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2)
이세계 편돌이-321화(322/331)
321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9)
문 안에서 들려오는 어록 하나하나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주옥같다. 목소리가 똑같지 않았다면, 아까 집회에서 발언했던 발표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 이 도시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나 하면, 이 베나스 교주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있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베나스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니까?
―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제가 밤새도록 기도하다, 오늘 아침 마왕님의 음성을 들었단 말입니다. ‘이 도시는 망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
아까 집회에서의 말투는 나긋나긋하고 정중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사람 하나를 매달기 직전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을 만큼 단어 선택이나 어조가 폭력적이다.
― 이런 나를 음해하려고 벼르는 이단의 자식들이 있는데, 웃기지 말라고 해요. 우리 마왕교 신도들, 교주인 나를 위해 죽으려는 자가 70%다.
― 내가 손가락 한 개 펴고 다섯 개라 하면 다섯 개라고 할 사람들이 수만 명 중에 70%란 말입니다. 올바른 신앙심을 지니고, 교주를 위해 열린 사람들이 70%다 이 말이야….
70%라는 통계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가 궁금하다. 난 이 공격적인 포교 활동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인데, 경관은 이걸 똑같이 듣고 있을 텐데도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다.
아주 약간 표정이 구겨져 있긴 하지만, 이것도 문에 댄 귀가 접힌 게 불편해서 지은 표정으로 보인다. 도중, 문에서 뗀 귀를 쫑긋거리며 의견을 말해온다.
“세뇌 마법이 걸린 정도에 따라 다른 어휘를 선택하는 걸로 보입니다. 어떤 목적과 의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거 같긴 한데, 경관님은 이거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아무렇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찬 님께선 어떠십니까.”
어떻기는 뭘 어때. 당장이라도 가까운 심리치료센터에 들어가거나, 물로 귀를 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니면 잠깐 기절을 한다든가….
헌데, 내부에 있을 사람들은 뛰쳐나가기는커녕 저걸 곧이곧대로 다 들어주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교주 혼자 발성연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못해도 수십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걸 상상하니, 들어가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지금 들어갔다간 파티장에 휴대용 게임기 챙겨온 놈 취급받을 게 분명해.
“여길… 어떻게 들어가긴 들어가야 하는데….”
― 새겨들으십시오, 신도분들. 용사 믿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보내고 추종자들은 무인도에 가둔 뒤, 전송 마법으로 컵라면만 보내주면 이 도시는 마왕님의 도시가 됩니다….
저 정신 공격 때문에 머리가 전혀 안 돌아간다. 살짝 열면 눈치를 챌까 말까 따위를 고민하던 중, 타고 내려온 계단을 올려다보며 입을 여는 경관.
“이찬 님께서 협조해 주실 경우, 절차를 생략하고 사용 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요?”
“로브.”
로브는 또 뭐야. 의아함에 경관 눈만 바라보다, 경관이 뭔가를 뒤집어쓰는 시늉을 보인 뒤에야 경관이 시도하려는 방법이 뭔지 깨달았다.
“아까의 교주나 진행자들 모두, 생김새가 다른 로브들을 푹 눌러쓰고 있었습니다. 신도들의 신분에 따라 구별을 둔 것일 테죠.”
나도 기억난다. 단상에 올라갔던 교주 입은 게 휘황찬란했었고, 마이크 점검하러 잠깐 올라온 관계자가 심심한 디자인을 입고 있었다. 핵심 신도들은 그 중간 디자인쯤 되겠지.
마왕교 굿즈샵을 찾아가도 구하진 못할 거고, 이딴 데에 돈 쓰고픈 마음도 없다. 가면을 꺼내 뒤집어쓰며 말했다.
“경관님 평소 방식은 아니네요.”
“…그렇기는 합니다.”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 순수하게 의외여서 말 꺼내봤다. 뒤이어 손가락으로 계단 수를 헤아리고는, 문에 주먹을 가져다 대며 읊조리는 경관.
“부탁드리겠습니다.”
“옙.”
대답과 동시에 문을 두 번 쿵쿵 두드린다. 메아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문 안쪽에서 신경질적인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신성한 시간에 누가 감히 신성모독성 소음을, 밖에서 들려왔다고?
― …거기 맨 뒷줄의 두 분. 잠시 확인해 주십시오. 네, 당신 두 분 말입니다.
마침 인원수도 알맞게 두 명이다.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경관과 계단을 수 칸 올라갔다. 열린 문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의 정수리가 보인다.
바깥문 코 앞까지 유도한 뒤, 역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로브를 뒤집어쓴 밑으로 입이 벌어지는 게 보인다. 얼른 선수를 쳤다.
“택배요.”
상품명은 반마법이다. 재빨리 두 명의 손을 부여잡은 뒤, 얼른 밖으로 이끌고 나왔다. 끌고 나오면서는 저항이 거셀 거라 예상했으나, 생각한 만큼은 아니었다.
손아귀 힘도 약했고, 체중도 가볍다. 아까처럼 괜히 말을 걸었다간 또 혼란해할 것 같아, 손을 잡은 채 속으로 초를 셌다.
2~3분 여를 셀 즈음, 동시에 로브 두건을 걷고는 어리둥절해하는 둘.
“아니, 시상에. 임자, 우리가 쌩판 모르는 곳에 있어! 여기 어딘지 알어?”
“딱 봐도 몰러! 망한 건물이잖여. 헌디, 총각은 누군데 우리 손을 잡고 있는겨?”
각각 삽살개, 요크셔테리어 코볼트 분들 되시겠다. 털이 푸석한 게 나이가 무척 지긋하신 어르신들 같다. 이번에는 제대로 설명했다.
“지금 옆에 계신 분과 공무 수행 중인 까치라고 합니다. 가명이고요.”
“가명? 아아― 비밀 요원, 뭐 그런 건가벼. 살다살다 별걸 다 보네.”
“근디 총각, 비밀 요원이 이렇케 말 해줘도 되는감?”
“그게… 보통은 말씀 안 드리는데요.”
아까 흑염소한테 아무 설명 못해줬던 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 손을 놓자, 자기 공무원증을 꺼내며 설명을 이어가는 경관.
“형사과 경위 이루엘입니다. 종교 집단에 대한 초동 수사를 진행 중이었고, 종교의 신도 분들께 신체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의 마법이 전파되었다는 신고를 접수받아….”
“뭣이?! 수사? 우, 우리는 잘못한 거 없어. 어젯밤 분리수거도 잘 혔고―”
“아, 얘기를 다 듣고 호들갑을 떨든 말든 혀! 잘못한 기 없으믄 꼬리밟힌 개처럼 굴진 말아야 할 거 아녀?”
“두 분에게 혐의를 물으려는 게 아닙니다. 잠시 협조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후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두 어르신 모두 성심성의껏 협조해줬다. 마왕교는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느냐, 기억나는 활동 내역이 있느냐, 가입 경위는 어떻게 되느냐, 등등.
“마왕? 시방, 거 사람 무지막지하게 죽인 놈이잖여. 내 여섯째 형도 그놈 땜시 갔구. 근디 그런 똥같은 놈을 우리가 뭣 하러 믿는다는겨?”
“…두 분께서 입고 계신 로브가 마왕교 중역 로브입니다.”
“참말루? 옘병, 어쩐지 털이 간지럽드라니….”
크게 도움은 안 됐지만 말이다. 그래도 딱 하나. 가입한 이유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만은 들을 수 있었다.
헌데 이 이유가 씨, 사람을 다른 의미로 착잡하게 만들더란다.
“그… 엘프가 그러기는 했어. 돈만 주면 손자 대학 좋은디 갈 수 있을 거라구. 또… 뭐가 있드라?”
“영감 뱃속에 돌도 빼준다구 했잖여. 의사는 못 빼는 돌두 지 믿는 신은 그기 된다구, 막.”
“맞네, 맞어. 우리가, 그기… 땅이 좀 있단 말여.”
전쟁 직후, 이 도시가 허허벌판일 때부터 지니고 살았던 땅이 조금 있었단다. 그게 도시가 발전하며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이 금슬 좋은 노부부는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되어버렸다.
돈을 쓸 체력도, 시간도 안 되니 손자에게 물려줄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저 밑의 교주 놈 포교에 당해버린 거다. 퍼주고 퍼준 결과, 지금 그 땅은 한 줌밖에 남질 않았다고.
“근디 배는 시방, 낫기는 커녕… 아직도 디지게 아퍼야. 믿는 기 마왕놈인 줄 알았으믄 애초에 기대두, 아니 믿지도 않았을 건디.”
“나가 죽일 놈이여. 나가 갠시리 혹하지만 않았어두 땅 멀쩡했을 거 아녀. 미안혀, 영감….”
“미안허긴 뭐가 미안혀, 임자. 나 낫게 하려구 그런 거잖여. 나가 참질 못해갖구, 나잇값을 못해갖구 천벌받은 겨….”
말하는 표정이나 어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눈물 글썽이는 건 내로라하는 배우들도 쉽게 못하는 연기다.
여기서 연기 따위를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나도 평생 좋은 놈은 못 될 운명인가 보다. 수첩과 펜을 집어넣고는, 바깥을 가리키며 경관이 말을 맺었다.
“지구대에 연락해 경찰차를 호출하겠습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시다면―”
“괜찮여, 경찰 양반. 우리가 여까지 어케 왔는진 몰라두, 차 타구 오진 않았을 거 아녀. 그치, 임자?”
“그렇것지. 우리 차 없잖여.”
“맞어. 알아서 할 테니까는, 우리덜 걱정 말고 저 밑의 개쌍놈이나 어떻게든 해주어.”
“우리가 뭐 도와줄 건 없는감?”
이 직후에는 땅이 아직 조금 남았단 말을 하시길래, 우리 말고 손주를 주는 게 맞다고 극구 뜯어말렸다. 딴 사람들이 땅 달라는 말은 앞으로 일절 듣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그래도 바라는 게 없지는 않다. 그 로브만 좀 빌릴 수 있겠냐. 말씀드리자, 마침 잘됐다는 듯 로브를 벗고는 서로를 바라보는 둘.
“근디 임자. 우리 어떻게 온 건지 기억나는 거 있어? 나 배 아픈디.”
“손 잡구 같이 걸어 왔겄지, 영감. 늘 그러고 다니잖어.”
“맞네. 늘 그랬으니깐, 오늘두 그러면 되것지.”
이 대화를 끝으로 두 손을 꼭 잡았고, 느릿느릿 걸어 건물을 벗어났다. 끼익 소리를 내며 닫힌 나무 문을 바라보다, 가라앉은 어조로 중얼거린다.
“재산 증여 과정에 허가되지 않은 마법을 사용해 적발될 경우, 마법법 제283조 특수사기죄 조항에 의거해 20년 이상의 징역이 처해집니다.”
“꽉꽉 좀 채워주십쇼. 가능하면요.”
적발은 내가 맡겠다.
준비물도 다 챙겼으니, 이젠 내려가서 얼굴만 보면 내 할 일은 끝이다.
* * *
로브를 뒤집어쓰고, 문 안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릴 줄 알았다. 지금까지 몇몇 놈들이 그래왔듯, 이 교주 놈도 겉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마법을 남몰래 쓰는 줄로만 알았다.
― 6월 21일 비가 많이 와서 ‘내가 부도가 났다―’ 며 마왕님께 고해했더니, 그분께서 정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 내 영광과 같음하면 되지 않겠느냐?
― 가장 기쁜 시간이 마침내 돌아왔다는 겁니다. 헌금하는 시간입니다, 헌금하는 시간.
허나 아니었다. 아까처럼 거리가 멀지도 않다. 내부에 로브를 뒤집어쓴 신도들 숫자가 많아 봐야 80명. 맨 뒤에서부터 8명씩 10줄로 서 있다. 아무리 멀게 잡아야 10m라고.
그런데 안 보인다. 눈썹을 쌍심지를 세워도, 어금니 악문 채로 저놈만은 내가 꼭 잡고 만다는 다짐을 수십 번을 해도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잘 안 되시나 보군요.”
“아뇨. 잘될 거예요. 그, 잠깐만….”
이 빌어먹을 야매 체질이 하필이면 지금, 아니다. 아까 그 노부부분들에겐 체질이 잘 먹혀들었다. 이제 와서 내 몸에 문제가 일어난 건 아닐 터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