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2)
이세계 편돌이-51화(52/331)
51화. 실기 예행 편돌이 (3)
편의점 앞에서 행인들이 별 시답잖은 이유로 서로 말다툼을 하거나, 그게 싸움으로 발전하는 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나도 내 세상에서 몇 번 목격하긴 했었으니까.
그 발단들이 뭐였는지는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으나, 결말 자체는 대체로 허무하게 끝나곤 했다. 대체 왜 저러고 있나― 하며 3~4분쯤 구경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경찰이 와서는 원만하게 중재하고 가더라고.
근데 지금 이 상황은 뭐냐?
난 지나가던 대리기사가 싸움에 끼어들어 스티븐 시걸 해버리는 것도 본 적이 없었고, 스티븐 시걸 당한 피해자들이 편의점 쇼윈도에 기절한 채 주저앉아 있는 것 역시 본 적이 없다.
겪어본 적이야 당연히 없었고. 갈수록 상황이 어이없게만 느껴져서, 답답한 마음에 어르신께 먼저 물었다.
“어르신,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제 경우엔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겠지만… 지금은 사장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시는 게 맞는 듯합니다.”
싸움이 나려 했던 위치가 매장 앞이었고 내가 매장 책임자이니, 내 의견을 우선시하겠다는 소리 같다. 근데 의견이래 봐야 마땅한 게 있어야 말하든 말든 하지….
“이게, 씨….”
112에 신고하는 게 맞지 않냐, 이거?
나도 여기서 못 벗어나는 신세고, 어르신도 콜 받으면 나가셔야 된다. 바래다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럴 의무도 없고.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될 것 같다. 일이 커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점장이 그랬잖은가. 이 세상에서 마법으로 타 이종족에게 상해를 입히는 건 형량이 꽤나 무거운 범죄라고.
공교롭게도 이 둘이 싸우려 했던 자리를 방범용 CCTV 한 대가 정확히 겨누고 있다.
서로를 향해 마법을 쓰려 했다는 것도 다 찍혔을 건데, 경찰이 그 녹화영상을 봤다간 필시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재수가 좋아야 미수죄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어떻게 끝나든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건 분명하다. 외견만 보면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데, 한창 사회생활 해야 할 나이에 민증에 빨간 줄 그이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이 둘 언제쯤 정신 차릴까요?”
“힘 조절을 했으니, 대략 30분쯤 지나면 기운을 차릴 듯합니다만.”
“그럼 의자에 잠깐 앉혀놨다가 일어나면 집에 보내죠, 뭐.”
“영업에 지장은 없으시겠습니까?”
“있기야 하죠. 여기서 술 먹어도 되는 줄 알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좀 그런 게….”
이런 의견이 나오게 된 연유까지 마저 말하자, 다 들은 어르신께서는 이해했다는 듯 인자한 얼굴로 대답해 오셨다.
“아가씨들도 분명 배려에 고마워할 겁니다.”
감사는 바라지도 않으니, 일어나서 다시 깽판만 안 쳤으면 좋겠어.
이후, 어르신은 화녀와 설녀를 각각 한 팔에 안아 드시고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조심스레 앉혀놓으셨다.
“으음….”
“끙….”
테이블에 엎어져서는 얻어맞은 목덜미가 뻑적지근했는지 번갈아 가면서 앓는 소리를 내댔는데, 화음이 제법 괜찮았다. 이게 얼음과 불의 노래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둘은 이렇게 내버려 두기로 했고, 외에도 처리할 게 두 가지가 더 남아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녀가 끌고 온 자동차.
저 화녀가 하필이면 차를 도로 한복판에 대놨다. 오밤중이라 오가는 차가 거의 없기는 했으나, 시동이 꺼져있어 후미등도 불이 안 들어오니 들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날 보고 주차를 하라면 할 수 있긴 한데, 애석하게도 난 이 세상 면허증이 없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잠시 고민하던 어르신께서는 엎어진 화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레이디, 잠시 가방을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묻자, 화녀는 대답 대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왔다.
“으응….”
“응이라는데요.”
“저도 그렇게 들렸습니다.”
설령 아니었다 한들 지가 뭐 어쩌겠는가. 렉카에 실려 갈 거 막아줬으니 오히려 감사해야지.
이후, 핸드백을 자동차로 가져간 어르신은 문손잡이를 당겨 여셨다. 안에 탑승하셔서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내게 여쭤보시더라.
“사장님, 여기 갓길에 잠깐 주차해도 괜찮겠습니까?”
“저는 상관없는데, 저 위에 CCTV 용도가 원래는 주차 단속 용도라갖고. 재수 없으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야. 느긋하게 한번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시동 걸어 출발해 버리셨다. 어르신께서 주차할 곳을 찾으시는 동안, 난 다른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도보에 널리게 된 얼음송곳들.
작게는 내 몸통, 크게는 나보다 키가 큰 얼음덩어리들이 도보에 잔뜩 널려있어, 지나가려면 몸을 비집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이게 뭔 얼음송곳이냐? 조경용 화강암이지.
지금이야 갓길로 비껴 걸으면 그만이라지만, 아침이 되면 출근길 직장인들로 도보 위에 교통체증이 올 게 분명했다. 그 전에 미리 치우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망치로 때려 부술 수도 없고. 구청에 민원이라도 넣어야 하나?
“아니지.”
이것도 마법으로 만든 거잖은가.
그러니 손을 갖다 대면 녹아내리든, 드라이아이스마냥 연기 내면서 사라지든 하지 않을까. 내가 용역도 아니고 이 짓을 왜 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편돌이 하면서 별짓을 다 하네, 진짜.”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가장 큰 얼음에 양손을 대어봤다. 그러자, 손이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습기를 머금은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
증기에 금세 온몸이 축축해지긴 했으나, 뭔가 되어가는 것 같긴 해서 일단은 계속 버텨봤다. 그러길 십수 초, 얼음덩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흠뻑 젖은 보도블록만 남았다.
어째, 반마법 자격증을 따면 뭔 일을 하게 될지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장도리로 후드려 패는 것보단 이게 백 배 낫지. 이어서 가장 가까운 얼음덩이에 손을 대고, 몸에 냉스팀 한 번 더 맞고….
2분가량 이 짓을 반복해 딱 마지막 얼음덩이를 치워냈을 즈음, 어르신께서 내 옆으로 다가오셨다.
“호오….”
헌데, 얼굴 가득 흥미가 동한 표정이셨다. 뭔 말을 하시려나 싶어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뜸을 들이던 어르신께서 대뜸 내게 이런 걸 물으셨다.
“혹시 반마법에 소양이 있으신 겁니까?”
“저요? 그게, 어….”
발뺌을 해보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필기시험도 이미 합격한 마당에 발뺌해 봐야 의미도 없겠다 싶었다.
“네. 조금요. 근데 이거 보면 바로 아실 수 있나요?”
이것보단, 곧바로 반마법 얘기를 꺼내오신 게 의문이었다.
“대략적으로는요. 자주 뵙다 보니 눈에 익어서 그런가 싶습니다만.”
“자주 뵈셨다구요? 전문가분들을?”
“그렇습니다. 매월 둘째 주 즈음 병원에 가야 해서.”
제법 혹하는 이야기였다. 병원에도 전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얘기를 좀 들어두면 내 체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르신. 혹시 병원 다녀오셨을 때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만, 궁금하시다면야….”
“옙. 먼저 들어가 계셔요. 전 유니폼 물 좀 짜고 들어가겠습니다.”
얼음 없애다 보니 유니폼이 아예 흠뻑 젖어버렸다.
유니폼을 손으로 짜서 말리고, 편의점 안으로 돌아와 계산대의 빈 공간에 펼쳐 널어놨다. 그 뒤 안으로 돌아오니, 둘이 엎어져 널브러진 테이블 옆에 어르신께서 앉아계셨다.
둘이 곧 일어날 듯 보이긴 했지만, 길게 얘기할 일도 아니다. 계산대의 수박 젤리들을 통째로 가져와 어르신 옆에 앉은 뒤, 짤막하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어르신. 제가 지금 반마법 자격증 따려고 공부 중인 상황인데요.”
“공부 중인 상황…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네. 제가 필기는 됐는데, 실기가 아직 부족해 갖고.”
그 실기 예상 문항 중 하나가 이 수박 젤리에 걸린 마법을 구별해서 푸는 건데, 이거 보셔라. 구별하기는커녕, 걸린 마법을 죄다 푸는 것 말고는 할 줄도 모르겠다. 이걸 어쩌냐?
설명을 마치고 어르신을 슬쩍 바라보니, 벙찐 얼굴이셨다.
“저, 어르신?”
“…아. 죄송합니다. 아까 얼음을 없애시는 걸 봤을 때는, 아주 잘 숙련된 능력이라 생각되어서.”
“숙련은 무슨. 다 야매예요, 이거. 여튼….”
실기시험이 이틀도 안 남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혹시 병원에 계신다는 그분은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시냐. 병원 진료실이든, 응급실이든 뭐든.
마저 여쭙자, 잠시 생각하던 어르신은 쓰고 계시던 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다.
“사장님께서도 아실 내용이겠지만….”
운을 떼시는 동시에, 머리 위로 솟아난 은백색 귀가 살짝 쫑긋거렸다.
“저 같은 늑대인간 종족은 매월 만월 이전에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끓어오르는 야생성을 억누르기 위해서 말이지요.”
반은 알고 반은 모를 내용이었다. 늑대인간이 보름달을 보면 흉폭해진다는 속설은 알았어도, 그게 병원에서 검진받아서 해결될 일일 줄은 몰랐으니까.
“네.”
“하여 약물이나 심리치료 등을 병행받지만, 그걸로도 야생성이 억눌러지지 않을 경우에는 반마법 진료과를 찾아가게 됩니다. 만월이 임박했을 때의 증상에 따라 처방을 받는 식으로 말이죠. 가령.”
말을 늘이시고는 양복을 입고 계셨던 소매를 반쯤 걷으셨는데, 팔뚝 중앙에 쇠사슬이 팔을 한 바퀴 감싼 형태의 문신 같은 게 새겨져 있었다.
“제 경우에는 증상이 다소 심한 편이라, 이런 억제용 문양을 팔에 새기고 있습니다. 주로 예민해지는 오감을 억누른다든가, 보름달을 바라보고픈 충동을 억누른다든가….”
어르신께서는 해당 증상의 대척점에 해당하는 마법 문양을 몸에 새겨 처방을 받아왔다는 듯했다. 오감의 경우엔 신경을 둔화하는 마법을 걸고, 보름달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에는 아예 땅을 보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
더욱이 증상의 정도도 늑대인간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반마법 전문의에게 특히나 필요한 능력이 ‘마법을 살살 거는 능력’이라고 한다. 신경이 지나치게 둔해지면 늑대인간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지나치게 땅이 보고 싶어지면 쭈구리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제가 드릴 말씀은 이 정도입니다만….”
도중 말꼬리를 늘이시고는, 살짝 귀를 늘어뜨리고는 말씀하셨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시군요.”
“예. 솔직히, 조금.”
어르신이 말씀하신 처방이 마법을 지운다기보다는 상쇄시키는 것에 가깝게 느껴져서 그랬다. 이 방법을 쓰려면 마법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 난 안 쌓여있잖아? 마력.
선천적 마력 고자인 내겐 해당 사항 자체가 아예 없는 셈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일반적인 반마법 전문가들의 방식을 내가 못 쓸 거란 건 알았으니, 소득이 아주 없는 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떠오른 것도 아니다.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있자니,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넌지시 여쭤오셨다.
“사장님께서는 힘을 어떻게 다루시는 편입니까.”
“제 의지대로요.”
쉽게 말하면, 차단기 같은 거다. 내가 원하면 메인 전원은 ON/OFF가 가능한데, 세부 전원을 차단하는 법을 모르겠어.
“그리고… 음. 힘이라기보다는 체질에 더 가깝다 보시면 돼요.”
“체질 말씀이십니까?”
“네.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거라서요.”
대학병원 임상시험 알바를 뛰어본 적도 없고, 번개를 맞아본 적도 없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거 맞겠지, 뭐.
들은 후 잠시 고민하던 어르신은, 느닷없이 손목에 손을 가져가서는 매고 있던 시계를 천천히 풀기 시작하셨다.
“그런 느낌이라면, 이걸 보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어떤 거 말씀이세요?”
물었으나, 어르신은 언어로 대답하진 않으셨다. 슬며시 웃어 보이시고는 작게 기합을 주셨고, 시계를 푼 손목에 힘줄이 우두둑 튀어나와서는….
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야, 이건 또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