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0)
이세계 편돌이-39화(40/331)
39화. 취조받는 편돌이
마법은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고 한다. 투수 어깨 같은 건가 보다.
내 체질이 마법과 실제로 연관이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여태껏 마법사로 살아온 점장의 관점에서는 내 체질 역시 마법과 연관 지어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걸 전제로 짜낸 추론이 이거다. 내가 반마법 체질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내 반마법에 관한 체질도 점점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갑이 일그러져 보인 것도 그 과정에서 파생된 초능력 비스무리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난 이렇게 이해했으나, 말하는 점장도 자신이 전혀 없다는 눈치였다.
“아니면 찬이가 이 세상에서 지내면서 점점 체질에 익숙해져 가는 건지도 모르구…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 나도 마법사 생활을 오래 하긴 했지만, 반마법 전문가 중에 찬이가 말한 능력까지 지닌 사람도, 이종족도 본 적이 없어서….”
“그 정도예요?”
“응. 연구대상 감이야. 수십 년 정도.”
“오우.”
이거 까딱하다간 국정원 지하에서 설렁탕 먹고 살게 생겼다.
“찬이 근무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된 거지?”
“퇴근하고 나면 딱 1주일 됩니다.”
“그러면, 음… 이걸 성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튼, 속도가 빠르잖아. 대비책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원인이라도 알아두면 좋겠는데….”
그나마 안심이 됐던 건, 점장의 얼굴에 이해타산적인 무언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단 점이었다. 그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점장이 사람은 참 착해.
나도 안심시켜줄 겸 내 생각을 말했다.
“점장님 말씀 들어보면 반마법 전문가가 저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뭔 능력이 더 생기든 들키지만 않으면 크게 상관없지 않습니까?”
“음….”
“저도 연구대상 되긴 싫고, 당장은 점장님이랑 누나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고. 점장님께서 제 피 뽑아다가 연구하실 것도 아니잖습니까… 점장님?”
“…그, 그래도 돼?”
“아뇨.”
“응….”
고개를 푹 떨구는 걸 보니, 아주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근데 솔직히, 난 진짜 모르겠다.
내 세상에서 나는 평범하게 알바하고, 평범하게 직장생활 하며 살아온 수십억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특별하단 소리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이젠. 중학교 음악 수행평가 만점 받을 때가 마지막 아니었나?
내친김에 이것도 아예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세상 드나들 수 있는 놈이 진짜 나뿐일 리는 없을 것 아닌가.
“점장님. 건의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응.”
“나중에 영등포라든가 홍대라든가, 좌표로 정해서 좀 가볼 순 없을까요?”
“영등포? 홍대? 마도구 이름 같은 거야?”
“주소예요. 어원은 저도 잘 모르지만, 하여튼 거기 사람들 무진장 바글바글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계 들락날락할 수 있는 게 저 하나뿐일 것 같진 않고, 아예 확인을 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내 원룸 있는 곳은 사람이 적어서 안 되고, 그 동네면 하루에 수만 명도 왔다 갔다 할 테니 그럭저럭 표본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잠깐 고민하던 점장이 대답했다.
“그건 나도 궁금하긴 하다.”
“그래요?”
“응. 정말 사람이 그렇게나 많아?”
“쉽게 말하자면, 이 세상 이종족이 죄다 사람으로 바뀌었다 보시면 됩니다.”
“오… 나도 나중에 한번 가봐도 돼?”
“안 될 건 없죠. 거기 맛있는 거 많아요. 전 가서 뭐 먹어본 적이 없긴 한데.”
물론 조건이 하나 붙긴 했다. 편의점 직원이 우리 둘뿐인데, 우리 둘 다 밥 먹으러 가버리면 가게는 누가 지키냐고. 여기 24시간이잖아.
이런 이유로 실험은 알바생 구한 뒤에 밥 먹으러 가는 겸 하는 걸로 정해졌다. 어차피 급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알바생 연락 오는 게 정말 하나도 없습니까?”
“응. 매장에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닌데, 왜 안 오는지 도저히 모르겠네….”
짐작되는 이유가 있긴 하다. 여기가 풍수지리적으로 영 꽝이라 그래.
도심지 사거리 한가운데인 데에 더해 근처에는 퓨전포차 몰린 골목까지 있는데, 어느 마조히스트가 좋다고 알바를 하러 오겠는가. 코로나도 안 터진 세상이니 취직난이 심할 리도 없고….
진상들 찾아오는 빈도를 보면 지하에 수맥도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고. 허나 인선은 알바생인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기껏해야 불길한 소리 안 하는 것 정도.
“뭐… 언젠가는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아, 찬이 슬슬 퇴근해야겠다.”
“넵.”
그리고 근무 빵꾸 안 내는 것 정도. 퇴근하려다, 미처 말 안 한 일이 하나 떠올라 점장에게 물었다.
“점장님, 전에 찾아왔던 서큐버스분 또 왔는데 말입니다.”
“응.”
“그 서큐버스랑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만남 어플을 써봤는데 개판이더라, 어플 끄고 나서 서큐버스 취향 얘기도 듣고 하다가, 나갈 즈음 돼서 서큐버스가 뭐라도 떠올렸는지 표정이 엄청 묘하더라.
“그러고선 또 와도 되냐고 물어보길래 그러라고 했는데요, 점장님?”
“…….”
“점장님??”
“어….”
한참을 머리를 부여잡은 채 말꼬리를 늘이던 점장은, 나지막이 이렇게 읊조렸다.
“힘내.”
대체 뭘?
* * *
집에서 자고 일어났고, 월요일 저녁이 밝아왔다. 월요일 좋아.
야간 편의점 근무 중 거지 같지 않은 요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최소한 월요일이 주말보다는 낫다. 주중 월요일만이 갖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 있잖아. 월요일 저녁이면 술이고 외식이고 때려치우고 그냥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거.
이세계에서도 통용되는 이 특수성 덕에 근무교대 직전에나, 근무할 때나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헌데, 존재 의의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게 하나 생겨났다.
“점장님, 이거 뭡니까?”
유리창에 웬 반투명 가림막 스티커 같은 게 붙어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하루살이들을 대비한 벌레막이 마법 비스무리한 건가 생각했는데, 점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꺼냈다.
“나라에서 시켰어. 창문 가리라고.”
“예? 왜요?”
“담배가 안 보이게 하라던데?”
이건 또 뭔 소리야?
자세히 들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국가 단위로 금연을 권장하는 건 이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정부 놈들이 금연정책에 관해 고심하던 중 이런 법안을 떠올렸단다. ‘밖에서 담배를 볼 수 없으면, 사람들이 담배 생각을 잘 안 하지 않을까?’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법안을 어떤 놈이 발의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과반수를 넘었고, 아무튼 통과했으며, 실효된 결과가 이거였다. 담배 생각 덜 나게 담배 안 보이게 하는 거. 말을 마친 점장에게 물었다.
“이 세상 윗대가리들은 종족이 그겁니까? 낙타?”
낙타는 천적이 나타났을 때, 모래에 머리를 박으면 자신이 안전할 거라 믿는다. 그러면 자기가 천적들을 볼 수 없으니, 천적들 역시도 자기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그거랑 대체 뭐가 달라. 담배 안 피우던 놈들이 지나가다 담배 진열대 보고 ‘오, 심심한데 담배나 한번 피워볼까?’ 하면서 피우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냐? 지인 잘못 만나서 그런 거지?
이게 남 일이면 그거참 미어캣이나 떠올릴 법한 발상이구나 하고 말 텐데, 그 안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편돌이들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밖이 안 보이잖아, 밖이….
묻고 나서 점장을 바라보니, 점장도 이 상황이 썩 좋다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솔직히, 나도 썩 좋지는 않아. 갇혀있는 기분이라서.”
“이거 다시 떼버리면 안 돼요?”
“안 된대. 벌금 물고 다시 붙여야 한다더라구.”
점장도 이미 물어봤나 보다.
이것보다는 담배공장을 싹 다 불태워 버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으나, 벌금 문다는 데 뭘 어쩌겠는가. 일단 제쳐두고, 점장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물었다.
특이사항이 하나 있었다.
“찬아, 이따 경찰 올 거래.”
“아, 신고하신 거예요? 언제쯤 온답니까?”
“10시 이후에 온대. 목격자 얘기를 들어봐야겠다고 해서, 찬이 출근 시간 얘기해 줬더니 그러겠다 하더라구. 찬이 대답 잘할 수 있겠어?”
“어… 글쎄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경찰 신세를 져본 적도 없고, 경찰과 농담 한마디 섞어본 적도 없다. 내 세상에서도 못 해본 사정 청취를 이세계에서 하게 생겼네.
“너무 걱정하진 마. 나도 옆에 있어 줄 테니까.”
“피곤하실 텐데 그냥 들어가시지. 거짓말만 안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걱정되니까 그냥 있을래.”
“경찰이 언제 올 줄 알고요. 10시 이후라고만 했으면 정확히 언제인지도 모르고.”
“이제 딱 10시 지났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오지 않을―”
도중, 밖에서 오토바이 엔진음이 들려왔다. 바라보니, 경찰 오토바이 한 대가 갓길에 막 멈춰선 상태였다. 이럴 거면 그냥 10시에 온다고 하지.
오토바이에서 내린 경관이 정문 벨을 열고 들어와서는 우리 앞에 섰는데, 허리춤 부근에 경광봉이 매달린 채다.
이어서 헬멧을 벗자, 검정 섞인 금발이 헬멧 안쪽에서부터 사르르 흘러내렸다. 쫑긋 뾰족한 귀가 튕기듯 마저 빠져나왔고. 헬멧을 옆구리에 낀 경관은 이쪽으로 경례를 하며 통성명을 해왔다.
“순경 이루엘입니다.”
전에 왔던 그 여자 엘프였다. 못 본 며칠 내내 밤을 새우기라도 했는지, 눈가의 다크서클이 훨씬 짙어진 데에 더해 반반 비율이었던 흑발과 금발 중 흑발이 훨씬 더 많아진 상태였다.
지금도 무진장 졸린다는 표정이고. 그래도 목소리는 또렷했다.
“강도상해 미수, 불법 마도구 소지, 사용 관련 범죄 신고로 찾아왔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아요, 순경님.”
“현장에 계셨던 분은 직원분이셨던 거고.”
날 바라보며 묻는다. 현장이라 하니까 뭔가 본격적이라는 느낌이 드네.
“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셔요.”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엘프는 수첩을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을 물어왔다. 범죄 시각에 더불어 도난당할 뻔한 물건들에 대한 것, 등등.
“시간은 대략 오전 9시 반 전후였었구요, 도난당할 뻔했던 것들은 대부분 생필품이었고….”
일주일 이세계에서 일하면서 괴랄한 일을 하도 겪어서 그런가. 긴장되거나 하진 않고 오히려 말이 술술 나왔다. 외에 질문은 도난품 사이의 공통점, 인상착의. 마지막으로….
“강도를 붙잡은 당시의 상황은 어떠셨습니까.”
“네?”
질문이 모호하게 느껴져서 다시 물었더니, 엘프가 잠시 생각하는 듯 펜 끝으로 앞머리를 툭툭 두드리다 대뜸 말해왔다.
“자세한 건 서에서 조사하겠지만… 이 지갑에 여러 마법이 부여되었을 건 확실해 보입니다.”
아, 이거.
“헌데 지금은 전부 해제된 것 같고. 혹시 이에 관해 짐작되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음….”
생각해 둔 대답이 있긴 한데, 이게 통할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지라, 속 편하게 내뱉었다.
“만지자마자 자기가 알아서 터졌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
“사실이에요. CCTV 한번 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