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1)
이세계 편돌이-320화(321/331)
320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8)
발표자가 단상을 내려간 직후, 집회 거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사은품이나 현금을 지급하는 행사인 이상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는 했다.
“저기요, 앞에 다 받았으면 좀 나와요! 지금 몇 분이 지났는데 한 발자국 움직이지를 못해!”
“어휴, 몇 푼 받아보겠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니면 돈 얼마 남았는지라도 말해주던가, 나중에 없다고 했단 봐!”
“집회가 뭐 이따위야. 주최한 놈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거리를 빠져나오는 동안 온 사방에서 불평불만이 쏟아졌는데, 주최측도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은 아닐 거다. 이미 목적은 차고 넘치도록 달성했잖은가.
저놈들 목적은 서로 몸을 닿게 하는 거였지, 이 자리에서 돈으로 비신도들을 구슬리려 한 게 아니었다. 불평불만을 쏟아 낸다 해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세뇌 마법이 활성화되거든 불평불만도 자연히 사라질 테니까. 이 생각이 더해져서인가, 인파를 빠져나오면서도 사람들을 자꾸 되돌아보게 됐다.
마지막 인파를 빠져나올 때는 아예 발이 멈출 정도였다. 막연히 바라만 보던 중, 등 뒤에서 경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이, 이야기요. 네.”
“특정 구역에 약물이 퍼질 경우, 공급책을 검거하는 것이 중독자 수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칩니다. 0으로 만드는 건 모든 공급책을 검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만….”
여기까지 듣고 나서도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눈을 마주쳤으나,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저 말을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공급책이 한 명이니, 분명 잘 될 겁니다.”
“…….”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날 위로해 주려고 꺼낸 말이었나보다. 마음은 고맙다. 고마운데, 내가 저 사람들 모두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마법을 풀어준 흑염소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스로 걷고 상황을 판단하고, 혼잣말을 더듬거릴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었다.
문제는 더듬거린 혼잣말의 내용이다.
[ 교… 교주가 그랬어. 마왕님을 미, 믿기만 하면. 어머니 병도, 아픈 것도 자연스레 나을 거라고. ] [ 분명 그랬어. 믿으면. 믿으면 나을 거라고. 나을 거라 그랬다고…. ]난 기억 소거 마법은 안 건드렸다. 진심이었겠지.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었고, 제대로 된 반응도 못했다. 아무 대답도 못한 채, 가면만 고쳐쓰고 자리를 빠져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당연히 경관에게도 말 못했다. 이것까지 말했다간 내 어머니 얘기도 똑같이 꺼내야 하는데, 난 죽는 것보다 이게 더 싫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니 해결도 개인적으로 해내야만 했다. 묽은 침을 한 번 삼킨 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주 조금 나아졌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로요.”
“…아니면,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습니다.”
“안 쉬어도 돼요. 일단 아까 말씀 못 드린 거, 그. 잠깐만요.”
주머니를 더듬어 폰을 꺼내들었다. 난 내 할 일을 한다. 5블록 떨어진 엘프 민간 종교회.
지도에 검색하자 검색 결과가 1건 떠올랐다. 크지는 않은 곳이고, 지금은 문을 닫았다. 폰 화면을 보여준 뒤,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말씀 안 드리고 멋대로 굴어서 죄송합니다. 아까는 이 방법 말고 안 떠올라서―”
“사과하실 일 없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요. 단지….”
“네?”
“…아뇨. 아닙니다.”
순간 경관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으나, 아주 잠깐이었다. 물끄러미 폰 화면을 들여다보고는 짐작가는 게 있는지 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군요.”
“네? 경관님 전엔 사거리에서 근무하시지 않으셨어요?”
“엘프 관련 공무에 한해, 다른 근무지로의 단기 임시발령 일이 잦았었습니다. 같은 종족인 만큼 말이 더 잘 통할 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만.”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엘프 종족 경찰이 흔치는 않으니까. 여튼….
방문한 건 3개월 전의 일이고, 무기한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시청 공무원과 동행해 찾아갔었단다. 종교 입장에선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때문에 반발도 클 거라 예상했지만, 종교회 측에서 예상외로 잘 협조해 준 덕에 일도 수월하게 끝났다고. 허나 사소한 의문점이 한 가지 있었댄다.
“지하실은 출입금지라 하더군요.”
“왜요.”
“알 수 없었습니다. 행정명령에 대한 서류전달은 건물 사무실에서 이루어졌고, 화장실조차 들를 일이 없었으니까요.”
지하실이 있었다는 것조차 그 말을 듣고 나서 알게 됐다고 한다. 마치 도둑이 제발을 저린 모양새다. 설명을 마친 뒤,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경관이 말을 맺었다.
“그 의문을 오늘 해소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말을 맺음과 동시에 꺼내든 게, 자동차 열쇠였다.
보자마자 육성으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매번 박봉으로 고통받던 경관이 승진하더니 자차를 뽑았나보다. 이래서 사람이 출세를 해야….
“자동차 열쇠가 아닙니다.”
“네? 그럼요?”
“보면 아실겁니다.”
이번엔 경관 답지않게 말을 미루고 있다. 의아하긴 해도 일단 따라오라는 대로 따라갔고, 정체를 확인한 후엔 다른 의미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갓길에 바이크가 한 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토바이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잘은 모르겠다만, 이거 스포츠 바이크 아닌가?
“제로백은 2.8초. 최대 속력은 법규 문제로 299km/h까지만 표기됩니다만, 실속력은 그 이상입니다.”
“오우….”
“또, 차대에 되어있는 카본 튜닝은 배기열로 인한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섭니다.”
카본인지 뭔지는 내가 모르겠고, 붉은색 검정색이 반반씩 섞인 무광 도색에 기통이 무려 4개다. 내가 뒷좌석에 매달려 타야 하는 입장만 아니었거든 순수하게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원체 고지식한 만큼 취미가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한데, 왜 하필이면 취미가 이러나 싶다. 스펙을 늘어놓은 경관이 날 바라보는데, 다크서클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기대에 가득 찬 눈이었다.
“업무를 고려해 2인승을 구매한 탓에 차체가 둔하긴 합니다만, 멋지지 않습니까.”
제로백 2.8초가 찍히는 2인승 바이크가 어떤 미친 세상에 있… 아니다. 여기 이세계지?
“…죄송한데, 저 쓸 헬멧은 있죠?”
“당연한 말씀을. 헬멧도 도광을 해두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헬멧에 도광이 되어있는지를 내가 왜 걱정하겠냐며 따지려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야 택시비 아끼고 좋지, 뭐….
* * *
최대 속력 300km/h 이상 오토바이 뒷좌석에 탄채로 엘프에게 매달려본 소감. 상상 이상으로 부끄러웠고, 부드러웠다. 운전 얘기 하는 거다.
배달 알바조차 사고날까 무서워 안했던 놈인지라 내심 겁을 먹고 있었는데, 경관 운전 솜씨가 환상적이더라. 뭔 수를 썼는지를 몰라도 과속방지턱에서 바이크가 덜컹거리질 않는다. 분명 마법은 아닌데, 대체 뭔 수를 쓴 건지….
목적지를 확인한 뒤엔 좀 더 지나쳐 바이크를 세워뒀고, 걸어서 종교회 건물 앞까지 다가갔다. 막연하게 십자가나 예수상같은 걸 상상하고 있었는데, 건물 생김새가 상상한 것과는 딴판이었다.
비율이 이상하긴 했지만, 나무였다. 줄기 둘레는 사람 수백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 반면, 높이는 4층 언저리도 채 안 된다. 흡사 과체중 바오밥나무를 보는 듯 하다.
잎파리는 다 시들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양분이 없으니 당연히 메마를 수밖에. 줄기 정면부에 달린 나무문으로 다가가자, 빛바랜 행정금지 명령서가 붙어있는 게 보였다.
명령서를 손으로 슥 쓸어내린 뒤, 간단히 소감을 말해오는 경관.
“제가 붙인 그대로군요. 낡기는 했지만.”
“붙이는 것까지 직접 하셨었어요?”
“예. 그리고… 손잡이의 먼지를 털어낸 적도 없습니다.”
명령서의 글자는 흐릿해진지 오래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감싼 울타리, 아이들을 위해 지은 듯한 미끄럼틀, 녹슨 주차장 안내판, 기타 등등.
깨끗한 건 손잡이 뿐이다.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나보다. 하기사, 이런 다 시든 나무를 일부러 방문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더해서 안전불감증 말기인지 문조차 안잠궈놨다. 이러면 깨진 창문을 타넘을 수고는 덜었다. 손잡이를 잡아당기기에 앞서 확인차 물었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한데, 들어가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까요?”
“사유지 침해를 염려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이 나무는 현재 시청 관할이니까요.”
“아. 집합금지 때문에… 맞다, 경관님.”
“말씀하십시오.”
“이 종교회 말인데, 집합금지는 왜 당한 거에요?”
예배자가 적어서 폐업한 교회는 많이 봤지만, 나라에서 모이지 말라고 딱지 붙인 종교 건물은 살다살다 처음 본다.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던 경관이 입을 열었다.
“표면적으로는, 불법건축물 신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불법건축물이요?”
“이 나무가 주변 지면의 마력을 빨아들인다는 신고가 접수됐었습니다. 하지만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묘목이 이렇게까지 성장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 불가능을 가능케 했단 얘기가 아니라, 애초에 이 나무가 불법건축물이 아니란 얘기다. 법률 초보자가 대처해도 집합금지조치를 받을 일도, 이렇게 문을 닫을 일도 없었다. 말인 즉.
“…아예 폐쇄될 목적으로 자체신고를 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허, 참. 돈이 썩어나는 것도 아니고….”
“확대해석이긴 합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바로 문손잡이를 당겨 열었다. 내부 환경은 바깥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바깥보다도 훨씬 더 을씨년스러웠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상도, 스테인드글라스도, 커튼도. 심지어 의자조차 없다. 깨진 창문에서 새어들어오는 햇빛에 먼지 알갱이들이 흩날리는 게 눈에 보인다.
예전 풍경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그나마 남아있는 게 딱 하나. 우리가 들어온 문의 반대편에, 나무로 된 사람 조각상이 매달려있는 게 전부다.
조각된 귀가 뾰족하다. 엘프인듯 하다. 다른 구조물은 다 치워놓고 왜 저것만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떼내는 걸 까먹은 거던가, 아니면 일말의 양심이고 신앙이었다던가.
어쨌든 첫 건축 목적은 종교였을 테니 말이다. 종교 티를 내긴 내야 됐겠지. 가까이서 확인해봐도 뾰족한 귀, 그 이상의 특징은 찾아낼 수 없었다.
조각상마저도 시들어버린지 오래다. 두 손을 모은 조각상으로부터 눈을 돌려, 오른쪽 밑 구석을 내려다봤다. 좌우 직경이 1m쯤 되는 지하문이 있다.
몸 숙여 귀를 기울여봤다. 아직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경관님.”
“열겠습니다.”
경관이 잡아당겼고, 내가 어깨로 받쳐 밀어 열었다. 마른 줄기가 얼기설기 얽힌 회전계단이 밑으로 이어져있다. 벽을 짚어가며 내려가는 동안에는 서로 말이 없었고….
속으로 20칸을 헤아릴 즈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외침소리였다.
― …! ……!!, …!!
“경관님. 이거 외침소리 같죠?”
“예.”
정황상 아까 그 교주의 목소리긴 할텐데, 중간에 다른 문이 있기라도 한 건지 목소리가 막힌 듯이 들린다. 열 몇 칸을 더 내려가, 문에 귀를 댄 뒤에야 외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용사님 꼼짝 마! 용사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잠깐 문에서 귀를 뗀 뒤, 손가락으로 다시 귀 후비고 가져다 대봤다.
― 내가 이렇게 마왕님과 친한 교주야. 마왕님 보좌를 꽉 잡고 산단 말이야….
듣고 나선 더 당황했다.
이런 미친,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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