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8)
이세계 편돌이-327화(328/331)
327화.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 (2)
하고 싶은 일과 놀고 싶은 마음 잔뜩인 사회초년생에게 있어 연장근무란 죽음과 유사하다. 다섯 단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죄송한데, 지금 몇 시인가요. 오빠.”
이 녀석이 그 단계를 고스란히 밟기 시작했다. 지금도 해달라는 인수인계는 안 하고 POS기 쳐다보며 현실부정만 하고 있다.
“POS 시계 보면 되잖냐. 것보다 일단 인수인계부터―”
“POS기가 고장 나서 그렇죠. 아니면 말이 안 돼요, 저 오전 근무잖아요. 왜 POS기에 오후 10시라고 적혀있는데요.”
얼굴로 드러내지만 않고 있지, 마음속에는 분명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와 고뇌가 가득할 것이다. 나도 초년생 시절 자주 후회하고 고뇌해 봐서 잘 안다.
잠시 뒤엔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 분노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 녀석 장단에 일일이 맞춰줄 여유가 없다.
“선장이 배를 버렸어요. 대피해야 돼요.”
“야. 힘들 거 나도 잘 알고 다 듣는 대로 바로 교대해 줄 테니까, 인수인계부터 해봐. 방금 그게 대답이냐? 점장님 정말 말없이 탈주하셨어?”
“저 힘들다구요. 점장님만 찾지 말고 저도 좀 걱정해 줘요….”
협상 단계에 접어듦과 동시에 자기 폰을 건네온다. 켜져 있는 폰 화면을 확인해 보니, 오후 1시경 점장이 짤막하게 톡을 보내온 내역이 떠 있다. 딱 두 줄이었다.
[ 유리야. 나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내 근무 좀 대신 부탁해도 될까? ] [ 연장근무 수당은 2배로 해놓을게. 미안 ]톡 내용만 놓고 보면 별거 없어 보인다. 점장도 사람이니 급한 일 정도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집안에 경조사가 생겼든, 사고를 당했든 근무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다만 점장에게 그럴 일이 대체 뭐가 있느냐, 이건 떠오르는 게 없다. 점장이 집안 얘기를 해준 적도 없거니와, 사고가 났는데 이렇게 태연하게 톡을 보낼 것 같지도 않고….
“유리 너, 어떤 일인지에 대해선 따로 얘기 들은 건 없어?”
“스크롤 밑에 봐요….”
우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다. 내리라길래 내려봤더니, 두 마디 톡 밑에 유리 녀석이 30분 간격으로 쏟아낸 질문과 푸념이 늘어서 있었다.
[ 어떤 급한 일요 ] [ 저 오후 근무 처음인데 오전이랑 똑같이 하면 되나요 ] [ 똑같이 하면 되네 ] [ 근데 허벅지가 ] [ I’m 아파에요 ] [ 으앙 ]기타 등등. 그리고, 이 모든 톡 옆에 숫자 1이 떠있다. 잠깐 톡 확인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급한 일이 대체 뭐가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이, 유리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래. 우리 모두 언젠가는 연장근무를 하게 되지.”
현 상황을 수용하는 것.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거리는 게 마치 해탈이라도 한 듯 하다. 이걸 위로해 줄지를 잠깐 고민하다, 그냥 강경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제 너 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알겠냐?”
“…오빠는 평소엔 친절한데, 이럴 땐 엄청 치사하네요.”
“억울하면 그때 탈주를 하지 말았어야지. 여튼 고생했고, 피곤할 텐데 얼른 들어가. 아니면 캔커피라도 하나 사줘?”
“아까 20캔 마셔서 괜찮아요. 그리고요, 오빠.”
“왜.”
“언니가요. 오빠한테 화난 거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래요.”
대화 흐름도, 호칭도 엇나간 말이라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니까, 이게… 예언 얘기인가? 점장이 오늘 근무를 안 나온 게 어제 나랑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니다?
“너 방금 점장님께 들은 거 없다고 했잖아.”
“언니한테는 못 들었죠. 미래의 저한테 들었지.”
“아, 그러셔?”
“자기 방식이 아니라 내키진 않지만, 오늘 언니는 연락이 안 될 거라, 이런 식으로라도 말해야겠다고 했대요. 미래의 언니가요.”
이 녀석의 예언에 대해 나와 점장 관점이 서로 다르다.
나는 예언에 의존하거나 당사자가 불편해 할까봐 언급을 안 하는 편이라면, 점장은 순수히 주관적인 이유로 언급을 안 한다. 미래를 미리 알고 살면 재미가 없다나, 뭐라나?
때문에 미래의 점장도 이 녀석이 뭘 묻든 대답하지 않을 거라 했었는데, 그 규칙을 미래의 점장이 스스로 깨버린 모양이다.
내가 마음고생 할 거라는 이유에서 말야. 현재에서나 미래에서나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오냐. 내일 아침에 보자.”
“내일 아침은 왜요.”
“왜는 무슨? 너 오전 근무잖아.”
“…저 방금까지 16시간 근무했는데.”
“그럼 내일 오전에 8시간만 더 하면 되겠네. 힘내, 인마.”
마지막으로 말 건네자, 또 다시 부정 단계로 돌아가서는 한탄하며 매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비록 지금은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으나, 월급날이 되거든 분명 오늘을 다시 돌아보게 될 터다.
대학교 1학년생이 일시적으로나마 시급 2만 원으로 근무하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아니지. 저 녀석은 돈 상관없이 재미로 일하는 녀석이잖아. 안 돌아볼 것 같다.
순간 12시간씩 근무하던 옛 시절이 떠올라, 톡으로 치킨 기프티콘 한 개를 몰래 보내놨다. 그래도 내가 정직원이고 매니저인데 알바생 멘탈 케어 정도는 해줘야지.
보낸 뒤엔 현금 시제와 담배 재고를 맞췄고, 잠깐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유리 녀석 멘탈은 내가 케어한다 치고, 내 멘탈은 누가 케어해 주나…?
“…에이, 씨.”
요새들어 뒷통수가 자꾸 가렵다. 벅벅 긁으며 생각했다. 이젠 기분 탓이 아니다. 점장도 어제 자신이 평소와는 다르게 굴었단 걸 분명 알고 있었다.
몰랐거든 미래의 본인이 이런 식으로 전달해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모르는데 내가 마음고생 할 줄은 어떻게 알겠냐고. 마음고생을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게 말이 쉽지….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평소에는 있지도 않던 급한 일이 왜 하필이면 오늘 생기냐고. 여태껏 점장이 이런 식으로 일이 생겨 근무를 빠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
몇 번을 돌이켜봐도 없었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항상 명확한 이유를 대고 납득시키는 걸 우선했지, ‘급한 일’ 이라며 두리뭉술 말한 적은 없다.
이러니 그 급한 일이 용무가 아니라, 내 얼굴을 보기가 싫어서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나와 그 주제로 다시 한 번 대화하는 게 싫어서던가.
점장이 이런 사유로 결근할 만큼 철없는 기분파가 아니란 것도 잘 안다. 내가 두 달간 겪어온 점장은 늘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친절했고, 가끔 애처럼 구는 면이 있긴 해도….
좋은 사람이다. 그간 수없이 내려온 정의를 한 번 더 내리는 동시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짤랑―
난 점장이 어제 왜 태도가 달라졌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좋은 사람이란 거 외에, 내가 점장에 대해 아는 게 있기나 한가? 왕년의 대마법사인 거?
“저기요?”
“어서 오세요, 손님. 어떤 것 찾으….”
“네?”
“…찾으십니까?”
말소리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두 손 모으고 정문 쪽을 바라봤다가, 순간 말을 더듬었다. 이 시간대에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손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가 찾는 거요?”
내 질문에 천진난만하게 눈을 꿈벅이며 되묻는 손님이 글쎄, 어린 여자아이였다. 하나보다는 크긴 해도, 아슬아슬하게 롤러코스터 탑승제한에 걸릴 것 같다.
더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화사했다. 연분홍빛 머리카락 위에 연꽃인지 뭔지 모를 꽃이 한송이 만개한 데에 더해, 가운으로 보이는 옷에조차 꽃이 잔뜩 새겨져있다.
그리고 내가 잘 보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머리에 핀 꽃 근처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또 처음보는 종족이다 싶어 바라보고 있자니,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하는 손님.
“음… 찾던 건 이미 찾았지만요.”
“…….”
“그래도 청년 분께서 말씀하셨으니, 좀 더 찾아볼게요.”
매출 상승을 바라고 건넨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뒤이어 열고 들어온 정문을 직접 손잡이를 잡아 원위치 시키고는, 사뿐사뿐 매장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는 걸 1분 가량 관찰하며 느낀 점. 저 손님 설마 편의점을 처음 와보는 건가?
당장은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 보통 매장을 둘러보거든 진열대의 상품을 고르기 위해서지, 진열대 지지대나 천장 형광등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거다.
또, 포장된 1개입 사과를 귀에 가져다 대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내게 싱긋 미소 지으며 즐겁다는 듯 이유를 설명해 줬다.
“건강하네요!”
“어… 감사합니다.”
“뭘요. 그래도 지금 숨쉬기 곤란해하는 것 같은데… 아. 혹시, 제가 데리고 가도 될까요?”
사과 1봉에 1,400원이다.
돈을 지불해야 함을 설명하자, 입고 있는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리고는 얼굴 가득 곤란한 표정을 띄우는 손님. 이젠 종족을 떠나 무슨 의도로 찾아온 손님인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렇게 필요하시면, 그냥 가져가셔도 돼요.”
“네? 1,400원이나 하는데도요?”
“어디서 돈 안내셨다고 말씀 안 하시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신다면요.”
“물론이죠. 어떤 부탁인가요?”
“그 사과 받으시고, 바로 집에 들어가셔요. 지금 밖이 많이 어둡네요.”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이런 어린 여자아이처럼 생긴 종족이 걸어다니기에 오후 10시는 너무 늦은 시간대라는 것. 지금 근처에 막 개시한 호프 집이 수십 곳은 넘을 거다.
그 호프 겸 배럭에서는 알코올에 감염된 대학생들이 40초 꼴로 생산되고 있을 거고. 저 손님에게도, 꽃 근처를 날아다니는 야행성 나비에게도 보기 좋은 광경은 못 된다.
그러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라. 권했으나, 이 부탁을 듣는 것도 곤란한지 사과를 내려다보며 난색을 표하는 손님.
“으으으음… 어쩌지….”
“…아니면 그냥 가져가셔도 되고요.”
취했거나 말이 안 통하는 거면 경찰에 신고라도 할 텐데, 저 손님은 그런 부류로 보이진 않는다. 어쨌든 내 말을 귀담아듣고 고민을 하고는 있으니까….
한참동안 사과 포장을 부스럭거리다, 다시 한번 사과를 귀에 대었다 떼는 손님. 그러고는 해오는 대답이 내 정신을 한층 더 멍하게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네요….”
“필요하신 거 아니었어요?”
“이 애가요. 자신은 그 어떤 사과보다도 빨갛게 태어났으니 이미 이룰 건 다 이뤘고, 더 이상의 미련도 없다고 하네요. 애석하지만, 의견은 의견이니까.”
사과면 껍질 색보다는 당도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반박하려다 관뒀다. 애석하다는 얼굴로 사과를 원위치에 내려놓은 손님이, 사뿐한 걸음걸이로 다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두 마디를 내게 건네오는데, 듣는 순간 공회전만 하던 뇌에 마침내 속도가 붙었다.
“그나저나, 사실이었네요. 청년분.”
“어… 떤 게 말씀이십니까.”
“그이가 그랬거든요. 자기를 돕는 청년이 엄―청 친절하고, 엄―청 믿음직한 청년이라고.”
날 청년이라 부르는 사람들 중, 내가 돕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자기 아내에게 ‘그이’라 불릴 만큼 애처가인 어르신도 한 명뿐이고.
“저, 손님. 혹시 울프 어르신 반려분 되십니까?”
워낙 어려 보이셔서 전혀 생각 못했었다. 말미에 덧붙이자,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붕붕 젓고는 반박하는 손님.
“어려 보이기는요! 이래 뵈도 90살이나 먹은 꽃인데.”
“…아, 예. 90세시다….”
“그러니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할머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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