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4)
이세계 편돌이-323화(324/331)
323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11)
인파에 막혀있던 지하실 풍경이 이제서야 전부 다 보인다.
세로로 긴 아치형 공간의 내벽 모두가 이끼 낀 나무줄기로 엉긴 형태다. 그 벽에는 일정 간격으로 촛대가 매달려있고, 외의 구조물은 위와 거의 똑같다. 의자도, 창문도 없다.
단상 뒷쪽에 조각상이 매달린 것마저도 똑같았는데, 조각상의 생김새가 위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귀가 뾰족한 건 동일하나 짓고 있는 표정과 복장이 천차만별이다.
위에 있던 조각상은 맨몸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지쳤다는 것처럼.
반면 여기에 있는 조각상은 로브를 두르고 있고, 얼굴엔 의기양양하다 못해 표독스럽기까지 한 표정이 만연해있다. 그 생김새가 마치….
“태도가 불건전한 걸 보아하니, 고해실에 처넣는 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라겠군….”
저 교주와 똑같이 생겼다. 자기 조각을 등진 교주가 헌금통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들으라는 듯이 읊조린다. 저 놈은 가면까지 쓰고 이러고 있음에도 아직 내가 지 신도로 보이나보다.
아니면 이런 일을 이미 자주 겪어봐서일 수도 있겠다. 점장은 세뇌마법이 불안정한 마법이라 했으니, 나처럼 세뇌가 풀린 것처럼 구는 신도들도 없지는 않았겠지….
이것도 아니면, 신도가 아니더라도 신도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나야 환영이다.
“그냥 안 가면 안 될까요. 제가 고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할 자신이―”
“암, 물론입니다. 네 놈을 보내기엔 고해실의 쌀이 아까워.”
번거롭게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한 칸짜리 단상을 내려온 교주의 로브 밑이 아주 약간 펄럭임과 동시에, 왼쪽 다리와 팔이 옥죄여져왔다.
바닥에서 나무 줄기가 뻗어진 것이다. 줄기에 감긴 다리와 팔을 내려다보는 사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내 앞에 서는 교주.
뒤이어 다시 한 번 로브가 펄럭였고, 팔을 휘감은 줄기가 삐걱대며 억지로 내 팔을 들어올렸다. 펼쳐진 손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덥석 붙잡았다.
이후엔 으스러뜨리듯 내 손을 움켜쥐었다 떼고는, 실실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묻는다.
“어떻습니까. 이젠 그만 좀 나대야겠다는 경각심이 드는지요?”
경각심은 염병, 역으로 묻고 싶다. 지금 이딴 걸 마법이라고 썼냐? 아니면 이것도 어디서 주워온 건가?
이딴 줄기는 한 번 후려치는 걸로 없앨 수 있다. 또, 마음만 먹는다면 교주 놈 눈웃음도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내 방식은 아니다.
일부러 눈의 초점을 풀고, 힘이 빠진 것처럼 팔을 축 늘어뜨렸다.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 오기 전부터 수 년간 품고 살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이다.
동시에, 내게 박힌 가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빼내려 해본 적도 없고, 빼낼 엄두도 못냈을 정도로 큰 가시다.
여기서 빠질 거란 기대도 안 한다. 비록 허울뿐이라 해도 종교 관계자이긴 하니, 의견을 듣고 싶을 뿐이야. 어차피 이 놈과는 오늘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다.
그렇기에 물어볼 수 있다. 우선 확인차 물었다.
“고해를 직접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그런 적이야 있는데, 지금은 헌금을 정산해야… 하지만 마법의 위력을 높여야 하니….”
이런 혼잣말을 지껄이는 걸 보면, 세뇌에 걸린 흉내가 잘 먹혀든 모양이다. 턱을 메만지며 중얼거리다, 어깨를 으쓱하며 묻는 교주.
“뭐, 들어드리지요.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저는… 아니고. 좀 뜬금없긴 한데.”
“상관없으니 말해보―”
“어머니께서요.”
암으로 돌아가셨다. 간 쪽이었고, 발견 당시엔 2기였다.
의사는 간암치고는 빨리 찾아냈고 완치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며 위로했었지만, 항암치료 고통으로 흐느끼는 당사자와 자식에게 그딴 말이 위로가 될 리가 있나.
서로 자주 울었다. 어머니께서는 아파서 우셨고, 난 힘들어서 울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치료가 5년쯤 진행됐을 때에 어머니께서 보이신 행동의 실체에 대해서다.
“종교를… 믿기 시작하셨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짧았어요. 1년쯤. 그 후에 돌아가셔서. 침대에 누우셔서 ‘이렇게까지 아픈 건 내가 신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일 거야’ 이런 얘길 많이 하셨고….”
그 때마다 딱 잘라 말했었다. 어머니께서 죄를 지은 게 있다면, 자기 부모가 아프다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비조차 못 대는 자식놈을 외동으로 낳은 죄 딱 하나 뿐이다.
신 대신 차라리 날 탓하시라고 그렇게나 말을 해도 들어먹질 않으시고, 계속 똑같은 말만 번복하시더라. 이렇게까지 아픈 건 내가 신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일 거야.
결국 난 아무 도움도 못 되어드렸다. 어느 누구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딱 하나, 도움을 줄 존재가 분명 있었다.
“낫게 해달라고는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말은 해줄 수 있잖아요. 그대여, 네 죄가 아니니 안심하라.”
“…흐음.”
“그동안 고생하였다, 이제 내 품에 편히 안겨도 좋다. 그 말 한 마디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자식 눈앞에서 어머니를 그렇게 가시게 만드냐고.”
언제 구했는지 십자가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걸고, 그 목걸이 줄이 끊어질 정도로 몸부림치다 가셨다. 끊어진 목걸이 줄과 십자가는 내가 직접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날부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 난 뭘 해도 안 되는 놈이다. 다른 하나는, 신은 아파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네 죄가 아니라는 말 한 마디조차 건네지 못할 정도로 무능력한 존재다.
어머니께서 정말 그 한 마디를 들으셨거든 최소한 눈 뜬 채로, 눈물 흘리며 돌아가시진 않으셨을 거다. 이 의문은 그 눈물의 의미를 수백 번 되새긴 끝에 떠올린 의문이다.
“제가 저 편한대로 생각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아녜요?”
“어떻게 말이지요, 77번.”
“신이 말을 했는데. 분명 말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너무 아프셔서 못 들은 걸수도 있잖아요. 어머니께서 가신 뒤라도, 나중에라도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거야, 따위의 위로를 바라는 게 아니다. 난 관계자의 객관적인 증언을 원한다. 사소한 거라도 좋다. 어머니께서 마지막 길이나마 편히 가셨다는 증거가 필요해.
이래서 물어봤다. 고해 들어준 적 있냐. 비록 자기 신도를 돈통으로밖에 못 보는 놈이라 해도, 이 놈이 방금 중얼거렸다. 세뇌의 위력을 높이는 데에 고해를 받아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그러니 교주로써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보여줄 거다. 비상식 가득한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보여주길 바라며 질문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 증거가 되어줬으면 해서.
결과는 물론, 병신짓이었다.
“그 분, 헌금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헌금요?”
“예? 헌금요오? 그걸 왜 되묻습니까? 네놈은 신앙에 대한 아무런 증명도 고난도 없이 보상만을 바라는 신도 따위를 마왕님께서 정녕 총애하고, 은총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느냐?”
이 망할 새끼가, 치료비에 집안 빚 때운다고 코피 터지면서 일하는 놈한테 헌금 낼 돈이 어디 있어. 돈 없으면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조차 바라면 안 돼?
“하는 말 자체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십자가는 또 뭡니까? 애초에 믿었던 신이 마왕님조차 아니었던 것 아닙니까?”
“…….”
“그리고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그냥 영혼을 불러내서 대화하면 될 일이잖아. 나 참, 무슨 대단한 고해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했더니….”
병신짓도 이런 병신짓이 없다. 뭐? 영혼을 불러내서 대화를 해? 딴 세상에 있을 영혼을 나보고 어떻게 데려오라는 건데?
설령 내 세상에 진짜로 영혼이 있다 쳐도. 그걸 볼 수 있다고 쳐도. 못 데려오잖아. 손 잡고 이끌어오려도 해도 그 순간 지워져버릴 텐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다면 죽은 엄마와 직접 대화를 해보십시오. 고해성사는 이걸로 끝입니다.”
“…그러시다면.”
“끝이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아니면 손이 아닌 목을 잡아야 믿음이 수복되겠습니까?”
“다른 걸 좀 물어보겠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이 놈 지껄이고 저지르는 것들을 다 겪고도 끝까지 미련을 못버린 내 죄요 잘못이야. 지금이라도 참회하겠다.
“아까 어떤 신도 분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마왕님 믿으면 치매도 나을 거라고. 근데 보니까 낫기는 개뿔, 아무 차도도 없는 거 같더라고요?”
“…너.”
“다른 두 분은 또 이렇게 말했고요. 마왕님 믿으면 뱃속에 돌이 빠지고 손주가 좋은 대학에 갈 거래. 근데 왜 아직도 아파 죽겠다고 하시는데. 그 잘난 마왕 나부랭이가 손주 과외는 끊어줬어?”
간절한 사람들 등쳐먹고, 헛된 말로 구슬리고. 개같은 마법 빌려와서 사람들한테 걸어 헌금통 두둑히 채우는 게 니가 믿는 신의 교리냐? 이딴 식으로 사업하면 안 쪽팔려?
한낱 사기꾼 놈이 신성모독이니 신앙이니 지껄이는 것도 같잖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상황 파악을 못했는지, 교주가 로브를 들썩이다 못해 아예 손을 밖으로 꺼내며 외쳤다.
“너 이 새끼, 뭔 수를 썼는진 몰라도…!”
다리와 팔만을 감싸던 줄기가 순식간에 골반을 타고 올라왔다. 얼굴까지 뒤덮은 줄기 틈새로 교주 놈 얼굴이 보였다. 당황한 눈으로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젠 반마법진은 못 그리겠지―”
너나 열심히 쳐 그리고 살아라. 줄기를 없앴다.
순식간에 시든 줄기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사색으로 바뀐다. 미처 반응하기 전에 손을 뻗어 교주 놈의 손을 움켜잡았다. 노리는 건 마법이 아닌 교주, 그 자체다.
점장이 내게 말해줬었다. 모든 생명체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고유마법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별개의 신체 기관을 체내에 지니고 있다.
그 설명을 듣고 물어보려다 말았던 게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치도록 미워하지 않고서야, 실천할 일이 평생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짜 만약의 얘긴데요. 그 기관도 마력으로 돌아간다 치고, 제 체질로 그 기관을 없애버리면요.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이 망할 가면 새끼가, 감히…!”
교주가 손을 밑에서 올려 휘둘렀다. 아무런 반응도 없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내 손을 뿌리치고는 한 번 더 팔을 휘둘렀으나,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떨린다.
“이, 이게 무슨….”
“너, 지금 이 순간부터 마법은 쓰고 싶어도 못 쓸 거다.”
“뭔… 무슨, 어떻게?”
“다른 사람 발목도 못 붙잡을 거고, 머릿속에 장난질도 못 친다고. 평생.”
날 묶는답시고 마법을 몇 번이나 써댔기에, 신체의 어느 부분에 일그러짐이 생기는지도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명치 언저리었다.
그 부분을 정확히 노리고 망가뜨렸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도 정확힌 모르지만, 평생 가줬으면 바랄 정도로 미워했다. 그러니 평생 가겠지.
“개, 개소리 하지 마.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어. 난 교주라고. 나는….”
오늘 봐온 것중 가장 간절한 표정이었고, 간절한 손동작이었다. 몇 번이고 손을 휘두르고도 믿질 못하겠는지 자기 명치를 쿵쿵 두들기기 시작한다. 의미없는 대장질이었다.
오히려 명치가 아려오기만 하는지, 입에서 침까지 흘려가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주저앉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마법을 못 쓴다면. 마법을, 난 대체 어떻게 살라는….”
“마법 없이 어떻게 사냐고? 어려울 거 없어.”
인터넷으로 구인광고 뒤지거나, 인력사무소 기웃거리면 된다. 내가 10여년 간 그렇게 살아봐서 잘 안다. 그렇게 못 하겠으면 뭐, 굶어 죽는 거고.
적당히 설명도 해줬으니 내 볼일은 끝났다. 떠나려다, 그럴싸한 방법이 하나 더 떠올라 보태줬다.
“아니면 마왕님께 부탁해보시던가. 그간 모은 돈 다 갖다바치면, 기도 한 번쯤은 들어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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