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7)
이세계 편돌이-326화(327/331)
326화.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 (1)
아침 해가 뜨기 직전까지도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근무했다. 나 스스로는 체감을 못했고, 유리가 얘기를 해준 뒤에야 알았다.
“세상에. 오빠, 이거 봐요.”
“이걸 뭘 어쩌라고?”
“매장 의자가 튀어나와 있어요.”
튀어나오기는 뭐가 튀어나왔다는 거야. 새벽 손님 나가는 족족 다 제대로 맞춰놨구만….
저 녀석이 또 날 놀려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유리가 서있는 곳으로 가봤는데, 정말로 의자가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지나가던 손님이 실수로 건드렸다거나 하는 수준을 넘어 막 앉았다 간듯 모나게 튀어나왔다.
전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분명 재수생 손님들 앉았다 갈 때마다 일어나서, 근데 재수생 손님들이 새벽에 몇 명 들어왔었더라. 아니, 애초에 오긴 했나?
“저 출근하면서 의자 삐져나와 있는 거 처음 봐요.”
“그러게 말이다….”
매장에서 근무한 2달간 나름대로 세워놓은 루틴이 몇 있다. 진열대 보충은 2시간 간격, 신발 더러운 손님 다녀간 직후엔 바닥 빗자루질, 담배 보루는 잘 팔리는 순으로 밖으로 빼놓기, 등등.
외에 여러 루틴 중 가장 철저하게 지켜온 게 이 의자 집어넣는 거였다. 2달 연속 우수사원 상을 노려서는 아니고, 내가 매장 의자 삐져나온 편의점을 드나드는 걸 싫어해서다.
그런 곳 갈 때마다 관리가 잘 안 되는 매장이랑 인상을 받고는 했었으니까. 내 직장도 그렇게 보일 걸 생각하니 못 참겠더란다. 이러는 걸 손님들이 알아주긴 하냐, 매출에 영향이 있긴 하냐 묻는다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똑같은 거리에 똑같은 매장 있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더러운 곳은 피하려 하겠지. 그 생각에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오늘은 말하는 게 많이 부정적이네요. 오빠.”
“내가 안 그런 적이 있긴 했냐?”
“안 그런 적 없긴 한데, 방금처럼 티는 안 냈죠.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다던가, 어쩌구.”
내 속은 또 어떻게 읽었나 몰라. 별생각 없었다가,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유리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단 걸 깨달았다. 확실히 지금 내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반만 뜬 눈으로 날 무심한 듯 바라보다, 툭 말을 내뱉는 유리.
“어제 일이 잘 안 풀렸나 봐요. 아니겠지만.”
망설이지 않고 저질러도 이해해 줄 거다, 어제 내가 저지를 일을 미리 알고 예언한 것만은 확실하다. 경관과 뭔 대화가 오갔을지도 미리 알고 말해준 거겠지.
말을 이상하게 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일 터다. 그 일은 잘 해결됐을 테니, 다른 이유로 정신이 나간 게 아니냐는 걸 에둘러 묻는 거다. 고민 없이 대답했다.
“아직 다는 안 풀렸어. 그 사람들 마법 걸린 거 맞았고, 직접 찾아가서 담판 짓긴 했는데… 이미 걸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
“그건 점장님께 여쭤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게 문제야. 어제 근무교대 하면서 뭘 여쭤봤었는데, 그때 점장님이랑 그… 충돌이 있었거든?”
“왜요?”
그걸 알면 내가 지금처럼 정신이 나가 있겠냐고. 애초에 충돌이란 말이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내 질문에 점장이 대답했고, 난 일방적으로 알았다고 했을 뿐이다.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대답을 하는 순간 점장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단 거다.
이세계에 대한 썰을 푸는 점장은 늘 감정표현이 풍부했었다. 전쟁 얘기할 때는 안타깝게, 마법 얘기할 때는 신난다는 듯이 얘기하다가도 진지했고, 잘못된 마법을 보거든 화를 냈다.
그 감정이 옆에서 봐도 훤히 보일 정도였는데, 어제 그 대답을 할 때만큼은 점장 표정이 조금도 해석이 안 되더란다. 점장이 왜 그랬는지를 속으로 수십 번을 따지고, 또 따지다가―
“빈정거리시더라고. 대답하시면서.”
해 뜨기 직전에야 겨우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빈정거림이었다. 아마도.
용사한테는 아니어도, 그 마법사만은 점장이 전혀 좋게 보질 않는 것 같다. 여태 보이지 않았던 감정까지 대놓고 표현할 정도로 말이다.
“뭐에 대해서요.”
“옛날에 용사랑, 용사 따라다녔다는 마법사 있잖냐. 그중 마법사에 대해서야.”
“그거라면… 저는 역적이라고 배웠는데.”
“인식이 그런 건 나도 알어. 근데, 그 마법사가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사는 거냐?”
“그럴만 하거든요. 저 2학년때 역사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 중 외도에 가깝게 그 마법사 욕을 해댄 적이 있었다는데, 일단 가장 큰 죄목이 이러했다.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그 결과로 용사가 죽었다.
“그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는 부분에서 특히 말이 많으셨어요. 용사가 전쟁에서 일궈낸 전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실상 죽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었고.”
“죽을 수가 없단 건 또 뭐야. 그 양반 불사치트라도 썼대?”
“마저 들어봐요. 마을 주민들한테 받은 녹슨 검으로도 수많은 마수와 적을 무찌르는 검술 실력에 인망, 리더쉽. 마왕군에게 메테오에 가까운 억제력을 갖고 있다고 하셨었고 하셨고, 또. 또….”
반마왕군에게 있어서는 현존하는 신이요, 구원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신이나 구원을 왜 타인에게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진장 의존했다는 것만은 잘 알겠다.
“그리고… 아. 미담도 엄청 많아요. 한 번은 전쟁 여파로 무너진 마을이 있었는데, 용사가 검을 내던지고 파편을 하나하나 헤집으면서 살아남은 어린 아이를 찾아냈었대요.”
“그렇게까지 했으면 의존할 만 하네.”
“네. 하지만 마왕과의 사투 끝에 결국 사망했고, 사람들이 엄청 화내고 슬퍼한 거죠. 그 상냥하고 위대한 용사가 이렇게 죽을 리가 없다,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세상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밝혀내려 했고, 1순위 원인으로 마법사가 채택되었다. 왜냐. 마왕성에서 용사와 마왕의 사투를 목격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 이라는데….
이 부분은 듣자마자 자연스레 반박이 떠올랐다.
“그 마법사 변론이 대체 어땠길래?”
유리 녀석 말만 들어보면, 지금 오만 욕을 다 먹고 있는 이유가 순전히 그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근데, 두 눈 멀쩡한 게 죄랍시고 몰고 가진 않았을 거 아냐?
물론 그 마법사가 변론 자리에서 자기 죄를 털어놓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거짓말이든 뭐든 말했을 거고, 그걸 실제 사료랑 비교해 숨긴 죄를 밝혀내는 과정이 분명 이뤄졌을―
“그건 아무도 모른대요. 처형당했으니까.”
“처형? 죽었다고?”
“네. 교수형으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전쟁 직후고 미워도 그렇지, 뭐 말 한 마디 안 듣고 다짜고짜 사람을 죽여?
“워낙 증거가 많아 변론을 들을 가치조차 없었대요. 소환 마법으로 흉폭한 마수를 소환하기도 했고, 그 마법사가 쓴 마법이 아군도 수없이 학살했고, 아무튼 많아요.”
증거 외에도 마법만큼이나 뱀같은 혀놀림을 가진 마녀다, 신출귀몰한 마녀인 만큼 잠깐이라도 눈을 떼는 순간 도주할 게 분명하다, 1분을 살려두면 세상이 1분 더 망가진다, 등등.
변론인의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최후변론도 유예도 주어지지 않았고, 붙잡힌 당일에 이뤄진 재판에서 사형 판결과 집행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이후로 그 마법사의 처형은 현대사회 사형 판결의 기준이 되었고, 그 마녀의 처형이 제정 이후로 최초이자 최후로 이루어진 처형이었고….”
“그 다음엔?”
“그 다음은 수업종이 쳐서 더 못 들었어요.”
내겐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증거니 위험하느니 말이 나왔던 걸 보면, 집행한 사람들이 아무 근거없이 저지른 일은 아닌 듯 한데….
“저는요, 점장님께서 그 마법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셨을 거 같아요. 말도 못 하고 사형당했으니까.”
“글… 쎄다….”
점장이 그 마법사를 안타깝게 여겨서 정색을 했는가. 아닐 거 같다. 마법으로 범죄 저지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범죄자를 동정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언급하는 것만으로 정색을 할 사람이냐? 이것도 애매하다. 내가 어제 저지른 일의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삼았지, 부연설명없이 가버릴 사람은 아니다.
“혹시 아는 거 더 없냐? 예를 들면… 지금도 어디에 살아있다던가.”
“오빠네 세상은 처형당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살아있는 경우가 많나요.”
“그럴 리가 있겠… 아니다. 됐다.”
“많냐니까요.”
“마법도 없는데 그런 게 있겠냐, 인마? 죄다 그랬으면 재밌지 않을까― 이러면서 철없는 놈들이 헛소리 하는 것들 뿐이지.”
대표적으로 고향땅에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될 그 남자가 있다. 히틀러. 누구는 콜롬비아로 갔다질 않나, 누구는 아르헨티나를 갔다질 않나, 누구는 외계인한테 납치당했다 하질 않나―
“마법은 없어도 분신술은 있나봐요. 오빠.”
“죽은 유명인들만 쓸 수 있는 필살기지. 여튼, 유리 너도 잘 모른다?”
“네. 오빠가 말한 것같은 헛소리는 몇 번 들어봤지만요.”
그 마녀는 수많은 이종족들의 참관 속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남긴 흔적이라고는 역사, 그리고 어느 외진 곳에 묻힌 비석이 전부랜다.
말인 즉, 그 마녀에 대해 내가 자력으로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게 된다. 백날 역사서 뒤적거려봐야 다 똑같은 소리만 적혀있을 테고, 비석을 파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제일 간편한 방법이 있긴 하다. 점장에게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직접 물어보는 것.
“그러면 또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그러시겠지. 근데, 점장님 싫어하는 짓 일부러 골라하기는 죽어도 싫고….”
간편한 동시에 제일 어렵다. 난 딴 사람은 몰라도 점장과는 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생각하는 사이, 보란 듯이 잡고 있던 의자를 덜컹거리는 유리.
“잘 모를 땐 일단 사과를 하는 게 좋아요, 오빠.”
“하더라도 뭘 사과할지를 알아야 하던 말던 할 거 아냐. 그게 우선 아니야?”
“그 우선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럼 차선이라도 해야지.”
대답한 뒤에는 삐뚤어진 의자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가지런히 정렬되었는지를 두어 번 확인하다, 만족스러운 듯 손을 놓으며 마저 말을 잇는다.
“옆에서 대화하시는 거 들으면요. 두 분 찰떡같거든요.”
“…….”
“그러니까, 오늘처럼 잠깐 삐뚤어져도 금방 원래대로 되돌아갈 거라 생각해요. 이 의자처럼.”
“…오. 어, 이야….”
잠깐 멍했다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첫 직장 3주차인 이 녀석이 이렇게 기특하게 위로를 해낼 줄이야.
“괜히 했어.”
“나 진짜 감탄해서 이러는 거야, 인마. 좋아해도 돼.”
“진짜 괜히 했어.”
툴툴거리는 걸 보면서는 응어리도 좀 풀렸다. 일단은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출근하는 대로 이 녀석 말대로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보련다.
그러다 재수가 좋거든, 정색했던 점장 흉내 내면서 놀릴 수도 있겠지….
* * *
자고 일어나 출근하자마자 실감했다. 난 재수가 무진장 없는 놈이다.
“오빠.”
“아니, 점장님 어디 가셨어?”
“힘들어요.”
점장이 출근을 안 했다. 이것도 근무하며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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