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5)
이세계 편돌이-324화(325/331)
324화. 저 따로 믿는 종교 있어요 (12)
지하실 위로 되올라가며 돌이켜봤다. 내가 방금 일을 어떤 근거를 가지고 저지른 거였더라….
떠올랐다. 저 교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취조를 받던 증언대에 서던 간에 자기가 수백, 수천에 이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퍼지는 세뇌 마법을 썼다는 사실을 자백할 리가 없다.
그랬다간 2, 30년이 아닌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될 테니까. 세뇌 마법에 관한 걸 언급할 수 없으니 그 마법이 받은 마법이란 것도,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없다.
만일 평생 감옥살이를 할 각오를 했다 쳐도, 영문을 몰라서 말을 못 할 게 분명하다. 교주가 제 입으로 말했듯, 마법 관련 체내 기관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리는 건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는’ 행위다.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반마법사를 추려내는 일조차 한세월이 걸릴 거고, 그 범위에 경력 1개월 차 반마법사가 포함될 리도 없다. 그 추려내는 작업도 구치소에서 한정적으로 이뤄질 테고.
그러니까 괜찮다. 이 일이 더 커지지도 않을 거고, 내 지인들에게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분명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모르겠다.
지하실 문을 팔꿈치로 밀어 올리자, 제일 먼저 경관 얼굴부터 보였다.
시간이 꽤 흘러서인가, 창문 밑 언저리만 겨우 비추던 햇살이 폐교회 내부 전체에 쏟아지고 있다. 정중앙에 선 경관 얼굴까지 뒤덮을 정도다.
막 올라온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시선을 약간 내리깔며 말을 걸어왔다.
“일은 잘 보셨습니까.”
“네. 뭐… 네.”
“그러셨다면 다행입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내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겠다는 뉘앙스다. 내가 대답이 없자, 작게 콧한숨을 내쉰 경관이 건물 정문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피해자분들은 모두 귀가 조치 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려 했는데, 다들 종사하시던 생업마저 미루고 찾아오셨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아… 하긴. 평일이니까.”
“하여 명함을 건네드린 뒤 금일 저녁 중에 경과를 전달드리는 쪽으로 정했고, 민사 쪽 편의를 드리고 싶어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를 한 명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인요.”
“다크 엘프입니다. 성격은 몰라도, 승소율은 높습니다.”
“잘됐네요.”
경관의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다시 건물 내부가 조용해졌다. 내 반응이 평소답지 않단 걸 바로 눈치챘는지 입이 벌어지려 한다. 내가 선수를 쳤다.
“정말 별거 없었어요. 잠깐 대화 좀 하고, 헤어지면서 악수 한번 하고 왔습니다.”
“…악수를 말입니까.”
“예. 악수요. 그리고 경관님, 오늘 일에 대해서 말인데요.”
얼른 말을 쏟아냈다. 난 이번 일에서 없던 셈 쳐줬으면 한다.
이번 일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든 필시 내게도 오만가지 질문이 쏟아질 거다. 세뇌 마법 피해 유무는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다루시는 마법의 정체가 뭐냐, 다른 조력자가 있느냐, 등등.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질문에 일일이 변명을 지어낼 자신이 없다. 기록말살형이 제일 좋고, 안 되거든 익명을 요청한 제보자로 참조 출연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다.
애초에 부귀영화를 바라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 난 내 직장 코 앞에서 집회 일어나는 꼴을 안 봐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허나 경관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실 줄 알았습니다. 다만.”
“다만?”
“…교주가 이찬 님과 마주하며 있었을 일에 대해 증언하더라도, 그걸 제가 막을 순 없습니다. 막는다면 그것도 세뇌와 다를 게 없는 행위가 됩니다.”
이 부분만은 쉬이 넘어갈 생각이 없나보다. 역시 민중의 지팡이야.
내 얘기를 하는 것 자체는 전혀 걱정 안 한다. 취조실에 갇힌 채로 77번 신도가 그랬느니, 지를 까치라 부르는 가면 쓴 놈이 그랬느니 백날 지껄인들 그게 나라는 걸 어느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경관. 그 까치가 날 마법 못 쓰는 몸으로 만들었다 말하거든, 경관은 필시 눈치챌 것이다. 이런 짓은 그 편돌이가 아니고는 못 벌인다.
그래서 망설였다. 내 지인에게 내가 이만큼 감정적인 놈이고, 원한다면 마법사 한 명 장애인 만드는 것따윈 일도 아닌 놈이라는 걸 알게 하기가 싫어서. 그래도 저지른 건, 유리 말이 떠올라서였다.
“망설이지 마요. 분명 이해해 줄 테니까.”
그게 지금을 얘기하는 거였나 보다. 말을 할지 말지를 망설이다, 최대한 올바른 방향을 골라 입을 열었다.
“경관님.”
“예.”
“아까 밑에서 먼저 마법 걸리신 거요. 저 믿고 그러신 일이잖아요. 그렇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고 말씀드릴게요.”
나보다 더 합리적인 사람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 말만 번지르르하지, 사실상 떠맡기는 거랑 다를 게 없긴 했다.
* * *
“그래서, 경관님께 전부 다 말씀드렸어?”
“예… 십자가나 기독교처럼 삼천포로 샐 단어들만 빼고요.”
밤에 출근한 직후, 유니폼만 갈아입고 점장에게 있었던 일들을 전부 얘기했다. 말하면서는 가능한 점장 눈을 안 마주치려 애썼다.
오후 새에 유리에게 전달받기라도 한 건지, 날 보자마자 입술부터 삐죽 내밀고 보더라. 하여 점장이 낀 팔짱만 내려다보다, 점장이 팔짱 푸는 걸 보고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될까 봐 경찰분들에게 맡기자구 한 거였는데.”
“…….”
“그런 감정적인 상황을 그나마 합리적으로 처리해 주는 게 법이잖아. 그치.”
다시 떨궜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뒤통수가 가려움에도 긁을 엄두를 못 내겠다. 괜히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였다.
교주 손을 붙잡기 직전까지도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이 교주는 빼도 박도 못할 사기꾼에, 약한 사람만 골라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착복한 악질이다.
치매 환자의 아들, 손주 좋은 대학 보내는 게 꿈인 노부부, 이런 사람들이 당하는 꼴 나는 더는 못 본다. 이 생각만은 진심이었기에 경관에게도 그대로 말했었다.
그 즉시 지금 점장이 말한 것과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범죄자를 검거하고 처벌하는 것은 경찰과 헌법의 의무이며, 개인의 독단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찬 님.
“그… 렇지만, 그렇지만요.”
“뭐가 그런데, 바부야.”
“솔직히 그놈 몇천 억 해쳐먹을 거란 말입니다. 심지어 그놈 엘프인데, 30년 받는 건 너무 짧잖아요. 엘프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로 너무 짧고….”
내가 정직원 되기 전에 시급 만 원 받았다. 정직하게 8시간씩 주 7일로 3,500년을 일해야 몇천 억 끝자락 겨우 닿을 수 있다. 3,500년 버튼을 눌러야 한다니까?
아니면 3,500명이 한 푼도 안 쓰고 공동계좌에 돈을 모으던가. 가뜩이나 돈이 전부인 세상에, 그 전부를 마법발린 혓놀림으로 등쳐먹은 놈이다. 단순히 법만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게 뻔해서 말린 거란 말야! 내가 먼저 바보라고 하긴 했지만, 찬이가 진짜 바보인 건 아니잖아.”
곧바로 변명도 생각도 멈췄다. 점장 외침 때문은 아니었다. 점장이 땅을 발로 툭 차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짜증 나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면 점장이 이렇게까지 굴지 않는다. 내가 침을 삼키거나 말거나, 뒤통수에 대고 말을 잔뜩 쏟아내는 점장.
“세뇌 마법 쓰는 마법사면 분명 안 좋은 목적이 있었겠지. 재산을 불린다던가,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던가. 그리고, 내가 아는 찬이는 그런 거 눈앞에서 보고도 참을 애가 절대 아냐.”
“…제가요?”
“그래. 맨날 말만 세상이 원래 그렇다 어쩌구, 난 한낱 편의점 알바일 뿐이다 어쩌구 하지, 속으로는 엄청 툴툴대고 있을 거 다 알아. 남들 다 그러듯이 말야.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찬이가 평범한 애가 아니잖아.”
마법사를 대할 때에 한해 전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몸에 보이지도 감지할 수도 없는 투명 더블배럴 샷건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
“더블배럴 샷건은 또 뭔데! 또 자기만 아는 얘기 하구 있네.”
“…그, 손가락 딸칵으로 곰이 날아가는 도구가 있습니다. 제 세상에요.”
“그럼 제대로 비유 든 거 맞네. 여튼, 찬이는 그 샷건인지 뭔지를 딸칵 할 수도, 딸칵하고 나서 아예 안 들키는 것도 가능하잖아. 그게 되는 사람이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알아? 그 딸칵을 참는 거야.”
나도 머리로는 경계하고 있었다. 내 체질은 잘못 휘두른 뒤, 손이 미끄러졌다며 변명할 수 있을 부류의 것이 아니다. 노가다나 뛰며 살던 놈에겐 한없이 과분한 능력이다.
오늘 오전까지는 잘 경계해 왔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써먹었지, 필요 이상으로 남용한 적은 없다. 허나 오늘, 마침내 선례가 생기고 말았다.
“앞으로도 이럴 거야? 사기든 절도든, 나쁜 짓 하겠다 싶은 사람 보이면 일일이 다 쫒아가서 딸칵 할 거냐구. 난 그거 못 참는 사람 못 참아.”
“아뇨. 안 해요. 안 합니―”
“그럼 오늘은 왜 그랬는데? 안 한다는 말을 퍽이나 믿겠다.”
화가 50%, 신랄함이 50% 섞인 말투였다. 평소처럼 나긋한 모습은 단 1%도 찾을 수 없다. 내게 진짜 투명 샷건이 있었거든 이 시점에서 내 배에 대고 딸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없었고, 그래서 입이라도 샷건 맞은 것처럼 다물고 있었다. 이 사이에 정문벨이 울렸고, 손님이 다녀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종족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담배. 수염젤, 수염빗도.”
“드워프용 젤이랑 빗은 생필품 코너에서 직접 가져오셔야 돼요, 손님. 담배는 원 레드 드리면 될까요? 한 갑?”
“어. 근데, 얜 뭐야. 왜 혼내?”
“제 직원인데, 오늘 상사 말을 안 들었어요.”
“혼날 만 했네.”
짧은 대화 후엔 드워프 수염 전용 젤과 빗을 사서 나가버렸고, 다시 정문벨이 울렸다. 손님이 나간 정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여는 점장.
“그래도 신기하긴 하네. 말리면서도 설마 했지, 진짜로 할 줄은 몰랐는데.”
이 말을 할 때에는 목소리가 아주 약간 누그러들었으나, 난 계속 입 다물었다. 화내던 사람이 조용해졌을 때가 오히려 특히 더 말을 아껴야 한다. 기어오르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기어오르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하는 거면, 그렇게 안 볼 거니까 말해두 돼.”
“그, 저도 솔직히 될 줄 모르고 한 일이긴 합니다. 예전에 간접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었을 뿐이라서.”
“몇 번이나?”
“네. 하나 뿔에 마력 없애주는 거랑, 또….”
근무 초창기 때 설녀와 불녀가 사랑 문제로 난장판을 벌이려던 적이 있었고, 그때 내게 손목을 붙잡힌 설녀가 마법을 못 쓰게 된 적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때 설녀가 ‘너 뭐야, 네가 한 짓이야?!’ 라며 역정을 냈던 것만은 잘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일을 저지른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언급하자, 잠시 고개를 까딱하던 점장이 입을 열었다.
“…마침 옛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찬이 체질이 발전하고 있다구 옛날에 말했던 거 기억나?”
“네. 그것도 초창기 때였죠.”
“그때는 어째서 발전하는지 원인을 몰랐었는데 말야. 이젠 원인을 좀 알 것 같아. 아직 애매하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떤 말이 나오든 점장님 백번 옳죠― 하며 수긍하고 볼 생각이었다. 잠깐 말을 흐리던 점장이 의견을 말했고, 곧바로 되물었다.
“예?”
“인연 때문이라구. 찬이 체질이 발전하는 거. 왜, 실감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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