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6)
이세계 편돌이-45화(46/331)
45화. 1개국어 편돌이 (4)
다른 중인족 둘을 제압하는 데에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쓰러진 중인족을 밟고 넘어가서는 다른 중인족의 정강이를 경광봉으로 후려갈기고, 뛰쳐나가려는 중인족 놈의 등에 대고 경광봉을 내던지고….
저러라고 만든 경광봉이 아닐 텐데 말이다. 재질도 플라스틱 막대기일 뿐이라 내구성도 좋지 않을 터인데, 중인족 놈들이 후드려 맞는 족족 픽픽 나자빠지고 있다. 뭐 마법 막대기라도 되는 건가?
등에 경광봉을 얻어맞은 마지막 한 놈은 섬광이 터짐과 동시에 자빠지며 정문을 덮쳐버렸는데, 그 탓에 정문은 또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아아, 저 정문! 저 정문!!
더욱 가관인 건 엘프의 후속 대처였다. 중인족의 손목을 등 뒤로 꺾어 붙잡고는 미란다 고지를 외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반쯤 기절한 놈들한테 그게 들리겠냐고 물으려 했으나, 엘프의 말에 맞춰 중인족들의 손목 부근에 하얀색 수갑 같은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법 주문도 아니고.
그렇게 마저 두 놈에게도 똑같이 미란다 고지를 외운 뒤, 집어 던졌던 경광봉을 주워 들어 허리춤에 다시 채운다. 거사를 치렀음에도 얼굴은 다크서클에 무표정, 그대로였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
“아직입니다.”
“또 뭐가요…?”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협조하기로 했다. 안 하면 나도 경광봉으로 후드려 맞을 것 같아. 계산대에서 몸을 빼 나오니, 언제 수거했는지 엘프의 손에 여권 두 개가 들려있는 채였다. 여권 두 개를 그대로 내게 내밀며 물어온다.
“만져봐 주시겠습니까.”
에이 씨, 이거 백 프로 들킨 것 같은데….
내키진 않았으나, 거절할 명분도 없었던지라 입술을 잘근 문 채로 여권 두 장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어김없이 폭발해 버리고는 표지가 천장에 처박히거나, 근처 과자 진열대로 종이가 날아가 버리거나 하며 한층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뭔가 현자타임 같은 게 찾아오는 것 같다. 아니,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지갑이 터졌던 이유도 이젠 알 것 같군요.”
“…그전엔 뭐라고 생각하셨는데요?”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알아내려고 조사과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아니, 그래. 내가 좀 숨겼소. 밤을 꼴딱 새우게 한 것도 참으로 미안하오. 쫄려서 말을 못 했소. 그래도 사람이 거, 반마법 능력 좀 숨길 수도 있는 것 아니오? 평생 설렁탕만 먹고 살게 될 판인데?
하며 배짱부렸다간 경광봉에 두들겨 맞을 것 같아서 함구했다. 무전기를 꺼내 입에 대고 보고를 마친 엘프는, 중인족들의 팔을 부여잡아 질질 끌어 정문 밖으로 끄집어냈다.
문이라도 열어줄까 싶었으나, 정문이 이미 박살 났기 때문에 그럴 이유도 없었다. 셋을 밖으로 내놓고 2분가량 지나고 나니, 경찰 트럭 한 대가 문 앞에 서고는 안에서 경찰복 입은 오크와 트롤이 내리더라.
그러고는 중인족 셋을 트럭에 욱여넣고는 데려갔고, 그 사이에 엘프는 밖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는 돌아왔다. 보고 있자니 나도 담배가 땡기는데 말야….
돌아와서는 내게 명함을 내밀어왔다.
“매장 안에서 소란을 일으킨 점, 사죄드립니다.”
“예….”
“매장 내 손상품에 대한 배상 청구는 익일 저녁 10시에 이 명함의 연락처로 연락 부탁드리며….”
명함 받는 게 이걸로 세 번째다. 조만간 엑조디아 소환되는 거 아니냐?
“정리는 같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여온다. 이걸 보고 나서야 속에 가라앉았던 불길함이 사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최소한 괘씸죄로 서에 끌려갈 일은 면한 것 같다.
“이외에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그, 저런 위조여권 들고 다니는 이종족들이 많습니까?”
이걸 못 들으면 당분간 신분증은 만지지도 못할 것 같아서 물었다. 엘프는 짐짓 고민하는 듯하다,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 요새는 어떤데요?”
“꽤 심합니다.”
이걸 말할 때는 방금 태운 담배가 또다시 땡기는지, 담뱃갑 주머니 쪽에 슬쩍 손이 가려다 말더라. 다크서클이 늘어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보다.
“매년 이맘때 즈음 특히 심해진다 보시면 됩니다. 6월에 단속이 있다 보니.”
“어떤 단속이요?”
“암시장 단속입니다. 아까 말씀드리다 만 부분에 첨언한다면, 전에 적발하셨던 지갑도 출처는 암시장일 테고.”
온갖 불법적인 마도구들이 유통되는 암시장 같은 게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이 동네 치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당최 유추가 되질 않았다. 이 동네는 매일 한 건씩 미친 사건들이 일어나.
“불법체류자야… 늘상 있는 일이고. 외에는 더 없습니까.”
“궁금한 점은 아니구요. 그… 저에 대한 건 다른 분들께 말씀을 안 해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신변 보호를 요청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것도 끝났고.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더 있긴 했지만, 난장판이 되어버린 편의점 로비를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장사는 해야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뇨, 안 도와주셔도 괜찮아요. 바쁘실 텐데.”
경찰이 타일 파편 줍고, 뭉개진 초콜릿 줍고 있는 것도 꼴이 우스울 것 같고, 뭣보다도 지금 내 심정이 많이 복잡했다. 좀 혼자 있고 싶어.
“그래도 제가 부순 건….”
돕고 싶다는 기색이었으나, 엘프의 허리춤에서 기계음이 들리고는 무전음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무전기를 들어 귀에 댄 채로 무전을 듣던 엘프는, 무전을 끊은 직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왔다.
“죄송하지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아, 가시기 전에 이거 들고 가십쇼.”
점장이 경관 먹으라고 포션을 만들어 뒀었다. 유제품 코너에서 포션액이 담긴 병을 꺼내 건네주자, 경관은 보기 드물게도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청탁금지법 위반입니다….”
“그거 신경 쓰이시면 그냥 잡수시고 가세요. 원래 빈 병이었다 하지 뭐.”
점장이 걱정된다고 건네준 건데 안 먹이기도 그렇다. 재차 내밀자, 못 이기겠다는 듯 병을 받아들고는 뚜껑을 열어 단숨에 들이켜버렸다.
그런 후 헬멧을 뒤집어쓰고, 빈 병을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나중에 연락 주십시오.”
뛰쳐나가 버렸다. 이리하여, 편의점에는 개박살이 난 정문과 과자봉지들, 여권 용지들, 반파된 초콜릿 진열대, 그리고 무너진 억장이 남았다.
로비 꼬라지가 아무리 좋게 봐도 개판, 더 좋게 봐야 공사판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하냐…?
고민하다, 우선 박살 난 문부터 고쳐보기로 했다. 그래도 장사는 해야 하니, 문짝만 고쳐놓으면 그나마 정상영업하는 곳으로 보일까 싶어서였다.
게다가 매―직폰을 살짝만 조작해도 바로 고칠 수 있으니까. 폰을 조작해 어플을 열고, 카메라로 정문을 겨눈 후 버튼을 누르고, 슬라이드를 조작해 정문을 되돌린 후….
여권 용지를 하나씩 수거할 무렵, 전화가 왔다. 점장이었다.
“예, 점장님.”
목소리를 가라앉힌 후 전화를 받았다. 점장이 이 꼬라지를 보면 실신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헌데 내 이름 부르는 두 글자가 무슨 귀신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리더라.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매장 보셨어요?”
[ 지금 보고 있어. CCTV로. ]“아니, 어쩌다가….”
[ 윤하가 찬이 뭐 하나 한번 구경해 보자구 해서…. ]점장이 누나랑 같이 술 먹는다 했었다. 가장 가까운 CCTV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이자, 옆에서 작게 윤하 누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휴, 언니. 거기 대고 손 흔든다고 쟤가 볼 수 있겠어? ] [ 앗. ]점장도 무심결에 손 흔들었나 보다. 이 엿 같은 세상에 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게 이리도 감격스러운 일일 줄이야.
근데 설마 엘프가 중인족들 두들겨 패는 것도 다 봤나?
“점장님, 어디서부터 보셨어요?”
[ 전화하기 직전에 막 켠 거라서. 어쩌다 매장이 이렇게 된 거야? ]“그게 얘기하자면 긴데….”
[ 언니, 스피커 폰으로 좀 바꿔봐. 잘 안 들려. ]잘 들어라, 지금부터 개쩌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라고는 해도 막상 과정을 얘기하려니 별거 없더라. 아까 말하던 중인족들이 알고 보니 위조여권을 들고 있었다. 나쁜 불법체류자들을 엘프 경찰이 진압봉으로 혼내줬다. 그걸로 끝.
최대한 가볍게 말했으나, 점장은 이번에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 찬이는 다친 데 없어? ]“저는 괜찮은데, 매장이 많이 다쳤어요.”
[ 그것두 큰일이지만… 찬이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여튼, 그러면… 그 경찰분도 찬이가 반마법 체질이라는 거 이젠 아시겠네. ]“네. 그래도 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아서. 괘씸죄로 끌려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마저 말했다. 지갑 건은 잘 해결되긴 했는데, 그 지갑이나 이번 위조여권이나 암시장인지 뭔지에서 가져온 거라 하더라. 헌데 점장은 이 대목 역시도 잘 모르겠다는 뉘앙스였다.
[ 암시장이라…. ]“아, 이건 점장님도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 그건 아니구, 암시장은 분명 예전에 내가 전부 부… 아. ]“예?”
전부 부, 뭐. 부쉈다고? 그 얘기야?
[ 아니, 그. 옛날에 방문해 봤었다구. ]급히 말을 돌린다는 인상이었으나, 못 들은 셈 치고 마저 말을 이었다.
“그 경찰 말대로면 6월에나 단속 시작할 거라 이번 달은 거리가 좀 혼란스러울 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글쎄. 협조 요청이 들어온다면, 협조를 해줄 수는 있지만… 찬이는 어떻게 생각해? ]“저도 비슷한 생각이긴 해요. 비슷한 생각이긴 한데.”
편의점 포스기를 오랫동안 내버려 두면, 대기화면으로 이런 뉘앙스의 문구가 떠오른다. ‘강도가 물건을 요구하거든, 요구하는 걸 전부 내어주세요!’
나약한 편돌이가 함부로 범죄자와 엮이지 말라는 얘기다. 여기가 물건 파는 곳이지 경찰서도, 출입국 관리소가 아니잖은가. 이건 나도 공감한다.
“이틀 동안 두 번 겪고 할 말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일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잖습니까. 제가 조용히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일이기도 했고….”
도둑 잡은 건 후회 안 한다. 눈 뜨고 코 베일 상황에서 얌전히 코 내줄 만큼 내가 순진한 놈이 못 되거든. 하지만 오늘 일만큼은 일체의 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버린 일이란 말이다.
이것도 후회를 하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쁜 놈 잡는 거 도와주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단지, 난 내 체질로 인해 우발적인 상황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싫다. 어제나 오늘은 잘 풀렸지만, 다음에 더 큰 일에 휘말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다간 여기서 일도 못 하게 될 거고. 생각을 얘기하니, 점장이 곧바로 대답해 왔다.
[ …안 그래도 찬아, 윤하랑 오늘 만나서 얘기한 것도 찬이 얘기를 하려구 한 거였거든? ]“제 얘기요?”
묻자, 이번엔 점장 대신 윤하 누나가 답했다.
[ 어. 이찬, 너 아예 자격증 하나 따볼 생각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