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7)
이세계 편돌이-36화(37/331)
36화. 2.1점 편돌이 (2)
이후 어플의 자동 매칭 기능을 몇 번 더 써봤으나, 딱히 이거다 싶은 이종족이 나오진 않았다.
“이분은 어떻게 보이세요?”
서큐버스가 다음에 보여준 화면에 떠오른 건 웬 더벅머리를 한 보랏빛 피부의 누군가.
사람 비슷하게 생겨먹긴 했는데, 코 위쪽이 앞머리에 덮여 음영이 진 탓에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짐작조차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 미연시 주인공처럼 생겼다.
“이놈도 거르십쇼.”
“이분도 좀 그런가요?”
“좀 많이요. 이 여자 저 여자 다 찔러보다가 엮인 여자들 죄다 울려버릴 관상입니다. 아니면 등에 칼 맞고 지옥을 가든, 뭐든….”
다음 화면에 떠오른 건 오크. 이놈은 딴 것보다도 소개문이 바로 눈에 들어왔는데, [ 3대 1000 이상 이종족 환영 ]이라 적혀있었다.
“이분은 근육질 여성분이 취향이신 걸까요?”
“그게 아니라, 바벨 드는 걸 도와줄 친구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외에도 머리에 무스 바른 고블린, 발톱 다섯 개에 죄다 금도금을 한 채인 늑대인간 등등, 이게 이세계식 FLEX인지 뭔지 하는 그건가?
사진을 넘기면 넘길수록 기대감보다는 회의감만 짙어져 가고 있었다. 이거 진짜 제대로 된 어플 아닌 것 같은데….
하며 바라보고 있자니, 광고 화면과 함께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 이 어플은 현재 시범 운영 중입니다.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손님, 궁금한 거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물론이죠.”
“직장 선배분들이 평소에 손님한테 장난 자주 치지 않아요?”
“앗… 어떻게 아셨어요?”
내 그럴 거 같더라.
서큐버스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뒤 어플을 꺼보려 하니 별점을 매기는 화면이 떴다. 별 한 개를 누르고 ‘이게 어플이냐’를 입력한 뒤 확인 버튼을 누르자, 이번엔 아예 어플의 총 별점이 떠올랐다.
어플의 별점은 5점 만점에 2.0점. 내가 이겼다. 리뷰 댓글들도 하나같이 울분에 가득 찬 댓글들뿐이다.
[ 아는 놈한테 추천받아서 써보다가 그♥♥ 뿔 뽑아버릴 뻔함, 제작자 조상 게이트 감? ] [ 마왕성 입구 가고일이나 사용할 만한 어플 ] [ 이거 점수 2.9점 받아서 써보지도 못했다 제작자 ♥♥♥ 니 얼굴부터 까봐 ] [ └ 프사 보니까 2.9점짜리 맞구만 ] [ └ 니 조상님 ]이세계는 부모님보다 조상님을 욕하는 게 더 보편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유익한 리뷰들이었다. 앱스토어도 마저 꺼버린 후, 어플을 삭제해 서큐버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어플도 직장 선배들이 손님께 장난친 것 같습니다.”
“…어쩐지. 선배들 표정이 좀 그렇더라구요….”
남의 연애사에 장난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긴 하지. 나도 옛날에 고백한다는 친구 놈한테 ‘놀이터에서 촛불로 하트 모양 그려서 고백하면 껌벅 죽는다’ 하면서 골려대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골려댄 게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가 하필 7월이라 실패한 거지, 기온 32도 찍히지만 않았어도 분명 성공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니까?
허나 서큐버스가 워낙 시무룩해진 탓에 농담도 못 꺼낼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우울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는 1분이 넘도록 아무 말이 없길래, 분위기를 풀어볼 겸 슬쩍 말을 꺼냈다.
“손님,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외모로 점수를 평가하는 어플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네….”
“애초에 손님 성격에 맞는 이종족 찾기도 어려웠을 것 같구요. 취향이나 그런 것도 마찬가지고….”
말하다 보니 이어나갈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사랑 따지기 이전에 아직 이 서큐버스 남자 취향도 모르고 있었다.
“근데 손님. 손님은 어떤 남성이 취향이신 겁니까?”
“어… 제 취향이요?”
“네. 뭐, 키가 180cm 밑은 싫다든가, 8등신 이상이어야 된다든가, 그런 거 있잖습니까.”
“글쎄요. 전 그런 것보다는….”
말꼬리를 늘이다가 아예 팔짱을 껴버렸는데, 떠오르는 건 있어도 말로 표현을 못 할 때의 딱 그 느낌이었다.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고민하다, 전혀 모르겠는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어… 친절한 분…?”
“좀 모호한데요.”
“그러니까… 음. 속마음을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분이 좋은 것 같아요.”
“더 모호한데요?”
“그리고 제가 행여나 실수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줄 것 같은 분, 의지할 수 있는 분,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잘 들어주실 것 같은 분…?”
요컨대 술 먹고 오바이트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치워주거나, 진정한 사랑이니 뭐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도 다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단 소리잖….
엥? 이거 완전 내 얘기 아니냐?
라고 생각하자마자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전제부터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친절한 놈이 아니었으니까.
오바이트 치운 거야 안 치우면 계산을 못 하니까 치운 거고 사랑 얘기 받아주는 것도 밤에 할 게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지, 당장 동사무소 고민상담센터만 가도 조건에 부합하는 이종족이 직원 수만큼 있을 것 아닌가?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친절한 놈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불친절한 놈으로 인식되고 싶지는 않다. 서큐버스에게 물었다.
“지금 저는 괜찮습니까?”
“네?”
“대화 들어드리는 거요. 뭐, 제가 전문적으로 상담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라 잘하고 있다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마는―”
“아니요!”
느닷없이 언성을 높여온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사장님이 얘기 들어주셔서 도움 엄청 많이 돼요. 오늘도 직장 선배들한테 놀림만 받은 것 같고, 친구들도 다들 웃기만 하고―”
“부침개도 치우고. 제가 도움 엄청 된 게 맞네?”
“아이참, 그건….”
‘말하지 마세요…’ 하며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길래, 이번엔 아예 소리 내서 웃었다. 직장 선배들이 왜 장난치는지는 알겠다.
“…아무튼! 너그러이 봐주시고, 그래서 속마음도 마음 편히 털어놓고 있고, 제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저도 좋으니까, 그런 건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돼….”
말하다 말고 또다시 말꼬리를 늘이길래 바라봤더니, 서큐버스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채였다.
“요… 어….”
“뭐가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무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 글자를 내뱉어 왔다.
“아.”
아는 무슨 아야. 집에 가스불이라도 켜놓고 왔나?
슬쩍 시간을 봤더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난 5월 이벤트 상품 상표들 갈아줘야 했고, 이 서큐버스도 여기서 더 노닥거렸다간 막차 놓쳐서 또 택시를 타야 할 터다.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님. 막차 끊길 것 같은데, 슬슬 들어가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
“아, 막차 끊긴다니까요?”
“…아. 네.”
핸드백을 챙겨 일어난 서큐버스는 느릿느릿 정문 밖으로 나가면서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정말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거울을 바라봐도 따로 보이는 건 없었다. 저 서큐버스 갑자기 왜 저러냐, 진짜?
그러다 날 홱 돌아보고는 물어왔다.
“사장님.”
“왜요.”
“저… 나중에 또 와도 되죠?”
“저는 오는 손님 안 막습니다.”
대답하니, 고개를 끄덕인 뒤 정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부리나케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다. 멍하니 바라보다, 카운터에 앉은 채로 잠깐 생각을 해봤다.
딱 그런 표정이었다. 뭔가를 깨달았는데, 자기가 깨달은 게 맞나 싶어서 가물가물한 표정.
근데 그게 대체 뭔지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여성, 그것도 이종족 서큐버스 속내에 대해서 뭘 알 수 있겠는가. 점장이라면 뭔가 알까 싶어 전화를 해보려고도 했으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벤트 상품 상표를 감싼 비닐을 벗기고, 로비로 나와 진열대를 스윽 둘러보았다.
“이건 또 언제 다 하냐….”
말해봐야 누가 대신해 줄 것도 아니다. 첫 줄을 떼어, 유제품 코너로 걸어가 작업을 시작했다.
이걸 다 끝낸 게 새벽 즈음. 다행히도 도중에 손님은 안 왔다.
* * *
이렇게 주말 근무가 끝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이게 뭘 의미하냐, 월요병 걸린 직장인들이 오질라게 몰려온다는 뜻이다. 8시 전까지만 해도 한가하기 그지없었는데, 8시 반 직후로 손님이 몰리기 시작해서는 금세 헬게이트가 열려버리고 말았다.
“손님. 이 사이다 1+1인데, 복합상품 다른 것들이….”
“그냥 갈게요, 지금 바빠서!”
“네. 손님, 거스름돈―”
“가지세요!”
이젠 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당장 이 손님 외에도 뒤에 줄 서 있는 것만 여섯이라, 일일이 챙겨줄 여유가 없기도 했고.
외에도 누구는 아예 지갑을 통째로 두고 가질 않나. 다른 누구는 손에 5천 원짜리를 꼬깃 쥔 채로 샌드위치 하나를 내밀어왔는데, 샌드위치를 계산한 후에 돈은 언제 주나 기다리고 있었더니 오히려 내게 되물어오더라.
“거스름돈 안 주세요?”
“어… 돈을 안 주셨는데요, 손님.”
“네? 여기 계산대에… 어, 돈 어디 갔지?”
“손님 손에 들린 그게 돈 같은데요?”
가리키며 대답하자 자기 오른손을 바라보고는, 머쓱한 표정이 되어 내게 돈을 내밀어온다. 이렇게 정신이 없는 손님들은 애교로 봐준다 쳐도, 정신이 없다 못해 아예 집에 두고 온 채로 찾아오는 손놈들도 있다.
예를 들면, 교통카드 충전해 달라 하고는 신용카드 내밀어온다든가.
“손님, 현금이 아니면 충전이 안 되세요.”
“네? 왜요?”
난 이유를 이렇게 알고 있다. 신용카드의 한도 내 금액을 현금으로 인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용카드로 교통카드 충전이 가능하다면, 교통카드 충전한 다음에 잔액을 환불하면 그만큼 현금이 연성되잖은가?
말인즉, 카드깡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어서 안 되고, 해주고 싶어도 기능 자체가 없다. 설명하려 했으나, 반의반도 못 끝낸 사이에 알았다고 대충 대답하고는 뛰쳐나가 버렸고….
그 열린 문으로 손님 셋. 뒤이어 용 꼬마가 들어왔다. 빨간 책가방을 메고, 품에는 둘둘 말린 도화지 한 장을 끌어안은 채였다.
“아조씨, 안녕하새….”
대답하다 말고는 로비에서 우뚝 멈춰버렸다. 일단 인사부터 받아줬다.
“꼬마야, 좀 일찍 왔다?”
“내….”
“미안, 원래 이 시간에 좀 바빠.”
실제로도 하도 바빠서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었다. 이 직장인 양반들, 한 명 계산해서 보내면 둘이 들어오고 있다. 세포분열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잠깐 저기 앉아서 시간이라도 때우….”
계산을 마친 직후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으나, 직장인들이 가득 메워버린 탓에 빈자리가 아예 없다. 계산을 마치는 족족 힐끔힐끔 꼬마를 바라보니, 아주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우으….”
이 세상에서도 순혈 드래곤은 엄청 희귀한 종족이라고 점장이 그랬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서 있는 줄의 손님들이 간간이 꼬마를 내려다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손님들이야 귀엽다고 내려다보는 거겠지만, 저 낯 가리는 녀석이 그걸 알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도 부담스럽기만 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온다.
“아조씨, 잠깐 나가 있을께여….”
거리에 행인들 바글바글한데 가긴 어딜 가?
“사장님, 라이터 하나만―”
“아니, 잠깐 기다려 봐.”
“네? 저요?”
“아, 손님께 한 말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잠깐만 좀 기다려 주시겠어요?”
바빠 죽겠는데 뭔 소리냐는 표정이었으나 내 알 바인가. 카운터 밖으로 나와, 꼬마 손을 잡고 계산대로 데려왔다.
“꼬마야. 책가방 저기 내려놓고, 도화지 나 주고. 의자에 잠깐 앉아있어라.”
“그래두 대여…?”
“그래도 돼. 감기는 다 나았냐? 꿀물 줘?”
“갠차나여, 다 나은 것 같….”
네 의견 물어본 거 아니야. 온장고에서 꿀물 하나 꺼내서 건네주니 이제야 안심이 됐다. 손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라이터 말씀하셨죠?”
바코드를 찍어 건넸으나, 손님은 꼬마와 나를 번갈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화났나 보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피식 웃고는 물어보더라.
“사장님, 무슨 애 아빠 같네요.”
아빠는 무슨,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