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8)
이세계 편돌이-37화(38/331)
37화. 저돌맹진 편돌이 (1)
이후 20분, 꼬마는 손님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토템이 되어버렸다.
“사장님, 에이스 담배 한 갑 주세….”
양복 입은 채로 담배를 구매하러 온 샐러맨더. 이 손님이 찾는 담배가 진열대 밑쪽에 있어 필연적으로 그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꼬마 머리가 딱 이 부근에 있었다.
꼬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오우, 사장님 애가 참… 귀엽네요.”
“제 애 아닌데요.”
“네? 그럼 여긴 왜 있어요?”
“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
전에도 계산대에 앉혀놓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땐 손님 하나 없이 한가한 때였고 지금은 더럽게 바쁘단 점이 다르긴 했다. 근데 얘를 둘 데가 없는 걸 어떻게 해?
꼬마는 계산대에 들어오긴 했어도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는지, 손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계산대 밑으로 몸을 숙이고는 눈가만 빼꼼 내밀어 손님들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오히려 역효과였다.
“어머나….”
머리에 깃털을 달고 온 하피 손님 하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여지없이 고개만 빼꼼 내미는 꼬마. 이걸 본 하피는 아예 헤벌쭉 표정을 풀어버렸다.
“아가, 몇 살이니? 언니가 사탕 사줄까?”
이 말에 혹했는지 꼬마는 잠깐 눈을 빛내다가, 고개를 젓고는 아예 몸을 밑으로 숙여버린다. 슬쩍 하피를 바라보니, 세상이 다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대변해 줬다.
“얘가 낯을 좀 가려서요.”
“그런가요… 사장님, 애가 몇 살인가요?”
“자기 말로는 7살이랍니다.”
물어보니 대답을 해주긴 하는데, 왜 내 애인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물어보는 거야. 내가 7살짜리 애가 있을 얼굴로 보이나?
다행히도 20분 정도 지나니 잔뜩 몰려오던 손님도 줄어들어 잡담할 여유가 생겼다. 이제야 대화를 좀 해보겠네.
“꼬마야, 오늘 유치원 가는 날이냐?”
“내. 저, 으으, 죄송해여.”
“왜 또 사과를 해.”
“손님 많으신대 와갖구….”
자기가 일하는 데 방해되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는 둥 뭐라 말해왔는데, 곧바로 반박해 줬다.
“꼬마야. 왔던 손님들 얼굴들 어떻더냐, 다 우울한 표정 짓고 있지 않든?”
“그른가여…?”
내 눈엔 그랬다. 이 직장인들이 주말만 지나고 나면 다들 중병 하나씩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월요병이라는 병인데, 아주 아픈 병이야.”
“헉. 병이애여…?”
“그래. 이 병을 앓는 어른들이 엄청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엄청 예민해지고 그러는데, 이게 약이 엄청 귀해. 월차라는 귀한 약이 있긴 한데, 고육지책이고.”
“월챠? 고육지채?”
애가 알아듣기에 어려운 설명이긴 했다. 좀 더 쉽게 풀어 말해줬다.
“손님들이 너 보니까 좋아하고 그랬잖냐. 월요병이 나아서 그런 거야. 다는 아니겠지만.”
“에? 저는 암것두 안 했는대여?”
그게 중요한 거다. 신비주의 같잖아.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쳐도 눈길 안 피하는 길고양이 정도여야 썰풀이가 되지, 개냥이는 오히려 ‘원래 주인 있는 고양이 아니야?’ 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만다.
“정 신경 쓰이면 인사라도 해드려. 그럼 병이 더 잘 나을지도 모르잖냐.”
말해주니, 날 뚫어져라 올려다보던 꼬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새여.”
“나 말고.”
“아조씨는 안 아프새여?”
“난 월요병 면역이거든.”
주말 없이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레 항체가 생겨버렸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마저 손님을 받다 보니 9시가 되었고, 바쁜 게 언제였냐는 듯 거짓말처럼 손님이 뚝 끊겨버렸다. 꼬마에게 물었다.
“유치원은 엄마가 데려다주시는 거냐?”
“내.”
“언제까지?”
“어… 10시에 오랫서여.”
“그거면 충분할 거 같다.”
이 녀석 어버이날 선물을 며칠째 못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제야 진도를 좀 뽑을 수 있겠네.
꼬마가 가져온 도화지를 꺼낸 후, 고무줄을 벗기고 근처에 비치된 라이터 네 개를 꺼내 주춧돌 삼아 구석에 올려놓았다. 담뱃갑을 써볼까도 생각했는데, 담뱃갑 그림 보니까 그럴 마음이 쏙 사라지더라.
딱풀은 계산대 밑에 적당한 게 굴러다니고 있었기에 별문제 없었고, 다음은 이 종이꽃들을 어디에 심느냐….
“꼬마야, 이건 네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제가여?”
“그래. 이게, 어른이 했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된단 말이지.”
오려놓은 꽃이 물망초며 해바라기며 서식지 구분 없이 다양한 탓에, 오히려 정상적으로 배치를 해봐야 인위적인 느낌만 들겠다 싶었다. 다만 최소한의 조언은 해줬다.
“그래도 위쪽 구석들에는 꽃 붙이지 말고. 여기는 구름, 여기는 해. 이거 국룰이야.”
“내… 근대, 구름은 안 넣으면 안 대여…?”
“왜?”
“저어는, 맑은 하늘이 좋아갖구.”
“나도 맑은 하늘이 더 좋긴 하다.”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꼬마는 양손에 꽃과 딱풀을 쥔 채로 도화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간간이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니,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질 않나 보다.
나도 나대로 상상을 해봤는데, 종이꽃만으로는 턱도 없겠단 생각만 들었다. 크레파스로 배경도 칠하고, 그림도 그리면 훨씬 더 좋아지지 않을까.
“꼬마야, 혹시 집에 크레파스 있냐?”
“어… 집에는 업구… 아, 유치원에는 있는 것 같아여.”
“잘됐네. 유치원에 말해서―”
말하다 억지로 끊었다. 유치원 얘기를 꺼내오는 꼬마의 표정이 그다지 좋질 못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무슨 일인지 짐작이 되긴 했지만, 일단 말을 아꼈다. 정문 벨이 울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꼬마야. 잠깐 혼자 하고 있어.”
“내.”
이번에 들어온 건 고양잇과에 가까운 코볼트.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 더해 털복숭이에다가, 주둥이 주변에 수염도 같이 나 있다. 코볼트인 건 알겠는데, 원본이 고양이인지 살쾡이인지를 모르겠다.
캣타워라도 찾으러 온 건가 생각하고 있자니, 나한테 와서는 이렇게 물었다.
“스낵, 어디?”
외국산 고양이였나 보다. 과자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쪽으로 가버렸는데, 꼬마가 풀을 든 채로 코볼트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저기, 아조씨.”
“어.”
“저 손님, 까매여.”
까맣긴 뭐가?
털 색을 얘기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저 코볼트의 색이 어두운 톤이긴 해도 검정색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내 얼굴을 바라본 꼬마는 고개를 붕붕 가로젓고는 좀 더 덧붙여왔다.
“마음이 까매여.”
동시에 꼬마의 뿔 부근이 살짝 빛이 나고는 가라앉았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저 코볼트가 나쁜 코볼트다, 이 얘기냐 혹시?”
“…내.”
살짝 망설이긴 했어도 대답은 단호했다. 묻지 않은 걸 자기가 먼저 말해온 걸 보면, 나름대로 확신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 일단은 나쁜 놈이 맞다 치고….
“미안한데 조금만 더 물어보자, 꼬마야. 저 코볼트가 혹시, ‘지금’ 나쁜 코볼트야?”
“내.”
저놈이 나쁜 놈이건 좋은 놈이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물건이랑 돈 갖고 오면 그게 누구든 계산 끝내서 보내는 게 내 업무니까.
하지만 ‘지금’ 나쁜 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손님이 아니라, 그냥 작정하고 도둑질하려고 들어온 놈이란 거잖아. 근데 이 녀석은 이런 것까지 구분이 가능한 건가?
“꼬마야, 넌 그런 것까지 볼 수 있냐?”
“내… 반짝거리거든여.”
이 꼬마 엄청 크게 될 꼬마일세.
허나 꼬마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자기도 원해서 보는 것이 아닌 탓일 터다. 점장도 어릴 때는 기관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 그랬으니까….
그러니 칭찬을 해봐야 우울해하기만 할 것 같고.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말해줘서 고맙다, 꼬마야.”
“…내.”
그리고 이젠 내가 문제인데. 편의점에 작정하고 도둑질하러 오는 놈은 생판 처음 본다. 이걸 어떻게 대처하는 게 맞나….
일반적인 경우, 편의점에 도둑이 들었을 때 편돌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팝콘을 뜯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고 이것만큼은 정말 방법이 없다. 매일 들어오는 손님만 수백 명인데, 그중 누가 언제 어떤 걸 도둑질을 할지 편돌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설령 알 수 있다 쳐도 그걸 할 줄 아는 놈이 편돌이를 하고 있겠는가? 탐정학원 원장 하고 있지.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건 사후대처. 나중에 재고가 안 맞아서 CCTV를 뒤져보니 누군가가 찍혀있더라, 그 누군가를 신고한다, 이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나마도 수사도 제대로 안 해주는 게 대부분이고. 경찰이 다이제 도둑 잡아줄 만큼 한가하진 않으니까.
방범률이 그 동네 주민 양심에 따라 좌우되는 셈이니, 편의점도 참 고달픈 업종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지금 상황이 그나마 나은 점이 두 개가 있다면, 하나는 저놈이 도둑질을 하려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기가 이세계라는 점이다. 점장이 마법사인 만큼 도난 범죄에도 대비가 되어있지 않겠는가.
허나 그것만 믿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 돈 벌겠다고 밤새도록 일하고 있는데, 감히 인생을 날로 먹으려 들어?
“아조씨?”
“잠깐 기다리고 있어.”
카운터에 놓인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일어났다.
청소하는 척하다 아예 현장을 덮쳐버리고, 여차하면 빗자루로 후드려 팰 의도에서였다. 허나 과자 코너쪽으로 들어가 코볼트를 확인하는 순간, 뭔가가 아주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놈, 물건을 숨겨갈 곳이 없다. 가방이고 핸드백이고 파우치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
복장을 훑어봐도 남방에 청바지 입고 있는 게 전부였고, 하는 짓이라 봐야 기성품 진열대를 등진 채로 과자만 내려다보는 게 다였다. 심지어 주머니에 손 넣은 채로 말이다.
그나마 의심 가는 게 있다면 코너 사이에서 좀 오래 서 있었다는 점, 이것 말곤 없다. 모르는 척 주변을 쓸어 담다 흘겨봐도 여유롭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
그게 오히려 수상쩍다. 과자 고르는 데에 뭔 1분이 걸려. 저거 일부러 저러고 있는 거다.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렇다고 더 바라봐야 뾰족한 수가 생길 것 같지도 않아서, 우선 계산대로 돌아왔다. 이 살쾡이 놈도 그제야 휘파람을 불며 코너에서 걸어 나왔는데, 손에 나쵸 과자 봉지를 든 채였다.
계산대에 과자를 올려놓고는 내게 물어온다.
“얼마?”
뭘 한 거지?
뭐라도 트집을 잡긴 잡아야 했는데, 근거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다. ‘이 꼬마가 그러는데, 손님 마음속에 마구니가 산답니다’ 하면서 후려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헤이, 얼마?”
“…1,800원입니다, 손님.”
“오케이.”
전혀 모르겠다. 그러니 딱 하나만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가격을 말하자, 살쾡이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
손의 방향을 틀어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7천 원을 꺼내 내게 내밀어왔다.
“담배. 원. 플리즈.”
“…….”
“헤이?”
살쾡이에게 물었다.
“손님,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