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1)
이세계 편돌이-50화(51/331)
50화. 실기 예행 편돌이 (2)
“계산을….”
“으으. 흐윽. 아으으….”
그렇다고 물건을 많이 골라온 것도 아냐. 티슈 하나 가져왔다. 눈물 닦으려고 가져온 거겠지.
얼굴을 슬쩍 보니까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걸로 모자라 계산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눈물이 계산대 위로 떨어져서는 닿는 부분마다 지름 3cm쯤 되는 빙판을 만들어 대고 있었다.
“그, 손님. 좀 진정하시구요. 티슈 1,200원이세요.”
“네, 죄송, 끅. 돈 드릴 꺼흑, 잠시만, 으허엉….”
옷에 묻은 간장 자국 지우듯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닦아내고는, 우악스럽게 지갑을 뒤져 2천 원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으흐윽. 거스름돈은, 끄흑….”
마저 말도 못 맺은 채로 밖으로 나가버렸고, 계산대는 이미 반쯤 얼어붙어 버린 후였으나 그래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설녀가 쇼윈도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버리기 전까지 말이다.
아직 매장에 계시던 어르신을 슬쩍 바라보았더니, 어르신도 저 우는 설녀 처자를 보며 참 느끼는 게 많은 듯했다.
“저 아가씨분께서 꽤나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듯하군요.”
방금 나한테도 하나 생긴 참이다.
편의점의 영역이 어디까지냐. 난 이 기준을 정문 5m 내외로 잡고 있다.
가령 편의점 앞 교차로에서 오크 둘이 자동차 문짝을 뜯어 들고 손바닥 밀치기 놀이를 하고 있다 치면, 이건 편의점에서 5m 이상을 벗어났으니 내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까 팝콘을 뜯었지.
근데 저 설녀는 아니었다. 등을 기댄 채로 주저앉아서는 1분, 2분이 지나도 도저히 서러움을 못 참겠는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흐윽….”
누가 들으면 처녀귀신 나온 줄 알겠어. 손님들이 무서워서 오겠냐?
차라리 안 보이는 데서 울면 모르겠는데, 코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여러모로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편의점에서 쫓겨난 줄 알 거 아니야.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얼굴을 바라보던 어르신이 더욱 안타깝다는 듯 덧붙여왔다.
“사장님께서도 제법 곤란한 상황인 것 같고.”
“네. 아무래도, 장사 못 할 것 같아서….”
뭘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어디로 보내긴 보내야 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는 게 문제다. 괜히 사연 한번 들어달라며 불똥 튀는 거 아니냐고….
“정 곤란하시다면, 제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저 말 하실 것 같더라. 오크 강냉이 털어버리셨을 때 보면, 기사도 정신이 충만하신 분 같았거든. 아니면 대리기사 정신이든가.
아무튼, 손님한테 일 시키기는 좀 그렇지만….
“그… 말하는 것만 좀 같이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거절할 만큼 난 능력이 뛰어난 놈이 아니었다. 잘생기는 능력 말이다.
물론 설녀 강냉이도 이번에 털어주실 수 있냐며 부탁할 생각은 물론 없었다. 최소한 둘이 있으면 네가 뭔 참견이냐고 귀싸대기 맞을 일은 없지 않을까.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여 주셨고, 심호흡을 한 후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확인한 후, 아직도 주저앉아 울고 있는 설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손님.”
말을 걸자, 하얗다 못해 백내장에 걸린 듯한 눈동자로 날 올려다본다. 백안 쓴 줄 알았다.
“그, 실례지만, 여기서 서러워하시면 매장 영업이 좀 곤란해져서요….”
“…흐윽. 제가… 훌쩍.”
도중에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마저 말해왔다.
“여기서… 조금만, 흑. 있다 가도 될까요…?”
“조금 몇 분이요?”
“…3분… 정도….”
라면에 물 올려놨냐?
왜 하필 3분이야. 물어보려 했는데, 이건 뒤따라온 어르신께서 대신 물어봐 주셨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설녀의 얼굴을 밑에서 올려다보며 너그럽되 정중한 어투로 말을 건네셨다.
“레이디. 실례지만, 무슨 곤란한 일을 겪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레이디란다. 이분 진짜 대리기사 아닐지도 몰라.
대리기사 어르신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개연성 덕분인지 인자한 말투 덕분인지, 설녀는 살짝 울음을 그치고는 자기가 겪은 사연을 아주 짧게 얘기해 주었다.
바람을 피웠단다. 남친이. 자기는 그걸 현장에서 붙잡았고.
“그… 그 나쁜 년이….”
여기까지만 들었다면 막장드라마 1화 촬영현장이겠거니 하고 말겠는데, 웃긴 게 자기 남친이랑 바람피운 이종족과 그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것이었다. 직장 동료였다는데, 사이가 별로 좋진 않았다나 뭐라나.
그 바람 대상인 여성 이종족과 서로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다 너무 아파서 도망쳤다는데, 등 뒤에서 자기 남친이랑 바람피운 이종족이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고. 이 남자는 이제 내 거다, 널 쫓아가서, 앞으로 이 남자에게 감히 손댈 생각도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
“웜머….”
이게 이세계식 러브코미디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서로 김치싸대기라도 때리는 건가 싶어 말을 못 잇고 있자니, 어르신께서 측은한 얼굴로 마저 여쭤보셨다.
“레이디께서는 아직, 그 남자분을 사랑하시는 겁니까?”
“아뇨. 그런 개자식을, 제가 왜 좋아하겠어요….”
말하는 어투가 무척 확신이 없게 들렸다. 어르신도 그렇게 느꼈는지, 잠시 설녀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본심은 그렇지 않아 보여서 그렇습니다.”
“…….”
“레이디께서 어떤 일을 겪으시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회한은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풀지 않는다면 더 큰 회한으로, 멍울로 남아, 남은 레이디의 평생을 괴롭힐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말 참 잘하시네. 어르신의 물음에, 설녀는 다시금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웅크린 채로 머리를 파묻어 버렸다. 그런 채로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는 얼굴로 다시 어르신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을 늘이던 어르신은 날 슬쩍 올려다보았다. 사장인 내 입장에선 어떻겠냐 묻는 얼굴이었다. 대답하기에 앞서,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주변에 불 켜진 점포가 별로 없다. 근처에 먹거리 골목이 있긴 하지만, 하이힐 신은 채로 3분 내로 걸어가기엔 아슬아슬하게 짧은 시간이야. 이 설녀가 쫓아올 그 작자들이 무서워서 이러고 있는 것 같은데….
“저희도 손님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주변에서 유일하게 불 켜진 곳이니, 여기라면 심리적인 측면에서라도 강하게 뭐라고 하진 못하지 않을까. 그러라고 했더니, 어르신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녀를 바라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행여나 찾아오거든, 그땐 가슴에 묻어두었던 본심을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옆에서 지켜봐 드리겠습니다.”
아니, 여기서요?
그냥 편의점 안에서 감시만 해주면 그걸로 되지 않냐는 생각이었으나, 이 어르신은 설녀의 옆에 누군가가 같이 있어 줘야 할 상황이라고 아예 확신을 하고 계시는 듯했다.
허나 설녀가 나도 올려다보고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길래, ‘저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라는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씨, 뭐 별거 있겠나.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면 되겠지….
이후 대략 2분가량이 지나니, 저 멀리에서 외제차 같은 게 한 대 슥 달려왔다.
거기서 내린 건 붉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스타일리쉬한 옷차림을 한 여자. 아니, 이 여자는 종족이 사람인가?
싶었으나, 머리카락 끝자락이 미세하게 타오르며 잿가루를 휘날리고 있다. 비유하자면, 90% 인간 비율의 이프리트? 근데 그건 정령이잖아. 염녀라고 불러야 되냐, 화녀라고 불러야 되냐….
선글라스를 벗어 접고는, 이쪽을 슥 둘러본다. 노년의 신사, 설녀, 그리고 편의점 유니폼 입은 편돌이 하나. 분명 시트콤 찍고 있는 걸로 보였을 거다.
“누구야, 그 이종족들은? 도움이라도 청하려고 왔어?”
피식 비웃고는 말을 잇는다.
“아니면, 꼬리칠 다른 대상을 찾은 건가?”
아니,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뭔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설녀의 말이 사실인 듯했다. 아니면 저 화녀는 불이고, 이 설녀는 얼음이라 그런가.
더해서, 설녀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우겠다는 호전성도 아직 죽지 않은 듯했다. 씨익 웃고는,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네게 미안하진 않아. 네 것을 빼앗는 셈이 되긴 하지만… 원래 사랑이란 게 그렇잖아? 스스로 쟁취하는 거?”
이러면서는 아예 손에서 불꽃까지 피워올리더라. 야이 씨, 저거 불법 아니야? 것보다 왜 편의점 앞에서 처싸워대려는 거야, 진짜 눈에 뵈는 게 없나.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저, 죄송한데요. 여기 위에 CCTV가 있어서….”
쟁취를 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카페 같은 곳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 주문하고,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씩 먹으면서 좀 얌전하게 얘기해 주면 안 될까.
“외부인은 비켜, 병원 실려 가고 싶지 않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었는데,
설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얼음 자국 가득했던 얼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세로로 가늘어진 동공에는 냉기가 서려 있다.
“그분은 원래 내 것이었어.”
읊조리는 것조차 차갑다. 어조를 한 자 한 자 이어감에 맞춰, 설녀의 주변에서 얼음 결정들이 한 알씩 서글서글 맺혀가기 시작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사랑했어. 내 거야. 내 거란 말이야….”
동시에, 쿵. 거대한 얼음 결정 하나가 설녀의 등 뒤에서 생성되고는….
“그러니까… 너한테는 못 넘겨…!”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야, 이거 그거냐? 손 내리면 원기옥마냥 날아가는 건가?
“얼음 송곳―”
동시에, 어르신이 사라졌다.
그러고 순식간에 설녀의 등 뒤에 나타난 어르신은, 이미 설녀의 목에 손날을 대고 있는 채였다. 그저 그뿐일 터였는데, 살기 등등하던 설녀의 몸이 앞으로 허무하게 고꾸라져 버렸고….
“어이쿠.”
쓰러지려는 몸을 받아 편의점 쇼윈도에 살포시 기대어 놓고는, 다시 몸을 일으키셨다.
“뭐야, 당ㅅ….”
이 광경을 바라보던 화녀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으나, 그 찰나에 이미 어르신은 화녀의 등 뒤에 서 계셨다. 이어서, 이 화녀 역시 손날로 목덜미를 툭.
화녀조차 풀썩 쓰러져 버렸고, 화녀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던 화염 역시도 언제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그 몸을 안아 들어 뚜벅뚜벅 다가온 어르신은, 쓰러진 설녀의 옆에 화녀를 똑같이 앉혀놓고는 내게 너털웃음을 터트리셨다.
“둘의 앙금이 좀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지켜보았습니다만….”
“예….”
“상황이 위험해질 것 같아 제지했습니다. 젊은 레이디들이 참 혈기왕성하군요. 사장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기사 하려면 그런 것도 할 줄 알아야 합니까?”
“물론입니다.”
대답하신 어르신은,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말씀하셨다.
“콜을 받는 즉시 그 위치로 달려가야 하니 빠른 몸동작이 필수이지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대리기사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일부 회차 내용 수정 안내
47화 필기 보는 편돌이 (1) / 49화 실기 예행 편돌이 (1)
이찬의 신분증 관련 내용 추가 및 실기시험 일자가 수정되었습니다.
수정된 파일은 메인 화면 → 보관함 → 다운로드에서 기존 파일을 삭제하신 후 다시 다운로드받으시면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