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3)
이세계 편돌이-322화(323/331)
322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10)
이 방법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마법을 쓰질 않아 보이질 않는다면 아예 마법을 쓸 일을 만들어 버리면 된다. 아주 잠깐만 개종하고, 나중에 회개하는 거지.
그리고 교주 입장에서 본다면, 귀중한 헌금으로 사리사욕을 채울 정도로 신앙심이 옅어진 핵심 신도만큼 세뇌가 시급한 대상도 없을 것이다.
마법 면역인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마법에 걸리지 않은 경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알긴 아는데….
― 그, 맨 뒤에… 78번 신도? 아니면 77번인가?
“78번입니다.”
― 아, 78번. 좀 더 가까이에서 고해 해줄 수 있겠습니까? 제 말은,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제 바로 앞에서.
말하며 자기 바로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교주. 저 귀쟁이는 아까 바깥 살펴보라고 77, 78번한테 명령해 놓고 얼굴조차 구분을 못하고 있다. 사람을 대체 뭘로 보고 사는 건가 싶다.
저딴 놈에게 ‘나중에 풀어줄테니 세뇌 마법 한 번만 걸려줄 수 있겠냐’ 따위를 부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기분이 더러운 걸 떠나 근거 자체가 턱없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예. 지금 가겠습니다.”
경관은 내가 반드시 세뇌를 풀어줄 거라는 믿음, 단 하나만 가지고 이러고 있다. 로브를 붙잡아 말리려 했으나, 경관이 먼저 손바닥을 뻗어왔다.
이미 마음 굳혔으니 말리지 말랜다. 아예 팔목을 붙잡아버릴지를 고민하다, 결국 생각을 고쳐먹었다.
염병할, 하면 될 거 아니야. 하면.
손을 내리는 대신 등을 떠밀어줬다.
한 발자국 나아간 경관이 로브 입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헤쳐나가 교주의 앞에 섰다. 먼저 입을 연 건 교주였는데, 내뱉는 어절 하나하나에 빈정거림이 가득 섞여 있다.
― 바이크, 를 새로 장만하셨다라.
“예. 옛날부터 줄곧 꿈꿔왔던 취미이기에, 수년간 돈을 모아….”
― 그 취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제가 수없이 말을 드렸잖습니까? 여흥은 잠깐일 뿐이나, 신앙은 영원하다.
두 팔을 과장되게 벌리며 경관의 말을 끊고는 손을 건네는 교주. 뻗어진 손에 경관이 손을 얹음과 동시에, 손 언저리가 일그러졌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분명 일그러졌다. 잠시 후, 얹었던 손을 떼며 의아하다는 듯 묻는 교주.
― 그런데, 수 년간 돈을 모아서 샀다는 게 ‘고작’ 바이크라고요? 그것도 3천만 원 짜리?
“…….”
― 의아하군요. 당신같은 거지를 내가 부를 일이 우연히라도 없었을 텐데… 당신 직업이 뭡니까? 78번.
방금 걸로 확실하게 세뇌를 걸었다 판단했는 지 아주 막 나가고 있다. 거지라는 단어도 단어지만, 다음에 따라온 경관 대답에 속이 아예 뒤집어졌다.
내용이 아닌 다른 게 문제였다. 세뇌 피해자 특유의 더듬는 말투나 몽롱한 어조는 똑같았으나,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기밀… 입니다.”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귀찮아하기만 하던 교주의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을 바싹 가져다댄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 기밀? 지금 기밀이라고 했습니까? 이 교주에게?
“…….”
― 다시 묻겠습니다. 직업, 이름, 그리고 재산 목록이 어떻게 됩니까?
“마… 말씀드리는 건.”
― 뭐라고?
“말씀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제 믿음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경관이 어떻게 세뇌에 저항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다. 저항하는 의도도 마찬가지다. 비협조적인 태도가 사건 상황을 꼬면 꼬았지, 더 낫게 만드는 게 아니란 걸 경관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저항하고 있다. 의도도 후폭풍이 어떨지도 짐작이 안됐지만, 일단 속으로 박수부터 쳤다. 그래, 늘 잘풀리기만 하면 배알 꼴리니 이렇게 엿도 한 번씩 먹여줘야지….
눈알이 빠지도록 경관을 노려보다, 고개를 기괴할 정도로 기울이며 중얼거리는 교주.
― 이상하군. 오늘 받은 마법 품질에 문제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듣자마자 속으로 박수치던 걸 멈췄다. 마법을 ‘받았다’ 고? 누구한테?
― …77번.
“응? 77번?”
― 77번! 왜 대답이 없어, 귀 먹었습니까?!
77번이면 소거법으로 내가 해당된다. 얼굴은 기억 못 해도, 자기가 방금 내보냈던 번호가 각각 몇 번이었는지는 뇌리에 남았나 보다.
막 생각하려던 걸 털어내고 얼른 손을 들었는데, 이조차도 불만스러운지 교주가 노성을 있는 대로 질러대며 삿대질을 해왔다.
― 이 신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니, 헌금 시간 끝나는 대로 고해실에 들여보내십시오. 그다음엔 당신도 들어가고!
“저도요?”
― 왜 교주님이라는 존칭을 안 붙이고, 손만 들어 대답하냐고!! 아, 물론 나머지 신도분들은 아무런 번뇌가 없으신 분들이니… 흠, 흠.
무슨 군대도 아니고, 말미에 계급 안 붙였다고 영창을 처넣으려 드나 싶다. 소리를 빽빽 질러댔던 게 내심 신경 쓰였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서둘러 말을 맺는 교주.
― 예정대로 헌금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우선 맨 앞의 신도분들부터… 그리고 78번 신도.
“…….”
― 당신은 77번을 따라 바로 고해실로 들어가십시오. 바이크를 현금화할 때까지 고해실에서 나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요. 어차피 돈도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교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앞에 늘어선 모든 사람들이 로브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동안 뒤적이고는 꺼내는 게 노란 봉투, 두터운 지폐 다발, 지갑 등등.
심지어 누구는 종이 문서까지 꺼내 들더라. 나도 의심을 더 사긴 싫어 주머니를 뒤적여 봤는데, 500원짜리 동전이 하나 나왔다. 이득 본 기분이다.
다시 챙겨 넣은 뒤, 경관이 현금통으로 향하는 인파를 역행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가만히 기다렸다. 기다리기를 십수 초.
눈이 마주쳤다. 세뇌의 영향인지 저항한 반동인지는 몰라도 눈동자의 초점이 흐리다.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와이셔츠 옷깃은 땀에 가득 절어있다.
얼른 손 붙잡은 뒤, 최대한 문제없이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깍지까지 꼈다. 식은땀 가득한 손을 몇 번이고 고쳐잡은 후에야 경관이 입을 열었다. 지친 목소리였다.
“…무척.”
“지금은 아무 말 말고 가만 계십쇼. 힘드실 거 아녜요.”
“보고를 드릴 정도는 됩니다. 무척…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네?”
“누군가가 저한테 말을 걸어왔습니다. 내용은….”
손을 잡는 순간 교주를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단다.
내가 네 믿음이요, 세상 어떠한 어둠보다도 어두운 칠흑이노라.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받고, 차별받는 네 억울함이 얼마나 짙은지를 잘 알고 있다. 나를 믿어 안락해지거라. 모든 걸 내려놓아라. 날 믿고 몸을 맡긴다면 해방될지어다.
비록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마왕이라면 필시 이런 목소리를 지니고 있을 거다― 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위압감이 엄청났다고 한다. 하지만, 경관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저었다.
“한 명 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었습니다. 반대되는 내용에, 한 마디였고….”
“누구요. 반대되는 내용이면, 용사같은 건가?”
“…이것만은 스스로 판단하시는 게 더 좋을 듯 합니다.”
무슨 내용이길래 이리 망설이나 했는데, 들은 후엔 헛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겨우 삼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 경관님. 경관님께서 지닌 신념이 저딴 사탕발림에 꺾일 정도는 아니잖습니까? ]누군가가 말해온 이 말 한 마디를 속으로 수십 번 곱씹으며 저항했단다. 이번엔 내가 손에서 식은땀을 흘릴 차례였다.
“경관님. 죄송한데 방금 말씀하신 것만은 진짜, 그.”
“헛소리라 생각하셔도 당연하단 건 압니다만, 들은 내용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여기에 사견을 하나 보탠다면.”
“보탠다면요?”
“제 지인들 중, 절 ‘경관님’이라 칭하시는 분은 이찬 님 한 분뿐입니다.”
이게 헛소리가 아니면 뭐가 헛소리냐고. 난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는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을뿐더러, 애초에 마법조차 쓸 줄 모른다. 그냥 누가 나 따라한 거 아냐?
애써 현실 부정을 해보려 했으나, 이조차도 잘 안됐다.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는 재주가 있는 놈이 한낱 편돌이 말투를 굳이 왜 따라 하는데. 서민체험 하는 게 아니고서야….
“짐작 가는 게 전혀 없으신가 봅니다.”
있었으면 이렇게 당황을 하겠냐고. 침묵하는 사이, 깍지를 낀 손 쪽으로 시선을 떨구는 경관. 방금 들은 말 때문에 아예 놓을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었다.
지그시 손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교주 쪽을 바라본다. 먼저 잡은 입장에 미안하긴 한데, 마법 다 풀렸으면 이제 손 좀 놔주면 안 될까?
“마지막으로는, 꽤 믿음이 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게 마지막인 거 확실하죠?”
“전혀 아닙니다만, 해야 할 일이 우선이니까요.”
굳이 전혀라는 단어까지 써야되나 싶었으나, 꾹 삼키고 나도 교주 쪽을 바라봤다. 일그러지고 말고를 떠나 현직 경찰에게 대놓고 마법을 건 시점에서 저 교주는 이미 확신범이다.
물론 안 들킬 자신이 있어서 저지른 거겠지만 말야. 아까 분명, 저 놈이 마법을 누군가에게 ‘받았다’ 고 말했었다.
“마법을 ‘받았다.’ 확실합니까?”
“네. 어디의 누구한테 받았는지는 말이 없었지만….”
세뇌 마법에 소양이 있는 마법사로 한정한다면 범위가 꽤 좁혀질 거다. 저 교주 놈도 잡아넣고, 그 마법을 준 놈도 찾아내 잡아넣으면 이 일도 끝이다.
그리고, 내 일도 끝났다. 마법을 쓴다는 증거를 잡아냈고, 뒷배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얼떨결이긴 하지만 알아냈다. 전부 말해줬으니 이제부터는 경찰의 영역이다.
때문에.
― 제가 기업인 현금은 마음 편하게 받습니다. 받겠는데, 저런 거지 오촌같은 귀쟁이가 헌금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마왕님께 돈 많은 놈들만 만나게 해달라고 해야―
여기서 더 나서려면, 고집을 좀 많이 부려야 했다.
“…죄송한데요, 경관님.”
“예.”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됩니다.”
다 듣고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솔직히… 지금도 꽤 망설이고 있거든.
그래도 분명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한창 헌금에 열중인 신도들과 헌금통을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한 뒤, 마지막에 요구사항을 덧붙였다. 난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나가겠다.
“저 교주한테 단 둘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니까….”
“오전에 매장에서 말씀하셨었죠. 개인적인 호기심이 있으시다고.”
“…예. 그거 맞아요.”
“물리적인 분쟁이 발생할 만한 질문입니까?”
딱 필요한 질문만 해줘서 고맙다. 그럴 일까진 없을 거라 대답하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깍지를 낀 손을 놓으며 나무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부여잡는다.
“이찬 님 부탁대로라면, 신도 분들을 따로 안내드릴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만.”
“어… 네. 그것도 좀 부탁드릴게요.”
“문 위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일이 생기거든 문을 세게 두드려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조심하시길.”
마지막으로 눈빛 한 번 교환한 뒤, 경관은 문을 열어 밖으로 올라갔다. 이제 잔업 시간이다.
통로를 등지고 선 채로 신도들이 헌금통을 들락날락거리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전재산의 몇 퍼센트나 되는지 모를 돈을 헌금통에 쏟아부은 1번 신도가 마침내 빠져나왔다.
말끔한 차림새의 뱀파이어였다. 마법 잘 쓰는 종족조차 가리질 않는 걸 보면 마법이 세긴 어지간히도 센 모양이다. 통로를 막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멀뚱히 서있기만 하는 게 꽤나 의아했던 모양이다.
“뭐지, 인간. 네놈은 헌금은 안 하고 뭘 하고 있나?”
“인간요? 아. 맞다.”
까먹고 가면을 안 쓰고 있었다. 얼른 가면을 뒤집어쓴 뒤, 의심스럽게 날 바라보던 뱀파이어의 손을 냉큼 툭 건드렸다.
날카롭던 눈초리가 순식간에 흐려지고, 발을 한 번 주춤거린다. 말끔한 양반이 여기 흘러들어오게 된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일일이 하소연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계단 끝에 사정 잘 아는 분 서 계실 테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그 분께 여쭤보세요.”
“…너는 누구….”
“그것도 위엣분께 물어보시고.”
계속 어영부영하길래 등 떠밀어 위로 올려보냈다. 이게 1번 손님.
뒤이어 2번 손님. 건설업 중역의 관상을 지닌 미노타우르스였다. 3번 손님은 100m를 4초로 끊을 장딴지를 지닌 켄타우로스, 4번 손님은 양서류 계열의 사모님 코볼트.
30번 대 언저리까지는 편의점에서 받기 힘든 부유한 손님들이 많아 신선했는데, 50번 대부터는 슬슬 질리더라. 60부터는 그냥 말 한두 마디만 덧붙여 올려보냈다.
이윽고 77번 차례가 됐고, 난 저놈한테는 500원도 주기 싫다. 78번도 마찬가지일 테고. 나와 경관을 건너뛰어 79번, 80번….
― 뭐야. 오늘은 평소보다 헌금이 더 적은데?
마지막으로 0번, 교주만 남았다. 헌금통을 들여다보며 의아해하는 게 아직 신도가 남아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눈치다.
아예 자물쇠를 뜯어 내역을 확인하려 들길래,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 먼저 말 걸었다.
“두 명이 안 내서 그런 거 아닐까요?”
― 뭐라고요?
“두 명이 안 내서 그런 거 같다고요. 제 생각에는요.”
기껏 고민을 풀어줬건만,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웬 헛소리냐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예 고맙다는 감정 자체가 결여된 놈 같다.
멀리서 한참동안 날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리는 교주.
― 당신은 몇 번입니까?
“77번요. 아까 고해실 가라고 했던 그놈.”
― 아, 그 77번. 근데 고해실은 안 가고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고해실이 어딘지 알려줘야 가든 말든 할 거 아녜요. 그리고….”
대답하며 문 잠금쇠가 잘 걸린 걸 확인했다. 경관 말마따나 저 놈과 물리적 분쟁을 벌이진 않을 거다. 내가 손수 주먹을 갈기지도, 발을 걷어차지도 않겠지만….
“이제 마이크 좀 꺼주십쇼. 어차피 사람들 없어서 잘 들리니까.”
아주 사실도 아니었다. 물리적 분쟁이 없을 거라 했지, 분쟁이 없을 거라고는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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