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6)
이세계 편돌이-55화(56/331)
55화. 편돌이, 때때로 이찬 (3)
밤에 대리기사 어르신이 이런 말을 하셨다. 늑대인간들은 제어가 안 되는 야생성 때문에, 병원에 가서 반마법적인 처방을 받는다고.
그리고 이 꼬마가 또래 애들 새카만 마음을 보고 사는 건, 머리에 달린 뿔을 제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마법에 대해 쥐뿔 아는 건 없지만, 두 사례의 원리가 아주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마력을 감지하는 기관이면, 필시 마법적인 뭔가가 기능하고 있을 테니까….
“그 재주로 네 뿔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데, 꼬마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저어는….”
내 말에 꼬마는 정문 밖을 바라보기도 했고,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했다. 호박색 눈에 슬쩍 기대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랫서여. 안 사라질 꺼라구.”
“병원에 얘기를 해봤어? 뿔 때문에?”
“뿔 때무는 아니구여….”
꼬마가 주섬주섬 꺼내는 말들을 정리했다. 순혈 드래곤. 희귀한 종족이고, 원래 형태가 따로 있다. 지금처럼 뿔 달린 반인반수가 아닌, 영화나 만화 같은 매체에서나 볼법한 용.
때문에 변환마법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유지해야 하는데, 얘는 유치원 다닐 나이라 아직 변환마법을 쓸 수 없어서 병원에서 마법을 걸어준단다. 2주에 한 번씩.
처음 듣는 내용이었지만, 일단은 귀 기울여 들었다.
“병원 가면여… 엄마가 자주 물어보셔여. 뿔은 잘 자라구 있냐구.”
“그래서.”
“그래서여, 의사 선생님이… 아주 잘 자라구 있다고 하셧구, 또… 기…력?”
“기술력?”
“내. 기슬력이 안 대갖구, 어떠케 못 한댓서.”
지금 기술력으로는 드래곤 뿔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소리인 것 같은데, 용케도 이런 얘길 기억하고 있다 싶었다. 아니면 너무 자주 들어서 귀에 박혀버린 거든가.
“그러니깐 축복이라구, 걱정 말라구 하셧서여. 엄마한태.”
“축복이라고 했다고.”
“저한태는, 소중히 여기라고 하셧구.”
얘 엄마는 오히려 이 꼬마가 그런 걸 못 보게 될 걸 걱정하는 것 같다. 의사 선생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고.
솔직히,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대단한 재주인 건 사실이잖은가. 누가 나쁜 마음 먹었는지 알고 살 수 있으면, 살면서 사기당할 염려는 없을 테니까.
더해서 뒤통수 맞는 일도 없을 거고, 눈앞의 누군가가 나쁜 마음 먹었는지 아닌지를 몰라서 의심할 일도 없을 거고… 나쁜 마음 안 먹었는지를 몰라서, 의심하고 밀어낼 일도 없겠지.
근데 말이다. 이것들 죄다 어른들 사정일 뿐이다.
“네 의견은 어떤데.”
“저 이견여?”
“네가 힘든 거잖냐. 그 어른들이 아니라.”
7살 꼬마가 사기당하고, 뒤통수 맞을 일이 대체 뭐가 있는데?
7살 때는 어른들 사정 신경 안 써도 된다. 7살 때는, 그냥… 모르고 살아도 된다. 또래 애들이랑 놀고, 웃고 떠들고, 수틀리면 서로 싸우고. 그러면서 잘 맞는 친구 만들어서 추억 쌓고 살면 된다.
나는 그렇게 못 살았다.
거지새끼 집안이라고, 저 새끼 구멍 뚫린 운동화 신는다고. 나도 이 꼬마와 마찬가지로 7살 꼬맹이로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미움받았었고, 집에 돌아와 울었고….
괴로웠다. 나는 그랬어도, 너는 그러면 안 돼.
“네가 힘든 거니까, 네 의견 묻는 게 맞지.”
“그른가여….”
“그래서 어떤데. 그거 안 보이게 해주면, 애들한테 말 걸 수 있겠어?”
꼬마는 자신 없다는 눈치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POS기의 시계를 확인했다. 9시 50분. 시간은 넉넉했다. 어차피 오래는 안 걸린다.
초침이 한 바퀴 더 돌아가고 나서야 꼬마가 대답했다.
“할 수 잇슬 거 같아여.”
“네가 갔다는 병원, 크냐?”
“에. 어, 어엄청 커여. 대학꾜 병원이랫서.”
“알았다.”
이면지에 끄트머리에 적은 후, 하나씩 머리에 새겨나갔다.
첫째. 방금 이 꼬마는 지금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병원에서 변환마법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까딱 잘못해서 그 마법까지 풀어버렸다간, 이 꼬마가 내 눈앞에서 해츨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단 소리다. 그러니 딱 하나, 뿔이 가지고 있는 마법만 지워야 한다.
둘째. 아예 지워버려서도 안 된다. 난 얘 엄마한테 고소장을 받으려고 이러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 꼬마가 유치원에 있을 시간대, 딱 몇 시간 정도만 뿔을 먹통으로 만들면 된다.
셋째. 이건 더럽게 어려운 일이다. 대학병원에서도 기술력이 딸려서 못 한다잖아. 어설픈 마음으로 시도했다간 본전도 못 건질 게 분명하다.
되새긴 후, 자리에서 일어나 꼬마에게 손짓했다.
“여기 잠깐 앉아봐라, 꼬마야.”
“내.”
꼬마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았다. 밑에서 내려다보니 꼬마의 정수리가 훤히 보였다. 뿔 두 개도.
지금부터 이 뿔을 만져야 하는데, 점장은 드래곤들한테 뿔이 엄청 민감한 부위라고 했단 말이지. 이건 이것대로 동의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걸 하려면 내가 네 뿔에 손을 대야 하는데, 괜찮겠냐?”
“괜차나여.”
이번엔 대답이 빨랐다.
“아조씨니깐.”
“왜 부담 주고 그러냐.”
동의도 구했겠다. 꼬마가 못 듣게끔 작게 숨을 내쉰 뒤, 새벽 내내 떠올렸던 것들을 복기했다.
이 체질로 난 뭐가 되고 싶은 걸까. 모른다.
나 같은 놈이 뭐가 될 수나 있긴 한 걸까. 이것도 모르겠다.
더 생각한다고 답을 낼 수 있을까. 못 그럴 것 같다. 애초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러니, 더 생각 안 하련다.
애초에 꿈이고 나발이고, 나와는 오만 광년 떨어진 먼 나라 이야기들이잖아.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해야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무엇을 계기로 삼아야 하는가.
지금 이게 내 계기다. 7살 꼬마가 낀 선글라스 벗겨주는 거, 이거 하나면 돼.
이것조차 못 해낼 쓸모없는 체질이라면, 차라리 구석에 처박아 놓고 없는 셈 치겠다. 그러니 골동품 취급받기 싫으면 얌전히 말 들어 처먹어라, 내 몸뚱어리야.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꼬마의 뿔을 스치듯 쓸어내렸다. 까끌까끌했다.
엄지가 닿는 순간 꼬마가 흠칫 몸을 떨었으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달라진 게 느껴지면 알아서 말하겠지 싶어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잠시 후 꼬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대답해 줬다.
“끝났다, 꼬마야.”
“정말루여?”
“어.”
꼬마가 의자에서 일어나고는, 느릿느릿 정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나도 따라가서 문을 열어주니, 꼬마가 밖을 두리번거리다 한 이종족에 대고 시선을 멈췄다.
양복을 걸친 코볼트였다. 휘청이는 걸음걸이로 보건대, 술을 거하게 잡순 듯했다. 비틀거리며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꼬마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그러고는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려, 거리를 걷는 행인들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횡단보도를 지나는 고블린, 버스, 건물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하피. 내겐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꼬마는 처음 보는 광경인 양 놀라운 듯했다. 방금 막 눈뜨는 법을 배운 것처럼.
“좀 어떠냐.”
“처음 봐여.”
“어떤 걸?”
“전부 다.”
슬그머니 꼬마의 모습을 훑었다. 뿔 언저리에 비늘이 돋아나지도 않았고, 어깨에 날개가 튀어나온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잘된 것 같다.
거리의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을 즈음이 돼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꼬마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어뜨케 하신 거애여?”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냥?”
“해주고 싶더라고.”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어르신께서 자기 아이를 안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꿈이나 미래 따위가 걸렸기 때문이 아니었을 테니까. 갓 태어나 울기 시작한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주고 싶다.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날 올려다보던 꼬마는, 짐짓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조씨. 하나만 더 물어바두 댈까여.”
“어떤 거.”
“저어가 말 걸어두, 애들이 시러하면… 그래서 안 놀아주며는 어쩌져.”
합리적인 고민이다. 결국 달라진 건 이 꼬마지, 그 애들 인식이 바뀐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거 못 할 줄 알았어.”
“엣?”
“대학교 병원에서도 기술력이 안 돼서 못 했다며. 걔네도 못 한 걸 내가 어떻게 하냐, 그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되긴 됐잖냐?”
“…내.”
“안 해봤으면, 계속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고.”
조건은 나보다 이 꼬마가 훨씬 더 유리하다. 이 꼬마는 착한 녀석이고, 같이 있을 때면 늘 재밌었으니까. 다른 애들도 조금만 어울려보면, 이 꼬마랑 진즉에 같이 못 논 걸 후회할 게 분명하다.
“내가 해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함.”
“정말여?”
“정 못 하겠으면, 그냥 걔네들 다 불러와. 뇌물이라도 먹여주려니까.”
“내물?”
“과자 사준다고.”
“저, 돈 없는대.”
“난 돈 있으니까 걱정 말고.”
나도 빈털터리긴 하지만, 7살 꼬맹이들 위장 채울 정도의 돈은 있다. 꼬마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거리를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어여. 아조씨.”
그 목소리가 떨렸다. 한마디 보태줬다.
“커서 갚어. 기다릴 테니까.”
* * *
안으로 들어와 꼬마에게 박스를 들려줬다. 갈 땐 가더라도 선물은 챙기고 가야지.
그러면서 든 생각이, 사후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야 이 녀석 뿔을 몇 시간 먹통으로 만들겠다― 생각하며 저지른 거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거란 보장이 없잖은가.
더해서 시기를 잘못 잡았다. 얘 유치원 안 가잖아. 오늘 일요일이니까. 도대체 난 뭘 한 거냐?
앞으로 연락할 수단이 필요하겠다 싶어 꼬마에게 물었더니, 꼬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파우치에서 앙증맞은 핸드폰을 꺼내 내게 내밀어 보였다. 스마트폰 말고 핸드폰.
“아니, 핸드폰이 있어?”
“히히.”
내가 이 녀석 나이에 가진 연락수단이래 봐야 털실 종이컵 전화기가 고작이었는데 말야. 세상 참 편해졌다.
꼬마에게 핸드폰을 받아 내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이름은 ‘아조씨’라고 입력해 놨다. 이후 통화 버튼 눌러서 연락 온 걸 확인한 후 이름을 입력하려는 찰나, 꼬마가 대뜸 물었다.
“근대여, 아조씨는 이름이 머애여?”
“이찬. 근데 내 이름은 왜 물어봐?”
“저어는, 하나애여.”
뜬금없이 이름은 왜 말한대?
싶었으나, 자기 이름이 ‘꼬마’라고 적히는 게 내키지 않는 거라 생각기로 했다. 꼬마 두 글자를 지우고 하나를 입력한 후, 시간을 확인했다. 점장 출근까지 5분 남았다.
“꼬마, 아니. 하나야. 너 평소에 몇 시에 자냐?”
“아홉 씨.”
“일어나는 건?”
“일곱 씨여.”
이러면 아침 말고는 연락 못 하겠다.
“나는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는 잘 시간이라, 그 외에는 네가 전화해도 못 받아. 그러니까 혹시라도 전화하진 말고….”
“내.”
“뭔 일 있으면 문자 보내고… 너 슬슬 집에 가야겠다. 나도 이따가 퇴근해야 돼. 아, 그리고.”
“그리구?”
“마음 안 보인다고 모르는 어른 따라가지 말고, 그냥 버스 타고 집에 가. 이건 나랑 약속하는 거야. 알았지?”
“내. 약속.”
이쯤 하면 됐겠지.
정문 앞까지 같이 나가, 꼬마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잘 자여, 찬이 아조씨.’ 하며 정류장까지 가고, 버스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데, 도보 건너편에서 아는 얼굴이 걸어오고 있었다. 점장이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달려와서는 인사를 건넸다.
“찬아, 하이.”
“예….”
“오늘은 특히 졸려 보이네.”
“실제로 졸려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돗자리만 깔아주면 도로 한복판에서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유니폼 벗으면서 인수인계 사항을 전달했다.
“담배 빵꾸 난 건 따로 없고요, 시제도 다 맞고… 도둑놈이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건 걱정 안 되는데… 어떻게, 잘됐어?”
“뭐가요?”
“수박 젤리.”
무슨 수박 젤, 아. 이런 씨, 까먹고 있었다.
마법 걸린 젤리는 몇 개도 채 안 남았고, 다른 젤리들은 옆의 계산대 안쪽의 피로회복제 상자에 처박아 놓은 채다. 수박 젤리 통을 꺼내서 올려놓으니, 점장이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어왔다.
“고생했네.”
“예. 그래도….”
도중에 얼불녀들이 와서 편의점 박살 낼 뻔하기도 했고, 꼬마애 고민도 하나 해결해 줬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것들도 죄다 변명일 뿐이었다. 한나절 받고도 못 했으면 그냥 못 한 거지, 뭐.
“죄송함다. 기껏 도와주셨는데.”
“아냐, 찬아. 이거, 연차 몇 년 쌓인 전문가들도 힘들어하는 거니까.”
“그래요….”
“응. 찬이가 감이라도 잡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구. 많이 어려웠어?”
이게 무진장 어려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박 젤리 하나를 꺼내며 되는대로 생각했다. 점장에겐 진짜 미안한 얘기지만, 잠기운이 기이할 정도로 밀려들고 있다. 이러다 뻗어버릴 것 같아.
그러니 충격이 어쩌고, 소음이 어쩌고, 아무거나 지워지든 말든 해라. 나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생각을 마친 후 젤리를 놓고, 되는대로 중얼거렸다.
“제가 이거 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긴 했는데요, 그, 죄송한데 저 지금 잠 안 자면 죽을 것 같….”
“찬아.”
“예.”
“잘된 거 같은데?”
젤리를 보니, 느릿느릿 떨어지던 젤리가 계산대 위에 닿자마자 통 소리를 냈다. 무소음 마법이 지워진 거다. 이어서 위로 높이 튀어 오르고는, 로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충격 흡수 마법도 지워졌다.
“아니, 이게 왜 되는 거예요?”
“글쎄?”