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1)
이세계 편돌이-40화(41/331)
40화. 직업상담 편돌이 (1)
어쨌든 거짓말은 안 했다. 지갑 건드렸더니 지갑이 터진 것도 맞고, 내가 그게 왜 가능한지는 나나 점장이나 이유를 모르고 있으니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는 CCTV를 확인하고 온 이 엘프 경관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 짐작 가는 내용은 없으신 거고.”
“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협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미심쩍은 표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죄송하단 말은 반은 진심이다. 진심인데, 난 취조에 성실히 응한 죄로 국정원 지하에 끌려가 설렁탕을 먹고픈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몸에 전극 붙이고 살고 싶지도 않고.
이게 다른 누군가면 몰라, 공권력이다. 내가 국정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냐 이거야. 그래도 그 외의 질문엔 최선을 다해 대답해 줬으니, 나머진 공권력의 힘으로 알아서들 하리라 믿는다. 지갑에 신분증 들어있었으니 금방 잡겠지 뭐.
“CCTV 확인해 보니, 영상에는 직원분 외에도 목격자 하나가 더 찍혀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만….”
이건 꼬마애 얘기하는 건가 보다. 얼른 덧붙였다.
“보신 그대로 어린애라, 물어보셔도 별로 도움은 안 될 거예요.”
사실 그 꼬마 덕에 잡은 거긴 하지만, 7살 애한테 불똥 튀게 할 순 없지. 엘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사정 청취는 이렇게 끝.
“외에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어… 있긴 합니다.”
“어떤 겁니까?”
“그 살쾡이 코볼트가 또 찾아와서 깽판 칠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이 지갑 비싼 거 같은데, 내가 터뜨려 먹었잖은가. 열받아서라도 다시 찾아와 내 면상에 냥냥펀치를 때릴 수도 있지 않을까? 고양잇과 친구들 같이 데리고 와서 말야.
잠깐 고민하던 엘프는 밖을 가리키며 대답해 왔다.
“며칠, 이 근방에서 근무하겠습니다.”
“그게 돼요?”
“예. 서에 건의해서 배치 바꾸면 될 것 같고… 부르시면, 2분 안엔 오겠습니다.”
말은 참 믿음직했다. 눈가에 다크서클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안심이 됐을 텐데.
“그 외에는 없습니까?”
“아, 저도 궁금한 거 있는데.”
“어떤 겁니까.”
“경관님, 평소에 잠은 잘 주무셔요?”
이건 내가 아니라 점장이 한 질문이었다. 느닷없이 뭘 물어보는 거야?
“…잘 자고 있습니다. 하루, 30분쯤.”
이 엘프는 그걸 또 대답을 해주네. 근데 하루 30분 자고 어떻게 버틴대냐.
“잠은 주무시면서 하셔야죠. 졸음운전 하면 어쩌려구.”
“자동운행 기능이 있습니다. 괜찮….”
“나중에 오시면 포션 하나 지어드릴 테니까 하나 갖구 가셔요.”
“…청탁금지법 위반입니다.”
“원가 3만 원 미만인데두요?”
점장이 말하는 포션을 나도 근무 첫날에 먹어본 적이 있다. 엘프 얼굴이 잠결에 누구 하나 치어버릴 인상인 것도 사실이라, 옆에서 거들어 줬다.
“저도 먹어봤는데 효과 좋아요. 딸기 맛이고.”
원가 부분이 문제인 건지, 딸기 맛이 싫은 건지. 다소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나와 점장을 번갈아 보던 엘프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러고는 나가버렸다. 먹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간 자리를 바라보다 점장에게 물었다.
“다 털어놨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찬이보고 경찰 해보라 그러지 않았을까? 반마법 능력자는 어딜 가든 환대받거든. 하도 모자라서.”
“거주지 미상이어도요?”
“그건 아니구.”
어차피 할 생각도 없다. 경찰이면 깡패놈들도 잡아야 할 텐데, 등에 쌍도끼 문신한 오크나 트롤 놈들을 상대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청탁금지법 얘기부터 하는 거 보면, 올바른 엘프처럼 보이긴 하는데….”
“아, 그래서 포션 얘기 꺼내셨던 거예요?”
“그건 그냥 마음 아파서 그랬던 건데? 엄청 졸려 보여갖구.”
“허어.”
“직급도 순경인 데다가… 엘프니까. 아마 경찰서에서도 엄청 시달리면서 살 거야.”
엘프가 전범 민족이라 차별받고 산다는 얘기를 전에 점장이 했었다. 귀쟁이 아재들 진상 부리는 걸 생각해 보면, 전범 민족이어서라기보단 엘프 종족들 성격에 원래 하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 엘프 경관은 성격 면에선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최소한 진상은 안 부리잖아. 비정상적으로 과로에 시달리는 것 같긴 해도 말이다.
도중에 손님 둘이 왔다. 각각 늑대 머리, 여우 머리를 한 코볼트였는데, 팔자로 걷는 게 진탕까지는 아니어도 술을 제법 잡수신 듯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15분. 점장을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누나한테 저도 직접 말 한번 해둘게요. 일단 퇴근하시는 게?”
“그렇게 할게. 오늘은 더 별일 없었음 좋겠다.”
“저도요.”
“응, 수고하구.”
이러고 점장은 퇴근. 코볼트 둘이 술을 고르러 안쪽으로 들어간 사이, 계산대에 앉아 잠깐 생각을 해봤다.
반마법 체질까지는 아주 특별한 게 아니다. 이건 점장도 말했었다.
다만 이 이후가 문제지. 근무 일주일 사이에 금은방 주인이나 쓸 법한 감지 능력 같은 것까지 생겨버렸는데, 다음 주엔 가슴에 전자석 심장이 박혀있다든가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방패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든가?
뭐든 간에 이상한 능력이 더 생기고, 그걸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은 절대 지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연구대상 감이라잖은가. 재차 말하지만 난 수십 년 동안 설렁탕만 먹기도, 몸에 전극 붙이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여길 포기하고 개백수가 될 수도 없고. 이대로 점장이 원인이든 방법이든 알아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사장님, 계산요.”
생각하는 사이, 늑대 코볼트가 소주 서너 병에 머릿고기를 계산대에 올려놓은 채였다. 계산해 달고 카드를 내밀어오길래 받으려 했는데, 따라온 여우 코볼트가 기겁하며 늑대를 밀어냈다.
“어? 뭐 하냐, 너 지금?!”
“뭐 하긴. 계산하는데.”
“아까 니가 샀으면서 계산은 뭔 계산이야! 사장님, 이걸로 계산해 줘요.”
이 패턴 뭔지 알 것 같은데. 여우가 내민 카드를 받으려고 다시 손을 뻗었더니, 이번엔 반대로 늑대 놈이 기겁을 했다.
“아니, 오늘은 내가 계속 산다니까. 사장님, 쟤 꺼 말고 이걸로 해줘요, 이거.”
그러면서 카드를 내밀어오는 육구를 밀치고는 여우 놈이 다시 자기 카드를 내밀어오길래, 이걸 받으려 했더니….
“너 돈 없다며, 새끼야! 쟤 얘기 듣지 말고 이걸로 해줘요, 사장님.”
이렇게 술 잡순 양반 여럿이 찾아와서는 서로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정이 돈독한 게 참 보기 좋긴 한데, 왜 여기 와서 이러는 거야? 우정 과시?
카드 내밀면서도 서로 비틀거리는 게 한참이 지나도 안 끝날 것 같아, 그냥 맨 앞에 놓인 카드 받아다 계산해서 건네줬다. 그러자 간택받지 못한 여우 놈이 내 쪽을 보면서 작게 으르렁거리더라.
“에이….”
짜증 낼 거면 술이나 깨서 찾아오든가. 기억도 못 할 거면서.
봉투에 담아서 건네주자, 늑대가 여우 놈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건지 어깨에 걸치고서는 술에 꼴은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해댔다.
“야, 근데 아까 봤던 강아지, 종이 진짜 뭐지?”
“아 썅, 몇 번째 그 얘기야!”
“모르겠으니까 그렇지.”
“난 스피츠로 보인다니까?!”
“스피츠는 확실히 아냐. 그 뭐냐, 푸들?”
“아니, 푸들은 좀 더 그! 복실복실하고 크다니까!”
스피츠? 강아지?
술에 꼴아서 막 내뱉고 있는 소리 같긴 한데, 강아지 하니 곧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로비를 반쯤 나아간 둘의 등에 대고 물었다.
“말씀하시는 강아지가 혹시, 포메라니안 아닙니까?”
묻자, 멈칫한 늑대가 잠시 후 자기 육구바닥을 탁 치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 포메라니안. 그걸 생각 못 했네.”
“뭔 포메라니안이야! 스피츠라니까!!”
“아, 소리 좀 그만 질러. 사장님, 감사합니다. 뭐 마실 거 하나 사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스피츠라니까!!!”
“아, 나중에 한번 검색해 보자고. 어떤 게 맞는가.”
이러고는 서로 부축하면서 나가버렸고, 나간 바깥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른쪽에서 웬 연갈색 털 뭉치 하나가 아장아장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정문 앞에서 멈춰서서는 이쪽을 바라본다. 바로 나가서 문을 열어주자,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날 올려다보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댔다.
“참으로 반갑소. 사장님. 오랜만이구려.”
“나도 반갑다, 야. 그간 잘 지냈….”
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이놈 몸 상태를 보니 썩 잘 지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털이 꼬질꼬질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 나가기 직전엔 그래도 윤기가 제법 흘렀던 것 같은데 말야.
게다가 오른쪽 귀 안쪽에는 상처까지 나 있다. 붉은 딱지가 진 걸 보니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인 듯했다.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너 그때 집 나간 후로 내내 밖에서 지냈냐?”
물었으나, 포메라니안은 옆을 슬쩍 바라보고는 내밀고 있던 혀를 쏙 집어넣었다. 바라본 방향을 확인해 보니 코볼트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밖에서 말도 안 하고 지냈고?”
이 물음에는 고개만 끄덕여 온다. 가까이 다가온 코볼트 무리가 날 이상한 놈 보듯 하길래, 일단 끌어안아 데리고 들어왔다. 카운터 안쪽에 앉혀놓고 나서야 대답을 해온다.
“사장님께선 잘 지내셨소?”
“난 그럭저럭 잘 지냈다. 넌 어땠는데? 땅콩은 무사하냐?”
“무사하오. 보시다시피―”
“굳이 보여주진 않아도 되고. 너 귀에 상처는 왜 난 거냐?”
묻자, 멍멍이는 우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떨군 뒤 근엄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꽤나 긴 이야기가 될 터인데… 말해도 괜찮겠소?”
마음대로 하라 했더니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사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집은 잘 나갔단다. 편의점을 뛰쳐나간 직후 자기 주인이 개 목줄을 휘두르며 쫓아왔는데, 땅콩을 따이지 않겠다는 굳은 일념 하나만으로 죽어라고 달려 어떻게든 벗어났다고.
그렇게 벗어나고 나니 어느 뒷골목이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오. 내가 정말… 자유의 몸이 된 것인지.”
실감도 안 나고 무섭기도 했지만, 일단은 계속 움직였다고 한다. 언제 주인이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처 없이 뒷골목을 걷다가 만난 게 들개 무리였다.
“처음엔 반가웠다오. 본견도 같은 신세가 된 셈이니, 동지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지. 그래서, 말을 걸어보았는데….”
“그래서?”
“느닷없이 달려들어서는, 여기저기를 물어뜯길 뻔했다오. 이 귀의 상처도 그때 난 것이고. 최대한 대화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우리 구역에서 꺼져라’라는 외침만 해대고….”
이는 어느 뒷골목을 가도 마찬가지였고, 방황은 계속되었다. 하루, 이틀. 식수는 뒷골목의 군데군데 고여있던 물 등으로 해결했지만, 먹을 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야. 폐기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준다면 정말 감사히 받겠소만… 사장님을 다시 뵈러 온 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그럼 뭔데?”
묻자, 멍멍이는 쑥스러운 듯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물었다.
“혹시… 본견이 여기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