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29)
이세계 편돌이-328화(329/331)
328화.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 (3)
누구나 인생 살면서,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어? 이 사람 분명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한 번 말 걸어볼까?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 아니면 어쩌냐. 괜히 어색해지는 거 아니야?
내가 방금까지 이 상태였다. 분명 이 손님을 본 기억은 있는데, 괜히 아는체 했다가 어색해질까봐 쉽게 말을 못 붙이겠더라. 또, 내가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날 일이 있는 놈도 아니고.
마주칠 이유가 없으니 아니겠지. 막연하게 단정짓고 있다가, 방금 대화를 하고 나서야 떠올랐다. 이 손님 얼굴을 볼 기회가 분명 있긴 했다.
“그런데 청년 분, 저를 바로 알아보시네요, 혹시 그이가 제 이야기를 했0었.나요?”
“가끔요. 전에 사진도 한 번 보여주셨었고….”
“아하!”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줄은 전혀 몰랐지만요.”
예전에 어르신께서 보여주신 가족사진 속에 이 손님분께서 앉아계셨었다. 그때는 이렇게 젊은 분이 어떻게 와이프시냐, 혹시 도둑놈이신가― 속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실물을 뵙고 나니, 어르신께선 도둑놈이 맞으셨던 것 같다. 본인은 90세라고 주장하고 계시지만, 말하는 거며 행동거지며 90세 티가 조금도 나질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앗, 미안해요. 당황하실 줄 알았으면 미리 말씀을 드리고 오는 건데.”
“편의점을 굳이 미리 말하고 오지는 않죠. 보통은요.”
“그런가요? 사실 할머니로써 부끄러운 얘기지만, 편의점에 와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편의점을요?”
“네. 청년분께 하나 배웠네요.”
정확히는 90세를 떠나 그 어떤 연배의 티가 나지 않았다. 세상 지천에 널린 게 편의점인데, 일부러 피해 다니는 것도 힘들지 않나?
이쯤 되니 가족관계와는 별개로, 대체 뭘 하는 분이신가 싶다. 의아해하거나 말거나, 손뼉을 맞대며 감상에 젖은 듯 말을 늘어놓으시는 반려 분.
“솔직히 조금 무섭긴 했지만, 꼭 찾아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이가 그렇게 즐겁다는 듯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낭랑한 목소리로 말해오시는 내용이 대충 이러했다. 이 반려 분과 어르신께서 잠들기 전에 대화를 무척 많이 하신단다. 처음 만난 이래로 지금까지 그래왔고, 어제도 똑같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두 달 전, 여느 때처럼 오붓이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하던 중 어르신께서 여태껏 꺼낸 적 없었던 주제로 입을 여셨단다. 사거리 쪽 편의점에서 무척 친절한 알바생을 만났다.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청년이다.
그 주제가 몇 주 뒤에는 ‘친절한 데에 더해 나도 생전 본 적 없었던 재주가 있다’ 가 됐고, 또 몇 주 뒤에는 ‘그간 반려에게만 해왔던 이야기를 그 청년에게도 꺼냈다, 정신차리고 보니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가 됐고….
“어르신께서 과장을 좀 많이 하셨네요. 제가 친절이랑은 거리가 좀 멀어서….”
“그럴 리가요! 그이만큼 담백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 허어.”
“그런 그이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참을 수가 없지 뭐에요! 이건 내가 무조건 가봐야 한다. 이 청년은 내가 오랜만의 외출을 해서라도 만나봐야겠다!”
이런 연유로 어르신과 아들과 며느리, 외에 손녀딸과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분명 한가할 사람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몰래 밖으로 빠져나오셨다고. 이 표현을 들은 시점에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가족 분들이… 손님 분을 감시하는 거에요? 심지어 어르신께서도?”
“감시라고 할 만큼 무서운 건 못 되고, 저 걱정해서 그렇대요. 물론 제가 낮에 햇볕을 쬐지 못하면 어지럽기는 한데….”
“그럼 한가할 사람들이라는 분들은요?”
“아. 그 사람들은 저 감시하는 사람들 맞아요. 저, 멸종 위기 종족이거든요. 덕분에 그이가 편히 주차할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가꾸는 화단까지 따라와서 감시하는 건 좀 싫긴 해요. 꽃들이 무서워 하거든요.’ 라며 툴툴거리시길래, 적당히 본심 섞어 맞장구 쳐 드렸다.
“뭐… 저도 감시당하면 싫을 것 같긴 합니다.”
“청년도 그렇죠? 역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나머지 본심은 숨겼지만 말이다.
나 살던 곳도 몇 급 멸종 위기 종족이다, 이러거든 국가나 단체 차원에서 관리하고 그랬었다. 멸종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감시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이 점은 이 동네도 동일한 게 신기했으나, ‘실례지만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 어떤 종족이길래 멸종 위기십니까?’란 질문을 더 정중하게 여쭤볼 방법이 떠오르질 않더라.
그래서 삼켰고, 일단 본론으로 넘어갔다. 저도 만나 뵈서 반갑긴 한데 이제 어쩔 생각이시냐.
“네? 어쩌냐니요?”
“제 얼굴 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지금 얼굴 봤으니 목적도 다 달성한 거잖은가. 내 말에 멍하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크게 갸우뚱하며 천진난만하게 말해온다.
“그렇네요. 이제 어쩔까요?”
“…제가 근무 중이라 바래다드리진 못할 것 같고, 어르신께 한 번 연락해 볼까요?”
“지금 들어가기는 좀. 제가 몰래 빠져나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그이도 바쁠 테고.”
“어르신께서 바쁘신 건… 아. 지금 한창 운전하고 계시겠네.”
“맞아요. 방금도 고객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는데, 원만히 해결했대요.”
취객 진상 한 명이 뒷좌석에서 고함이라도 질러댔나 보다. 어르신께선 그 취객 어깨의 부정교합을 교정하셨을 테고….
여튼, 반려 분께서 지금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신 것 같다. 슬쩍 바깥 거리를 둘러보니 돌아다니는 행인이 많지는 않았다. 어제 낮과는 딴판이다.
이 정도라면 잠깐 말동무 정도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는 나도 모르겠고. 방금까지 나눈 대화를 되새기며 질문거리를 고르던 중, 반려 분께서 먼저 제안을 해오셨다.
“그러면… 아. 청년 분, 방금 제게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답니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두 달 동안요. 청년이 그이 이야기나, 고민거리 같은 걸 다 들어준 거잖아요. 엄청 바쁠 텐데도요. 맞죠?”
“그건, 예.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는 일심동체라고도 하잖아요. 제가 그이의 반려니까, 반려로써 어떻게든 보답하는 게 맞죠. 그러니까… 음… 제가 청년의 고민거리를 들어준다던가?”
별로 내키진 않았다.
당장 상담할 만한 고민거리가 없어서는 아니다. 여태껏 이야기를 들어드린 건 전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였지,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바랐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이분께 상의한들 해결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애초에 돌려 묻기조차 쉽지 않다. 직장상사가 삐진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요… 참나.
답이 없다는 생각에 말 대신 뒤통수를 긁적이는 걸로 대답했으나, 작은 손으로 믿어보라는 듯 자기 가슴팍을 팡팡 두드리기만 하실 뿐이었다. 못 알아채신 모양이다.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저, 청년분만큼은 아니어도 그이 고민을 제법 많이 해결해 줬답니다. 이 나이에 다시 일을 하려면 어떤 걸 해야 하느냐― 라던가.”
“아, 대리운전 추천하신 게…?”
“네. 그이가 많이 심심해했거든요. 그리고 실은요, 이게 그이 바람이기도 해요.”
미처 묻기도 전에 술술 말을 늘어놓는 손님. 어르신과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이, 학원 지구에 있는 어르신 군복무 시절의 부대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찾아가서 술을 곁들여 이야기를 들었고, 마지막에는 그 부대장이 자기가 직접 담근 술을 건네왔었다. 기억을 담는 것으로 눈앞에 기억을 재생하거나, 타인에게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마법의 술이다.
그 술을 마신 직후엔 내 기억이 눈앞에 펼쳐지는 걸 저항조차 못 하고 지켜봐야만 했고, 이후 30분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었다. 여기까지는 내 관점이고, 어르신께서는 이러하셨다고 한다.
“그때 분명 청년분께 고민이 있어 보였는데, 들어주질 못하는 자신이 엄청 무력하게 느껴졌대요. 청년은 일부러 시간까지 내서 자길 돕고 있는데, 자기는 청년분께 그만한 믿음을 주질 못한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라고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서가 아니고, 제가 원체 삐딱한 놈이라―”
“그·러·니·까? 어떤 고민이라도 좋으니 저에게 이야기해 봐요. 이래 뵈도 저, 90살 먹은 할머니니까요.”
내가 반박을 하거나 말거나, 들은 둥 만 둥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맺는 반려 분. 자신이 할머니라는 사실에 대해 무척 자부심을 지닌 듯한 표정이었다.
나이 언급할 때마다 꿀밤부터 때리려 드는 누구와는 딴판이다. 다만 이 점을 제외하면 이 반려 분이 점장과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은근히 제멋대로라는 점이라던가, 겉보기완 달리 나이가 많다던가. 추측이긴 하지만, 이 반려 분과 점장이 만나면 서로 몇 시간씩 수다를 떨지 않을까 싶다. 나이대도, 성격도 비슷해 보이니….
연배가 비슷하다. 이 생각을 못 했었다.
“…제가요.”
“네?”
“고민까지는 아니고, 여쭙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이걸 여쭤보는 게 정말 맞나 싶긴 한데….”
“그런 걸 바로 고민거리라고 하는 거에요.”
옳으신 말이다. 거리가 아직 한적한 걸 재확인한 뒤, 점장을 직접 언급하는 걸 최대한 피해 질문을 꺼냈다. 내 지인 중에 반려 분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 한 분 계신다.
무척 믿음직다. 어르신과 비슷하지만 좀 더 이른 시기에 만난 지인이고, 내게 무척 많은 걸 알려주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와아. 저도 한 번 만나뵙고 싶네요. 그 분.”
“제 생각에도 두 분 죽이 잘 맞을 것 같긴 해요. 여하튼 제겐 그런 분인데, 어제 제가… 그 지인이 무척 민감해할 말을 한 것 같아서요. 아마도.”
“어머나. 그럴 땐 일단 미안하다고 하시는 게 맞죠!”
“해야죠. 죄송하다고 하긴 할 건데… 지금은 그것보단요.”
지금은 다른 게 더 답답하다. 분명 은인같은 사람인데, 정작 그 은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나도 할 말 없는 놈이긴 해. 나도 점장에게 내 이야기를 안 해온 건 마찬가지였다. 말해봐야 서로 좋을 게 없다는 생각 뿐이었고, 난 점장과 늘 좋게좋게 지내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는 데에 내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말해봐야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지금까지는 이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좀 다른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점장도 나와 같은 이유로 말을 아껴온 게 아닐까, 라는 것.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 사실 추측이라는 단어도 아까울 정도로 망상에 가깝긴 하지만….
“대체 어떤 말을 하셨길래.”
“용사와 마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 마녀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고요. 그래서 말입니다.”
여쭙고 싶었던 게 이 부분이다. 혹시 그 마녀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시냐?
역사책을 백날 뒤진들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내게 면식 있는 역사학자나 음모론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면 딱 하나뿐이다.
그 전쟁을 겪었을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이건 어르신을 다시 뵙거든 어르신께도 똑같이 여쭤볼 생각이다. 의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게 점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데에 도움이 될진 모르겠다. 이건 반려 분께서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아까와 똑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으셨다.
“청년분께서는, 그게 그 지인분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모르겠어요. 모르지만, 최소한 그 사람이 왜 화를 냈는지에 대해서라도 좀 알고 싶습니다. 안 그러면 답답해서 못참겠네요.”
말한 뒤, 말미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금 당장은 이게 내 유일한 고민거리다. 그리고, 반려 분께서 분명 어떤 고민이라도 좋으니 말해보라고 하셨다.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도 하셨었고.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 다시 날 올려다보시는 게, 자신이 꺼낸 말을 어길 생각은 없으신 듯했다.
“그 마법사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말이 많긴 했었죠. 종이 신문에도 ‘용사를 시해한 대역죄인, 마침내 체포되다.’ 이런 식으로 신문에 막 실려있고 그랬었고.”
“혹시 그 신문 내용에 관한 건…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기억력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하지만 그 마법사에 대해서는 아니어도, 마녀라는 개념에 관해서만은 드릴 말이 좀 있는데….”
온전히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괜찮겠다 싶어 고개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난감해졌다.
“왜냐면요. 저도 마녀였거든요.”
“…네?”
“그이와 알게 된 것도 이 덕분이라 후회하지는 않지만요. 그이와 제 이야기가 좀 섞여있긴 하지만, 한번 들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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