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3)
이세계 편돌이-42화(43/331)
42화. 1개국어 편돌이 (1)
이후 밤 근무 중 특별한 일은 없었고, 작은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사장님, 이거. 이거 얼맙니까.”
안경 쓴 중년 대머리 귀쟁이가 불그스름한 얼굴로 찾아와서는 막걸리 한 병을 내려놓고 가격을 묻더라. 1,800원이라 대답하자, 한참 동안 자기 주머니를 뒤지던 귀쟁이가 천 원짜리 한 장에 100원짜리 네 개를 짤그랑 올려놓고는 역으로 물어왔다.
“막걸리값이 왜 이렇게 올랐어요?”
그야 나도 모르지. 알바 시작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내가 옛날 막걸리값이 얼마였는지, 왜 올랐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모르겠다고 하니, 자기 뒷주머니와 가슴팍의 주머니에 이어 지갑 안쪽까지 죄다 살피던 귀쟁이가 계산대에 손을 탁 얹고는….
“저, 사장님. 제가!”
“네.”
“제가, 혹시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400원이 모자라니 설거지라도 해서 모자란 400원을 알바비로 충당하겠다, 이런 소린가? 재차 묻자, 코맹맹이 소리로 좀 더 덧붙여왔다.
“제가, 400원을 신세 질 수 있겠냐― 이 말입니다.”
“아… 돈이 모자라셔서?”
“모자라다는 게 아니라, 제가! 신세를 지겠다, 이겁니다!”
잠깐 고민하다 대답해 줬다.
“신세를 지실 수가 없겠는데요…?”
이러자 뭔 대답을 그따위로 하냐는 둥, 싸가지가 없다는 둥 하며 거의 3분가량 나한테 욕지거리를 하고는 나가더라. 이 동네 귀쟁이는 제대로 되어 먹은 놈이 거의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하게 된 유익한 해프닝이었다.
이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계산대에 앉아 줄곧 생각만 했다. 그러다 아침이 밝았고….
“찬아, 하이.”
“점장님 오셨슴까.”
점장이 왔다.
곧바로 인수인계 사항부터 전달했다. 오늘은 특별히 도둑이 들진 않았고, 지갑을 놓고 간 직장인도 없었다. 담배 개수도 문제없었고, 다음은….
“어제 멍멍이가 왔다 갔는데 말입니다.”
“멍멍이? …아, 전에 얘기했던 포메라니안?”
“네.”
“어때? 잘 지내고 있대?”
“아뇨, 굶어 죽을라고 하던데.”
“저런.”
점장이 궁금해하는 눈치라 다 말해줬다. 그 녀석이 어떻게 살았는지도, 실은 영물이었다― 라는 것도 깨닫게 해줬다, 그러다 헤어졌다. 헌데, 헤어지기 직후에 내가 뭔가를 본 것 같다.
“어떤 걸 봤길래 그래?”
“그 멍멍이가 편의점 들어올 때는 귀에 상처가 있었는데, 나갈 때 보니까 사라져 있더라고요.”
“…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본 것 같진 않아서. 영물이 그런 힘도 있습니까? 막 재생하고?”
묻자,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고민하던 점장이 답해왔다.
“없지는 않지. 피닉스 같은 영물도 있으니까.”
“피닉스요? 불사조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여기서 버스 타고 열 정거장 정도 가면 동물원 있는데, 거기도 한 마리 있거든. 인기도 많구. 항상 어딘가로 날아가 버려서 자주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
“심지어 탈주를 해요??”
이해가 안 돼서 물었더니, 불사조는 영물 중에서도 특히 고지능이라 자기가 어떤 입지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더해서, 사냥하는 걸 귀찮아하는 게 특징이라나 뭐라나.
그런 이유로 동물원에 하루 30분 정도 얼굴 비치고, 동물원에서 주는 고급 음식들 다 받아먹으면서 지내다 지루해지면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게 하루 일과. 이게 뭐냐? 나도 불사조 할래.
“그래도 횟대에 앉아있을 때 떨어지는 깃털만 주워 모아도 유지비로는 충분할 테니, 그 정도면 훌륭한 공생 관계지.”
“깃털은 어디에 쓰이길래.”
“약재. 포션 만들 때 부스러기 좀만 집어넣어도 효과가 좋거든. 이것도 부스러기 조금 집어넣어서 만든 거구.”
말하며 점장이 꺼낸 건, 근무 첫날에 나 먹으라고 줬던 자그만 포션이었다.
“진짜 만들어 오셨네.”
“이거 유제품 진열대 밑에 둘 테니까, 이따 저녁에 엘프 경찰분 오시거든 건네드려.”
“그렇게 할게요. 근데, 점장님 말대로면 그 멍멍이가 원래 종이 피닉스라는 얘기가 되는 거 아녜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내 생각은 아냐.”
불사조의 능력이 재생 능력 하나뿐만이 아니고, 깃털을 휘날려 바람이나 불꽃도 일으킬 수 있고, 마하의 속도로 날아도 끄떡없는 강인한 몸체 또한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멍멍이의 상처가 순식간에 나아버린 것도 능력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만으로 원래 종이 뭔지를 유추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게 점장의 의견이었다.
들은 뒤의 내 소감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모르겠다는 것. 이 멍멍이가 대체 뭐인 거야 그럼?
“외에 또 다른 건 본 거 없구?”
“다른 거는… 아. 걔가 햄버거를 소환하려고 하기는 했는데.”
“햄버거?”
“네. 잘 안됐고요. 영물한테 그런 힘도 있어요?”
“없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잖아. 아니면 다른 곳에 진열되어 있던 햄버거를 공간이동 시키는 거일 텐데, 그건 범죄니까… 근데, 왜 햄버거야?”
쓰레기통 뒤졌다는 얘기를 해주니, 점장 얼굴이 반쯤 사색이 되어버렸다.
“으… 그렇게까지….”
“점장님 집에 걔 둘 수는 없는 거죠? 밤에는 알아서 나가 놀라고 하고.”
“…미안. 나도 가능하면 그러고 싶은데, 오피스텔이 애완견 출입 금지라….”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미안하실 것까지야. 아, 그리고….”
“응?”
떠오르는 말이 있어 꺼내려다, 말을 돌렸다.
“…아뇨. 별건 아니에요.”
“할 말 있으면 해두 되는데.”
“진짜 별거 아녜요. 그냥 설레발이라.”
“….”
날 바라보는 점장 얼굴에 걱정기가 어렸지만,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멍멍이가 그랬잖은가. 특별한 힘이 있다면, 자기는 그걸 어려운 누군가를 돕는 데 쓸 거라고.
난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 못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점장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 * *
퇴근하고, 잠들고. 밤에 일어나 보니 톡이 하나 와 있었다. 발신자는 구인 광고 사이트.
[ 강원도 과자 공장에서 연락드립니다. 3교대, 월 250, 숙식 제공, 자체 통근 버스 운영 중. 밑에 연락처를 첨부합니…. ]바로 톡을 닫았다. 강원도 공장에서 운영하는 통근 버스를 경기도 사는 내가 어떻게 타라는 거야. 통근 버스 타러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오라는 소린가?
슬라이드를 마저 위로 올려 가장 최근에 온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세 달 전에 온 게 마지막이었다. 옛날 친구 놈 중 하나였고, 메시지 내용은 이러했다.
[ 이찬 잘 지내냐? ]3개월 지난 톡에 대답을 하는 건 많이 늦은 감이 있지 않나. 고민하다, 짤막하게 적었다.
[ 잘 지낸다 ]근무처가 매일매일 할로윈 축제 중인 게 문제긴 했지만, 어쨌든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니 잘 지내는 거 맞겠지, 뭐.
이후 9시 50분 즈음 출근해 근무교대. 날 보는 점장 표정이 여전히 걱정된다는 눈빛이긴 했지만, 어쨌든….
근무가 시작되었고, 한 10분쯤 지나서 이런 놈들이 왔다.
손님 셋이 몸을 푹 숙이며 들어왔는데, 이야. 저 양반들 뭐 거인 같은 건가?
키가 정말 오지게 컸다. 어림잡아서 3.5m 정도. 빅사이즈 세 양반 모두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입은 옷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가 굵거나 가는 거며, 기이하게 부푼 관절이며….
더욱 기이한 것은 이놈들이 매장에 들어오며 떠들어대는 언어였다.
“????????”
“?????? ????????.”
“???? ??????? ?????”
저게 대체 뭔 소리냐?
편돌이 하면서 손님들이 뭔 소린지 못 알아먹을 언어로 대화하는 게 흔한 일이긴 하지만, 대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계산대에 서 있는 나한테는 그 언어를 안 쓰기 때문이다. 지들이 외국 사람이라는 것도, 나한테 말해봐야 못 알아먹을 것도 아니까.
그래서 손짓 발짓 하고, 서투르게나마 영어도 쓰고 그러면서 의사소통하고 그러는 거고. 나한테 그 정도를 바란다면 나도 해줄 수 있다.
근데, 이 큼직한 놈들은 그것조차 아니었다. 각자 나쵸, 감자칩 몇 봉지에 커피 몇 캔을 들고 와서는, 지들 언어로 이런 말을 해오더라.
“????? ????”
꼬부라진 말을 들어서 그런가, 내 고막도 꼬이는 기분이 든다. 이 양반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이 거인 놈들이 키가 하도 커서 몸을 아예 반쯤 숙인 채 들어왔고, 그러고도 등에 천장 조명이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하는 상태다.
얼굴을 보고 계산을 해야 하는 나도 얼굴을 위로 치켜든 채였고, 올려다보니 이 거인 놈들이 조명을 등지고 있어 얼굴에 음영이 진 채였다. 쉽게 말해, 깡패처럼 보였단 소리다.
쫄리긴 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진짜 죄송한데, 제가 1개 국어 능력자라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 ??? ?????”
“?????? ???? ???????? ???????? ????????? ?????.”
말 비슷한 걸 해오기는 하는데 당연히 뭔 소린지는 못 알아먹겠고, 내가 못 알아먹는 걸 이 거인족들도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 ???? ??????? ????? ??????????!”
이 중 왼쪽에 서 있던 양반은 원래 급한 성격인 건지, 창가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치더라. 이것도 뭔 소린진 못 알아먹겠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최소한 뭘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저기서 먹고 가겠다는 거잖아.
원래는 상관이 없지만, 이 거인들에 한해서는 상관이 있는 문제였다. 이 양반들 테이블 의자에 앉으면 의자 박살 낼 거 같은데….
“일단… 알겠습니다.”
점장한테 거인 손님 가려 받으라는 지침은 못 들었으니, 일단은 허락해 주기로 했다. 헌데 매장에서 머무를 때 적는 장부를 꺼내 내밀었더니, 장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또다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 ??? ?????!”
“??? ??????????????? ??????? ???????????”
“손님. 사정이 딱하시단 건 알겠는데, 이걸 안 적어주시면 안 돼서요….”
“??? ??? ????????? ???????!”
“아, 대체 뭐라는 거야….”
“??????”
흥분한 얼굴로 삿대질을 해대고 침을 튀겨대고 있다. 여전히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이놈들이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단 건 알겠다.
“…그냥 드십쇼, 그러면.”
명부를 집어넣자,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 테이블 자리로 가서는 두 명이 테이블에 걸터앉고, 하나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더라.
바라보다, 점장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응, 찬아. ]“점장님, 집에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 아니, 지금 버스 타구 가는 중. 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말하고 반응을 기다리니, 점장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 우리 근무 교대한 지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그렇긴 한데, 이게 별건 아니구요. 거인 손님 몇 명이 장부에 연락처를 안 적어서, 이거 괜찮나 싶어갖고.”
[ 세상에, 거인 손님이 오셨다고? ]화들짝 놀라며 되물어온다. 거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종족이 아닌가?
“예. 키가 한 3.5m쯤 되어 보여서요.”
[ 어, 그럼 거인 아닌데. ]“저게 거인이 아니면 뭡니까?”
묻자, 점장이 천진난만하게 대꾸해왔다.
[ 중인족. ]“그건 또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