은데.”
“야. 말은 들어보고 결정하면 안 돼?”
“싫은 걸 어떻게 해. 이거 지금 닭똥 냄새 나는 것 같다니까?”
“냄새는 신경 쓰지 말고. 몸에 해로운 거 아니니까.”
내 정신에 해롭다고, 정신에….
허나 더 궁상떨다가 의심받기도 싫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마수. 게이트란 곳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딱지들.
이 괴물딱지들이 튀어나와 세상에서 깽판을 치긴 하는데, 이놈들을 잡아다 신체 여기저기를 가공하면 바깥세상에서도 쓸 수 있는 훌륭한 재원들이 된다고 한다.
가령 슬라임을 수십 마리 잡아다 농축시켜 드워프들의 수염을 고정해주는 왁스로 만든다거나, 골렘의 관절을 뽑아다가 컨베이어 벨트 기어로 써먹는다거나….
그리고 이 마수 핵의 경우에는 열차의 동력원으로 쓰면 속도가 두 배가 된다는데, 값이 제법 비싸단다. 누나가 잡아 온 마수는 박제 후 전시될 용도지만, 보이지도 않는 심장을 굳이 달아놓을 필요가 없으니 빼뒀다는 게 누나의 설명.
“근데, 내 거래처를 영 못 믿겠어 갖고.”
“그래?”
“이게 말 그대로 마력 덩어리라 정화작업을 하긴 해야 하거든. 거래처에선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전에 비늘도 그놈들이 엉망으로 처리해서 갖다줬던 거 기억나?”
당연히 기억한다. 그놈들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내가 드래곤 고름에 손을 넣었다 뺄 일도 없었을 거고, 금일봉 받을 일도 없었을 거고, 더해서 내 체질이 더없이 괴랄한 체질이라는 것도 몰랐을 테고….
그리고 지금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을 거 아냐. 누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영 내키질 않았다. 편돌이인 내가 왜 말 염통까지 만지작거려야 되는 거냐?
“물론 수고비도 따로 줄게. 내가 계좌로 꽂아주면 문제 생기니까, 언니 통해서 주는 걸로. 어때.”
돈으로 날 매수하려 하는 겐가!
라며 거절하기엔 누나가 제시한 액수가 딱 집세 한 달 치. 내 기준으로 액수가 제법 크긴 했다. 이게 어찌 보면 의뢰고 어찌 보면 부탁인데, 난 부탁받았다는 쪽에 마음을 실어 되물었다.
“이거 내가 안 해주면 어떻게 되는데?”
“자고 일어나서 몇 시간 잔업 더 해야지. 핵이 특히 민감한 소재라서.”
“…줘 봐, 그럼.”
만져주기만 하면 된다잖는가. 그리고 지금도 야근하다 온 거라는데, 사람이 그래도 주말엔 쉬어야지.
이 핵도 못 믿을 거래처를 거쳤다곤 하지만 그래도 손길이 닿았던 거니 별문제 없을 거고….
“오. 나 신경 써주는 거야?”
“신경은 무슨. 해보긴 해볼 텐데,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한 후, 누나가 건네준 마수 핵을 양손으로 잡았다. 당장은 별 반응이 없었, 아니?
“뭐야, 이거 왜 이래?”
마수 핵에는 혈액을 운반하는 듯했던 큼지막한 혈관 두 줄기가 밖으로 튀어나온 채였는데, 이 줄기들이 갑작스레 보라색 연기를 풀풀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미어캣은 또 속았습니다.
“문제없을 거라며, 문제없을 거라며!!”
“거래처에선 그렇다고 했는데, 역시 아니네.”
머리에서 멀리 떨어뜨린 채로 계속 붙잡고 있자 정말 살아있는 심장마냥 박동을 해대기 시작했는데, 체감 BPM이 180쯤 됐다. 떨궜다간 정말 좆될 것 같아서, 아예 엄지손가락까지 더해 꽉 움켜쥐었다.
박동에 맞춰 손바닥이 벌려지고, 오므려지기를 반복하길 십수 초. 내뿜을 연기를 다 내뿜은 건지 마침내 잠잠해졌다. 속으로 10초를 더 센 후 누나에게 물었다.
“이 보라색 연기 몸에 해롭진 않아?”
“난 마셔도 상관없는데, 이찬 너는 현기증 같은 거 안 나?”
“현기증은 모르겠고, 닭똥 냄새 맞지? 이거?”
“타고났네, 진짜.”
꾸리꾸리하고 눈도 매운 게 몸에 썩 좋은 연기 같지는 않다. 편의점 정문을 열어젖히고, 빗자루를 가져와 냄새 빠져나가라고 휘둘러 다 내보냈다.
이후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마수 핵을 바라보았다. 외관상으론 아까와 크게 다를 게 없었으나, 손가락으로 쿡 건드려봐도 이젠 별 반응이 없었다.
윤하 누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자, 핵을 집어 든 누나가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말했다.
“거래처랑은 연을 끊든지 해야겠다, 정말.”
“이게 일을 제대로 안 한 거야, 아니면 아예 안 한 거야?”
“둘 다. 방금 빠져나온 연기가 내부에 고여있던 마력인데, 계속 내버려 두면 농축돼서 공기 중에도 불이 붙어버리거든. 그 사달 안 날 때까지만 작업한 거야.”
뭐 LPG 가스 같은 건가 보다.
“그럼 지금은 별문제 없는 거고?”
“공방에서 따로 검증을 받긴 해야 하지만… 별문제 없겠지. 비늘 때도 잘했었잖아?”
핵을 옆구리의 파우치 안에 집어넣은 윤하 누나는 이젠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시선이 더없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참 의아하단 말야.”
“뭐가.”
“회사 망해서 이직한 거라며. 그냥, 이런 거 할 줄 아는 애 데리고 있는 회사가 왜 망해버렸나 싶어서.”
그야 이런 거랑 상관없는 세상에서 이런 거랑 상관없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지. 담배의 요정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나한테 왜 이런 재주나 체질이 있는 건지도 전혀 모르겠고….
그리고 난 잘 모르겠는 것에 대해서도, 불리한 주제에 대해서도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누나가 때마침 크게 하품을 하길래, 대화 주제를 돌릴 겸 넌지시 말했다.
“누나, 잠은 제대로 자고 다녀?”
“아니. 엊그저께도 밤새웠고, 어제도 밤새웠고… 그래도 낼모레부턴 꽤 한가할 것 같긴 해.”
“내일부터는 왜?”
“5월엔 게이트가 잘 안 열리거든. 통계적으로.”
가정의 달이라 그런 건가, 괴물딱지들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런 건가.
“그러니까, 일 없어도 자주 좀 놀러 올게. 언니도 보고 싶고.”
“굳이?”
“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해. 나이 서른인데 같이 술 먹을 친구도 없다니까? 일만 하고 살아서 그런가?”
그게 이유라곤 못 하겠다만, 친구가 없다는 건 꽤 의외였다. 누나가 점장만큼의 동안은 아니었지만, 대학가 걷다 보면 ‘어느 대학 다니세요? 2학년?’ 소리 듣기엔 충분한 외모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에 20번쯤.
“그럼 놀러 오든가. 난 오는 손님 안 막아.”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여기서 일하다 보니까 도내 최상위급 미인들을 참 많이 만난다 싶다. 정작 난 반년 쓰다 만 철수세미처럼 생겼는데 말야.
“네가 막아도 올 건데? 아, 내친김에 맥주 좀 사 가야겠다. 뭐 추천할 만한 거 있어?”
“글쎄. 추천할 만한 건 없고….”
맥주 하니까 딱 떠오르는 게 있다. 잠깐 기다려 보라고 말한 후, 음료 창고 안에 박아뒀던 밀맥주 두 캔을 꺼내다 누나에게 건넸다. 누나 얼굴이 좀 밝아졌다.
“오. 나 이거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거 계산 끝난 거니까 그냥 가져가서 먹어. 취향 타는 맥주니까 너무 큰 기대는 말고.”
“계산 끝난 건 뭐야. 너 먹으려고 사둔 거야?”
“그건 아니고, 웬 정신 나간 치와와가 나 먹으라고 던져주고 갔어.”
“?”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졸려 죽으려 하는 사람한테 말해주기엔 좀 아까운 썰이지 이게.
내일 말하겠다 했더니, 누나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맥주 두 캔을 받아 허리춤의 파우치에 넣고는 내게 손 인사를 했다.
“내일 보자.”
“그려.”
이후 우비를 뒤집어쓰고, 허리띠를 조여 매고는 페가수스를 타고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다,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장은 두 번 신호가 울린 후 전화를 받았다.
[ 응, 찬아. ]“점장님, 물류 잘 받았슴다.”
[ 수고했어. 이번엔 별문제 없었고? ]“물류는 별문제 없었고요, 아까 누나가 할 말 얘기한 거에 대해선데요.”
[ 응. ]마수 핵을 들고 와서 정화작업을 부탁하길래 해줬다, 돈도 준다는데 그건 점장님 계좌로 쏜다더라, 앞으로도 자주 온다고 하더라. 세 가지를 짧게 요약해 말해줬더니, 점장은 으음… 하며 걱정하는 소리를 내다가 역으로 되물어왔다.
[ 주로 어떤 것들? ]“어… 그건 아직 못 들었는데요.”
[ …그래도 윤하가 위험한 걸 갖고 오진 않을 테니…. ]위험한 거라 하니 갑자기 불안해지는데 말이다. 나중엔 살아있는 지옥마 데려와서 나한테 갈기 빗겨달라 하는 거 아니냐?
물론 지금 걱정한다고 해소가 될 불안이 아니긴 하지만… 이게 정식적으로 의뢰를 받는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부탁 들어주는 거잖아. 내가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고.
백만 단위로 돈이 들어오고 그러지도 않을 거고.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럽다. 큰돈이 오가는 관계는 반드시 어디선가 어긋나게 되어있단 말이지….
“점장님께선 괜찮으세요?”
[ 응. 그래두, 아르바이트 그만두게 되면 미리 말 해줘. 알았지? ]이건 또 뭔 소리래?
“제가 여길 왜 그만둬요?”
[ 그야… 여기서 다른 곳 취직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건 아직 안 일어난 일이라 잘 모르겠고, 제가 여기서 어디 취직을 하려면 우선 이 세상엘 와야 되잖습니까.”
[ …응. ]“그렇죠. 근데, 저는 저 편의점 정문 말고는 여기 오는 다른 방법이 없고.”
당장 내가 이 편의점을 어떻게 올 수 있는지도 점장이나 나나 모르는 판국이다.
이 세상 누굴 붙잡고 물어봐도 그걸 아는 누군가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진즉에 나 말고 다른 이종족이 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그런 걸 못 봤으니 아직은 없는 게 맞는 것 갖고….
이세계를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이 편의점뿐인 이상 내가 돈을 벌려면 이 편의점을 필연적으로 드나들 수밖에 없는데, 그걸 허락하는 건 순전히 점장의 마음에 달려있다. 막말로, 점장이 나 싫다고 소금 뿌리면 내가 여기 다시 올 수 있나? 못 그럴 것 같은데?
그러니 점장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점장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착하잖아, 일단. 어느 누가 고졸한테 만 원씩 주면서 알바로 고용하냐고.
일일이 꺼내 봐야 긁어 부스럼 같은 말들뿐이라, 한 줄로 요약해 말하고 말았다.
“이해관계라는 겁니다, 점장님.”
“고맙긴요. 아예 1년 일해서 목돈 벌고 나가든 하죠, 뭐.”
[ 아, 정말루? ]점장이 반색하며 물어왔는데, 나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다. 이 경험이 포트폴리오에 도움은 못 돼도, 아껴 살면서 3천쯤 모으면 나도 내 세상에서 편의점 하나 정도는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정문 벨이 울리고, 손님이 왔다.
“손님 오셔서. 슬슬 주무셔요, 점장님.”
[ 응. ]전화를 끊고, 손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 하나 달린 사이클롭스.
덩치가 워낙 큰 탓에 입고 있는 재킷의 단추가 터질 듯이 팽팽했는데, 이젠 봐도 별생각도 안 들었다. 이 사이클롭스도 따로 생각이 필요한 짓을 하진 않았고. 와서는 내게 물었다.
“안약 어디 있어요?”
“저쪽 반사경 밑쪽 코너 한번 살펴보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사경 밑으로 가서 안약을 집어왔고, 계산해서 보냈다. 이후 앉아서 30분, 1시간. 수 시간을 가만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따라서 혼자 사색할 시간이 길어졌는데, 비가 오는 탓인가. 좀 우중충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편돌이 하면서 정말 별짓을 다 한다는 생각.
당장 몇 시간 동안 해도 그래. 괴물 심장도 만져보고, 담배의 요정도 받아보고, 지랄견 치와와 상대도 해줬잖아? 늘어놓고 보니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일은 일이고, 매시간 꼬박꼬박 만 원씩 급여를 쌓고 있다.
여기에 더해 누나 부탁도 들어주다 보면, 1년 보내고 나면 진짜로 내 세상에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취직 걱정 없이 편의점이든 뭐든 좋으니, 더는 먹고살 걱정 없는 일.
물론 배부른 꿈이긴 하다.
당장 내 꼬라지가 그렇잖아. 29살, 고졸, 스펙 없음. 이런 와중에 취직 걱정 없이? 먹고살 걱정 없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개소리지.
작기 그지없는, 지나가는 개마저 그딴 게 꿈이냐며 비웃을 추레한 꿈이긴 하지만….
여긴 이세계잖은가. 다른 세상이고….
다른 세상에서라면, 나 같은 놈도 달리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