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5)
이세계 편돌이-44화(45/331)
44화. 1개국어 편돌이 (3)
그렇다길래 중인족 쪽을 바라보니,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뻥끗거리는 게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뭔 소릴 하는지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귀가 크니, 소리도 그만큼 잘 들리기라도 하나 보다.
헌데 듣고 있는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원체 다크서클이 짙은 탓에 인상이 날카로운데, 눈썹까지 찌푸리니 바라보는 내가 가슴이 뜨끔해질 지경이다.
근데 방금, 이 엘프가 ‘내 얘기’라고 하지 않았나?
“저 중인족 손님들 말도 할 수 있으신 겁니까?”
“자주 듣다 보니 귀에 익었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경찰이 언어를 자주 듣다못해 아예 외워버릴 지경까지 된 종족이라… 흐음….
간간이 귀를 쫑긋거리며 바라보던 경관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명부를 바라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저주 방역용 출입 명부의 경우, 미기록 적발 시 매장에 벌금 200만 원. 미기록자에게 과태료 10만 원….”
“뭔 벌금이 200만 원이나 나와요?”
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며 넘기기엔 액수가 어지간히도 컸다. 적기 싫다고 땡깡 부리는 놈들이랑 맞짱이라도 뜨라는 거야, 뭐야.
“실제로 벌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별로 없긴 합니다. 적발되는 경우도 드물고, 운 나쁘게 걸리더라도 서의 다른 경찰분들은 ‘다음부턴 유의해라’라며 넘기고는 하지만….”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잇던 엘프가 명부를 가리키고는 말해왔다.
“저는 벌금 매깁니다.”
저 중인족 놈들 못 적은 걸 눈치챘나 보다. 아니, 근데 불가항력인데 어떻게 해.
“저도 적어보려고 했는데, 저 손님들이 적기 싫다는 걸 어떻게 해요.”
“저 중인족들이 말입니까?”
“예. 적어보려고 했는데 뭐라 꿍시렁거리기만 하던데요. 경관님, 이거 좀 도와주실 순 없으십니까?”
사실 반쯤은 노리고 한 부탁이었다. 경찰이 하라는데 지들이 뭐 어쩔 건데? 적는 게 싫으면 알아서 나가주든지 하겠지.
날 바라보던 엘프는 잠시 후,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민중의 지팡이야.
펜을 마저 집어 드니, 엘프가 먼저 중인족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 다가가자, 중인족 놈들이 자기들한테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당황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 ??????????!”
“‘우린 아무 잘못도 안 했다’라는군요.”
예비 바바리맨 같은 놈들이 말은 잘한다. 내가 말없이 명부와 펜을 집어 내밀자, 명부와 나, 엘프 경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소리높여 왱알거리기 시작했다.
“????? ??????? ?????? ??????? ????????? !”
“우리 정보를 여기 왜 적냐, 라는군요.”
“??? ?????―??????? ?????? ??????, ?????―???????? ??????”
“경찰이면 다냐, 전범 민족 주제에, 라는군요.”
당연히 경찰이면 다지, 꼬우면 너희가 경찰 하든가… 아니, 뭔 주제?
“이 손놈들이 뭐라고 했다고요?”
“들으신 게 맞습니다.”
진심인가 싶어 바라보니, 엘프는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것들 진짜 미친놈들인가?
우리가 지들 말을 못 알아먹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지, 들으라고 한 소린지. 엘프 경관이 번역한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중인족 놈들은 고개가 빳빳하기 그지없다. 전자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더 황당한 건, 이어지는 말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번역하는 경관의 말투였다.
“??? ????? ????? ?????? ?? ???? ?????!”
“적으려면 네 것부터 적어라, 소인족 놈아. 라는군요.”
“???? ?????? ???????? ???? ?????? ?????….”
“엘프가 경찰은 어떻게 해 먹고 있냐고도 하고….”
“????? ??????? ???????????? ????????? ?????? ??????? ??… ??????”
“소인이 중인에게 저항해서야 되겠느냐, 흠.”
이놈들 몸에서 술 냄새가 나진 않고 있다. 근데, 술도 안 마신 놈들이 왜 술 취한 진상 놈이나 씨부렁거릴 소리를 해대고 있는 거야?
내가 오래 살았다기엔 애매한 나이이긴 하지만, 이런 놈들은 어떻게 이해를 해보려 해도 이해가 안 된다. 지들이 제일 잘났다 생각하는 놈들, 그리고 그걸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
너희가 잘났고 대접받을 가치가 있었으면 주변에서 알아서 인정을 해줬겠지. 지들이 전세 낸 것도 아닌 매장 안에서 지들 세상인 마냥 떠들어 대고, 웃도리 벗고 소리 지르는 미개한 놈들이 뭐가 이쁘다고 인정을 해줘?
이놈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내가 어떤 취급을 해야 할지만은 지금 확실히 깨달았다. 허나 엘프 경관은 저놈들이 해온 말을 입에 다 입에 담으면서도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홧김에 물었다.
“경관님. 이놈들 이거 모욕죄로 끌고 가셔도 되는 거 아녜요?”
“애매합니다.”
“아니, 왜요??”
“모욕죄는, 공연성과 사실이 아닌 내용을 토대로 대상을 비하하거나,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 공연성이 해당이 안 됩니다.”
“제가 듣고 있는데도요?”
“못 알아들으시지 않습니까.”
남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 공연성이 해당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 잇고 있자니, 엘프가 조소하듯 피식 웃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익숙합니다.”
“아니….”
“더 심한 말도 많이 들어봤고.”
점장이 말하길, 엘프는 이 세상에서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전범 민족이라서.
그 편린을 지금 이 순간 일부나마 체험한 듯한 기분이다. 더 이상 뭔 말을 해야 할지도 안 떠올랐고, 이마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어 부여잡았다. 옆을 바라보니, 엘프 경관이 작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후 입을 열었다.
“??? ???? ????? ?? ??????….”
아니, 스피킹도 할 줄 아세요?
“????? ???????? ????????? ?????????? ?????? ??? ???? ?????? ? ?????? ????? ?????? ?????.”
심지어 발음도 네이티브다. 조곤조곤 꼬부라진 말들을 읊조린 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중인족들을 올려다보는 엘프 경관. 내려다보는 중인족 놈들은 ‘아차’ 싶다는 표정이었다.
고작 아차 하고 말았단 거다. 엘프에게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차별 발언을 계속하면 연행하겠다, 고 했습니다.”
이 엘프도 참 돌부처다. 내가 당사자였으면 공연성이고 나발이고 수갑부터 채우고 봤을 텐데. 엘프의 경고에 시큰둥한 얼굴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던 중인족 놈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며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 ?????, ??? ????? ??????.”
“???? ?? ?????.”
“기분 잡쳤으니 클럽이나 가자, 라고 하는군요.”
“뭔 클럽을 가….”
바라는 대로 되긴 했는데, 뭔가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이다. 점장한테 정문에 중인족 출입금지라고 A4용지라도 인쇄해 붙여놓자고 할까.
“?????? ???????―????????.”
“담배 세 갑.”
“네?”
“니코틴 강한 것으로 세 갑, 달라는군요.”
이 와중에 담배가 피우고 싶냐?
그래, 까짓거 못 줄 거 없지. 계산대로 돌아와 가장 독한 담배를 세 갑 꺼낸 뒤, 이 편의점 책임자로서의 합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신분증 보여주십쇼.”
명부에 연락처 적는 게 발작 버튼인 놈들이다. 자기 신상정보 적기가 싫어서 그랬던 걸 테니, 신분증은 당연히 더 보여주기 싫겠지.
“????.”
뭔 소린 줄 모르고 날 멀거니 쳐다보자, 엘프가 옆에서 내 말을 이놈들에게 전달해줬다. 동시에, 발작 스위치가 켜졌다.
“?????, ???? ??????? ???????? ??????? ?”
“??? ???? ?? ??????? ?? ?!”
“내가 애처럼 보이냐, 보여주기 싫다, 랍니다.”
그래? 근데, 어쩌냐? 이거 의무인데?
원래라면 편의점에서 담배 팔 때, 액면가가 몇 살이든, 노인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무조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한다. 안 봐도 성인인 게 빤히 보이고, 귀찮으니까 쉬쉬하고 스킵해 주는 거지.
근데 지금은 경찰이 보고 있는데 어쩌라고? 꼬우면 내가 아니라, 이 세상 법전에 대고 따지든가.
“???!”
중인족 놈들도 경찰이 보고 있으니 강요는 못 하겠다는 눈치다. 잠깐 대치 상태가 이어진 후, 담배를 달라고 했던 놈이 짜증이 가득하다는 얼굴로 여권을 내밀어왔다. 그래, 늬들 나이나 한번 보자….
생각하며 건드리는 순간, 여권이 폭발했다.
“어이, 씨!!”
성대한 폭발이었다. 폭발한 여권의 표지가 튀어나오며 내 머리를 퍽 갈기고는 담배 진열대에 처박혀 버렸고, 뒷표지는 뒤로 날아가 여권을 내밀어온 중인족 놈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위를 올려다보니 여권 묶음에서 빠져나온 종이 십수 장이 이렇다 할 방향 없이 사방에 휘날리고 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이게 무슨 일이냐는군요.”
엘프 경관은 아예 풍압으로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었으나, 꿋꿋이 통역을 하고 있다.
여권 종이 중 수 장이 힘을 잃고 펄럭대기 시작할 즈음에야 중인족들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우악스런 손으로 종이를 잡아보려 팔을 휘적거렸으나, 엘프 경관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집어 든 채였다.
집어 든 종이를 편의점 조명에 비춰, 빛을 투과시킨다.
“경관님, 지금 뭐 하시는. 아, 머리야….”
“정상적인 여권이라면, 구석에 마법진 무늬가 투시되어야 합니다만.”
지폐를 빛에 대면 투과되어 보이는 그거 얘긴가보다. 종이를 몇 번 더 뒤집어본 엘프는, 한 겹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건조한 어조로 마저 말해왔다.
“보이는 게 없군요. 위조여권 같습니다.”
“위조여권요? 그럼 이놈들이 다 불체자란 말씀이신 겁니까?”
“정황상으론 그러합니다. 자세한 건 서에서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말을 하다 말고는 허리춤에서 경광봉을 꺼내 든다. 박수를 치듯 허공을 헤집어 종이를 모으던 중인족 중 하나가, 경광봉을 빼든 엘프를 바라보고는 곧장 소리쳤으나….
“??? ??? ?????? ?????????! ??? ??? !”
“저 경찰 방망이 들었다, 도망쳐. 흠….”
“통역 그만하셔도 돼요!!”
“도주할 우려가 있어 보이니, 일단 제압하겠습니다.”
이 말을 읊조리고는, 곧바로 소리친 중인족의 허벅지에 경광봉을 후려갈겼다. 타격 부위에서 번쩍 섬광이 일고, 허벅지를 얻어맞았던 중인족이 목각인형처럼 풀썩 쓰러져 버렸다.
쓰러지며 초콜릿 진열대를 박살 낸 건 덤이다. 젠장할, 저건 또 언제 치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