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39)
이세계 편돌이-38화(39/331)
38화. 저돌맹진 편돌이 (2)
아까 보니까 이놈 뒷주머니가 묵직하더라고.
그러니까 지갑이 들어있을 거고, 뭔가를 숨기려면 여기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갑에 기껏 숨겨봐야 건전지나 몇 개 훔쳐 가는 게 고작이겠지만….
여긴 이세계잖은가. 그러니 지갑이라고 평범한 지갑만 있으리란 보장도 없지. 살쾡이는 순간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다가, 안색을 싹 바꾸고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되물어왔다.
“왓 유 세이?”
뭐라고 했기는 개뿔. 이놈 알아들은 게 분명하다. 다시 대답해 줬다.
“신분증. 아이디.”
“아. 슈어. 테이크 어 룩.”
신분증 자체는 순순히 건네왔다.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뒤, 그 안에 들어있던 걸 뽑아 내미는 식으로. 손을 천천히 움직여 내밀어온 신분증을 받아 든 뒤, 바라보는 척하며 눈으로는 지갑을 살폈다.
구석이 살짝 해진 가죽 지갑. 지갑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허나.
“지갑 괜찮네요. 얼마짜리예요?”
“왓?”
“유어 월렛. 지갑요.”
조금 일그러져 보였다.
노이즈가 꼈다고 해야 하나, 로딩이 덜 되어 화면이 흐려졌다고 해야 하나. 일그러진 정도도 미약하긴 했으나,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 확연히 꺼림칙하고, 이질적이었다.
이게 잠을 덜 자서 그런 건지, 의심암귀가 들러붙어 이런 건지, 긴장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다. 정말 아무 문제 없는 지갑이 이렇게 보이지도 않을 거라는 점 정도….
아, 몰라. 애초에 지갑 얘기 꺼낸 시점에서부터 낙장불입이었다. 지금부터 미드 달린다.
“만져봐도 됩니까? 어, 캔 아이 터치 댓?”
“…와이?”
직장인 중 하나가 두고 갔던 지갑을 꺼내 살쾡이의 눈앞에 두고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닥치는 대로 둘러댔다.
“이게 제 지갑이거든요, 손님. 그런데, 영 마음에 안 들어서. 헤잇 디스 띵, 오케이?”
“와, 왓?”
“그래서 좀 바꿔보려고―”
나도 내가 하는 말이 개소리란 걸 안다. 하지만, 이놈은 모르지.
살쾡이가 어이없어하며 눈썹을 찌푸리는 순간, 곧바로 손을 뻗어 지갑 쪽으로 내밀었다. 반쯤 내밀었을 즈음에서야 상황을 알아챈 살쾡이가 지갑을 황급히 빼내려 했으나, 늦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살쾡이가 들고 있던 지갑이 뻥 터져버렸다. 동시에 터진 지갑의 주둥아리에서 과자, 음료수, 인스턴트커피 한 박스, 오트밀 등등, 오만 식품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이건 내가 낸 소리가 아니라 살쾡이가 자기가 훔쳤던 커피 박스에 머릴 얻어맞으며 낸 소리다. 이놈 이거, 당황하니까 방언 터지는 거 보소?
그대로 뒤로 자빠져버린 살쾡이를 향해 뛰쳐나가, 반쯤 걸터앉은 채로 멱살을 부여잡았다. 부여잡은 그대로, 딱 이놈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읊조렸다.
“보는 눈이 있으니 짧게 얘기하겠습니다, 손님.”
꼬마가 보고 있다. 더해서 CCTV도.
저 순수한 꼬마한테 다 큰 어른들이 주먹다짐하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일단은 보내줄 생각이다. 대신.
“다음에 또 오시면, 손님 얼굴도 이 지갑 꼴 나실 줄 아십쇼. 이해하셨습니까?”
누더기가 된 지갑을 들어 눈앞에 흔들어 보이자, 살쾡이 놈은 반쯤 혼이 나간 얼굴로 겨우 고개를 끄덕여왔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눈빛이 무슨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작정하고 들어온 놈이니,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들킬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거겠지. 아니면 날 정말 귀신 비스무리한 걸로 여기고 있다거나.
“안녕히 가십쇼.”
내뱉은 뒤 일으켜 세우자, 살쾡이는 비틀대며 겨우 몸을 추스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후 주변을 둘러보니, 편의점 로비에는 과자, 오트밀을 비롯해 저놈이 훔치려 했던 식료품과 잡동사니로 난장판이 된 채였고….
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바른 생활 청년이라, 누구 멱살 잡고 흔들어 본 것도 이번이 태어나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게 한계니까 적당히 알아먹고 꺼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또 찾아와서 행패 부리지 말고….
“아조씨, 갠차느새여…?”
계산대 밖으로 나온 꼬마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얼굴 표정 관리할 여유가 없어서, 아예 고개를 돌린 채로 대답했다.
“…어. 난 괜찮고, 살다 살다 진짜 별의별 양반을 다 본다. 그치?”
“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으나, 나보단 이 7살배기 녀석이 훨씬 더 놀랐을 터다. 내가 얼타고 있을 순 없지.
잠깐 숨을 가라앉힌 후, 꼬마 앞에 몸을 숙여 앉아 말해줬다.
“야,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것들 죄다 도둑맞았을 거야.”
“아녀. 어… 무찌른 건, 아조씨자나여.”
“무찔러?”
“내. 아조씨, 엄―청 굉장했서여. 지갑이 팡 터져버리구, 마법처럼.”
꼬마의 눈에도 제법 신기한 광경이었는지, 손을 펼치고 팔을 벌려가며 아까 보았던 광경을 어떻게든 표현해 보려 애를 쓰고 있다. 그늘졌던 얼굴이 밝아져서 다행이긴 한데, 아쉽게도 이 부분에 관해선 받아쳐 줄 말이 없었다.
내가 체질이 좀 그래, 하고 말해봐야 얘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을뿐더러, 내가 모르던 사실이 또 하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넌지시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혹시 아까 지갑 자세히 봤냐? 터지기 전에?”
“내. 아조씨가, 지갑 얘기할 때부터?”
“그때 지갑이 어떻게 보이든? 막 일그러지거나, 그러진 않았어?”
“에… 아녀?”
아니란다. 지갑을 직접 쥐고 있었던 살쾡이조차 전혀 모르는 눈치였으니 실제로 일그러졌던 것도 아닐 것 같고, 단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것 같은데….
넝마가 된 지갑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뒤집어 봤으나 이젠 터지지도, 일그러져 보이지도 않았다. 계속 흔들어도 100원짜리 두 개가 딸그랑 떨어지고 말 뿐이었다.
이건 점장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계산대 위에 지갑을 툭 던져놓은 뒤, 바닥의 과자와 커피 박스를 집어 들었다.
집은 채로 내려다보니 설탕이며, 라면사리며 널브러진 상품이 족히 수십 종은 되어 보인다. 이게 생계형 범죄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맞는 진열대로 가져가 진열하고 있자니, 꼬마가 품에 한 아름 물건을 들고는 총총 내게 다가와 내밀었다.
“아조씨, 여기여.”
“마음은 고마운데, 그냥 앉아있지 그러냐? 손님 일 시키긴 좀 그런데.”
말해도 붕붕 고개를 가로젓기만 할 뿐이다. 이거 정리하고 나면 이 녀석 집 갈 시간 다 될 텐데.
그래도 내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은 집중하기 힘들어할 것 같아, 나도 더 고민 안 하기로 했다. 꼬마에게 물건을 받아 진열하고, 몇몇 물건은 건너편 코너 것들이라 건너편에도 진열하고….
그러다 보니 점장이 왔다. 시간으로는 9시 40분, 막 꼬마에게 마지막 상품을 받아 든 직후였다.
“점장님 오셨습니까.”
“찬이 뭐 하구 있었, 어머나. 꼬마 친구도 있었네?”
“앗.”
점장 목소리에 꼬마가 몸과 꼬리를 쭈뼛하고는, 쪼르르 내 등 뒤로 달려와 숨어버렸다. 손바닥으로 등을 슬슬 밀어 앞에 세워두니,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새여….”
“꼬마야,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정말루.”
“내….”
“정말인데.”
덩달아 점장도 시무룩해졌다. 첫날에도 느꼈던 거지만, 얘가 점장을 유독 어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덕에 신기해서 낯을 덜 가라는 거라 했는데, 점장한테는 대체 뭐가 보이길래 이렇게 낯을 가리는 건지.
“…으으. 찬이, 오늘은 별일 없었어?”
“아무렴 별일이 없었겠습니까.”
“또?”
“뭘 새삼스럽게. 아, 잠깐만요.”
썰 풀기 전에 얘부터 보내고 보자. 카운터에서 책가방과 마시다 남은 꿀물을 챙겨 책가방을 어깨에 메주고, 손에 꿀물도 쥐여주고 말했다.
“꼬마야, 지금 9시 45분인데, 엄마 계신 데까지 잘 갈 수 있겠냐?”
“음… 될 것 같아여.”
“다행이네. 만들다 만 건 잘 보관해 둘 테니 걱정 말, 아니. 목 쪽에 이거 뭔 자국이냐. 꿀물 흘렸어?”
“내?”
“바로 물티슈 줄 테니까 가면서 닦고, 올 때 크레파스 챙겨와. 다음엔 일찍 오지 말고 딱 9시쯤 오고. 일찍 오면 신경 써주기 힘드니까. 알았지.”
“어… 내….”
“그럼 됐고, 오늘 고마웠다. 나중에 또 보자.”
말을 마친 후 곧바로 계산대에서 물티슈를 꺼내 한 장 건네줬다. 받아 든 꼬마는 로비에서 한 번, 정문 앞에서 또 한 번 인사하고 난 후, 거리 너머로 총총 사라져 버렸다.
바라보던 점장이 대뜸 말해왔다.
“찬이, 방금 엄청 애 아빠 같았다? 알아?”
“그 얘기 아침부터 네 번인가 들었습니다, 점장님.”
“그거야 당연히 들을 만하니까… 응? 이 지갑은 뭐야?”
카운터로 들어오던 점장이 지갑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하나….
우선 처음부터 말했다. 코볼트가 하나 들어왔는데, 꼬마애가 도둑질하러 들어온 놈 같다더라, 그래서 의심하다가 지갑 만져보니까 훔친 물건들이 다 튀어나오더라.
여기까지 말한 후 점장을 바라보니, 입가에 손을 짚은 채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기 시작한 날부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던지라, 살짝 당황해서 말없이 점장 얼굴을 바라만 봤다. 안 이러던 사람이 이러니까 좀, 포스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네?”
“그 코볼트는 어떻게 했어?”
“아. 그냥 보냈어요. 지갑이랑 신분증도 제가 챙겼고, 꼬마애도 보고 있어서 더 험한 꼴 보여주기도 그랬고… 아니 솔직히, 어금니가 제 손가락만 한 놈을 상대로 어떻게 주먹질을 해요?”
“그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구. 사실 찬이가 대처를 잘한 거야. 정말 싸웠으면 일이 좀 많이 복잡해졌을 테니까.”
과잉방어나 정당방위 같은 법적인 얘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지갑을 집어 든 점장이 말을 이었다.
“찬이 말대로라면, 이 지갑이 마도구인 거잖아. 공간 마법, 수납공간 확장 마법에, 보안 마법 뚫을 수 있도록 가공도 한 것 같고….”
“다른 건 이해하겠는데, 공간 마법은 뭐랍니까?”
“그러니까… 그 코볼트, 직접 지켜봐도 특별히 물건을 직접 훔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구 했잖아?”
그랬다. 고개를 끄덕이자 점장이 덧붙여온 말이, 내가 지켜보던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공간 마법으로 지갑에 물건을 채워 넣고 있었을 거란다. 진열대 안쪽의 안 보이는 물건을 공간이동시켜 지갑에 집어넣는 형태로 말이다.
“그게 가능해요?”
“불가능하진 않아. 엄청 어렵고, 불법이라서 문제지… 근데 그 코볼트는 이런 걸 어떻게 구한 걸까?”
난 구한 경로보다는, 이런 귀한 걸 왜 편의점 생필품 털어먹는 데에 썼는지가 더 의문이다. 마음에 안 드는 은행 파산시키기 딱 좋은 마도구잖은가.
…아니면 먼저 시험 삼아 써먹으려고 한 걸지도 모르고. 잘은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한낱 편돌이인 내 영역 밖의 일이라는 거.
“경찰에 신고해야 될 것 같은데요.”
“응. 찬이 퇴근하는 대로 내가 신고할게. 혹시 또 떠오르는 거 있어?”
“있긴 해요. 이거랑은 좀 다른 일이긴 한데.”
지갑이 일그러져 보이더라. 내 눈에만.
짧게 설명하자, 점장은 아까처럼 한참을 고민하고는 두 배로 힘겹게 대답해 왔다.
“그… 이건 100% 추측이긴 한데….”
“네.”
“찬이 체질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