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5)
이세계 편돌이-34화(35/331)
34화. 중개하는 편돌이
진정하고 잠깐 생각을 해봤다. 이 경우 가능성은 두 가지. 이 기계인형이 정말 내 복장을 터트릴 생각으로 찾아온 거거나, 아니면….
“그… 아프리카 몰라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말해도 기계인형이 잘 모르겠다는 눈치라 아예 집어서 보여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왔다.
“쑤얏.”
왜 이런 일이 생겼는고 하니, 담배 이름이 몰라라서 그렇다.
어원도 훌라춤 이런 데서 따온 게 아니라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할 때의 그 몰라가 맞고, 이 담배 구성이 대충 이렇다. 총 20개비가 들어있고, 담배의 맛은 4가지. 5개비마다 맛을 다르게 해놨다.
근데 정작 피우는 사람이 담배 중 어떤 게 어떤 맛인지를 알 수가 없다. 적어놓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라다. 피는 사람이 자기가 무슨 담배 피우는지를 몰라서 몰라.
이에 대한 내 견해는, 담배 공사 망할 놈들아, 이름을 못 짓겠으면 모르겠다 하지 말고 사내 명칭 경연대회를 해, 왜 애꿎은 편돌이를 괴롭게 만드냐?
더해서 담배를 왜 제비뽑기로 피울 수 있게 해놓은 건지도 쥐뿔 모르겠으나, 다시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어그로만큼은 오지게 끌어올 네이밍이긴 했다.
이게 일병 시절에 처음 나온 담배라 그땐 나도 신기하다 생각했었… 아니지. 그땐 경계 초소에서 반딧불만 봐도 신기할 때였잖아.
여튼 이 기계인형은 뒤에 몰라라는 이름은 알아도, 앞에 붙는 상표명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그래, 드워프만 담배 이름 몰라야 된다는 법은 없지….
“4,500원이세요.”
“그리고 쏴장님, 스카이.”
“스카이요?”
“쑤얏. 스카이.”
“…어, 위치 스카이. 하늘색?”
“쑤얏.”
아니, 손님아. 하늘색 담배가 20종이 넘는데 그중에 대체 어떤 걸 달라는 거야?
이것도 잠깐 진정해 보니 답이 나오더라. 담배 중 스카이라는 이름 적힌 걸 찾아서 건네주자, 기계인형이 또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여왔다. 내친김에 설명해 줬다.
“손님, 이건 몰라라고 말씀하시면 진짜로 몰라요. 앞에 브랜드까지 말씀해 주셔야 됩니다.”
“어. 아, 쑤얏.”
“이 스카이 담배도 마찬가지고요.”
당장 담배들만 해도 똑같은 이름에 갑이랑 팩 따로 있는 게 있고, 아예 이름이 똑같은 담배도 있다. 외에도 말미에 딱 한 글자 다른 담배들도 있고….
그리고 모든 편돌이들이 스무고개 달인인 것도 아니니까, 담배 달라고 할 거면 제발 그 뒷부분까지 확실하게 말해줘라. 이거 어려운 거 아니잖아….
“캄싸해요, 쏴장님.”
그래도 이 기계인형 정도면 굉장히 예의 바른 편이었다. 보통은 니가 알아서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냔 표정으로 바라보고 말거든.
계산을 마치고 담배와 카드를 건네주자, 기계인형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내게 물었다.
“쏴장님, 매일 근무해요?”
“저야 뭐, 매일 12시간 근무합니다.”
아직은 내 몸뚱어리가 한나절 근무를 버티고 있지만, 나중에 가서도 내 몸이 정상일지는 모르겠다. 점장이 빨리 알바생을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장사, 잘되쎄요?”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요. 어떻게, 손님네는 장사 잘되어가십니까?”
“아뇨. 클났어.”
큰일 났단다. 그냥 안부나 물을 겸 생각 없이 물어봤던 건데, 기어코 이야기가 길어지고 말았다.
“저희, 일 잘해요. 근데 일이 없어.”
“아, 그러십니까….”
“쑤얏. 포르쏘, 못 믿나 봐요. 쏴장님이, 우리 고향 가야 될지도 모른대.”
이 쏴장님은 내 얘기가 아니라 자기들 쏴장님 얘기인 것 같고, 포르쏘는 기계인형들 고유어로 자기들을 그렇게 부르는 건가 보다. 나도 이걸 기어이 알아먹는 게 신기하네.
이후로도 기계인형은 얼굴에 그늘진 표정 그대로였다. 주욱 푸념을 늘어놓고 싶었던 듯한데, 정문 벨이 울리는 소리에 우뚝 말을 멈췄다. 누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머쓱한지 웃으면서 내게 고개를 다시 꾸벅여왔다.
“쑤얏. 번창하쎄요, 싸장님.”
그러고는 등을 돌려 나가길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옙. 하는 일 잘되시면 좋겠습니다.”
입에 발린 말이긴 하지만, 이 말 외엔 내가 딱히 해줄 것도 없….
“야, 이찬. 얼굴은 왜 구기고 있어?”
…있나?
“저 손님이 진상 부렸어?”
“아니, 그건 아니고… 누나. 도축장을 작업장이라고도 불러?”
“옛날엔 그랬지. 근데 그건 왜?”
전에 저 기계인형 양반들한테 명함 받아둔 게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꺼내서 누나한테 건네자, 이리저리 뒤집어보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여기 아는 곳이야?”
“그것도 아니긴 한데, 며칠 방금 온 기계인형 손님들이 수십 명 몰려온 적이 있었거든? 그때 받음.”
“명함을?”
“어. 자기가 사장이라면서 주던데?”
사실 좀이 아니라 존나게 고생했지. 그렇다고 PTSD 몰려올 게 뻔한 추억을 굳이 상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기들 말로는 일 잘한다 하더라고. 하기사 자기들 일 못한다는 말을 어느 작업장에서 꺼내겠냐마는….”
때마침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 같아서 권해봤다. 이곳도 전 작업장처럼 일을 개판으로 할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누나가 알아서 보고 정할 거고.
생각해 보니 제법 우스운 상황이다. 누나도 피식 웃고 말 줄 알았는데, 제법 진지한 표정이었다.
“…기계인형들이랑 같이 일해본 적이 몇 번 있긴 한데.”
“진짜?”
“어. 게이트 드나들 때 짐꾼으로. 다들 일 괜찮게들 하더라고.”
짐꾼은 또 뭐야. 셰르파 같은 건가?
“그래도 작업장 하는 기계인형들은 처음 보네. 명함 나 가져도 돼?”
“가져. 나보다는 누나가 더 잘 쓰겠지.”
별생각 없었다. 진상들 효수해 달라 할 것도 아니고, 내가 도축장 명함을 받아서 얻다 쓰겠어.
헌데 명함을 양도받은 누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어버렸다.
“아니, 오늘 일요일인데 뭔 문자도 안 하고 바로 전화를 해.”
“어차피 주말에도 전화 받는 곳 아니면 같이 일 못 해… 신호 가네. 야, 여기 마음에 들면 나중에 게나 같이 먹자고.”
사주는 건 좋은데, 왜 하필 게야?
“아, 맞다. 김치.”
나 디스토마 무서워서 게 못 먹는다. 둘러대려 했으나 누나는 이미 김치 박스를 든 채로 나가버린 채였고,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러니 친구가 있을 리가 있나, 일감 생기면 바로 저렇게 뛰쳐나가 버리는데. 그 작업장 쏴장님도 주말인데 전화를 받은 거 보면 일감이 정말 급하긴 한가 보다.
그것보다도 내가 문제다. 살아있는 김치에 이어 이젠 게야?
솔직히 게는 그럭저럭 먹는 편이긴 한데, 이 동네 게도 멀쩡한 게는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 걱정되어 점장에게 물어볼 겸 전화를 걸었으나, 이번엔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된단다.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배터리 나간 거겠지, 뭐.
이리하여 혼자 남아버렸고, 손님이 오질 않았다.
행여나 담배의 요정이 또 장난을 쳤을까 싶어 담배도 두 번씩 세고, 김칫국물 얼룩도 죄다 닦아내고, 매대에 빈 음료며 과자를 다 채워 넣고 난 후 11시가 되었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손님이 없더라.
더 이상 할 일도 없어서 다시 바람이나 쐴 겸 정문 밖으로 나오자, 가까운 전봇대에 카디건을 입은 여자 하나가 기대어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는데, 분홍색 머리 색이며 등짝에 달린 손바닥만 한 날개며 익숙한 게….
“거기서 뭐 하십니까?”
서큐버스였다.
아는 얼굴이라 반사적으로 말을 걸었더니 날 바라보는데, 눈을 마주치자마자 후회가 막심해졌다. 눈이 잔뜩 풀려있었기 때문이다.
“으… 안녕하세요….”
근데 정상적으로 말하는 걸 보면 취한 것 같지는 않고. 몸을 추스르려는 듯 전봇대에서 어깨를 뗐으나, 곧바로 비틀거리고는 다시 전봇대에 어깨를 기댄다. 확인차 물었다.
“오늘도 술 잡수셨어요?”
“아뇨… 술은 안 먹었는데… 으으….”
그럼 뭐야. 기다리고 있자니, 서큐버스가 느릿느릿 답해왔다.
“클럽에서….”
클럽에서 뭐. 기다렸으나, 서큐버스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우물거렸다. 목말라 뵌다.
“손님, 피로회복제라도 한 병 사다 드시는 게 좋아 보이는데요.”
“…네.”
동의하며 전봇대에서 어깨를 떼고는, 비틀대는 걸음으로 정문으로 어떻게 들어오기는 했다. 들어오긴 했는데, 들어와서는 바로 테이블 의자에 앉아 허리를 푹 숙여버리더라.
살짝 안쓰럽게 보여서, 내가 직접 피로회복제 가져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사 먹는 게 어떠냐고 먼저 물어봤으니, 나중에 알아서 계산하겠지.
서큐버스는 가져온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열어보려고 끙끙거렸으나, 힘이 정말 하나도 없는지 뚜껑조차 열지 못했다.
그래서 줘 보라고 하고는 내가 열어서 건네줬다.
“아… 감사합니다.”
“근데 손님, 클럽에서 대체 뭘 하셨길래 그리 녹초가 되신 겁니까?”
내가 이 서큐버스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몇 번 대화를 해본 경험을 떠올려보면, 클럽에 진정한 사랑인지 뭔지를 찾으러 갔다가 일이 잘 안 풀린 게 아닐까 하는 정도.
이 서큐버스가 제 발로 클럽을 찾아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가 진정한 사랑 찾으러 가는 곳은 아니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클럽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모쏠이라서.
오히려 모쏠이니까 클럽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내 세상 친구 놈들이 간혹 말하긴 했는데, 정작 그놈들도 돈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는 여자는커녕 빈털터리만 돼서 나오더라?
난 그런 밥숟가락 같은 짓을 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어깨 형님들에게 라이트 훅 맞고 입구컷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탓에 아는 게 없으니, 잡설 다 떼고 뭐 했냐 물어보는 것 말고 뭘 하겠는가. 서큐버스는 내 물음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을 더듬으며 대답해왔다.
“아뇨… 그게….”
“아니면 뭐, 진짜로 진정한 사랑 찾으러 가신 거예요? 그게 잘 안됐고?”
“아니에요, 그런 거!”
당황했는지 고개를 불쑥 들며 내뱉고는, 막힌 혈이라도 뚫렸는지 술술 늘어놓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은 무슨,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고!”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러….”
“직장 선배들이 억지로 끌고 갔단 말이에요. 아니 글쎄, 제가 이랬거든요? 죄송해요 선배님들, 제가 클럽에 가본 적이 없어서… 이랬더니, 자기들이 내준다면서 저를 질질 끌고 갔는데요!”
“아, 스스로 가신 건 아닌….”
“서로 달라붙어서는 골반을 이케, 이케. 막 붙이고는 춤을 추질 않나, 술잔 위에 젓가락으로 술잔을 올려서는 삐죽 입술을 내밀어 툭 치질 않나! 선배들은 자기들이 꼬셔놓고는, 묘한 표정 지은 채로 술 마시면서 친해졌다는 다른 이종족들이랑 어딘가로 사라지질 않나―”
“흠… 그렇군요….”
뭔 말을 못 하게 하네….
서큐버스는 말을 늘어놓으며 틈틈이 자신의 손으로 부연 설명을 해왔는데, 이게 또 생동감이 장난 아니었다.
골반 얘기할 때는 자기 양손을 역V 모양으로 만들고는 맞부딪쳐 대질 않나, 술잔 얘기할 때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자기 입술을 삐죽 내밀어 대질 않나.
“심지어 지금은 연락도 안 돼요. 대체 다들 어디서 뭐 하고 계시는 걸까요?”
이걸 내게 물어올 때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난 이 문제에 대한 놀라운 대답을 알고 있으나 여백이 부족해 여기엔 적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