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30)
이세계 편돌이-329화(330/331)
329화.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 전설 (4)
“크흠, 큼. 그러니까―”
…라며 반려 분께서 운을 떼시길래, 일단 끊고 봤다.
“저, 죄송한데요.”
“옛날 옛적에… 네?”
“고민 들어주시려는 것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한데, 지금 저한테 이 이야기를 하셔도 되나요?”
일개 편돌이가 듣기엔 무척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였다.
내가 마녀라는 단어에 대해 정확히 배운 건 아니지만,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란 건 짐작할 수 있다.
용사 따라다니던 그 마법사만 마녀인 게 아니라, 마녀같은 짓을 한 여성 마법사들을 모두 통틀어 마녀라고 하는 거겠지. 지금 반려 분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후자의 맥락일 거고.
또, 이 세상에서 마녀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란 것도 잘 안다. 이 나긋나긋한 분이 마녀같은 짓을 했다는 걸 상상하기도 힘들었고, 설령 그렇다 해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여태껏 숨겨왔을테고, 앞으로도 숨길 과거일 거잖은가. 그런 걸 개인적인 호기심 풀겠다고 얼굴에 철판깔고 듣는 건 좀….
“저, 엄청 심사숙고 한 거에요. 청년분께서 친절하지 않으셨거든, 아예 말도 안 꺼냈을걸요?”
“그 친절하다는 말씀도 그래요. 제가 빈말이 아니고 친절한 거랑은 거리가―”
“꽃 아이들을 판별하는 데에 시간은 중요하지 않답니다. 색, 향기, 크기, 온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햇볕을 쬐었을 때 고개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가.”
머리가 바닥을 향하면 성격이 수줍은 꽃이고, 하늘로 향하면 당돌한 꽃이란다. 이 말만큼은 장단을 맞출 자신이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이조차도 판별 기준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아이는요. 꽃잎에 햇볕이 반사되는 걸 미안해하는 거랍니다. 배려심이 많거든요.”
“예…….”
“눈이 부시니까. 그런 청년분이시니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에요.”
잘 모르겠으니 그냥 알아서 하셔라. 반쯤 자포자기하고 다시 반려 분을 내려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금 헛기침을 하고는, 아까 하던 말을 마저 이어 나가셨다.
“그러면… 제가 어디까지 했었죠?”
“옛날 옛적에, 까지 하셨습니다.”
“딱 적당한 곳에서 끊어졌었네요. 으음, 그러니까. 옛날 옛적에―”
* * *
이 도시에서 한참을 떨어진 숲의 공터에서 한 꽃의 정령이 태어났다고 한다. 작은 성만 한 크기의 꽃봉오리가 소녀의 요람이요, 분만대였다.
소녀가 발견된 것은 전쟁 수십 년 전, 점차 고조되던 종족들 간의 영토 다툼 과정에서 숲을 측량하던 측량가들에 의해서였다. 발견된 소녀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마친 뒤, 마탑으로 옮겨졌다.
“제 몸의 마력 축적량이 무척 많았었거든요. 지금은 거의 다 시들었지만요.”
신체의 마력량은 동시대 대마법사들에 견줄 만큼 엄청났으나, 특기 마법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여 마탑의 연구자들이 그 특기 마법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그 연구가 끝난 직후, 마왕이 인간들의 도시에 기습적으로 폭격을 가했다. 전쟁이 발발했고, 소녀는 군부의 판단 아래 그녀의 마법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전장에 배치되었다.
“배치된 곳이 어디―”
“제1광범위특수마법포격여단, 이었답니다.”
“포격여단요?”
“네. 계급은 대령.”
의무, 간호, 본부대대. 내가 상상한 것들에서 죄다 빗나가버렸다. 대체 어떤 마법을 구사했길래 자대배치를 이렇게 받았을지를 상상하다, 설명을 듣고서는 착잡해졌다.
“옛날엔 제가 잠이 많았어요, 청년분. 그만큼 꿈도 많이 꿨고….”
“…꿈이요.”
“네. 꿨던 꿈을 현실에 재현하는 것. 그게 제 마법이었어요.”
다만 한 가지 큰 단점이 있었는데, 그녀 역시도 그저 한 소녀일 뿐이었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꿈을 정해서 꿀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모든 소녀가 다 그렇듯이 말이다.
하여 소녀의 일과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시 아래 세심하고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아침 8시에 기상해 양치질과 세수를 한 뒤 점호를 마치고, 간단한 아침식사.
이후엔 수행인의 안내를 받아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으로 향한다. 그 전장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은 뒤, 오후 9시까지 지켜본다.
오후 9시 이전에 소강 상태가 될 경우, 다른 전장으로 이동해 동일한 임무를 마저 속행한다. 임무를 마친 뒤엔 부대로 복귀해 약식 저녁 점호를 마치고 취침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 전장엔 더 이상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과정은 다양했어요. 마탄 사격전이 잦았던 날엔 하늘에서 탄환의 비가 내렸고, 포격이 많았던 날에는 도화선이 달린 멧돼지들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
“그 때는 늘 한 가지 생각만 했었답니다. 하루하루가 악몽이라는 말이, 나만큼 잘 어울리는 꽃도 없겠구나.”
요구 자원도, 작전 누출 가능성도 없다. 필요한 건 수면제 성분이 섞인 식사와 최고급 침대, 딱 둘 뿐이다.
목격한 전장을 조준해 무차별 마법 폭격을 가하는 소녀는 그 존재 자체가 여단이었고, 모든 동맹군들은 전략 병기에 대한 경외를 담아 소녀를 이렇게 불렀다.
마녀.
“못 하겠다고 떼를 쓰면, 오히려 마법 위력이 늘어날 테니 좋은 현상이라며 방 안에 하루종일 가두어 두고. 윗사람들 입장에선 그만큼 편한 일이 없었을 거에요.”
“그, 혹시 꿈을….”
“안 꾸려고 해본 적이요? 어휴, 써보지 않은 방법이 없답니다! 내가 잠을 안 자면 꿈도 꾸지 않겠지― 하면서 참아도 보고? 악몽을 꿀 기억이 없으면 마법도 안 나오겠지― 하면서 잊으려고도 해보고. 그런데요.”
“예.”
“잠은 1주일 이상은 못 참겠더라고요. 그리고, 잊는 건… 어떻게 잊겠어요. 눈앞에서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어떻게든 밝게 말해오던 반려 분께서, 이 부분만큼은 차마 못 그러시겠는지 얼굴이 시무룩해지셨다. 이마저도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것일 터다.
내가 같은 상황이었으면 이 악물며 말하느라 어금니가 갈려나갔을 테니까. 시무룩한 채로 한참동안 말이 없으시길래, 말 더듬어가며 어떻게든 화제를 돌렸다.
“아까 수행원을 따라 전장에 갔다, 고 하셨었잖습니까. 그 수행원 분이란 게….”
“아… 네, 맞아요. 그 수행원이 그이였어요. 마침 그이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어르신께서 뭔가를 해주신 건가요?”
“뭔가를 해준 정도가 아니랍니다! 제가 그 방에서 빠져나온 것도, 그런 짓을 해놓고 아직 웃을 수 있는 것도, 귀여운 손녀를 본것도 전부 그이 덕분이에요.”
반려 분께서도 주제가 바뀐 게 반가우신지, 표정을 풀며 활기차게 어르신의 활약상을 늘어놓으셨다.
전장에서 꽃도 따다 주고, 때로는 자장가도 들려주고… 이게 무슨?
“그이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무슨 자장가를 들려달라는 거야―’ 이러면서 질색했지만, 어떻게 해요. 그이보다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데!”
“못 부르시는 분께 노래를 일부러 들려달라고 하셨다고요?”
“조금 못 부르는 정도로는 안 되고, 엄청 못 불러야 했어요. 엄청 못 불러서 꿈에 나올 정도로!”
“…오. 그건 꽤 괜찮은 방법이네요.”
“그쵸, 그쵸. 그때 그이가 서툴게 노래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어르신 복무하던 시절 모습을 나도 봤었다. 마법초로 빚은 술 먹었을 때. 귀여운 것과는 대척점에 있던 상남자 그 자체였는데 대체 어디서 귀여운 구석을 찾으셨나 모르겠다.
그래도 표정이 감상에 젖으신 게, 반려 분 본인은 진심이신 것 같다. 계속 감상에 젖으시라 두고 난 아까 들은 말을 속으로 복기해 봤다. 그 방을 빠져 나온 건 어르신 덕분이다.
이건 어르신께서 수뇌부와 담판을 지었다,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말마따나 반려 분께서는 전략병기셨던 만큼, 작전 활동을 중단하는 데에도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을 텐데….
그게 뭔지는 몰라도 꽃을 따오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보단 좀 더 무거웠을 것이다. 대화 흐름상 그걸 아셨더라면 분명 말을 하셨을 테니, 반려 분께서도 이것만은 모르신다고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왜 모르시는지야 뭐, 어르신께서 말씀을 안 하셔서일 거고. 어르신 성격상 ‘내가 이런 고생을 했다―’ 라며 말씀하실 분이 아니니까.
“…여튼 그리하여, 악몽 속에 살던 저를 그이가 절 구해줬고, 저는 역사에 이름 한 줄 적히지 않은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끝.”
“갑자기요?”
“이쯤이면 청년분께 도움이 될 이야길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제가 아닌 청년분이 주인공이니까요.”
내 질문을 우선해 주는 건 좋지만, 방금까지 해주신 이야기 중 대답 삼을만한 거리가 있진 않았다. 기껏해야 ‘이분이 힘들게 사셨구나―’ 하는 개인적인 감상이 전부다.
불쌍하단 말은 실례가 될까봐 못하겠고. 조용히 기다리길 몇 초, 반려 분께서 입을 여셨다. 전직 마녀다운 예리한 질문이었다.
“청년 분, 지금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셨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 그런데 이게 제가 여쭤본 거랑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세상 모든 마녀들 중, 진짜로 마녀가 되고 싶어 한 여자가 그리 많지는 않으리란 거.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으음….”
“저도 그중 한명이고요. 한 명이 있다면, 그 이상도 있을 수 있겠죠.”
쉽게 말해, 역사에 기록된 마녀의 행적을 전부 믿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왜냐. 자신 역시도 어르신께서 구해주시지 않았거든 영락없이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악몽을 마법이자 무기 삼아,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마녀로써 역사에 기록됐겠지. 당사자의 자유의사는 철저히 묵살된 채 말야. 이해는 됐으나, 주장하시는 의견 자체는 음모론자의 음모론과 다를 게 없었다.
“어라. 설득력은 있지 않나요? 없으면 안 되는데?”
“말씀하신 걸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반려 분 말을 믿으면 그것대로 문제가 복잡해진다. 역사에 따르면 그 마녀는 처형당했고, 이름 없는 묘비에 묻혔다. 더 왈가왈부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는 거다.
그 역사를 믿지 않는다면 그 마녀가 죽었다는 사실도 똑같이 부정해야 한다.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고,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더 뻗어나간다면, 점장이 그때 그런 반응을 보였던 이유도 쉽게 해석이 가능해진다.
되기는 하는데… 씨….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럴 리가….”
“못 믿으시겠다면 어쩔 수 없네요! 청년분, 잠깐 그 위에 올라가도 될까요?”
“어디 위를 말씀이십니까. 계산대요?”
“네! 너비로 보나 폭으로 보나, 눕기에 아주 딱 좋아 보이거든요!”
뜬금없이 뭔 소린가 싶어 내려다보다, 누울 시도조차 못하도록 칸막이를 위로 홱 올렸다. 이 행동이 자길 더욱 못 믿어서 그런 거라 판단하셨는지 이번엔 로비 바닥을 내려다보는 가리키는 분.
“그러신다고 못 잘 제가 아니거든요. 아주 좋은 꿈은 못 꾸겠지만, 무지개 정도는―”
“못 믿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하십쇼. 어르신께서 보시면 뭐라 생각하시겠어요?”
“혼이야 엄청 나겠죠! 진짜 큰일 나면 잔소리도 듣겠지만, 그 정도쯤은 충분히… 어머?”
혼신의 힘을 다해 떼를 쓰던 할머니께서 대뜸 정문 밖을 바라보셨다. 순간 손님이 온 줄 알고 따라서 바라봤다가, 얼른 인사드렸다.
“…아, 안녕하십니까.”
정문에 어르신께서 달라붙어 계셨기 때문이다. 막 달려오신 건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심지어 구두마저 벗은 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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