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5)
이세계 편돌이-54화(55/331)
54화. 편돌이, 때때로 이찬 (2)
받아서 읽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 꿈은 무엇이고, 그런 꿈을 가진 이유는 어떠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이다. 이딴 걸 왜 유치원 숙제라고 내주는 거야?
이해가 잘 안 돼서 숙제 전문을 다시 훑어보니, ‘나의 꿈은 무엇일까요?’라는 제목 밑에도 다른 문구 하나가 더 있었다. ‘부모님이랑 꼭 같이 해와야 해요!’
이게 숙제의 본래 목적이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아닌 부모님께 내주는 숙제. 이 숙제란 것도 핑계고, 자기 애랑 시간을 좀 보내라는 거지. 아가야,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단다. 이런 거.
“여기서 말하는 게 자야지 꾸는 꿈이 아니라, 그거야. 네가 하고 싶은 거.”
“아, 그러쿠나.”
“근데 꼬마야, 이건 나랑 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가정의 달 기념이랍시고 내준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단순히 내용 채워오라고 내준 숙제가 아니란 건 확실해 보인다. 꼬마를 향해 종이를 들어 보이며 마저 말했다.
“여기 적혀있잖어. 부모님이랑 꼭 같이 하라고.”
“그렇내여.”
“이거 언제 내준 숙제냐. 빨리 해야 돼?”
“어제 내주셨구… 낼모래까지라구 햇서여.”
이틀이면 시간은 넉넉하다.
“하지만여, 엄마야랑은 못 할 거 가타여.”
“왜. 엄마 바쁘셔?”
“출짱 가셔갖구.”
“언제 오시길래.”
“내일 밤 열한 시까지는 오신다구 햇는대….”
열한 시면 착한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고. 허나 말꼬리를 늘이는 꼬마의 어조로 짐작건대, 열한 시까지 온다는 말도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보다.
이런 상황이니 도와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전부 도와줬다간 유치원 선생들이 위화감 느낄 게 분명하고. 잠깐 생각하다, 카운터 구석에 잔뜩 쌓여있던 이면지 하나를 집어 올려놓았다.
“일단 좀 적어보자, 꼬마야. 넌 꿈이 뭐냐?”
“음….”
텅 빈 이면지를 바라보던 꼬마가 불쑥 내게 물었다.
“아조씨는여?”
“나? 내 꿈?”
“내. 아조씨 꿈.”
“네 숙제인데, 내 꿈은 왜 물어보냐?”
“저어는 못 고르겠어갖구….”
이후 자신 없다는 듯 꺼내는 얘기들을 들어보니, 떠오르는 건 많은데 그중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제일 모르겠다는 뉘앙스였다. 피아노 치는 것도 재밌고, 동화책 읽는 것도 재밌고, 유치원에서 젠가 하는 것도 재밌고.
이것들을 꿈으로 삼는다면 피아니스트, 동화 작가, 혹은 젠가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 정도가 될 수 있겠고, 확실히 7살 꼬마가 소거법으로 제거해 나가기엔 하나같이 매력적인 꿈들이긴 하다. 이러면 좀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내 꿈보다는… 그런 건 없냐? 진짜 하고 싶은데 못 하고 있는 거라든지.”
“하구 시픈대 못 하는 거?”
“어. 그런 것도 보통은 꿈이라고 그러거든.”
지금 내가 딱 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태 잘 먹고 잘살질 못해서 지금이라도 잘 먹고 잘살고 싶은 거. 29세 무스펙 고졸에게 과분한 꿈인 건 알지만, 다들 이런 말 하고 살잖아. 꿈은 크게 가지라고.
“진짜루 하구 시픈대, 못 하는 거….”
내 말을 되새기듯 중얼거리던 꼬마는, 아까처럼 자신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혹시, 이런 것두 갠차늘까여?”
“어떤 거?”
뭘 떠올리긴 했나 보다. 펜을 꺼내 이면지에 대고, 듣는 대로 읊조리며 받아적으려 했다.
“저는여… 친구를 사귀구 시퍼여.”
“그래. 친구를….”
순간 진심인가 싶어 꼬마 얼굴을 바라봤다.
꼬마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우물쭈물하고는 있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재차 물었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내.”
“여태껏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안 댈까여…?”
이거 꿈 어쩌고 얘기할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뭐, 안 될 건 없지. 꿈 얘기 하는 건데.”
이면지에 적었다. 꿈. 친구를 사귀고 싶다. 그 꿈을 꾸는 이유. 여태껏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이후 펜 내려놓고 잠깐 생각을 해봤다.
점장이 그랬다. 얘는 순혈 드래곤이라 어려서부터 뿔이 발달한다고.
그 뿔로 마력을 감지할 수 있고, 감지한 마력으로 인해 이종족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가 보이지만 판단할 분별력은 없기 때문에 모르는 어른을 쉽게 따라가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랑은 못 어울리게 가정교육 받는다.
그래서 어른들한테만 낯 가리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유치원에서 여태껏 친구를 사귄 적이 없을 거라고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근데, 대체 왜?
원래부터 낯 가리는 성격이라서? 이건 아니다. 그런 성격이었으면 지금 나랑 이러고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엄마가 다른 애들이랑도 놀지 말라고 그랬어?”
“그건 아니구….”
“그러면.”
꼬마는 짤막하게 답해왔다.
“애들이… 저어랑 노는 걸 별루 안 조아해여.”
“아니, 대체 왜….”
“저두 몰갯서여….”
자체 해석이 필요한 부분 같다. 일단, 이 꼬마는 순혈 드래곤이고….
희귀하다. 내가 2주간 일하며 코볼트, 서큐버스, 늑대인간에 심지어 말하는 포메라니안까지 만나봤지만, 드래곤, 그것도 순혈 드래곤은 얘 하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이 비율이 유치원에서도 똑같이 유지된다 치면, 걔네들 입장에선 이 꼬마를 특별하다, 혹은 자기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게 왜 같이 놀기 싫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할 수는 있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아니, 하얗고 뿔 달린 게 대체 뭐가 문제야. 애초에 코볼트고 고블린이고 오크고, 다 그놈이 그놈 아냐?
내 눈엔 죄다 똑같은 코스프레 전문가들일 뿐인데 말이다. 이 세상에 드래곤에 대한 관점의 차이 따위가 있기라도 한 건가? 내가 그걸 여태껏 몰랐던 거고? 이방인이라서?
백번 양보해서 내가 이해한 게 맞다고 쳐도, 유치원 애들 7살이잖은가. 한낱 꼬맹이들이 ‘너는 우리랑 다르게 생겨서 별로 놀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본 거야? 걔네들 마음?”
“…내.”
다른 애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이 꼬마는 굳이 물어보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니까.
“엄마랑도 이 얘기 해봤어?”
이거야말로 부모님과의 대화가 절실한 문제잖는가. 모자 관계 이전에, 용생 선배로서 문외한인 나보다는 더 좋은 조언을 해주겠지….
“내.”
“엄마는 네 얘기 듣고 뭐라시든.”
“따른 유치원애 갈 생각은 업냐구.”
읊조리고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덧붙여왔다.
“따른 대 가면, 친구 사길 수 있을까여?”
솔직히 못 그럴 것 같다.
이 녀석이 지금 유치원의 특정 애랑 사이가 틀어져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잖아. 순혈 드래곤이라는 종족명 위에 전학 온 유치원생이라는 딱지 하나 더 붙이는 짓거리밖에 더 돼?
얘 엄마가 어떤 생각이길래 이런 걸 안건이랍시고 꺼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얘기가 나온 이상 당사자 생각도 들어봐야 했다.
“넌 뭐라고 대답했냐, 꼬마야.”
“저어는… 갠찬다구 햇서여.”
“진짜 괜찮은 건 아니잖냐.”
“그러킨 한대여….”
꼬마는 이 부분에는 나름 확신이 있는 듯했다.
“혹시라두, 멀리 가게 대면여… 아조씨 못 보게 대는 거자나여.”
“…….”
“그래갖구, 갠찬다구 햇서여.”
…그래서 괜찮다고 했다고….
반박할 말은 가득 있었지만, 전부 삼키고 꼬마가 한 대답만 이면지에 적어 내렸다. 다른 유치원에 전학을 가고 싶지는 않단다. 나 못 보게 될까 봐.
“그럼 한 번도 없는 거냐? 애들이랑 얘기해 본 적이?”
“저두 말해보려구 했는대여….”
꼬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했는데?”
“저어가 말하려구 다가가면… 애들 마음이 더 새카매져여.”
이 녀석 관점에선 어떤 상황일까, 머릿속에 그려봤다.
꼬마가 애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다. 꼬마가 목젖까지 말을 끌어 올린다. 같이 놀고 싶다고.
같이 놀기 싫은 애가 뭔가 말하려고 하는 눈치다. 애들이 생각한다. 우린 이미 같이 잘 놀고 있는데, 얘는 왜 끼어들려고 하는 걸까. 꼬마가 다가갈수록 그 마음이 더 강해진다. 혹시라도 쟤가 같이 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싫은데.
새카만 마음이 점점 커진다. 위화감을 느낀 꼬마가 물러선다. 그제야 새카매지던 마음이 다시 밝아진다. 애들이 표정으로, 마음으로 안심하고는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놀기 시작한다.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바라본다. 애들은 즐겁게 놀고 있는데, 자기가 다가가면 그러질 못한다. 그래서 다가가지를 못하겠다. 바라보면서, 막연히 생각한다.
“그래갖구, 저어가 잘못하는 거 같아갖구….”
“네가 잘못한 거 없어, 꼬마야.”
딱 잘라 말했다. 같이 어울리기도 전에 싫다고 밀어내는데 무슨 수로 잘못을 해?
말 한마디 안 섞어봤고, 어떤 애인지 모르는 애를 무작정 밀어낸다면 반드시 외부적인 요인이 있는 거다. 그 요인이 부모가 애들 교육을 잘못해서인 건지, 정말 드래곤에 대한 시선 차이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말해봐야 이 녀석한테 상처만 될 것 같다.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거고. 이면지에 적은 후, 끝자락에 이어 적으며 떠오르는 걸 말했다.
“그래도, 이건… 네가 애들한테 직접 얘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도와달라 말은 해볼 수 있겠지만, 이것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같이 놀아주라고 해봐야 억지로 놀아주는 거, 선생님한테 혼나기 싫어서 놀아주는 것 이상은 못 될 테니까. 비즈니스 관계가 되어버린다니까?
그런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리 없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너희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희랑 다르지 않다고. 나쁜 애 아니고, 같이 놀고 싶을 뿐이라고.
“너희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얘기해야 돼. 그냥 친구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하다 꼬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꼬마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말해오는 목소리가 거의 울먹임에 가까웠다.
“저두… 그러구 시픈대여….”
“그….”
“그러구 시픈대… 새카매서… 무서어갖구.”
이 ‘새카맣다’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난 모른다. 내가 이 꼬마처럼 뿔이 달린 게 아니었으니까. 새카맣게 칠해진 모양 같은 건지, 아니면 블랙홀처럼 깊은 구멍 같은 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게 보이는 한 이 꼬마가 또래 친구들에게 다가갈 일은 일절 없으리란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야 한다, 뻔뻔해져야 한다, 그런 얘기 해 봐야 탁상공론이다. 그럴 수 있으면 진즉에 그랬을 테니까.
이면지에 적었다. 애들의 새카만 마음이 무섭다. 그래서 말을 못 걸겠다.
계산대 밑의 수박 젤리를 슬쩍 바라본 후, 마저 이어 적으며 물었다.
“꼬마야.”
“내.”
“내가 애들 마음 안 보이게 해주면, 그땐 말 걸 수 있겠냐?”
꼬마는 잠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안 보이개여?”
“어. 안 보이게.”
“어뜨케여…?”
“내가, 그… 재주가 하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