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49)
이세계 편돌이-48화(49/331)
48화. 필기 보는 편돌이 (2)
그 외에도 못 알아먹을 문제들투성이였다.
20% 순도의 마력이 포함된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에 감전된 트롤을 발견할 경우, 반마법 전문가로서 어떤 초동 대처를 취해야 하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아. 물 같은 걸 끼얹나?
그 외에도 은행 강도가 금고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지문 밑에 폭탄에서 나는 소리, 색, 흐르는 마력 같은 게 열거되어 있는데, 반마법 전문가가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냐네. 나라면 비명 지르면서 도망쳤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나마 알아낸 게 하나 있다면, 반마법 전문가가 활동하는 영역이 무척 광범위하다는 정도.
폭발물 해체도 예시로 나오고, 게이트에 들어갔을 경우도 예시로 나오고. 반마법 전문가 자격증이 이 업종들에 죄다 관여할 수 있게 해주는 거라 치면, 이 자격증을 왜 따려고 하는지도 얼추 이해가 됐다.
물론 이 깨달음이 문제를 알아처먹는 데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기에, 오크한테 고맙다 말하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진지하게 재응시를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반쯤 넋이 나간 채로 25분가량이 지난 후, 누군가가 시험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감독관 데카드입니다.”
목소리가 차가웠고, 피부도 창백했다. 뱀파이어인가 보다. 정숙해진 시험장을 슥 둘러보고는,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시험 시간은 60분, 80문항. 200점 만점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건네드리는 시험지를….”
말하며 손가락을 딱 튕기자, 눈앞에 시험지 한 묶음이 펑 하며 나타나서는 팔랑이며 책상 위에 떨어졌다. 생긴 게 딱 모의고사 시험지였다.
“푸신 후, 카드에 답안을 체크하십시오. 부정행위 적발 시 실격처리 되며, 차후의 모든 국가자격증 시험에 대한 일체의 자격이 박탈됩니다. 주관식은 없으며, 기타 시험 중 문제가 발생하거나 시험을 완료한 경우, 손을 들어주십시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감독관의 책상 위에 탁상시계가 초침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나도 시험지를 집어, 첫 장을 넘겼다. 그래도 수학 문제라면 어떻게 풀어볼 수는 있을….
[ 1번. 1 + 1 = ? (2점) ](1) 1
(2) 2
(3) 3
(4) 4
(5) 5
이거 창문 아니냐?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처음엔 내가 미친 나머지 환각을 본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날로 먹고 싶다는 내 바람에 우주의 기운이 모여들어 현현한 거든지.
허나 눈을 끔벅여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도 보고, 손톱으로 긁어봐도 그대로고.
몇십 초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문제에 문제가 있는 게 맞아 보였는데, 주변에서 문제제기를 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이거 뭐 응시자들 기죽지 말라고 던져주는 공짜 문제, 그런 건가?
긴가민가한 심정으로 답안지에 2를 마킹한 후, 다음 문제를 확인했다.
[ 2번. A B □ D E F G… 여기서 □에 적힐 글자는? (2점) ](1) B
(2) C
(3) D
(4) E
(5) F
“저, 감독관님?”
정적 가득한 시험장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몇이 고개를 슬쩍 들어 날 바라보고는 다시 시험지에 얼굴을 파묻었다. 감독관이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하지 말고 손만 드십시오. 시험에 방해됩니다.”
더 말 안 하고 손을 든 채로 가만히 있었더니, 감독관이 터벅터벅 걸어와서는 내게 몸을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문제 있습니까.”
이 문제 자체가 문제다. 난 반마법 자격증 시험을 치르러 온 건데, 왜 초등학교 산술 문제를 풀고 있어야 하는 거냐. 이거 시험지 잘못 준 거 아니냐?
라는 말을 목소리를 낮춘 채로 최대한 정중하게 묻자,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감독관은 시험지를 집어 천천히 한 장씩을 넘기고 훑었다. 그러다 말고 내게 시험지를 돌려주며 이렇게 말해왔다.
“시험지는 문제없습니다.”
“예? 이게요?”
“문제가 있다면, 응시자님께 있는 거겠지요.”
왜 갑자기 날 물고 늘어져?
라고 생각하기엔 어투가 빈말이나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방해된다며 날 서 있던 목소리도 훨씬 누그러져 있었고. 워낙 얼굴이 창백한 양반이라 날 보는 표정도 가소롭다는 건지, 어이가 없다는 건지 구분이 안 돼.
이후 감독관은 몸을 홱 돌려 자리로 돌아가 버렸고, 다음 문항을 봐도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배로 늘기만 했다.
[ 3번 문항. 1 1 2 3 5 X 13… X에 들어갈 숫자는? (4점) ]왜 피보나치 수열이 4점짜린데….
이다음 문제들도 대부분이 죄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수리, 언어, 혹은 도덕성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중 6번 문항이, [당신에게 축구공이 굴러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가 가져가라고 말한다, 반대 방향으로 차버린다, 공을 가지고 도망친다 등등 답안이 다양했는데, 그냥 공 차주면 되는 거잖아. 가지고 도망치는 놈은 무슨 싸이코패스인가?
문제가 죄다 이따위라 고민할 건덕지도 없었고, 80번 문항까지 다 풀고 나니 분침이 4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 풀면 손을 들라고 했던 게 떠올라 손을 들었다.
내 쪽을 힐끗 바라본 감독관이 다시 다가와 속닥이듯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다 풀었는데, 어떻게 하면 돼요?”
내 말을 듣고는 카드를 집어 들어 뚫어져라 바라보고, 내 얼굴도 다시 바라보고는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렇게 말해왔다.
“귀가하시면 됩니다.”
대충 찍은 줄 알았던 거겠지. 뭐든 간에….
* * *
일어날 때 내가 낸 의자 소리를 들었는지 몇몇 이종족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는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피식 웃는 표정들이었다. 경쟁자가 하나 줄어드니 지들은 좋다,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그러든가 말든가. 귀가해도 된다길래 냉큼 밖으로 나왔다. 시험장 앞 복도에 있기도 뭐해서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와, 300m 안내판이 있었던 분수대까지 왔다.
사실 분수대 생긴 게 좀 신기했거든. 분수대 한가운데에 용사가 굳건한 자세로 서 있는데, 위로 치켜든 칼끝에서 물이 끊임없이 솟구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바라보다, 근처 벤치에 앉아 점장이 쥐여줬던 피로회복제를 다 마신 후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딱 한 번 울렸다.
[ 여보세요? 찬아? ]“예, 점장님.”
[ 왜 벌써 전화를… 설마 시험 포기한 거야? ]“조졌어요.”
이세계 교육 수준이 말야. 점장이 아연실색한 듯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길래, 농담한 거라고 얼른 덧붙였다.
“다 풀긴 했어요. 풀긴 했는데, 문제들이 좀… 이상해서요.”
[ 예를 들면? ]“점장님, 1+1은 2가 맞죠?”
[ 어… 철학적인 의미로 묻는 거니? ]“그러니까, 손님이 원 플러스 원 물건 갖고 오면 두 개 주는 게 맞죠?”
[ 보통은 그렇지. ]마저 말했다. 문제가 죄다 이런 식이었고, 점장님은 축구공 굴러오면 발로 차 주시는 편이냐고. 이 부분을 말하는 시점에서 점장은 푸흡 웃음을 터트리고는, 수십 초가 지나도록 가라앉히질 못했다. 매장에 손님이 없나 보다.
“점장님?”
[ …아하하, 그, 아, 미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아서…. ]“그럼 좀 알려주십쇼. 저도 같이 좀 웃게.”
[ 응. 근데 얘기하기 전에, 주변에 듣는 다른 분들은 없지? ]듣고 나서 바로 주변을 둘러봤으나, 나 하나뿐이었다. 아까는 분수대 근처에서 사진 찍던 다른 이종족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없는 것 같아요.”
[ 응. 우선, 그 시험지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 ]“네.”
뚫어져라 쳐다봐서 일그러지지도 않았고, 만지는 순간 시험지가 폭죽처럼 터지거나 날 물어뜯으려 하지도 않았다.
“어….”
쉽게 말해 이런 얘기였다. 시험장 안에 입장하는 즉시 문제가 왜곡되어 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시험장 전체에 설치해 놓고, 왜곡된 문제의 난이도는 1년 빡세게 공부하면 풀 수 있을 정도로 설정해 놓는다.
이 문제를 어거지로 푸는 놈들은 아슬아슬하게 합격인 거고, 도중에 눈치채고 자기 반마법 능력으로 왜곡을 풀어버리면 프리패스로 통과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면 나처럼 필터고 나발이고 다 무시해 버리든가.
[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 이게 확실할 거야. 나도 떠올리고 나서는 꽤 묘안이라 생각했거든. ]점장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 그런 줄 알기로 했다. 딱 한 가지 의문만 빼고 말이다.
“필기시험인 줄 알고 온 건데, 이러면 실기랑 다를 게 없지 않아요?”
[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필기를 하긴 했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이거 거기서 시험 치르던 이종족들이 알면 들고일어나지 않겠습니까?”
[ 못 들고일어날걸? 아무도 모를 테니까. ]어쨌든 공부하면 풀 수 있게는 해놨으니, 못 풀어도 자기들이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말 거란다. 이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는데.
“쟤넨 번거롭게 이런 짓을 왜 한답니까….”
[ 나는 의도가 짐작이 가긴 해. ]“그래요?”
[ 응. 내가 출제진이고 이 의견을 들었다면, ‘이걸 눈치채는 응시자는 추가점수를 주든가, 아예 실기를 면제시켜 주자―’라는 식으로 생각했을 것 같거든. 어떤 자격증이든, 필기 점수보단 실질 능력이 훨씬 중요한 거잖아? ]하긴, 운전면허 필기시험 100점 맞는다고 다 운전 잘하는 것도 아니긴 하다.
[ 여기까지가 내 추측이었는데, 좀 이해가 됐어? ]“그럭저럭요.”
[ 히히, 찬이 몇 점 맞을지 기대된다. ]난 기대보다는, 출제진 놈들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시험 치르러 온 응시자도 엿을 먹이려 드는데, 편돌이한테는 오죽하겠어.
[ 그래서, 찬아. 언제쯤 마중 나가면 될까?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다 마신 피로회복제 병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일어났다.
과정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필기시험을 치러서 그런가, 학원 지구를 빠져나가면서도 심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다.
편의점 나오면서 느꼈던 거리감도 많이 희석된 것 같고 등굣길의 이종족들이 거의 줄어든 덕일 터다. 하긴, 오전 9시 한참 넘었는데 지금 등교하는 놈들 있으면 줄빠따 각이지.
정문이 보이는 위치까지 나왔을 즈음, 점장이 물었다.
“찬아. 그래서, 어땠어? 첫 나들이는?”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긴 한데….”
여기까지 오면서도 이종족들과 눈을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인간 종족을 아예 못 마주치긴 했지만, 최소한 내 겉모습만은 이 세상에서도 그리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다.
이런 느낌이라면 앞으로 어딜 가더라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걸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되었다.
더해서 놀거리가 참으로 많은 동네라는 것도 알았고.
정문 앞에 서서 한산해진 주변을 둘러보니, PC방이며 멀티방이며 학생들이 놀 만한 온갖 거리들로 가득했다. 마법 실습이 가능한 VR룸이 오픈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긴 했는데, 저긴 별로 가고 싶진 않다. VR은 멀미 나서 못 하겠어.
“최소한 여기 살면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아예 근처에서 놀다 와도 상관없는데?”
“오늘은 그냥 들어갈게요. 점장님이 걱정을 안 하실 것 같지도 않고.”
뭐… 언젠간 다시 오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