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3)
이세계 편돌이-32화(33/331)
32화. 친절봉사 편돌이 (1)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우편함에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봉투에 적힌 게 그러니까….
체납 통지서? 이게 나한테 왜 날아와?
뜯어서 읽어보니, 에어컨 요금이 5달 밀린 나를 조만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체납된 금액은 대충 16만 원 정도.
밑에 적힌 연락처가 핸드폰 번호였길래 곧장 연락해 봤다. 주말인데도 전화를 받더라.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하는 말이, 내가 에어컨 구매했던 카드가 정지되어서 요금이 납부가 안 되고 있었단다.
이걸 보고 나서야 어찌 된 영문인지 짐작이 되었다.
몇 달 전에 안 쓰는 카드들 정리한다고 죄다 꺾어버렸었는데, 그중 하나로 에어컨을 렌탈했던 거다. 아니, 과거의 나야. 전기세 아깝다고 여름에도 안 틀면서 대체 이걸 뭐 하러 산 거냐?
그래도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쩔 수도 없고. 전화를 끊은 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좀 해봤다.
이대로 신불자가 되면 난 어떻게 되느냐. 신용등급은 몰라도, 스마트폰이 정지되면 발신이 불가능해진다. 사회적 벙어리가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데이터도 쓸 수 없게 되지만, 대신 와이파이는 된다. 매장 와이파이를 통해 톡 어플로 전화를 걸면 전화를 못 걸 것도 없긴 한데, 그렇게 되면 왜 일반전화를 쓰게 됐는지도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할 거고….
그건 그것대로 싫었다. 내가 등신 짓을 해서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이왕이면 은밀한 등신이 되고 싶다고.
그래도 납부기일까지 날짜가 제법 남아있었기 때문에, 일단 잠이나 자자는 생각으로 드러누웠다.
그러고 오후 9시 반쯤 일어나 준비하고 곧바로 출근했더니, 편의점 꼴이 에어컨 렌탈비고 나발이고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찬이 일찍 왔네?”
“네… 아니 점장님, 뭐 불이라도 났었습니까?”
들어서자마자 뭐가 타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점장에게 묻자, 점장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해왔다.
“응, 손님이 전자레인지에 건전지 넣고 돌렸어.”
“뭘 넣고 돌렸다고요?”
“건전지.”
왜?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재차 물었더니, 만취한 꽐라 손놈이 건전지와 도시락을 같이 사가서는 봉지째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버린 것 같다는 게 점장의 추측이었다.
시선만 돌려 전자레인지가 있던 위치를 보니 과연, 터진 흔적이 사방에 성대하게도 흩뿌려져 있었다. 파편이 널브러진 건 당연했고, 콘센트 전선은 다 뜯어져서는 굴러다니고 있질 않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저 숯검댕이는 비엔나 소세지인지, 뭔지.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전자레인지가 아예 두 동강 난 채로 처량하게 방치된 채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물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점장님?”
“난 괜찮은데, 손님이 병원에 실려 갔어.”
“천만다행입니다.”
실려 간 손놈이 전치 몇 주를 받았는지야 내 알 바 아니고.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건전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터진다는 교훈을 얻게 됐을 테니, 장기적으로 봤을 땐 본인한테도 큰 손해는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것들도 멀쩡한 것 같고요.”
“내가 다 고쳤으니까 그렇지. 방금까지만 해도 그을음 닦구, 진열대 과자봉지 찢어진 것들도 다 복원하구, 온수기에 구멍 뚫린 것도 메꿨구….”
“어우, 고생하셨네.”
“하면서 눈물 찔끔 났어.”
“근데 전자레인지는 왜 그냥 내버려 두셨대요?”
“음, 저건 찬이가 한번 고쳐보면 좋겠다 싶어서.”
고쳐보라 하니 머릿속으로 자연스레 견적이 떠올랐다. 새로 사는 비용보다 고치는 비용이 더 나올 거고, 다이얼 부품값 하며, 내부 회로값 하며―
이러다가, 어제 아침에 내가 견습 마법사로 전직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도 Lv.1인 내가 고치는 것보단 만렙인 점장님께서 고치시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지 않겠냐, 물어보니 점장이 이렇게 답해왔다.
“마법도 쓰면 늘거든. 찬이도 익숙해져야지.”
마법보단 엄지손가락 근육량만 늘어날 것 같은데.
그래도 까라면 까는 게 알바생의 숙명인지라, 숙명에 따르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반파된 전자레인지를 겨누고, 복원 어플을 터치.
다음에는 전자레인지가 원상태로 돌아오도록 슬라이드를 왼쪽으로 움직였다. 엄지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한참을 부들대던 전자레인지가 뿅, 하고 멀쩡한 채로 돌아왔다.
쭈그려 앉아 전자레인지 문을 잡고 여닫아 보니, 잘 열고 닫히긴 해도 살짝씩 끼릭거렸다.
“전자레인지 이거 몇 년 된 거예요?”
“글쎄. 중고로 받아온 거라서… 아, 이참에 아예 새 걸로 하나 살까?”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어차피 또 터질 텐데.”
“그렇긴 해.”
이런 말들이 술술 나오는 걸 보면 나도 이 세상에 익숙해지긴 익숙해졌나 보다. 참 수상할 정도로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야.
고친 전자레인지를 원래 있던 자리에 옮겨놓고, 이걸로 해프닝은 끝.
다음엔 점장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건네받았는데, 이전과는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찬아, 여기.”
말하며 점장이 내게 보인 건, 5월 이벤트 상품에 대한 상품표.
2시간만 더 지나면 5월이 되는데, 매월 1일 오전 0시가 되면 그 근무시간대의 야간 편돌이는 이전 달의 상품표를 전부 회수한 후, 새 상품표로 교체해야 한다.
걸리는 시간이 대략 두 시간쯤. 별거 없는 작업이긴 한데, 귀찮다고 대충했다가는 손님들이 이벤트 끝난 상품을 이벤트 상품인 줄 들고 와서는 혼동을 겪게 된다.
나야 욕 잠깐 먹고 바꿔 끼우면 그만이다만, 오후 점장 근무 시간대에 온 손님이 점장에게 ‘이거 이벤트 상품이라 적혀있는데, 사람 놀리는 거예요?’ 하며 따지게 될 광경을 상상하면 그건 좀, 그렇다.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12시 되면 이것 좀 부탁할게.”
“신경 쓰실 일 없게 잘해놓을게요.”
“전혀 신경 안 써. 찬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뭐. 그리구… 아. 윤하가 돈 보내줬는데, 집 가면서 입금해 줄게.”
어… 아, 끼얏호우! 이제 신불자 될 일은 없겠구만!
전자레인지 터진 게 임팩트가 워낙 커서 잊고 있었다. 외에는 따로 전달받은 건 없고, 점장이 짐을 챙기는 사이에 마지막으로 짧은 잡담.
“오늘 손님은 많이 받으셨어요?”
“그럭저럭? 낮에는 많았는데, 저녁 8시 지나고부터는 뚝 끊기더라구.”
“알겠슴다.”
“응. 고생해.”
점장이 나간 후, 계산대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봤다.
하긴, 지금이 일요일 오후 10시니, 착한 직장인들이 꿈나라에 빠져들어야 할 시간이다. 친구들, 우리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요?
술 먹은 행인들도 별로 없을 거고, 켄타우로스들 숫자가 좀 많긴 하다만 걔네들이야 치킨 배달하느라 바쁜 거고. 이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기만 한다면, 오늘만큼은 제법 괜찮은 한 주의 마무리가 될 것 같….
“저기, 총각. 아줌마가 부탁할 게 있는데.”
야이 씨, 난 뭐 생각도 못 해?
딱 30초 앉아있었더니 손님이 왔는데, 아줌마처럼 생긴 독두꺼비였다. 며칠 전에 한창 바쁠 때 새치기하려 했던 독두꺼비라 확실히 얼굴이 기억난다.
“저기, 총각?”
이번엔 새치기할 대기열도 없으니 그런 문제는 안 일으키겠지만, 이 독두꺼비가 어느 편돌이가 보더라도 곧 큰일이 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무언가를 들고 왔는데 그게 뭐냐면….
“네, 말씀하세요.”
“이거, 택배 좀 보낼 수 있을까?”
김치였다.
어째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 말이야. 감회가 새롭긴 했으나, 일단 해야 할 대답부터 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어머, 왜? 여기 24시간 받아주는 거 아니야?”
“나름 절차란 게 있어서요.”
그중 첫째, 김치가 살아있으면 안 된다.
갓 담가서 신선한 김치라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라, 김치가 정말 살아있다니까?
김치가 생긴 건 배추김치였는데, 이파리 끝자락이 세발낙지마냥 랩 포장 안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찌개에 넣으면 국물은 잘 우러나오겠다.
이걸 묻자, 독두꺼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해왔다.
“괜찮아, 내 김치는 안 물어.”
그럼 김치에 목줄이라도 좀 채워놓든가….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김치가 사람 무는 김치였으면 이 독두꺼비 손도 진즉에 걸레짝이 되었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이건 일단 넘기기로 하고, 대신 다른 문제를 짚었다.
“그리고, 포장을 좀 제대로 해주셔야 접수가 되거든요.”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총각. 이거, 포장하는 것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것도 전혀 내키질 않았다. 김치 포장하는 걸 편돌이인 내가 대체 왜?? 도와줘야 하는 거냐??
그래도 가만 내버려 뒀다간 타일 바닥이 김칫국물 범벅이 될 판이라, 후딱 끝내고 나중에 푸념하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떠올린 방법은 친환경 봉투 십수 장으로 꽁꽁 싸매는 것. 따로 비닐랩이 구비되어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봉투를 뭉텅이로 뜯어 가져나온 뒤 그중 하나를 독두꺼비 앞에서 열어 보였다.
“일단 여기 담아보십쇼.”
군말 없이 김치를 봉투에 담는 독두꺼비. 봉투에 담긴 김치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는지 격하게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탓에 봉투 안쪽이 금세 김칫국물 범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니가 어쩔 거냐는 심정으로 꽁꽁 묶어 싸매고, 무지성 봉투 폭격으로 마트료시카처럼 포장해 놓고 나니 몹시 묵직한 흰색 덩어리가 완성되었다. 이제 이 봉투를 담을 박스가 필요한데….
매장 안에 남는 박스야 당연히 없었고, 바깥의 보도블럭이나 전봇대 쪽을 살펴봐도 눅눅한 박카스 상자 하나만 달랑 놓여있을 뿐 있는 게 없다. 이건 꼭 필요할 때만 없단 말야?
잠깐 고민하다, 라면박스 쌓아두는 재고창고로 들어가 라면박스를 하나 뜯었다. 안의 라면을 탈탈 털어 빈 박스만 갖고 나와 김치를 때려 박고 매장 테이프로 밀봉하자, 안에서 박스 내벽을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고마워 총각.”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이렇게까지 해주는 편돌이가 세상에 어디 있어.
포장을 끝낸 후엔 이제 주소를 찍어야 했는데, 내가 이 세상 주소가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에 대해 알 리가 있나. 이것만은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독두꺼비가 손사래를 치며 답해왔다.
“그건 내가 하지 뭐. 그런데 총각, 이거 택배 보내면 언제쯤 도착할까?”
“그야 내일 수거해 갈 테니까, 모레쯤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편의점 택배가 접수는 24시간 받아도 수거는 평일에밖에 안 한다. 이 세상이라고 다를 게 없을 거란 생각에 적당히 대답하자, 어머머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럼 어떻게 해, 총각?”
“뭐가요?”
“쉴 거 아니야. 김치.”
그야 쉬겠지. 김치니까.
근데 난 접수만 받는 놈인데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할 짓 없는 택배기사가 기적같이 찾아오는 게 아니면 또 몰라….
생각하고 있자니, 정문에 매달린 벨이 울리고 불쑥 누군가가 들어왔다.
“야, 이찬! 누나 왔다!”
“아니, 진짜 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